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12월 3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Margaret K 2022. 12. 3. 06:30

 

2022년 12월 3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

(마태 9: 35―10,1.6-8)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곤경과 고난 가운데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와 희망의 예언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신다. 그리고 열두 제자에게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권한을 주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기분 나쁠 때는 혼자서 자기감정을 삭힐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 더 정신건강에 좋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폭발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기 정신건강에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공동체에는 최악이 됩니다. 기분 나쁘고 또 맘에 안 든다고, 그래서 바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는 절대로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구성원 전체가 불행해지는 것은 금방입니다.

 

감정을 폭발하면 후련함을 잠시 가질 수는 있겠지만, 더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조금이라도 걸러야 한다고 많은 심리학자가 조언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유지되고 본인 역시 편해질 수 있습니다.

 

어느 본당 신부님께서 70대의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80대의 할머니께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님께 다가가 이렇게 화를 내며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왜 젊은 사람만 좋아하는 거예요?”

 

그 신부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70대나 80대나 똑같이 본당의 어르신이라고 생각했는데, 70대 할머니들과 80대 할머니들 사이에도 벽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긴 조그마한 꼬마들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가 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감정을 폭발하면 이렇게 벽이 세워집니다. 함께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벽이 치워집니다. 함께할 수 있는 이유가 늘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굳이 부족함이 많은 제자를 뽑아서 이러한 특수한 권한까지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서 힘들어하는 모든 인간을 구원의 길, 참 기쁨의 길인 하느님 나라로 이끌기 위해서는 더 많은 목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하길 간절하게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역시 사랑을 실천하는 데 적극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자기감정을 폭발해서 벽을 쌓는 그래서 자기만족은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길로 가면 안 됩니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함께 사는 세상에서 적합한 나의 모습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과연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길인지를 말입니다.

 

주님은 증오를 잊게 해달라고 소원하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지만 사랑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이들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파울로 코엘료, ‘다섯 번째 산’ 중에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dtp4-Dftqk

 

-조재형신부-

 

신문 홍보를 다니면서 사제관에 머물 때가 있습니다. 같은 서울대교구 신부님들이 있는 곳에서는 며칠씩 더 머물 때가 있습니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거리가 많기도 하고, 동창 신부님인 경우에는 부담 없이 며칠 더 지내곤 합니다. 어떤 신부님은 제가 심심하지 않도록 등산을 가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교우들과 저녁 약속을 잡기도 합니다. 저는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편이기에 그렇게 미리 약속을 해 놓으면 편합니다. 그러나 거절도 잘 못하는 편이기에 너무 약속이 많으면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신부님은 편히 쉬라고 하면서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어디 가자고 하면 그때는 기꺼이 같이 가줍니다. 저도 편하게 책을 읽기도 하고, 강론 준비도 하고 모처럼 푹 쉬는 시간을 가지니 좋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일정을 잡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약간 심심하기도 합니다. 저도 신문사에 손님 신부님들이 오면 숙소는 마련해 주지만 제가 일정을 잡아서 안내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식당은 아는 곳이 많으니 같이 가지만 다른 것들은 뉴욕에 살아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젊은 신부님들은 뉴욕에 처음 왔어도 저보다 더 잘 알아서 다니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주님의 날이 오면 우리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우리의 아픔은 치유될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불의는 정의로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원망과 불평은 감사와 행복으로 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난 후에 선포했던 기도가 생각납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날이 오면 어떤 일들이 생길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날이 오면 참된 자유와 참된 평화가 시작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주님의 날은 시간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은 나의 삶에서, 나의 행동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면서 주님의 날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사야 예언자가 꿈꾸었던 ‘주님의 날’입니다. 마리아가 노래했던 ‘주님의 날’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다시 갈망이 생기는 만족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빼앗아 갈까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싼 대가를 지불해서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얻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이해 받을 수 있고, 용서하기에 용서받을 수 있고, 사랑하기에 사랑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에게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것이 참된 기쁨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앓는 이들은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이영근신부-

 

오늘 말씀 전례는 ‘자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고 합니다.

화답송에서 시편 작가도 “주님은 마음이 부서지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네.”(시 147,3)라고 노래합니다.

 

복음에서는 ‘선한 목자’가 지닌 자비의 마음, 곧 '가엾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9,36)

 

사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이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중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이 없어 시달리고, 가진 게 없어서 시달리고, 무능해서 시달리고, 온갖 고통과 질병과 가난과 근심에 시달리는 이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일자리를 못 얻어 거리에서 기가 꺾여 방황하는 이들, 돈이 없어 자녀들에게도 기가 꺾여 사는 이들, 고국을 떠나와 이방인이 되어 기가 꺾여 있는 이들에 둘러싸여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곁에 있는 형제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또 보지 않으려 하는 걸까?

 

‘가엾이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선한 목자의 마음’을 지니지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곧 타인의 처지에 마음 아파하지 않음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처지를 보고 슬퍼지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같이 지니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를 우리는 '하느님의 연민', 곧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제1독서와 화답송에서 보여주듯이,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는 마음’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태중의 아기와 분리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을 말합니다.

엄마의 숨으로 두 몸이 함께 숨쉬는 것을 말합니다.

곧 타인을 자신의 일부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일부로 여기십니다.

 

그러니 지체가 아프면 온몸이 함께 아프게 됩니다.

우리도 그분의 이 마음을 품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필립 2,5)

 

그러니 우리는 그 마음을 ‘이미’ 우리 가슴에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1코린 2,16)

 

아멘.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 36)

 

모든 고을과

마을을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뜨거운 열정같은

사랑입니다.

 

열정이 있기에

복음의 뜻은

언제나

낡지 않고

새롭기만 합니다.

 

새로워지는

사랑은 가르치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다 보면

어느새

사랑은 수확의

참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을 수확할

일꾼들이

적습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는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러운 영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냅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줍니다.

 

길 잃은 양들의

목자가 됩니다.

 

강렬한 실천의지가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하늘 나라가

정녕 가까이 왔음을

제자들의 기쁜 삶으로

선포하게 하십니다.

 

가까이 온

기쁜 소식은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마귀들을

쫓아냅니다.

 

이러한 권한은

주님께

거저 받은

것들입니다.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은

댓가를 바라지 않고

거저 주는 행복입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새 마음과

새 뜻입니다.

 

끝까지 실천하는

이들이 누리게 되는

수확의 기쁨입니다.

 

기가 꺾인

양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자의 뜨거운

사랑입니다.

 

대림시기는

더더욱 참된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랑의 참된 방향은

참된 실천입니다.

말씀 나누기 - 대림 1주 토요일-이순(耳順)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1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생활 성서 듣는 소금 항아리 : https://www.youtube.com/@83biblelife

작은형제회 - 프란치스코회 OFFICIAL CHANNEL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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