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8월 27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Margaret K 2022. 8. 27. 06:34

2022년 8월 27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마태오 25,14~30)

 

Well done, my good and faithful servant.
Since you were faithful in small matters,
I will give you great responsibilities.
Come, share your master's joy.'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며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1.4kg의 회백질 덩어리인 뇌의 습성을 알려면 ‘멍게’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멍게는 유충일 때는 뇌가 있어서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한군데 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 아주 특이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글쎄 자기 뇌를 먹어버린다고 하네요. 이제 움직일 일이 없으므로 뇌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뇌의 에너지 소비율은 아주 높거든요. 따라서 에너지 소비율을 줄이기 위해 자기 뇌를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뇌는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덕분에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도록 뇌가 진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힘도 없고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또 날지도 또 물속에서 헤엄도 못 치는 너무 약한 몸을 가지고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뇌가 성장했습니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합니다.

이런 생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능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인이 돈을 맡기고 떠나간 다음 능력에 따라 돈을 맡은 부하들의 활약상을 소개합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여 또 다른 다섯 탈렌트로 늘렸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두 탈렌트를 받았고 역시 두 탈렌트를 늘렸습니다.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는 주님의 일을 맡은 사람의 능력의 차이이며, 주님이 일을 맡길 때도 그 능력에 따라 은총을 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능력의 차이는 본인의 잘잘못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대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 됩니다.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로 늘린 사람에 대한 주인의 평가를 보십시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땅에 묻어둡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주인이 무서워서 한 행동이 아니라, 일하기가 싫어서 게으름을 부리는 직무 유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능력 차이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자는 큰 것에도 감사하지 않는다.(에스토니아)

 하느님의 선택, 우리의 탈렌트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DJXOLESIapE

 -조재형신부-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품으로 간 젊은이의 장례미사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오후 3시에 연도가 있고, 3시 30분에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그날 저는 오후 3시에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2시에 갔더니 다행히 예약시간이 아닌데도 서류를 받아 주었습니다기다리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일이 10분 만에 끝났습니다미리미리 일을 하는 저의 성격 때문에 장례미사엘 갈 수 있었습니다장례미사를 하는 동안 아들을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야 했던 부모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신앙으로는 더 이상 슬픔도아픔도고통도 없는 하느님의 품으로 갔음을 믿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에 괴로워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성당을 가득 메운 교우들과 함께한 사제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세상에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그러기에 순간을 살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저는 그동안 달란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세상은 능력을 존중하고업적에 따른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그래야 세상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회사는 성장하기 때문입니다보험사는 고객을 많이 유치한 직원에게 특별 수당을 주기도하고휴가를 보내 주기도 합니다회상에 공헌을 했기 때문입니다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직원에게는 진급을 시켜주기도 하고특별 포상금을 주기도 합니다그만큼 회사에 기여한 공이 크기 때문입니다교회는 능력과 업적을 세상의 기준으로 보상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성당을 많이 신축한 사제라고 특별 수당을 주는 경우가 없습니다선교를 많이 해서 세례를 많이 주었다고 더 큰 성당으로 보내는 경우도 없습니다수도자들은 장상을 했었지만 다시 평회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능력과 업적이 있다고 해서 특별한 보상이나 특혜를 주는 경우가 없습니다.

 

오늘 문득달란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시간의 길이는 우리가 정할 수 없습니다어떤 이는 100세까지 장수를 하기도 합니다어떤 이는 한참 일 할 나이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기도 합니다어떤 이는 불의의 사고로 일찍 하느님의 품으로 가기도 합니다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닙니다오래 살았다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일찍 죽었다고 하느님께 가지 못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25년을 살았지만 성인품에 올랐습니다유대철 베드로는 13년을 살았지만 성인품에 올랐습니다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간의 길이가 아닙니다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 입니다성공명예권력을 채워 넣어서는 하느님께 갈 수 없습니다원망불신탐욕을 채워서는 하느님께 갈 수 없습니다세상 사람들에게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믿음희망사랑입니다겸손순명청빈입니다희생자선기도입니다이런 것들을 채워 넣는다면 짧은 삶이었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형제 여러분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며 나는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채우려 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위대한 어머니의 표본, 모니카 성녀

 -양승국신부-

 

교회 역사 안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신 성인이 다시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청소년 시절 그의 방황과 타락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다 다녔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마니교 이단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충격에 사로잡힌 가족들은 동네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는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백방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때로 타일러도 보고, 때로 야단도 치고, 때로 눈물로 호소도 해보고, 밤새워 기도도 해보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썼습니다.

  

아들 때문에 밤낮없이 울고 다니던 그녀에게 암브로시오 주교님은 이런 위로의 말씀을 건넸습니다. “눈물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방황하는 아들의 회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모니카의 얼굴과 우리의 회개를 위해 눈물로 하소연하시는 성모님의 얼굴이 꼭 빼닮았습니다. 문제 청소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죄와 타락 앞에 취한 어머니의 태도는 참으로 영웅적이었습니다.

  

달콤한 죄의 유혹에 깊이 빠져든 아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현명한 어머니는 한 가지 전략을 세우는데 그것은 바로 ‘장기전(長期戰)’이었습니다. 아들의 변화를 위해서는 오랜 투자와 무한한 인내, 집중적인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단과 방탕한 생활에 빠진 아들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 이상 야단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아들의 회개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 자비의 손길에 맡겨드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한 기도, 목숨을 다 바친 기도, 지극한 정성이 담긴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새로운 삶을 지향하며 수시로 단식했으며 더불어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당시 모니카가 직면해야 했던 현실은 참으로 혹독했습니다. 사방이 높은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방황과 타락의 세월은 점점 길어지고 강도를 더해갔습니다. 남편 역시 신앙심은 빵점이고 출세 욕구나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들로 인한 스트레스는 하늘을 찔렀고 매일 울고 다니다 보니 건강도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가족 모두가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16년 동안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아들의 회개를 위해서 3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남편과 아들과 손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들은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회개의 길로 접어들었고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부요 추앙받는 대 성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이영근신부-

 

오늘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는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탈렌트를 맡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탈렌트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종들에 대한 주인의 ‘믿음의 표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믿음의 표시’인 이 달란트는 주인의 선물이요,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에 따르는 소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선물은 잘 보관하라고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잘 쓰라고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곧 선물은 이미 맺혀진 열매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종자돈과 같이 씨앗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돌아와 셈을 할 때에 선물에 따라서 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물을 어떻게 썼는지, 곧 그 소명을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따라 대가를 지불합니다.

결국 선물에 따른 응답이 바로 하늘나라를 얻기 위한 경기의 규칙인 셈입니다.

 

주인은 첫째와 둘째 종에게 말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마태 25,21.23)

 

그리고 셋째 종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 25,26)

 

사실 은총의 선물은 항상 충만히 주어지지만, 우리는 그 은총을 주는 대로 다 받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만큼만 받습니다.

곧 비워진 만큼만 받게 됩니다.

그런데 베풀고 나누어야 비워지기에 결국 나누는 만큼 받게 됩니다.

반면에 선물을 움켜쥐고 있으면 움켜쥔 것마저도 잃게 됩니다.

사실 그 선물은 애시 당초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선물을 받은 이가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선물을 충실하게 열매 맺는 이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은총’ 곧 하느님의 사랑, 먼저 주신 사랑이요, 둘째는 은총에 따른 ‘소명에 응답하여 충성을 바치는 일’ 곧 은총을 열매 맺기 위해 믿음과 사랑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일’ 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은총의 열매를 맺을 힘도,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도 함께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은총’과 ‘십자가’야말로 하늘나라를 얻기 위한 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경기의 규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은총 그 자체보다도, 은총을 실현하는데 따르는 십자가 그 자체보다도) 먼저 그것을 주신 분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기 위한 주님의 사랑임을 아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마태 25,15)

 

주님!

당신은 신랑이 신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듯 제게 탈란트를 맡기셨습니다.

당신의 신뢰를 신뢰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 크신 당신의 사랑을 제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선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태 25, 26)

-한상우신부-

우리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느냐가
중요하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악하고 게으른
우리들 모습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에서
너무 멀어져
있는 우리들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아집으로 우리의
뜻만을 고집하는
우리들 삶이 되었다.

착하고 성실한 삶은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삶이다.

순명하는 삶안에
진리도 있고
질서도 있고
충만함도 있다.

순명은
주고 받는
충만한
사랑의
관계이다.

적극적인 삶의
모습이 참으로
중요하다.

게으름 속에
파묻혀 있는
신앙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실천하는
신앙이다.

크고 귀하고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절절한
가슴앓이다.

절절한 사랑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선택할 권리가
없는 사랑이다.

주어진 관계에
참으로 성실했던
모니카 성녀의
삶이다.

사무치는
고맙고 소중한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라나는
우리들이다.

참된 사랑은
게으르지 않다.

작은 것에
성실하다.

이와같은
사랑은 두려워서
꼭꼭 숨겨두는
사랑이 아니라
활용하고 확장하는
용기있는 사랑이다.

우리를 믿고
사랑을 맡기셨다.

사랑을 더 가지려
노력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사랑을 셈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뿐이다.

하느님 사랑을
받아 이미
넉넉해진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차례이다.

말씀 나누기 - 연중 21주 토요일-속된 기준과 천상 기준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