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4일 연중 제23주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25-33)
Whoever does not carry his own cross
and come after me
cannot be my disciple.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면 누가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느냐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종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 달라고 옥중에서 부탁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당신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복음).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키엣 대주교-
신중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느 한순간 충동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오래동안 숙고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거대한 탑을 세우는 일이며 원수와 대적하는 일과 같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루만에 거대한 탑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오랜 시간 정진하며 목표를 잃지않고 지루한 그 길을 가야만 완성할 수 있는 거대한 일입니다. 원수와 대적하는 일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평생의 과업이며,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기에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지 아주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들을, 아끼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더욱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가볍게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상황에 따라 의지를 바꾸어서도 안됩니다. 일생 동안 주님을 따른다는 결심과,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주님처럼 행동하겠다는 굳건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언제나 그리스도교의 주인이신 주님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주인이신 주님 한 분만을 모시려면 자신은 물론 가족과 다른 사람의 의지를 버리고 오직 주님 한분만을 모시고 무엇보다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버리라고 하시기 전에, 예수님 스스로 먼저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고귀한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고 고귀한 신분을 버리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가난하게 사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까지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그 엄청난 고통의 순간에도 당신의 뜻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당신의 뜻을 포기하고 끝까지 고통과 치욕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완수하셨기에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 험한 길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 속에 단 한분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모시는 데 방해가 되는 다른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자신까지도 완전히 포기했을 때 비로소 주님과 하나로 일치되어 주님과 함께 인간을 구원하는 소명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명은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1.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2. 자신을 버린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과연 나 자신을 버릴 수 있습니까? 3.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왜 그래야하는지요?
1. 우리의 소명은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로 주님의 작은 사랑, 마음과 나눔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한 걸음 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보십시오.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복음을 읽다 보면,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나자렛 사람’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 ‘노쯔리’와 아람어 ‘나즈란’로 쓰는데, 사실 이 단어는 예수님을 비하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즉, ‘나자렛 것’, ‘나자렛 놈’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비하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판에 예수님께서 활동을 멈추셨을까요? 이런 비판이 늘어남에 따라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의 정치인들도 자기의 지지도가 떨어지게 되면, 활동에 제약받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활동을 전혀 멈추시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위협까지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판단보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윤공희 대주교님의 ‘북한교회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공산 치하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 죽음의 위험에서도 신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피난 가지 않는 신부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순교자들이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고백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의 지금 삶 안에서는 분명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답지 않게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자랑스럽게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입니까?
많은 사람이 주님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제야말로 하느님 나라가 곧 올 것이고,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수난과 죽음을 겪은 다음에야 돌아올 영광이었습니다. 즉, 순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이 어렵다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지요.
사실 자기 부모,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그리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에 정말로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4계명에 ‘부모에게 효도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유교 사회 뿌리가 깊은 우리만큼 조상의 핏줄을 귀하게 여기는 유다인에게 효도는 중요한 사상이었습니다.
‘미워하다’라는 표현은 ‘뒤로 돌리다, 2차적으로 생각하다’라는 뜻의 표현입니다. 결국 극한 상황에서 필요하다면 부모까지도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예수님 다음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고, 궁극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탑과 전쟁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맡은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심사숙고를 요구하는 진지함과 어떤 난관도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인내심이 요구됨을 전해주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데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지혜로움과 주님께 대한 사랑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제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정한 목표에 100% 도달한다.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e9BNaVT0Wv8
켈리 최는 2022년 연 매출 6,000억을 기록한 켈리델리라는 대형마트에서 초밥 도시락을 파는 기업의 C.E.O입니다. 켈리델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11개국 1,200개 프랜차이즈 매장을 지니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이렇게 급속도로 성장한 회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만 해도 최 회장은 첫 사업 실패로 10억 원의 빚더미에 눌려 하루하루 비참하게 살고 있던 노처녀였습니다. 그녀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6남매 중 셋째 딸이었고 가난했던 집을 일으키겠다고 서울로 상경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의류공장에 다니며 ‘세계적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 유서까지 써 놓고 일본으로 건너가 돈을 벌면서 대학에 다녔습니다. 다시 패션의 중심인 프랑스로 무작정 건너갔습니다. 학교 졸업 후 친구와 함께 동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40세가 넘었음에도 자신은 빚만 지고 있었고 거울을 보았을 때 흉측한 괴물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꿈을 좇아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마흔이 넘은 최 회장은 인생을 포기하려다 고생하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점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자신이 목표만 정했지, 그것을 위한 에너지를 다른 곳에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최 회장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세 가지 습관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는 부자들이 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부자들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첫 번째로 정한 것은 그 좋아하던 ‘술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실 저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술을 끊었어요. 제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술을 마시고 실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술을 마시는데 빼앗기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의 직업은 민박집 주인이자 가이드였어요. 게다가 동시에 켈리델리 사업도 준비 중이어서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따져보았습니다. 한 번 술을 마시면 최소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이면 여섯 시간이었어요. 이 시간이 저는 정말로 아까웠습니다.
그 뒤로 저는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어요. 제가 잘 따르던 선배 언니는 저를 놀렸습니다. ‘켈리야, 보통 사업을 시작하면 거래처 사람들하고 술 마시고 친분을 쌓기 시작하는데, 너는 반대로 술을 끊네? 그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저는 인맥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빚만 늘어가고 직원들 월급날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어요. 그때 딱 소주 한 잔만 마시면 살 것 같았죠. 어떤 때는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너무 괴로울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 그럴 때는 술 한 잔이 간절했어요.
하지만 이럴 때도 저는 술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 잔을 마시면 두 잔이 되고 두 잔을 마시면 세 잔이 되고 제 의지는 사라져 갈 것만 같았죠. 지치고 힘들 때는 다짐했습니다. 나와의 약속을 절대로 번복하지 않겠다고 말이죠.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자 언니들은 저를 부르지 않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저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사업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명료한 정신으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술은 끊은 것은 저에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포기했던 습관 두 번째는 ‘드라마와 게임을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자기 관리의 기본은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스스로 발전시키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 당시 저는 시간이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이 두 개의 문제는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아는 성공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 시간을 확보했고,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 시간의 활용법은 저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었죠.
요즘 사람들에게는 특히 SNS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하는 것 중 하나예요. 이런 것들의 특징은 맺고 끊는 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 번 빠져들면 한두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죠. 자신의 사업이나 개인의 발전과 직결되어 있다면 괜찮아요. 하지만, 오락적인 요소가 크다면 분명 좋은 시간 활용법은 아닐 거예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확보를 위해서라도 SNS 사용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이 자기 계발을 하는 게 좋아요.”
세 번째 끊은 것은 ‘불필요한 모임’입니다.
“한국이나 유럽이나 모임은 매한가지입니다. 모임의 핵심은 인맥 관리예요. 사람이 모이면 새로운 에너지가 창출되고 기회의 장이 열립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는 모임에 참석하는 게 성공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생각했던 것이었죠. 사업가인 제가 모임을 포기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럼 인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인맥 관리를 하지 않아요. 인맥은 관리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나는 켈리랑 친구가 될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라고 얘기한다면 당연히 저는 그렇게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누군가가 저를 인맥 관리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관리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요. 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반대로 인맥으로 이용하려는 사람, 이것을 저는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에요.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맥을 관리하지 않아요. 저는 성공을 위해서 이렇게 세 가지를 끊어냈습니다.”
[출처: ‘바닥에서 6,000억 부자가 되기까지 ‘가장 먼저 갖다버린 습관 3가지’, 유튜브 채널 ‘동기부여학과’]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투자개발 회사의 대표이자 전미 13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 게리 캘러가 쓴 자기계발서인 『원씽』(The One Thing)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가치, 단 한 명의 사람, 단 하나의 아이디어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씽 The One Thing’을 찾아라. 그것이 당신의 커리어가 됐든, 비즈니스가 됐든 가정생활이든, 인간관계이든 삶의 각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찾아 몰두할 때, 일에서의 성공과 삶에서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켈리 최 회장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위 세 가지를 끊고 에너지를 모으기 전까지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27)
공사를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은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흥청망청 살아서 돈도 없으면서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면 결국 있는 돈도 날려버리게 될 것입니다. 혹은 전쟁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 것 같으면 싸움을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에 도달하려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끊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소유한 재물이나 애정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의 저자 아른힐 레우뱅은 ‘선장’이라고 부른 자아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믿음, 의사가 준 희망, 경찰관이 준 사랑 등으로 선장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만에 조현병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공부하여 최고의 정신과 의사가 됩니다.
두 대의 버스에 동시에 탈 수는 없습니다. 다른 것을 타려면 지금 탄 것은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자아라는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뜻으로 내 뜻을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시지프스 신화가 있습니다. 시지프스는 신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영원히 돌을 산꼭대기로 굴려야 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명에 불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을 가지고 목표를 이루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 돌을 버려야 합니다. 나 자신을 죽이게 하지 못하는 목표는 그것이 어떤 목표이건 가짜 목표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야 한다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Owud5Q1W4l8
-조재형신부-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애잔한 음성과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가을을 시작하면서 가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 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성공, 명예, 권력’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 길을 찾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그것도 모자라 학원까지 다니면서 우리는 성공의 길, 명예의 길, 권력의 길을 알려고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도 있었고,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목적지를 알고 가는 배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끝을 생각하면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소중한 것을 먼저 했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모두가 이기는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혁신과 개혁을 통해서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먼저 경청하고 자신의 뜻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것들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면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이 주어집니다. 그러기에 밤을 새우면서 그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한국을 떠나 이민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성공’은 모두가 선망하는 삶의 길입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인 종교는 대부분 ‘지혜의 길’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은 대부분 고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원치 않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의지와 다르게 행동하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런 고통은 집착에 있다고 합니다. 그 집착을 버리면 비로소 깨달음의 세계가 열린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음,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마음, 잘못을 겸허하게 뉘우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 의, 예, 지’의 마음입니다.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은 한양의 4대문을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숭례문, 흥인지문, 홍지문, 돈의문으로 정했습니다. ‘인, 의, 예, 지’의 바탕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으며 한양의 중심에 ‘보신각’을 설치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길을 이야기합니다. 천년도 하느님 앞에서는 마치 지나간 어제와 같다고 합니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과 같다고 합니다. 덧없고 허무한 인생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참된 진리를 찾는 것이 지혜의 길입니다. 오늘 제1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된 지혜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지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지혜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참된 지혜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아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참된 지혜는 경쟁에서 이겨 성공하는 이들이 얻을 수도 있습니다. 참된 지혜는 욕심을 버리고 ‘인, 의, 예, 지, 신’의 마음을 가지면서 시작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된 지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지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련의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항상 찬미하십시오!
-양승국신부-
지금 우리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했던 대재앙 코로나19 바이러스 이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타격이 컸던지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돌아가신 분들, 후유증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신 분들, 승승장구하던 사업을 하루아침에 접어야 했던 분들...
길고도 긴 캄캄한 터널 안에서, 너무나 큰 벽 앞에서 아파하고, 슬퍼하고, 너무나 무거운 십자가 앞에서 쓰러지고 좌절하는 분들에게 오늘 복음은 큰 희망으로 다가가리라 믿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복음 14장 27절)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고통에, 우리의 절망에, 우리의 십자가에 의미를 부여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슬픔과 눈물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확증하십니다. 오늘의 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 거듭나게 되는 가장 확실한 도구임을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 우리의 잘 되기만을 원하시는 하느님, 우리의 나날을 축복하시는 하느님께서 도대체 왜 십자가를 건네시는 것일까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더 큰 상급을 안겨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예비조치로 십자가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꽃이 기후가 좋은 풍토에서만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겨울의 모진 추위, 여름의 혹독한 더위, 강한 비바람... 이 모든 것에 시달린 이후에야 비로소 꽃은 피어납니다.
대작을 창출해내는 예술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부로라도 자기 자신의 생활에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대작을 부화해내기 위해 스스로 칩거합니다. 사회와 단절됩니다. 식음까지 전폐하며 작품에 몰두합니다. 그 결과가 대작인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인생의 풍랑 앞에서 절대로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겠지만 지척에서, 내 바로 오른 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언제라도 손 내밀 준비를 갖추고 계십니다.
역풍을 만날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아버지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분을 향한 전적인 신뢰심입니다.
인생의 역풍을 만날 때 마다 꼭 기억하십시오. 손만 내밀면 다가오실 지척의 거리에 주님께서 서계십니다.
갖은 걱정, 근심, 두려움, 다가올 십자가에 대한 부담, 미래에 대한 공포 등, 쓸 데 없는 에너지 소모를 피하십시오.
돌아보면 삶은 온통 감사거리로 가득 찼습니다.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온통 은총의 꽃밭입니다. 다양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감사와 기쁨, 행복함, 편안함, 안정감으로 온통 채색해야할 소중한 우리 인생입니다.
결국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고통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십시오. 역경의 산맥을 넘어가면서도 항상 감사하십시오. 시련의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항상 찬미하십시오.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비록 십자가를 보내시지만, 언제나 내 곁에 함께 서 계십니다.
말씀 나누기 - 연중 제23주일-실패하는 자와 성공하는 자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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