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9월 18일 일요일 연중 제25주일

Margaret K 2022. 9. 9. 06:35

2022년 9월 18일 일요일 연중 제25주일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루카 16,1-13)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ammon.”


약은 집사의 비유.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가난한 이를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행동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고 경고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비유를 드시며,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하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부모의 생일이 되면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는 합니다. 예쁜 편지를 쓰거나 용돈을 쪼개서 모은 돈으로 선물을 사 드립니다. 작은 선물일지라도 부모는 그 선물을 받고 크게 기뻐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서 선물을 받지만, 이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준 것의 일부를 돌려받는 것일 뿐입니다. 어린 자녀들도 이것을 압니다.그런데 자녀들이 커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제는 자신들이 부모에게 무엇인가 해 준다고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아니면 태어날 수도, 일어서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는데 조금 내어 주면서 곧 교만해지는 것입니다.하느님 앞에서 인간도 그렇습니다. 내가 사는 오늘 하루,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나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서 받은 것의 아주 일부를 돌려드리는 것임에도, 우리는 봉헌을 하면서 ‘나의 것’을 드린다고 착각합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약삭빠른 집사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고 하십니다. 집사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재물은 어차피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집사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하거나,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모든 것도 결국 하느님의 것입니다. 나의 것이 아니니 ‘불의한 재물’인 것입니다.내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주는 모든 것은 본디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을 다시 봉헌하고 그 일부를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봉헌하고 자선을 베풀면서도 스스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주님의 것을 내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칭찬받은 약삭빠른 집사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불의한 재물’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봉헌과 자선을 행하면서도 자신이 불의하다고 여겨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무화과를 잘 아실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로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구약에서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수치심을 느끼고 입은 옷이 무화과 잎이었지요. 단백질 분해효소가 있어서 육식 후에 소화제로 먹으면 좋고, 변비에도 아주 좋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무화과’라는 이름을 쓸까요? 

무화과는 한자로 없을 무(無), 꽃 화(花), 실과 과(果)를 씁니다. 즉, 꽃 없이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 없이 열매를 만드는 나무는 없지요. 이 무화과나무 역시 꽃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작은 꽃들을 꽃 주머니 안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꽃들이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꽃 없이 열매를 맺는 이상한 나무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요. 

다른 나무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내 이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다른 점을 가지고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보면서 쉽게 판단하고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다면서 단죄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안에 보이지 않는 꽃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내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어서는 또 다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나옵니다. 불의한 집사의 비유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집사 일에서 쫓겨나기 직전, 그는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호의를 베풉니다. 쫓겨난 뒤의 일을 대비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의 입장으로 우리는 이 집사를 바라봅니다. 

‘아니 어쩌면 주인의 돈을 가지고서 호의를 베풀 수가 있는가? 주인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치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간교하고 부정한 사람이다.’

하지만 주인은 이 불의한 집사를 칭찬합니다. 영리하게 대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남을 돕는 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이 맡긴 재물을 가지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칭찬받은 이유였지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나만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님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만을 내세워서 판단하고 단죄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행한 이웃 사랑만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잊지 맙시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가까이서 행복을 키워간다(제임스 오펜하임). 


 

정직의 가치

언젠가 뉴스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기사입니다. 미국 보스턴에 사는 한 노숙자가 1억 원의 거금을 손에 쥐게 된 사연이 나와 있더군요. 복권에 당첨된 것일까요? 아니면 우연히 돈을 주운 것일까요? 사실 착한 행동 하나로 얻게 된 결과였습니다. 

글렌 제임스라는 이름의 노숙자는 보스턴의 한 쇼핑몰에서 배낭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안에는 현금 2천4백 달러와 여행자수표 4만 달러, 중국인의 여권과 개인 서류 등이 들어 있었다. 노숙 생활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욕심이 안 났을까요? 그러나 그는 바로 주인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다행히 배낭은 쉽게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었고, 이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어떤 이가 노숙자로 살면서도 정직함을 잃지 않은 제임스에게 감동하여 기금마련 사이트를 통해 제임스를 위한 돈을 모으자는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틀 만에 무려 9만1천855달러(약 9천950만 원)가 모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정직을 잃지 않았던 제임스. 이러한 정직이 그에게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조재형신부-

 

미주 가톨릭 평화신문의 담당 회계사와 만났습니다재정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비영리 단체이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이 있고신문사를 운영해야 하기에 재정 관리를 해야 합니다주된 수입은 구독료광고료찬조금입니다주된 지출은 급여신문 제작비사무실 운영비잡비입니다전임 신부님들이 운영을 잘하여서 적자는 아니라고 합니다단순히 신문을 제작하고발송하는 업무가 아니었습니다자동차가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건 차에 기름이 있기 때문입니다신문이 제작되고발송될 수 있는 건 비용이 있기 때문입니다미주 가톨릭 평화신문이 재정적인 어려움 없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신학생 때재정과 관련된 일을 하였습니다학교 판매부에서 봉사자를 뽑는다고 해서 자원했습니다신학교에 학생 자치 신협이 있었고신학교에서는 신협의 학생들이 매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제가 하는 일은 매점을 운영하는 거였습니다매점의 운영시간은 저녁 먹고 묵주기도 시간까지 대략 30분이었습니다판매 물품은 음료수담배과자학용품이었습니다방학 때는 과자는 식당과 빨래를 담당하시는 자매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3년 동안 매점 운영을 했고기억나는 물품은 당시에 등장한 불티나라는 라이터와 직접 제작한 학교 편지지와 노트였습니다매점 열쇠를 가지고 있었기에 선배 신학생들이 가끔 찾아오기도 했습니다물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매일 외출할 수 있는 특권도 있었습니다판매부 열쇠가 있는 곳에 신학생이 많이 모였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재미있었고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신학교 매점 운영은 어렵지 않았는데 제게 더 큰 재정 문제가 있었습니다. 1997년 IMF는 저와 가족에게도 큰 파도로 다가왔습니다형님의 사업에 어려움이 있었고제가 부모님을 모셔야 했습니다교구 신협에서 대출을 받았습니다당시 대출이자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습니다동창 신부들의 도움으로 대출금을 갚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부모님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세상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자녀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하느님께서 기회와 능력을 주셔서 강의를 많이 하였습니다강사료는 부모님의 생활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부족한 저를 불러주시고 강의할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14년부터 교구 신협의 일을 도와서 함께했습니다동창 신부님이 교구 신협 이사장이 되었고제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교구 신협의 일은 30년 전 신학교 신협의 일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조합원의 수가 많았고자산의 규모가 달랐습니다본당 신축이 있으면 대출에 대해 심사를 했습니다교직원 자녀들의 학자금 대출도 승인했습니다주택 자금 대출에 대한 심사도 있었고신부님들의 대출에 대한 심사도 있었습니다돈은 마치 공기와 같았습니다사람은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듯이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돈이 필요했고돈이 있어야 했습니다돈 때문에 울기도 했고돈 때문에 웃는 세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재물은 감정이 없습니다재물은 발이 없습니다재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다재물은 하늘은 나는 연과 같습니다연은 연을 날리는 사람의 손에 의지하기 마련입니다사람의 손이 왼쪽으로 움직이면 연은 왼쪽으로 움직입니다사람의 손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연은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연의 줄이 끊어지면 연이 땅에 떨어지듯이 사람이 재물에 마음을 내려놓으면 재물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재물을 땅에 쌓으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친구와의 우정을 잃어버립니다가족과도 담을 쌓게 됩니다함께 한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오늘 제독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난한 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듭니다불의를 행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돈을 가지고 싸우고돈이 헤어짐의 이유가 되고돈이 하느님과 멀어지는 이유가 됩니다재물을 하늘에 쌓으려는 사람은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장학 재단은 힘들고 어려운 학생에게는 희망의 빛이 됩니다선교지에 보내지는 돈은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됩니다난민에게 지원되는 돈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줍니다가난한 이에게 전해지는 돈은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세속의 욕망을 위해서 쓰이는 재물은 심한 악취가 날 겁니다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이는 재물은 아름다운 향기가 날 겁니다지금 우리의 지갑에는 어떤 향내가 날까요?

 

불현듯 다가올 ‘마지막 날’을 위해, 지금 당장 신속하게 회개의 결단을 내리십시오!

-양승국신부- 

 

예수님의 비유로 들어하신 말씀들은 당대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이나 가난한 백성들의 귀에도 쏙쏙 들어올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비유를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율법 교사나 지도자들의 고리타분하고 난해한 가르침과는 달리,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도 환호하고 박수를 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신 ‘불의한 집사’ 혹은 ‘약은 청지기’의 비유 말씀은 꽤나 난해합니다. 몇번을 되새김질하며 읽어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특별한 비유를 통해 강조하시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사실 불의한 집사의 행동 하나 하나는 명백한 범법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재판에 넘겨져야 마땅합니다. 그는 주인의 재산 관리를 총 책임지는 담당자였습니다.

 

 집사가 주인 허락도 없이 재산을 낭비했으니, 절도죄에 해당되겠습니다. 비리가 주인에게 발각되자,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빚 문서를 위조했으니, 공문서 위조죄에 해당되겠습니다. 불의한 집사는 갖은 비리의 종합선물셋트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특별하게도 주인은 불의한 집사가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합니다.

 

 이 비유 앞에 많은 분들이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인가? 이렇게 알아듣기 힘들어서야! 대체 주장하시는 바가 무언인가?’하고 고민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비리와 위법행위를 칭찬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는 불의한 집사의 민첩하고 슬기로운 처신, 신속 정확한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칭찬하셨습니다. 긴박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탈출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불의한 집사가 현명하게 처신했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비리와 불법 행위가 용서되거나 의롭게 되는 것을 절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편법적인 행동으로 인해 끝까지 불의한 집사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과 관련해서 불의를 저지를 것이 아니라, 불현듯 다가올 ‘마지막 날’을 위해, 지금 당장 신속하게 회개의 결단을 내릴 것을, 그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세상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현세적 이익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면서, 할 짓 못할 짓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빛의 자녀들 역시 자신들 영혼의 유익을 위해, 불의한 집사처럼 목숨을 걸 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망설이거나 지체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이 순간, 신속히 결단을 내리라는 요청이 불의한 집사 비유의 핵심입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불과 4~50년 전만 해도 60세까지 살았으면 장수했다고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80에 세상을 뜨시면 살짝 아쉬을 정도입니다.

 

 다들 길어진 노년기에 대비해서 걱정도 많고, 또 각자 나름 철저히 준비를 하십니다. 재취직 계획, 넉넉한 연금 수령을 위한 준비, 정기적인 건강검진, 적당한 운동, 철저한 식단 관리...

 

 그러나 그러한 육적인 준비에 비해 영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 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90퍼센트, 100퍼센트 육적인 준비에만 몰두하고 계시다면, 10퍼센트, 아니면 20퍼센트 정도 ‘뚝!’ 떼어 영적인 준비에 할애해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현세적 재산은 엄청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불완전한 것입니다. 지금은 죽기살기로 꽉 움켜쥐고 있지만, 불과 10년, 20년, 30년 뒤면 고스란히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현세의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세의 재물로는 조만간 반드시 다가올 죽음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향한 사심없는 자선과 희사는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우리를 적극적으로 변호해주는 가장 좋은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죄가 아무리 크다 해도,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부당하다 해도, 우리가 지상에서 행한 자선과 희사를 통해 우리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물이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백배로 보상받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빌려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거처에서 우리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땅의 재물을 가진 사람들이여,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을 엽시다.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 줍시다. 우리 것이 아닌 물질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이가 됩시다.”(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교부)

 

해야 할 일을 우선해야 한다

 -반영억신부-

 

앞날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현명합니다. 재물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배려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의 영광을 헤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내일을 준비하되 주님께서 섭리하신 약속된 미래, 영생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결국은 주인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고민 하다가 자신의 장래를 보장 받기 위한 부정을 또 저질렀습니다.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다가 빚을 탕감해 주고 훗날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것을 보고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세속적인 사람이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은 칭찬할 만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되었으니 결국 세속적입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현세적인 이득이나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자녀교육이나 재산의 축적과 같은 일을 위해서는 위장전입이나 탈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오히려 잘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하니 말입니다. 아파트 청약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소문난 좋은 유치원에 등록하기 위해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세상일에는 정말 많은 수고와 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목적달성을 이루려고 합니다.

 

세상일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거늘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더 해야 하겠습니까? 세속의 자녀도 막다른 골목에서 돈을 팔아 사람을 사거늘 마지막 날 주님의 대전에서 서게 됨을 알고 있다면 그 준비를 미리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돌아올 때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행복합니다(루가12,43). 그리고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입니다’(루가12,4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로운 덕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바가 무엇이며, 마땅히 피할 바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빛 속에 거니는 사람이 어둠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님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은 시선을 헛된 것에다 둘 수 없습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따라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잘 이용하여 미래를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사실“많은 일을 해도 해야 될 일을 안 한 사람은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한 것처럼 보여도 해야 될 것을 한 사람은 많이 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만 앞서거나 부산함만 피우지 마십시오”(성 요한보스코). 세속 일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일,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길 희망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도 불의합니다.”매 순간순간 하느님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여 행복하십시오.

 

 가롤로 성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생활과 행동 자체가 설교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신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당신의 말을 비웃고 고개를 내젓기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만큼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큰 수고와 정성으로 복된 날 만드시길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불법적인 소유

-이종훈신부-

 

돈은 좋다그러나 돈이 아무리 좋고 많아도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아도 어차피 나중에는 여기 남은 사람들에게 다 주게 된다여기서는 가족친구가 많아도 하늘나라로 들어갈 때는 홀로 가야하거니와 문도 매우 좁아서 가진 짐들은 다 버려야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육체도 가져가지 못한다.

 

소유는 달콤하지만 저기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그들은 나그네요 순례자들이기 때문이다순례 길에 꼭 필요한 것들만 소유하고 있으면 된다그것도 순례하는 동안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가난은 불편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가난한 이웃들에게 그것은 고통이고 슬픔이다하느님은 우리와 나무와 짐승 모두에게 먹을 것과 재물을 풍족하게 주셨는데 가난한 이들이 있음은 누군가가 지나치게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불의한 방법이 아니면 그렇게 많이 쌓아둘 수 없다그런 이들을 두고 하느님은 맹세하셨다. “나는 그들의 모든 행동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아모 8,7).”

 

나의 것은 없고 소유도 임시적이다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와 가족 그리고 몸도 마찬가지다순례 길에 필요하고 선을 쌓고 사랑하기 위한 도구들이다이것을 믿는 이들은 얼마나 자유롭고 평화로운가세상 모든 것나의 육체와 생명까지도 하느님의 것이니 어쩌면 그것을 아무리 임시라고는 해도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불의한 것일지 모른다나는 불법적으로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루카 16,11-12)” 진짜 나의 몫은 하늘나라에 있다.

 

예수님주님도 집과 가족 등 이것저것 소유하셨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아무 것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그래도 주님은 부족함이 없으셨습니다소유하고 싶은 유혹을 잘 아시니 하늘나라의 문 앞에서는 쓰레기가 될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기 않게 도와주소서오늘도 순례 길을 걷는 저에게 양식이 되어주시고 제가 가야 할 곧은길이 되어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쓸데없는 재물은 물론이고 나의 꿈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도 자유롭게 도와주소서아멘

 

조욱현신부-

 

하느님과 재물에 대한 가르침

 

오늘 전례의 주제는 재물에 관한 것이다재물은 하느님의 선물이지만어떤 경우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오늘 복음에서는 인간이면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재물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재물 사용법에 대해 몇 가지 권고를 하고 있다재물을 잘 사용하여 진정 하늘나라에 자신을 개방하고 준비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계시다.

 

1독서아모 8,4-7: 가난한 사람들을 돈으로 부려먹는 자들에 대한 경고

1독서는 예언자 아모스 시대에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서(BC 783-743)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있던 이스라엘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려고 하였다이 때에 양을 치던 아모스가 그들을 호되게 비난하며 질책을 퍼붓는다1독서의 내용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압박하는 전형적인 착취형태로서이 같은 상황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더욱 심각하다수많은 국가에서 자행되고 있는 착취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이 때문에 아모스의 외침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상황을 거슬러자신들이 압박의 도구가 되지 않고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형제애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지상재화의 의미를 재조명하라고 하는 촉구라고 할 수 있다.

 

복음루카 16,1-13: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오늘 복음에서 청지기는 어떻게 그런 부정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주인에게 들켜 큰 벌을 받을 수 있는 나쁜 짓임에 틀림없다당시의 청지기는 넓은 토지를 관리하고 주인에게 정기적으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그 땅에서 나오는 결실을 높은 이자로 빌려주고 자신들의 보수를 챙겼던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청지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이용하여 빚진 자들의 빚문서를 허위로 기재한다기름을 빚진 사람에게는 50%를 감해주고밀을 빚진 사람에게는 20%를 감해준다이렇게 이 약은 청지기는 빚을 삭감해줌으로써 개인적인 수익을 거둘 뿐 아니라빚진 사람들의 환심도 산다.

 

주인은 이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했다고 칭찬을 한다(8). 이 청지기는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가지 이익을 얻고 있다우선은 개인적인 벌이를 할 수 있었고또 그 빚진 사람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집주인은 이 두 번째 사실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있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8)는 것이다. ‘세속의 자녀들은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의 환심을 얻는데 어째서 착한 이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려울까아마도 자기 자신과 또한 자신의 재물을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9). 이 비유는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재물을 사용할 줄 알라는 권고로 맺고 있다여기서의 친구들이란 누구를 의미하는지 막연하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루가의 전체적인 신학사상에 비추어 알 수 있다.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헤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다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루가 12,33-34). 그러므로 우리가 재물로 사귀어야 할 친구들이란 구체적으로 우리가 은혜를 베풂으로써 나중에 우리의 중재자가 될 모든 사람들이며추상적으로는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베푼 모든 자선행위 및 선행을 의미한다.

 

이것이 루가의 입장에서 재물의 소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그렇지 않으면 정당하게 번 재물이라고 해도 부당하게 사용되는 것이며 따라서 세속의 재물이 되고 만다재물은 나눔이 있을 때 사랑과 우정의 공간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던가아니면 이기적으로 사용되어 사회적 불안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그렇게 되면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저주만이 있게 된다. “부요한 사람들아너희는 불행하다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루가 6,24). 오직 이 세상의 재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때만이 참 재화를 풍성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그 재화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하늘나라의 재화이다참고로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의 몫을 내어주겠느냐?”(12)고 하시는데 여기서 남의 것이라고 하는 말은 재물이 혼자서 즐기는데 쓰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진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지막 말씀은 재물의 모든 정당성을 배제하고 있는 내용이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13). 재물은 사람의 모든 관심을 당겨 인간을 노예로 삼으려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그러나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을 차지하게 되면재물에 대한 집착은 버릴 수 있으며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같이 될 수 있다어떤 면에서 재물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자기 신앙의 진실성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그 재물이 동참과 우정의 도구가 되고 있는지그렇지 않으면 이기주의적 폐쇄와 원한의 도구가 되고 있는지 자신의 태도로써 알 수 있다그러므로 재물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는 우리가 재물을 만들어 간직하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모든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쓸 경우이다교부들도오늘의 교회도 이렇게 살도록 가르치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재화의 대부분이 인류의 1/3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쥐어져 있고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대개가 어려움에 처해있다이 같은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는가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고자 함으로써 복음을 거스르고 있다는 사실에도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그러므로 2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권고하듯 하느님께서 모든 이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한다그래야 우리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아주 경건하고도 근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1디모 2,2).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6년 9월 18일 일요일 연중 제2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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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