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1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Margaret K 2022. 11. 30. 06:46

2021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안드레아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베드로 사도의 동생이다. 갈릴래아의 벳사이다에서 태어난 그는 형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였다(마태 4,18 참조). 안드레아 사도는 요한 세례자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이끌었다(요한 1,40-42 참조). 그는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오 4,18-22)

 

 Come after me,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그리스도의 말씀은 선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아에게,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시자,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아이에게 “너는 쓸모없어.”라고 계속 말하면, 아이는 정말로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도 쓸모없다고 말하면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고 하더군요.


쓸모없다는 말은 어떤 행동에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듣게 됩니다. 문제는 그 한 번의 일로 쓸모없다고 단정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부분을 보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잘못입니다. 이 잘못에 누군가의 삶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빠다킹 신부의 맘고생크림케이크’라는 평화방송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촬영은 모두 제가 있는 갑곶성지에서 합니다. 공개 방송이라 누구나 함께할 수 있지만, 평일 오후의 촬영시간이 부담되는지 또 텔레비전에 자기 얼굴이 나올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오시는 분이 늘 적습니다. ‘많이 오시면 더 힘내서 할텐데...’라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그러나 만약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냥 벽보고 강의한다고 생각하자, 적은 수라도 자리를 채워주시는 그분들이 정말 고마운 것입니다.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하느님 영광이 더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 역시 이렇게 신부가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쓸모없는 것을 쓸모가 있게 주님께서는 만드십니다.

성 안드레아 축일인 오늘, 그의 부르심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의 형 베드로와 함께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목직을 받고 흔쾌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죽음의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안드레아 성인 역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떠올린다면, 세상의 가치는 모두 이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서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나를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부르고 계시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미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잊히지 않을 만큼 슬프다(시드니 해리스).

 창조자만이 사랑할 수 있다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p54iGKPjE9g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지만 형 베드로와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과 사람을 잡는 일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물고기를 잡으며 그냥 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존엄성, 혹은 나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우리에게 사람이 물고기가 아닌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다 존중 받고 싶습니다. 귀하게 여겨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정말 인간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존엄할까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누가 보장해줄 수 있을까요? 적어도 나라는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역사상 어느 나라가 국민을 존엄하게 보았을까요? 

 

    2022년 10월 28일 금요일 밤 10시에 방송된 KBS1 TV ‘시사 직격’이란 프로에서 ‘3천 달러의 삶 – 해외 입양 잔혹사’라는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입양은 우리나라에서 부모를 찾을 수 없고 우리나라에서 입양되지 않는 아이들을 외국에서 찾아와서 아이들을 살펴보고 데려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60년간 약 25만 명의 아동이 마치 물건처럼 외국으로 팔려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냥 70~80년대는 특별히 더 나라에서 달러가 필요했고 입양기관도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경찰서에 길을 잃어 맡겨지는 아이들은 부모를 찾을 기회도 주지 않고 거의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마치 현재 인터넷 쇼핑하듯 외국인들은 서류상으로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팔려 간 아이들의 존엄성은 이미 포기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에 최근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된 한인 입양인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모여들었습니다. 덴마크를 주축으로 미국, 벨기에 등 여러 국가에서 모인 이들은 자신의 해외 입양 과정에서 강압, 뇌물, 문서 위조 등의 불법 입양 양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인권침해와 국가개입 여부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고아가 아닌 데도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명목으로 문서를 위조하여 3천 불을 받고 보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인신매매이고 그 이상의 범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우편 배송 아기’라 불리는 이 대리입양 시스템이 한국의 해외 입양률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양부모의 입양 적격성 심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입양아동을 폭력, 학대 등의 위험에 노출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 아동 수출국 최상위 국가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인권을 가장 무시하는 나라입니다. 

  

    물론 입양을 가서 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사진만 보고 서류 한 장으로 물건처럼 아이를 사 온 부모가 아이의 인권을 존중해줄까요? 방송에서 1984년 초등학교 6학년 때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 씨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성폭력의 노예로 성장해야 했습니다. 

    부모를 고발하고 올해 초 입양서류를 확인하던 중, 자신이 호적상 ‘고아’로 기재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친부모의 이름과 한국에서의 삶을 모두 기억하기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유리 씨가 받은 입양서류 속 친부모의 이름은 모두 ‘무명’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부모의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잠시 보육원에 아이들을 맡겼던 것인데 보육원은 그런 아이들까지도 다 고아로 서류를 위조해서 팔아버린 것입니다. 해외 입양률이 정점을 찍은 1980년대에는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었고, 이는 일종의 민간외교 정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김유리 씨는 아예 성적 욕구를 풀려고 자신을 입양하려고 한 양부와 이를 묵인한 양모에게 자신을 성적 노예로 넘겨버린 나라와 입양기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건 아동 인신매매라고 봅니다. 그 사람이 입양 수수료를 낸 목적은 아이를 물건처럼 사서 자기 성적인 욕구를 푸는, 아이가 그런 물건이 되는 것을 바랐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봅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합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존엄성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자기를 존엄하게 여겨주는 대상 안에 속해 있어야 존엄합니다. 만약 돈을 좋아하는 나라나 성적인 욕구에 빠진 양부에게 맡겨지면 그 존엄성은 짓밟힙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엄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을 존엄하게 보아주는 대상은 그 창조자 뿐입니다. 인간에게는 부모입니다. 왜냐하면 자녀에게 자신의 살과 피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부모는 자녀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종교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물고기로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어렸을 때 길을 잃어 남의 집살이를 하던 10년간 학교도 가지 못하고 종처럼 일하면서 존엄성을 잃었습니다. 일하며 매도 수없이 맞았고 일한 값도 한 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존엄성을 짓밟은 그 집이 아주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다고 사람을 존엄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냥 어쩌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물고기 대신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만이 우리 존엄성을 보장해주실 수 있는 분이란 뜻입니다. 세상 누구에게 의존해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만든 사람만이 그 만든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그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좀처럼 이런 인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믿을수록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 없는 나라가 됩니다. 생존, 곧 돈에만 집중하며 인간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런 곳입니다. 우리는 우리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나를 만든 분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려는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의 창조자이심을 눈치채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생존을 위해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웃을 살게 하는 창조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창조자가 되라고 하신다면 우리도 창조자의 자녀란 뜻입니다.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여 하느님 자녀로 만드는 일은 우리가 하느님께 속하였다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내가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은 내가 창조자의 일을 할 때 더욱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여자들을 사랑할 때는 ‘한 여자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존재’라는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영혼을 구원하는 창조자의 협력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스스로도 이렇게 큰 자존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느끼는 자존감이고 그 사람이 갖는 존엄성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자기를 피조물이라 여기는 한 우리를 존엄하게 보아주지 않습니다. 나도 하느님과 같은 창조자가 되었음을 믿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을 물고기로 봅니다. 자신을 창조자의 자녀라 믿는 이들만 창조자의 존엄성에 참여하고 창조자 답게 사람을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이 창조자라 믿지 않는 이들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창조자로서 창조자와 함께 사랑할 뿐입니다.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WfhqA5mcxBk

 -조재형신부-

 

신문 홍보를 위해서 동창신부님이 있는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엘 다녀왔습니다신부님의 사제관에 머물면서 조금 놀랐습니다. 2층에 방이 있는데 거실에서 지냈습니다거실에 책상과 매트리스를 놓고 지냈습니다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것을 좋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옷도살림살이도 거의 없었습니다동양화에 있는 여백처럼 신부님의 사제관은 여백이 많았습니다저도 단순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을 보니 저는 가진 것이 참 많았습니다아프리카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내전과 분쟁 그리고 갈등과 분열이 있습니다서구 열강이 인위적으로 식민제국주의 시대에 국경을 정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같은 나라에 서로 다른 부족들이 살고 있기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낮은 민도와 독재정치가 내전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우라늄다이아몬드와 같은 광물과 천연가스와 원유의 매장은 축복일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강대국들이 개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지역의 반군과 테러리스트들은 이권을 노리면서 폭력을 행사합니다광산개발을 하면서 환경이 오염되고생명이 죽어갑니다차라리 지하자원과 천연가스와 원유가 없었다면 분쟁과 갈등은 적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자청년이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부자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고부모에게 효도하고살인하지 말고거짓증언하지 말고남의 재산을 탐내지 마라.’ 그러자 부자청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청년을 기특하게 생각하셨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하였다네가 한 가지 더 할 것이 있다가진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라라.’ 그러자 부자청년은 몹시 슬퍼하면서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부자청년은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아와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안드레아와 베드로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습니다야고보와 요한은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어부에게 그물과 배는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삶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그리고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베드로 사도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요한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고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예수님께서는 안드레아와 베드로를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안드레아 사도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베드로 사도의 이름이 반석이라면 안드레아 사도의 이름은 남자다움용기입니다안드레아 사도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들 또한 용기를 가지고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면 좋겠습니다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가진 것이 없어서 주님의 제자가 못 되는 것도 아닙니다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진 것이 없는 것도 만족할 줄 알면 됩니다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이영근신부-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안드레아는 공관복음에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 마태 4,19)가 되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형인 베드로와 함께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특히 마르코복음에서는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는 장면에서 등장하며(마르 1,29-30), 예수님께서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을 때에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느냐며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마르 13,3-4).

 

요한복음에서는 그가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께서 부르신 첫 번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요한 1,35-40).

 

그리고 형인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소개하고,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첫 번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요한 1,40-42).

 

또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에는 한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드렸고(요한 6,8-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는 예수님을 만나 뵈러 온 그리스인들을 예수님께 소개하기도 합니다(요한 12,20-22).

 

한편, 초기의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 사도는 '맨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프로포클레토스’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흑해 주변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그리스의 아카이아 지역인 ‘파트라이’에서 순교하였는데,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안드레아의 성화나 성상에는 X자 형의 십자가와 함께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새겨진 X자는 그 나라의 수호성인인 안드레아를 상징합니다.

 

그의 유해는 베드로 대성전에 모셔져 오다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서 그리스 정교와의 화해의 표시로 그의 순교지인 ‘파트라이’에 모셔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8)라고 말씀하시고 안드레아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4,20)

 

그런데 고기를 낚는 어부와 사람을 낚는 어부는 어떻게 다를까?

 

그것은 고기를 낚는 어부는 살아있는 고기를 죽이기 위해 잡아들인다면,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는 죄로 죽은 영혼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잡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고기를 낚는 어부는 고기를 골라서 낚아 올리지만,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는 고기가 좋든 나쁘든, 곧 전교 대상이 선하든 악하든 간에 낚아 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기를 낚는 어부는 자신의 그물을 치지만, 사람을 낚는 신령한 어부는 성령의 그물을 칩니다.

곧 자신의 방식으로 그물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가라는 데로 가며, 그물을 던지라는 쪽으로 던지며, 그분이 명령하는 방식으로 그물을 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해타산의 머뭇거림이 전혀 없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온전한 응답이 요구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안드레아 사도가 예수님께서 머무르는 곳에서 밤을 묵어가며 양성 받았듯이, 먼저 그분과 함께 머물며 그분 안에서 양성을 받는 제자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 4,18)

 

주님!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소서

내가 만든 그물이 아니라 성령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위험하더라도 깊은 곳, 당신이 원하신 곳에 그물을 치게 하소서.

자신의 먹이로가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그물을 치게 하소서.

제 입맛에 맞는 것만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모두를 거두어들이게 하소서.

아멘.

 

「따름으로써 얻게 되리라」

 -반영억신부-

 

축일을 맞이한 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사도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은총을 입으시길 기원합니다제자들은 처음부터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기꺼이 따름으로써 큰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온전히 따르려니까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했고 마침내 버림으로써 주님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익숙해진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그러나 안주하지 않고 도전할 때 새로운 것을 얻게 됩니다새로운 삶의 시작은 단지 마음과 행동의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주님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8). 도전할 때 새 일을 만날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시몬 베드로와 형제지간입니다특별히 요한과 길을 걷다가 예수님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1,41)하며 형에게 말하고예수님께 자신의 형을 데리고 갔습니다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소개하였습니다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한6,8-9)를 가진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간 사람도 안드레아 입니다그는 혼자만 메시아를 따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는 열성을 보였습니다그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의 생활에 참여함으로써 삶의 쇄신과 회개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안드레아는 나를 따라 오너라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삶의 자리에서 우리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며 따라 오너라” 하십니다따르고 안 따르고는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그러나 따르는 사람에게는 새 삶이 열려있습니다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그물이나 배아니면 가족일지라도 단호하게 버리고 주님 안에 머물면 그 모든 것이 주님의 것으로 넘치도록 채워집니다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나라를 얻게 됩니다그러므로 먼저 따라야겠습니다그리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상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끊임없이 대립합니다그러나 그 선택에 따라서 주님의 제자가 되기도 하고 세상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따라서 버릴 것은 확실히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청합니다.

 

그리고 안드레아가 형에게 자기가 만난 주님을 알렸듯이 주님의 체험을 전해야 합니다.“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무엇보다도 행실로써 전해야 합니다주님을 따름으로써 믿음을 견고케 할 수 있듯이 믿음이 약한 이들이 우리를 보고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큰 나무는 잘 부러지지 않고 큰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으며 깊은 샘물은 마르지 않는답니다그리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답니다예수님이 크신 분이셨듯이우리 모두가 큰사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 19)

-한상우신부-

삶이 있는 곳에
부르심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시고
사람을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갈릴래아 호수의
소박한 어부(漁夫)인
안드레아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가십니다.

부르심은
만들어가는
사랑의 벅찬
여정입니다.

사람을 낚기 위해
아끼던 그물마저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여정입니다.

따른다는 것은
따름이라는
과거의
그물까지
버리는 행위입니다.

이와 같이
버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음 없이
따를 수 없고
사랑 없이
이어질 수 없는
부르심의
숨 가쁜
현장입니다.

신앙의 이야기는
열매를 맺는
감사의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부르심과 응답의
치열한
관계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풍랑처럼
요동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사람을 낚으면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부르심의 여정은
사람이 되어가는
창조의 아픔입니다.

낚이는 아픔
건져 올려지는
두려움을 거칩니다.

부르심의 길은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사람이 아닌
하느님과의 힘겨운
내려놓음과 버림의
반복입니다.

하느님으로
가득찬 행복은
집착하고 있는
그 그물마저
버리고 따르는
행복입니다.

사람을 낚고
사람을
건져 올리는
성 안드레아 사도의
치열한 내적 행복을
만나는 기쁜 축일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버리고 낚이고
건져 올려지는
사랑과 아픔이라는
성장의 여정입니다.

성장의 그 이름
값진 신앙의
여정입니다.

말씀 나누기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영적 중매쟁이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1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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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