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10월 25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Margaret K 2022. 10. 25. 06:39

2022 10 25 연중 30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 덩이가 부풀어 올랐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누룩과 같다.

(루가 13,18-21)

 

 “To what shall I compare the Kingdom of God?
It is like yeast that a woman took
and mixed in with three measures of wheat flour
until the whole batch of dough was leavened.”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고 이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겨자씨와 같고 밀가루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과 같다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보다 보면 그의 충격적인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네살 짜리 아이처럼 혀를 쭉 내밀고 찍은 사진입니다.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몇몇은 사진을 조작한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점잖고 존경받는 그리고 위대한 지성을 가진 아인슈타인이 그런 자세를 취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사진을 받았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기 싫다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량으로 복사해서 메모 카드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모습 역시 자기 모습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철없다고 비난했지만, 공개적인 사과와 앞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기자회견도 없었습니다. 자기의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 역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인정하지 못하면서 남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자기 모습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다양성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 삶은 더 풍요로워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자주 말했었다고 합니다. 즉, 거대한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현재의 이스라엘에 하느님께서 나타나셔서 능력을 휘둘러 하느님 나라를 유다 땅에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라고 평가받고 있던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도저히 메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로마에 반대해서 모두 들고일어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회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뽑은 제자 역시 마음에 들지 않지요. 하나같이 무식하고 어딘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느님 나라는 가난하고 울고 쫓기는 사람의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시작은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결말은 놀랍도록 위대하리라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의 완고한 마음을 가져서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하면서,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그 다양한 활동이 겨자씨와 누룩처럼 놀랍도록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엘리잘 벤 주다).

 자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부모의 도리일까?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JDoiChyggSQ

TV프로그램 ‘안녕하세요’ 에 딸이 하기 싫다는데 그 꿈을 강요하는 아빠가 나왔었습니다. 딸은 아빠가 무서워 연기공부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싫다고 말하는 딸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아빠가 딸의 재능을 발굴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빠가 연예인이 꿈이었습니다. 생각대로 잘 안되자 딸이 자기 꿈을 이뤄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부모의 도리가 과연 자녀의 재능을 찾아 성장시켜 주는 것일까요? 부모는 자녀에게 방향만 알려주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가 자전거를 타고 가든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가든 그것은 본인이 결정하면 됩니다. 

    디팩 쵸프라가 이것을 잘했습니다. 두 아들에게 이웃에게 어떤 좋은 일을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이웃을 도와주다가 사람의 심리를 잘 알게 되어 사업가가 되었고, 동생은 공부 못 하는 아이를 가르쳐주다가 하버드 교수가 되었습니다. 방향을 아니 재능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습니다. 잘 자라서 새들이 깃들이게 하고 잘 부풀게 해서 부드러운 빵이 되게 합니다. 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말씀, 혹은 성체라 한다면 그 씨와 누룩이 우리 안에서 일으키는 작용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은 휴식 같은 친구, 군고구마처럼 맛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내 안에 뿌려진 씨를 잘 키울 때만이 이뤄질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겨자씨를 잘 키우지 못하던가 누룩을 넣고 불로 잘 요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잘 키워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노력이 없으면 겨자씨는 썩어버리고 누룩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를 잘 키워가기 위해 꼭 필요한 유일한 것은 ‘좋은 뜻’ 입니다. 내가 썩어갈 것인가, 익어갈 것인가 중 어떤 것을 원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는 되어갈 것입니다. 나에게 씨는 이미 뿌려졌습니다. 좋은 뜻만 있으면 됩니다. 내가 휴식 같은 친구가 될 것인지, 맛있는 빵이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방향을 정해줄 수 있는 대상이 부모이고 스승입니다. 방향을 알았으면 자기 재능은 기도로 찾아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위한, 이웃에게 먹히는 삶이 행복이라는 씨앗을 우리 마음 안에 뿌리신 분입니다. 이 씨앗을 키워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이승복 씨는 미국으로 이민하여 기계체조를 하다가 큰 부상을 당합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 한 선교사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뜻이고 분명 좋은 뜻이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었던 이승복 씨는 자기와 같은 처지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열심히 재활하고 공부하여 하버드 의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존스 홉킨스 대학 병원 재활의학과 과장이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먼저 모기처럼 나를 위해 살 것인지,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살 것인지가 결정이 되면 비로소 찾게 됩니다. 

  

    일본 소프트 뱅크 손정희 씨도 죽음의 문턱에서 아프리카 한 소녀의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겠다는 좋은 뜻을 가지게 되면서 병이 낫게 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아주 좋은 일을 많이 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먼저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뿌려줍시다. 그 씨앗이란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휴식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고 부드러운 빵이 되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성장시켜 나가게 될 것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집시다.

가정 성화를 위한 지혜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hqBVxikoTxw

 -조재형신부-

 

20년 만에 친구를 만나면서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 없이 헤어졌습니다친구는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멀리 타국으로 이민 갔습니다믿었던 사람과는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지금은 안정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무엇보다 자식들이 잘 자라주는 것이 고맙다고 합니다힘든 시간들인데 남편을 믿고 따라준 아내가 감사하다고 합니다다시 만남을 기대하면서 고려시대 문인 정지상의 송인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언덕 위의 풀은 다시 파랗게 변하는데친구는 멀리 남포로 떠나니 슬픈 마음이 이네대동강물이 마르면 친구 다시 올는지나의 눈물이 강물을 더하네.”1989년 결혼해서 33년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지내는 친구와 그 아내가 늘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언제나 서로 의지하면서 기쁘게 지내는 친구와 아내에게 나훈아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둘도 없는 내 여인아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싫지 않는 내 사랑아비 내리는 여름날에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눈 내리는 겨울날엔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온 세상을 다 준대도바꿀 수 없는 내 여인아잠시라도 떨어져서는못 살 것 같은 내 사랑아행여 당신 외로울 때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행여 당신 우울할 때내가 당신 웃음 주리라” 참 아름다운 가사입니다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전하고 있습니다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아내는 남편을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남편과 아내는 같은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가끔씩 앨범을 보곤 합니다. 30년 전의 모습, 20년 전의 모습, 10년 전의 모습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생각합니다. ‘나는 예전의 나의 모습에서 얼마나 발전했을까순수하고깨끗했던 모습은 많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어린 시절의 외모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30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별개의 사람이 아니라시간을 거치면서 계속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열심히 기도하고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했으면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교만하고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소홀했으면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남아 있거나사라졌을 것입니다욥기 8장 7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 작은 씨앗은 커다랗게 자라고열매를 맺는 것을 봅니다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자신은 물론 남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자라는 것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십니다그 시작은 겨자씨와 같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와서 머물 정도가 된다고 하십니다누룩과 같아서 부풀어 오르면 맛있는 빵이 된다고 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안에 감추어졌던 놀라운 가능성을 보았고제자들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셨습니다비록 시작은 12명이었지만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수많은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박해와 시련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조건을 보시고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예수님을 배반했음에도다시 악의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들입니다우리가 그렇게 살 때비록 현실은 작고 초라할지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큰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내게 내일이 있으니 나는 오늘 위대합니다!

 -양승국신부-

 

올봄 야외 식당 바로 옆에 화분들을 이용해서 청양고추며 상추 등 야채 몇 가지를 심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데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릅니다.

  

씨앗을 뿌릴 때마다 참으로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생명의 신비, 작은 것 안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지요.

  

씨앗들의 크기도 천차만별입니다. 시금치나 근대, 옥수수 씨앗은 큼지막합니다. 그러나 열무, 쑥갓, 상추 씨앗은 정말 작습니다. 입으로 훅 불면 날아가 버립니다. 다룰 때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런 씨앗은 흙을 덮어줄 때도 너무 많이 덮으면 발아가 더디기에, 빗자루로 조심조심 쓸어가며 흙을 살짝 덮어줍니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나가면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황량했던 텃밭이 온통 푸른빛으로 변해갑니다. 밭 전체가 풍성한 식탁으로 변화됩니다. 아무리 솎아 먹어도 또 나오고 또 나오기를 반복합니다. 하느님이 부여하시는 생명의 신비를 눈앞에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지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만날 때 너무나 왜소해 보이고, 덜 떨어져 보여 안타깝습니다. 저게 도대체 인간 구실이나 하려나, 의문이 가기도 합니다. 더딘 성장과 성숙에 답답할 때도 많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려나, 언제쯤 인간이 되려나, 걱정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웬걸, 2-3년만 지나면 그런 걱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몇 년 전 철부지 모습은 어느새 없어지고 의젓한 청년이 되어있습니다. 생각하는 것, 마음 쓰는 것, 행동하는 것도 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기분 나쁘게’ 나보다 더 키가 커졌습니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다 든든해집니다.

  

한 생명체 안에, 한 인간 안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과 하느님께서 뿌려놓은 작은 씨앗의 성장 앞에 감탄할 뿐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고, 때로 한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위대한 존재입니다. 위대한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성장 가능성’ ‘변화 가능성’ ‘회개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란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 삶이 비록 초라해 보이고, 때로 비루해 보일지라도, 내게 내일이 있으니 나는 오늘 위대합니다. 오늘 내 인생이 비록 실패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새 출발의 가능성, 변화의 가능성을 지니는 한 오늘 나는 위대합니다.

  

오늘 비록 내가 부족하지만 내 안에 뿌려진 하느님의 씨앗으로 인해 오늘 나는 위대합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이영근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한 쌍의 비유를 전해줍니다.

곧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루카 13,19)

 

‘겨자씨’는 유다문학에서 ‘작은 것’의 전형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겨자씨’는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그것은 ‘정원’에 심었을 때를 말합니다.

아무 데나가 아니라 ‘정원’에, 그것도 '자기 정원'에 심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면 하늘의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라는 말에서, '깃들다'(κατασκηνω)는 단어의 뜻은 “밑에 거주하다” 곧 “장막에 들어가다”, “장막을 치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곧 새들이 단순히 가지 위에 잠시 내렸다가 다시 날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안전하고 영속적인 거처를 마련하고 지속해서 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교회’라는 혹은 ‘가정’이라는 생명의 말씀나무에 한 둥지를 틀고 사는 새 떼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미 한 그루의 생명나무입니다.

당신께서 뿌려진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 사랑으로 피어난 나무입니다.

 

한편 ‘겨자씨의 비유’가 하늘나라의 외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누룩의 비유’는 내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누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위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들어가 자기의 능력을 전체에 돌려줍니다.

그러나 먼저 반죽되어야 하고, 섞여야 됩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 섞일 뿐입니다.

그리고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룩을 밀가루 '속에' 집어넣었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누룩을 우리 ‘속에’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적은 양의 누룩이 자루 서 말을 모조리 부풀리듯이, 갈라진 우리의 내부를 통합할 것입니다.

그렇게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룩이 되어 세상 속으로, 형제들 속으로 들어가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하여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시작된 것처럼 보이는 하늘나라의 복음은 세상을 해방하는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모조리 부풀리듯이 말입니다.

 

또한 '집어넣다'(εγκρυπτω)는 동사는 “숨기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밀가루 서 말 속에 숨긴 누룩이 온통 부풀어 오르듯이, 하늘나라도 현재 숨겨져 있는데 미래에 엄청나게 확장되리라는 전망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누룩'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위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겨자씨가 이미 ‘우리’라는 밭에 뿌려졌고, 누룩이 이미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라는 밀가루 안에 넣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맘껏 자라나고, 맘껏 부풀어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안에 넣은 누룩이 제 속을 파고들게 하소서!

섞여들지 못한 까닭에 부풀어 오르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제 안에 뿌려진 씨를 묻어두고만 있지 않게 하소서!

죽지 못한 까닭에 싹을 피우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루카 13,19)

 

주님!

사랑하는 이는 결코 사랑하는 이 위에 군림하지 않기에, 당신은 겨자씨처럼 작은 자의 모습으로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낮아지는 것이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의 길이신 까닭입니다.

주님!

사랑하는 까닭에 형제들 앞에서 낮아지고 작아지게 하소서!

사랑이, 제가 형제들 앞에 낮아지고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게 하소서.

아멘.

말씀 나누기 - 연중 30주 화요일-순종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