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3년 1월 22일 설

Margaret K 2023. 1. 22. 06:19

2023년 1월 22일 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루카 12,35-40)

Blessed are those servants

whom the master finds vigilant on his arrival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당신 이름을 부르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의 기쁨을 맘껏 누리시고,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한 해의 첫날을 기리는 명절인 설날입니다. 설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새로 온 날이 낯설다는 의미에서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온 것으로 본 시각과 한 해가 새롭게 개시되는 날을 의미하는 ‘선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이 대표적입니다. 낯선 설,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설’입니다. 이렇게 낯설고 새로운 날에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예전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으로 힘든 날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멋진 날들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 어제와 다른 참 기쁨의 삶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지요. 여우가 길을 가다가 잘 익은 포도를 발견합니다. 이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먹으려고 폴짝폴짝 뛰어 보았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도저히 포도를 딸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의 노력 끝에 여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서 여우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갈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여우가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포도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 어떠했을까요? 그 노력으로 포도를 얻을 수 있다면 커다란 만족감을 얻게 되겠지만, 모든 노력으로도 얻지 못한다면 그 실망감은 대단히 클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다 보니 포도를 먹지 못했어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생각도 바꾸면 삶이 편안해진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좌절과 절망을 가져오는 생각은 안 됩니다. 또 불평과 원망을 가져오는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뒤로 할 수 있는 지혜, 미래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주인이 왔을 때 깨어있는 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라고 명령하십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바로 미래의 삶인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과거에 갇혀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의 삶에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이 새해 복을 더 충만하게 받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 어떤 희망이든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을 믿고 인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용기이다. 그러나 겁쟁이는 금세 절망에 빠져 쉽게 좌절해 버린다(에우리피데스).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 이유" 인생을 공짜라고 여기기에

-전삼용신부-

https://youtu.be/JE7jTOFrN1g

오늘은 새해 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새해를 시작하며 욤 키푸르라 해서 속죄 예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였습니다. 한 해 축복 받기 위한 준비를 먼저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새해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해 먼저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한 해 시작부터 잠자고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한 해가 축복일 수 없습니다.

 

먼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인생이란 어떤 삶일까요? 그저 생존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말년이 어떻게 될까요? 후회할 것이고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본래는 그러한 뜻은 아니라고 하나 조지 버나드 쇼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얼마나 많은 후회가 있습니까? 우리는 왜 우물쭈물하게 될까요?

 

조폭 두목인 쓰촨성의 한룽그룹 류한 회장은 7조 원의 재산으로 전 세계 부자 순위 148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2014년 경쟁자 8명을 살해하는 등 11개의 죄목으로 조직원 4명과 함께 사형 당했습니다. 집행관이 사형 집행을 위해 그의 어깨를 잡자 49세의 그는 갑자기 펑펑 울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노점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가족을 돌보면서 살고 싶다. 내 야망과 인생, 모든 게 잠깐인 것을,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물처럼 그냥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 쓰고 소리 지르며 악착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주며 잘난 것만 재지 말고 못난 것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듯이 서로 불쌍히 여기며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며 살 걸 그랬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게 잠깐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흐르는 물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왜 나만 모르고 살았을꼬. 2015년 2월 사형을 기다리며.”

 

인생이 숙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무언가 받으면 부모에게 숙제 해야 하고 하느님께 무언가 받았으면 하느님께 숙제 해야 합니다. 인생에 공짜는 없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용배 씨의 자전적 고백입니다. 그는 조선일보의 일사일언 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실내악 수업 학기 말 실기 시험 때의 일이다. 한 학기 동안 충분히 호흡을 맞춘 우리 삼중주 팀은 나름대로 자신 있게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심사 교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주임 교수가 갑자기 피아노 옆으로 다가오더니 직접 악보를 넘겨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피아노계의 거장인 은사가 곁에 앉아 손수 악보를 넘겨 주신다니 황송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 당황했지만 어쨌든 연주는 시작되었다.

한참 곡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정확히 악보를 넘겨주던 그 노교수가 갑자기 악보를 넘겨야 하는 부분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도무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악보를 넘기기 위해 손을 건반에서 떼어야 했고 연주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그 노 교수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주 도중에는 온갖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네. 피아니스트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넘기기 직전의 한두 줄, 그다음 장의 한두 줄은 꼭 외우고 있어야 돌발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야. 100% 준비는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우리는 왜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단순합니다. 거저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거저 받으면 보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 준비입니다.

어느 현명한 왕이 현자들에게 세상의 진리를 담은 책을 만들라고 명하였습니다. 현자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12권의 책을 왕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왕은 다시 한 권으로 줄이라고 했습니다. 현자들은 몇 달 뒤에 한 권의 책으로 요약해서 가져왔습니다. 왕은 그것도 많다며 한 문장으로 뽑아내라고 했습니다. 현자들이 진땀을 빼며 한 문장으로 뽑아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그들이 만든 문장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바라는, 여러분들이 바라는 ‘세기의 지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배우면 그동안 고뇌하던 모든 문제가 곧 해결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현자들이 후세에 물려준 단 한 문장으로 된 세기의 지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사기를 맞는 이유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에 예외가 있을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받는 것이 있다면 그 속에는 반드시 숙제가 담겨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젖을 주고 키워도 제때 일어나 걷고 제때 말을 할 수 있고 또 제때 학교에 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분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거저 받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거저 생길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절로 거저 받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가 거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러한 교만이 우리를 우물쭈물 살게 합니다.

 

만약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여러분에게 그냥 쓰라고 1억 돈다발을 준다고 해 봅시다. 앞뒤 안 가리고 덥석 받을 분 손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못 드는 분이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공짜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인생은 공짜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받았으니 말입니다. 생명이 어떻게 저절로 생겨날까요? 그런 생명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거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교만은 나를 막 살게 만듭니다. 결국 생존만 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숙제를 제출해야 할 때가 되면 후회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헛살지 않기 위한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십일조’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이 공짜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바치라고 하시며 당신이 주셨다는 부담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이 부담이 없으면 인생을 헛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해 시작하며 십일조를 봉헌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은 내가 받는 90%도 공짜가 아닌 의미 있는 무엇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해를, 우리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악과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가장 확실한 장치입니다.

우리가 종임을 잊지 맙시다. 오늘 복음에서 깨어 있지 못했던 종들은 자신이 종인 줄 모르고 주인인 줄 착각했던 이들입니다. 봉헌하는 삶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낄 때 우리는 부담을 느끼게 되고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숙제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인생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이기우신부-

https://www.youtube.com/watch?v=2aAeFlgYrGM

​-조재형신부-

지난 12월 31일 퀸즈한인 성당에서 송년미사를 함께 했습니다. 2019년에 뉴욕에 왔으니 어느덧 4번째 송년미사를 같이 했습니다. 미사를 마치면서 2022년에 있었던 본당의 행사들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진이 아직 남아있지만 본당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신문사가 성당 옆에 있기도 하지만, 본당 신부님이 배려해 주어서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성당에 손님 신부님들이 많이 오시면 신문사로 모시기도 했고, 신문사에 손님 신부님들이 많이 오시면 제가 성당으로 가서 자기도 했습니다. 미사를 마치면서 예전처럼 ‘고향의봄’을 함께 불렀습니다. 고향 땅을 떠나서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사연은 다들 다를 것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기도 했고, 차별과 무시를 당하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향의 봄’을 부르는 감회는 모두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3년 전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 어머니가 한국에서 선종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어머니를 위해 미사를 봉헌해야 했습니다.

 

오늘 설날을 지내면서 ‘고향의 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어려서 고향 땅을 떠나 서울에서 살았지만 제가 태어난 고향 선산을 갈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80순이 되어가는 고향 큰 형님이 선산을 돌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집 뒤에는 산이 있습니다. 개울이 내려가는 끝에는 저수지가 있습니다. 5대조 할아버지는 박해를 피해서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김제, 정읍, 전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라서 포졸이 오면 도망가기 쉬웠다고 합니다. 집 앞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32년 전 사제서품 받고 첫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고향 어르신들이 모두 오셔서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오늘 설날을 지내면서 선산이 있는 고향, 제가 태어난 고향 땅이 그립습니다. 언제고 시간이 허락되면 고향 땅 선산에 가서 친지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친지들을 위해서 연도를 바치려 합니다.

 

낮선 땅에서 서글픈 노래를 불렀던 민족이 있습니다. 시편 137편은 그들의 심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네./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하는구나./ 자, 시온의 노래를 한 가락 우리에게 불러 보아라./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리리라./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 주님, 에돔의 자손들을 거슬러 예루살렘의 그날을 생각하소서. 저들은 말하였습니다. 허물어라, 허물어라, 그 밑바닥까지!/ 바빌론아, 너 파괴자야! 행복하여라,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너에게 되갚는 이!/ 행복하여라, 네 어린것들을 붙잡아 바위에다 메어치는 이!” 저는 이 시편을 성경보다 먼저 ‘보니엠’이라는 보컬 그룹의 노래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멜로디는 경쾌했지만 나중에 내용을 알았을 때는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아셨고, 다시금 고향 땅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설날에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어떤 것일까요? 건강입니다. 몸이 아프면 산해진미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몸이 아프면 재물이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음은 재물입니다. 재물은 우리를 풍족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친구입니다. 건강해도, 재물이 많아도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면 허전하기 마련입니다. 건강, 재물, 친구가 모두 채워진다면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설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복을 듬뿍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인들은 또 다른 복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들이 받아야 하는 복은 어떤 것일까요? 친절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받을 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참된 행복’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런 복이 주어질까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입니다.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2023년 설날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저 늘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충만한 기쁨 속에 살아가야겠습니다!

-양승국신부-

 

설날이 다시 한번 더 있다는 것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신정 때 야심 차게 세웠던 좋은 결심이나 이정표가 슬슬 느슨해져 갈 무렵, 또 다른 설날인 구정을 맞이하니, 각오를 재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니 말입니다.

 

차례를 지내고, 연미사를 봉헌하면서 먼저 떠난 우리 조상들과 신앙의 선배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오늘, 성경 말씀들은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다가올 마지막 순간을 잘 준비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보서 4장 14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복음 12장 40절)

 

오랜만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병원측 서비스가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한지 모릅니다. 꽤 두툼한 볼륨의 노트 한 권 안에는 저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아주 세부적으로,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고, 위험수위인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유난히 제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종합해서 볼 때 귀하의 기대 수명은 84세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84라는 숫자를 처음 대하는 순간, 아~정말 다행이다. 아직도 꽤 남았군,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자고 일어나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왜 기대 수명이 94가 아니라 84인가? ㅋㅋㅋ 보시다시피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리 많이 많지 않은 남은 날들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하는 새로운 과제가 제게 생겼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처럼, 그날은 언제인지 모릅니다. 기대 수명 84라고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저 늘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충만한 기쁨 속에 살아가야겠습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날그날 주님께서 흐뭇한 미소 지으실 그런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은 날들이 그리 많지도 않으니 하루를 천년처럼 알차게, 보람되게,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주님께서 한 번 더 주신 보너스 설날 아침, 고마우신 한 수녀님께서 언제 쓴 글인지도 잘 파악이 안 되는 성모님 관련 졸시를 보내주셔서 공유합니다.

 

새해의 어머니

 

별이 사위어가는 새벽의 뜨락

어둠의 여운을 헤치고

새벽노을로 고이 오시는

새해의 어머니

 

생계를 위한 몸짓엔 살기가 흐르고

자신을 갉아먹어야 사는 암울의 시대

눈꽃의 순수를 머금은 당신의 미소는

내 오랜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줄기 청정한 바람입니다.

 

보십시오.

차마 버리지 못해

늘 끼고 사는 이 악습과

죽순같은 사욕과 슬픈 위선

회한과 부끄럼의 한해를

 

무량의 위로자이신 어머니‘

은총의 선물인 새해엔

칡뿌리 같은 삶의 고뇌와 방황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이타와 천상을 추구하는

회심의 길을 걷게 하소서.

 

각고의 노력과 비상을 위한

숱한 우리의 날개짓이

아린 상처로 남는다 해도

거듭 새로남의 노력을 다하게 하소서.

 

가장 작고 소박한 삶을 엮으셨던

가장 크신 분의 어머니 마리아

새해의 날엔

작음에로의 투신을 계속하게 하시고

이 탁류의 세상

비참과 비겁을 딛고 일어서는 의연함을 주소서.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여.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이영근신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리라.

...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평화를 베푸시리라.”

(민수 6,22-26)

오늘 복음의 앞부분은 주인의 귀환을 깨어 기다리는 종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루카 12,35-38)입니다.

사실 루카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남겨주신 최후의 행위는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장면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카 24,50-51)

그렇습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를 입은 존재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은 존재입니다.

나아가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생명을 주시고, 당신 존재를 건네주셨습니다.

‘복’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닫는 일입니다.

곧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깨닫는 일입니다.

 

따라서 축복받은 사람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존재와 자비에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에 깨어있는 만큼, 꼭 그만큼 축복받은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서 ‘축복’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말합니다.

‘축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바르크, 브라크하)는 ‘어떤 것을 선사함’, ‘주어진 선물’, 곧 자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무엇보다도 말씀과 그 말씀의 신비를 통해 표현되고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곧 축복은 ‘말씀’입니다.

그러니 ‘말씀’이 ‘축복’인 것입니다.

 

곧 ‘좋은 말’(εύλογία, benedictio), 좋게 되기를 빌어주는 말이요, 좋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곧 상대를 ‘위하여’ 건네주는 말입니다.

“설”인 오늘 우리는 서로에게 축복을 빌어 줍니다.

사실 축복을 빌어주면 빌어주는 이에게 축복이 먼저 옵니다.

왜냐하면 축복을 비는 행위가 이미 ‘축복을 비는 축복’을 입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축복하는 행위’가 곧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복’을 어떻게 빌어주는가?

곧 ‘축복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하면 됩니다.

"주님, 그를 축복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축복이 이루어지도록 그가 응답하게 도와주십시오!

또한 그 축복이 이루어지도록 제가 협조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도 그를 축복합니다."

참 묘한 것은 상대를 축복해주는 순간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이미 축복하는 이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축복하는 이 안에 ‘먼저’ ‘위하는 마음’(호의, 선의)을 북돋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축복하는 이가 먼저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축복받은 이가 축복을 주는 이가 됩니다.

 

이처럼 이 소박한 기도인 ‘축복기도’는 우리 안에 그분의 자비가 흘러들게 하고, 그분 존재를 건네받게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대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이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창세 12,3)

다시 한 번, 축복을 빕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받아 누리는 축복’이 한 해 내내토록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오늘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선물인 “축복”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베풀어진 이 ‘축복’이

일 년 내내 토록 날마다 여러분의 가슴 속을 따뜻하게 지피고

올 한 해를 사는 힘과 용기의 샘이 되게 하소서.

또한 당신께 축복을 받은 이들이

한 해 내내 참된 행복 안에 머물고

이웃에게 사랑과 행복을 나누게 하소서.

아멘.

을 빌어주는 사람

-반영억신부-

구정 명절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복을 풍성히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설은 본디 신일(愼日)이라고 하여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데에 근신하고 조심하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합니다.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설빔을 해 주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큰절을 받고 세뱃돈을 주며 가정의 화목과 평화, 부와 안녕을 기원하였고 한 해를 살아갈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덕담은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축원의 말입니다. 사실 명절을 기다려온 것은 서로의 만남을 새롭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만남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덕담도 성경말씀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설 명절에 하느님의 복을 풍성히 받으시길 기원하며‘통통,통통’복을 받으시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1.의사소통, 2.운수대통, 3.만사형통. 4.쓰레기통입니다. 서로의 의사소통을 잘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가족은 물론 이웃과도 통해야 합니다. 잘 통하면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으면 아픕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소통을 잘하시길 빕니다. 하느님과 잘 통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립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 열어주신 길에 장애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가는데 있어서 하는 일 마다 잘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좋은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모든 것을 담고 품는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되시길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여기다가 '전화한통'을 덧붙입니다. 자주 인사하고 먼저 안부 전하는 '전화한통'입니다.

예전에는 세뱃돈과 설빔을 받는 기쁨이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의 만남에 의미를 두고 고향을 찾게 됩니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병이 생기기도 했지만 고유명절은 그래도 가족의 유대관계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명절이 되면 도심으로 나가있던 삼촌과 누나를 기다렸습니다. 명절에는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용돈을 얻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물이나 돈의 액수가 줄어들면 마음속으로는 서운해 하였습니다. 그저 공짜로 받는 주제에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크게 받으면 다음에 받을 때는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게 되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받았으나 감사할 수 없으니 줄때도 잘 줘야 하고 받을 때도 잘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공짜로 언제든지 주십니다. 알맞게 주십니다. 그러나 내 잣대로 재고는 받았네, 못 받았네 하면서 투덜댑니다. 그러나 분명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알맞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지금 받은 것에 감사하면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이 또 주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명절의 의미는 바로 감사하는 생활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방문하여 조상들을 기리며 차례를 지내고 부모형제, 친척과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은 감사드림의 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는 감사의 원천인 하느님께로 먼저 눈을 돌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두를 마련하시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혈족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하느님의 작품이요, 사랑받는 존재이고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 민수기(6,22-27)를 보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면 주님께서 몸소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복을 받는 일은 먼저 복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달라고 하기 전에 이웃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베푸는 몫을 차지해야 합니다.

바로 명절의 두 번째 의미는 복을 빌어주는 생활입니다. 어르신께 세배를 하면서 한 해의 건강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덕담을 받고 이웃형제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인사하는 것이 오늘 하루만의 인사 치례가 되어서도 덕담으로 끝나서도 안 되겠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만큼 삶의 모범으로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복을 받는 사람도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축복하는 삶, 생활로써 복을 함께 나누고 지켜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키워갈 때 우리 주변은 더욱 빛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는 아름다운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감사와 축복의 날에 주님께서는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루카12,40)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종처럼 감사와 축복으로 매일을, 순간순간을 늘 깨어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상을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며 이웃과 더불어 만남을 기뻐하는 날, 정월 초하루! 모두 모두 주님의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옛날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 1편인 홍범(洪範)에 나오는 오복(五福)을 보면, 오복의 첫 번째는 수(壽)로서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의 복(福)을 말했고, 두 번째는 부(富)로서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富)의 복(福)을 말했으며 세 번째로는 강령(康寧)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福)을 말했습니다. 또, 네 번째로는 유호덕(攸好德)으로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福)을 말했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고종명(考終命)으로서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福)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큰 행복으로 여겼던 이 오복(五福)을 염원하기 위해 새 집을 지으면서 상량(上梁)을 할 때는 대들보 밑에다가 "하늘의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엔 오복을 갖춘다"는 뜻의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는 글귀를 써 넣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서민들이 원했던 또 다른 오복(五福)으로는 1. 치아가 좋은 것 2. 자손이 많은 것 3. 부부가 해로하는 것 4.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5. 명당에 묻히는 것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았다 해도 일시적입니다. 믿는이들은 영원한 복을 추구합니다. 참으로 복 중의 복은 하느님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복을 주관하시고 천상의 복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세성을 넘어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복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기뻐하십시오, 이미 하느님을 차지하시고 섬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복을 결코 잃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에는 “너희가 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머리위에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 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28,2-6).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복을 받으시길 희망합니다.

시편에서는“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1,1-3).고 하였습니다. 만사형통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시편저자는 말합니다.“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어 복을 내리시리라. 이스라엘 집안에 복을 내리시고 아론 집안에 복을 내리시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낮은 사람들에게도 높은 사람에게도 복을 내리시리라. 주님께서 너희를, 너희와 너희자손들을 번성하게 하시리라. 너희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께”(시편115,11-15). 복을 주시는 분은 주 하느님이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복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복을 충만히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명절귀신

명절 때 쫄쫄 굶은 조상 귀신들이 모여

서로 신세를 한탄했다.

씩씩거리며 한 조상귀신이 말했다.

“설날 제사 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 때 차 막힌다고,

새벽에 벌써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차례를 지내버렸지 뭔가?

가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리고 없었어,”

두 번째 분통터진 조상귀신이 말했다.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 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구.

알고보니 해외여행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

아까부터 찡그리고 앉은 다른 조상귀신,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뿔난 또 다른 귀신,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 갔더니,

전부 프라스틱 음식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

열 받은 다른 조상귀신이 힘없이 말했다.

“난 말야. 아예 후손 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 집에 갈 필요없이

편하게 근처 PC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가입을 하노?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 줘야지!

에이 망할 놈들!”ㅎㅎㅎ

@@ 설날 속터지는 女子들 한탄!!.

1. 엎으러지면 코 닿을것 같이 가깝게 살면서도

명절 때 면 꼭 늦게 오는 동서.

2. 형편이 어렵다며 늘 빈손으로 와서는

지그집에 갈때는 이것저것 싸가는 동서.

3. 온몸이 쑤셔서 한 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눈치 없이 고스톱을 계속 치고 있는 남편.

4. 술이 잔뜩 취했으면서도 안 취했다고 우기면서 가는 손님 붙잡는 남편.

5. 시댁에는 금방 갔다 오면서 친정에 일찍 와서는

이 참견 저 참견하는 시누이.

6. 넓은 마당에서 잘 뛰어 놀다가 꼭 부침개 부칠때 와서는

식용유 뒤엎어 놓는 철없는 조카.

7. 기름 냄새 맡으며 간신히 부쳐놓은 부침개를

날름 집어 먹어버리는 시동생.

8. 며느리는 친정에 안 보내면서 시집간 딸은

빨리 안온 다며 찻길 막힌다고 빨리 오라고 전화하는 시어머님.

9. 시댁에는 30만원, 친정에는 10만원으로 차별하는 남편.

10. 시집에 늦게 와서는 '동서 수고한다.' 는

말 대신 '아직도 일하고 있어! 하며 큰소리치는 형님.

11. 막상 가려고 하면 '한 잔 더하자'며 술상 봐 오라는 시아버님.

@@ 마누라의 3金 ? 현금, 지금, 입금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다.

돈을 상징하는 황금.

음식을 상징하는 소금.

그리고 시간을 상징하는 지금. 이 세 가지다.

남편이 마누라에게 이 말이 너무 멋있어서 문자 퀴즈를 냈다.

“여보야… 세상 살아가는 데 중요한 3가지 금을 뭐라 생각하노??”

잠시 후 마누라한테서 답문자가 왔다. “현금, 지금, 입금.”

이 문자를 보고 남편이 허덕거리며 다시 문자를 보냈다.

“방금, 쬐금, 입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