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9월 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Margaret K 2022. 9. 5. 06:06

2022 9 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 

(루가 6,6-11)

 

 “I ask you,

is it lawful to do good on the sabbath
rather than to do evil,
to save life rather than to destroy it?”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내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고 물으시고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종종 봅니다. 이에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부족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믿음이 없어서일까요? 그보다는 나 자신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이해를 위해, 사람들 간의 사랑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받는 사랑의 크기에 따라서 기쁨의 강도가 바뀔까요? 그보다는 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기쁨이 더 커졌던 기억이 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에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에 크게 기뻐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받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늘 주는 것이 먼저였고, 이런 사랑을 통해 우리는 큰 기쁨과 행복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주는 것이 아닌, 받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게 되면 여기서 사랑의 결핍이 나타나고, 형식적인 사랑의 실천만을 입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주는 사랑에 집중하고, 이 사랑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충만하게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논쟁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냐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유다인에게 율법은 그 어느 것보다도 귀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율법이 곧 하느님이 되었습니다.

성경 외경인 ‘나자렛인들의 복음서’라는 책에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오른손으로 밥벌이하는 장인이었습니다. 이 오른손이 가족의 밥줄일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고쳐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병자를 앞에 놓고 치유의 합법성 문제를 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는 것은 사랑이었고, 하느님께서 전해주신 율법 역시 그 사랑에 기초해야 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따라서 법 중의 법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이 됩니다. 그런데 알맹이는 빼고 법조문 글자에만 집착하면서 사랑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입니다.

형식적인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자신이 받을 사랑에만 집중해서도 안 됩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 자신이 주는 사랑만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의 사랑이 보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게 됨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이 아니며, 둘을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홉을 주고도 미처 주지 못한 하나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브라운).

 윤리와 신앙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jOJeSMw0aJo

 -조재형신부-

 

의료보험에 가입했습니다치과에도 다녀왔고내과에도 다녀왔습니다의료보험이 없을 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의료보험이 있으니 치과에서도 내과에서도 부담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내과에서는 위내시경장내시경도 하자고 했습니다내년에 한국에 휴가가면 하겠다고 했습니다평소에는 잘 모르고 지내는데 병원엘가면 몸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치과에서는 잇몸이 약하다고 이야기합니다잇몸이 약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기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내과에서는 혈압이 높다고 하고콜레스트롤도 있다고 합니다그것도 특별한 방법이 없기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아직까지 큰 이상이 없는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이 생기지 않도록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규칙적인 식사적당한 운동긍정적인 생각나눔과 봉사는 우리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백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구장님께서 사제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멀리 미국에 있지만 교구를 사랑하시고사제들을 사랑하시는 교구장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교구장님은 사제들의 의견을 경청하셨고먼저 시급한 것들을 시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직분을 떠나서 사제들이 서로 존중하고배려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주임신부부주임 신부보좌 신부는 직책이 다를 뿐이지 모두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성직자이기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같은 마음으로 수도자들과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줄어들고 있는 성소자들을 생각해서 신학생 양성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신학생들은 사제들의 삶을 보고 성소를 결정한다고 하였습니다성직자국을 신설하겠다고 하였습니다교구에 기도사제들을 두겠다고 하였습니다타교구 공소에 사제를 파견하겠다고 하였습니다협력사제 제도도 시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여러 모임을 신설하겠다고 하였습니다그런 토론의 장에서 사제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하였습니다하느님의 사랑이 교구장님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시노드를 통해서 지역교회의 현안과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하셨습니다어쩌면 그만큼 지금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입니다지금 교회의 상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제 독신 문제여성 사제 문제성 소수자 문제교구장 임기제 문제안락사 문제낙태 문제’ 들이 있습니다교회의 법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문을 열고 있지 않습니다성공회개신교원불교와 같이 다른 종교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문을 열고 개방하고 있습니다사제의 결혼을 허용해도여성에게 성직자의 문을 개방해도성 소수자들에게 성직의 기회를 주어도교구장의 임기를 정해도안락사와 낙태를 허용해도 그것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그것으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커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소비와 자본 그리고 물질이 안개처럼 우리 주위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켜도인간의 양심과 영혼을 녹슬게 해도 우리는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묵은 누룩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새 반죽은 제도와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새 반죽은 순결과 진실입니다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베네딕토 성인이 했던 것처럼프란치스코 성인이 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는 영성이 더 필요합니다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성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영성은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야겠습니다!

 -양승국신부-

 

예수님의 가르침 하나 하나는 어찌 그리 명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한지 탄복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 대상에 걸맞는 촌철살인의 말씀을 던지시니, 어떤 사람은 치가 떨리고 살이 떨리고 복수심에 부들부들 떨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통쾌함을 선사하십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그 자리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던지는 생명수 같은 말씀을 스펀지처럼 족족 흡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호기심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강한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내면이 잔뜩 오그라든 사람들, 앞뒤가 꽉 막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은총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지만, 귀와 눈, 마음과 영혼이 닫힌 그들이었기에, 감동이나 회개, 새출발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또한 오늘의 첫째가는 조연,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손이 오그라들었지만 마음은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눈과 귀, 영혼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손을 뻗어라.”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만 그 말씀을 건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당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 특히 마음이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 각자 역시 들으라고 건네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권고 말씀에 따라 어둡고 으슥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지 말고, 환하고 넓은 중심에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앉아 계신 자리 가까이로 다가서야겠습니다.

  

구리고 쉰내 풀풀 풍기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야겠습니다.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영근신부-

 

앞 장면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며,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루카 6,5).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도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지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루카 6,9)

그들이 입을 열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손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

(루카 6,8)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 숨어있는 저희를 빛으로 불러내십니다.

당신 면전으로 불러내십니다.

자비와 치유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생명과 구원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어라.”

(루카 6,10)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란?

마치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가슴에 자기 뜻을 꼭 움켜쥐고 있듯이, 손에 무엇인가를 꼭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며,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형제들과 주고받고를 못하고 있는 불통을 의미합니다.

또한 자신을 꼭 쥐고 있어서 완고해져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느님과 형제들과 단절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묘한 것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손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에덴에서부터 쥐었습니다.

‘선악과’를 손에 움켜쥐었고, 교만과 불순명과 탐욕을 움켜쥐었습니다.

곧 ‘손 오그라든 이’는 죄에 물든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사실 선악과를 따먹고 높아지려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추락이었습니다.

금단을 어기고 자유를 행사했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속박이었습니다.

욕심을 부려 자신을 채웠지만, 그것은 오히려 단절과 죽음이었습니다.

결국 움켜쥐는 것은 추락이요 속박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오그라든 손을 편다는 것은 단지 움켜 쥔 것을 놓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놓고서 고통과 은총의 못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십자가에서 못을 받아들이시고 구원의 피, 화해의 피를 흘리심을 의미합니다.

 

이제 첫 아담이 움켜쥔 손을 펴시고, 새 아담이 되심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그라든 손을 편다는 것은 구원을 받아들임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손을 펴고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사랑을 건네주기보다 자애심과 이기심을 채웠던 우리의 손을, 위로하기보다 돌팔매질했던 우리의 손을 뻗어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이제는 움켜쥔 것을 놓아야 할 일입니다.

마음을 풀고 손을 펴야 할 일입니다.

그분을 마음에 품고 구원된 자로 살아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손이 당신 구원과 사랑을 건네는 손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손을 뻗어라.”

(루카 6,10)

 

주님!

주고받을 줄 아는 복된 손이 되게 하소서!

주고 싶은 것만 주고, 받고 싶은 것만 받는 손이 아니라, 주고 싶지 않아도 주고, 받고 싶지 않아도 받는 손이 되게 하소서!

선악과를 움켜쥔 탐욕과 불순명의 손이 아니라, 못과 창을 받아들인 사랑과 신뢰의 손이 되게 하소서!

움켜 쥔 것을 나누어주고, 손을 뻗어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말씀 나누기 - 연중 23주 월요일-우리 공동체는?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9월 7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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