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8월 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Margaret K 2022. 8. 16. 06:28

2022 8 16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마태오 19,23-30 )

 

"Amen, I say to you,

it will be hard for one who is rich
t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Again I say to you,
it is easier for a camel to pass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one who is rich to enter the Kingdom of God .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티로의 군주가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죽음을 맞이 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일곱 살인 아들과 그 엄마의 대화 내용입니다.


“엄마! 내가 지금보다 스무 살 더 많아지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스물일곱 살이면 뭐든 할 수 있지.”

“그럼, 서른일곱 살이면요?”

“서른일곱 살이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걸?”

“그러면 마흔일곱 살은 요?”

이 질문에 엄마는 망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자기 나이가 마흔일곱 살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마흔일곱을 사는 자신은 스스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두었고, 오랜 경력 단절로 다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에 충실한 것도 사회적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면서 스스로 위안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아들에게 뭐든 다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질문을 통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마흔일곱 살 어른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 말입니다.

일곱 살 난 어린이가 마흔일곱의 어른을 변화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를 변화시킨 것은 너무 많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닫혀있는 마음, 나만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 변화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물론 바늘구멍이 낙타가 빠져나갈 정도로 크다면야 가능하겠지만, 기존 우리가 사용하는 바늘구멍에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부자는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면, 굳이 부나 재물 자체를 만드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부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재물을 잘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마련한 필수 요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을 따르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서 주님을 제일 첫 번째 자리에 모실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옵니다(에디 제이쿠).

 하늘에 들어간 부자들의 이야기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u82syaTEG_U

 -조재형신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하셨습니다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구체적으로 예를 드셨습니다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모두 부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부유함이 주는 편리함이 많기 때문입니다부유하면 좋은 집을 가질 수 있고부유하면 좋은 차를 가질 수 있고부유하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했을까요재물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남을 속이기도 하고남의 것을 빼앗기도 하고하느님과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부자는 늘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좋은 옷을 입었고커다란 집에서 지냈습니다라자로는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었고몸이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였습니다부자는 죽어서 지옥엘 갔습니다그런데 라자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천국으로 갔습니다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너는 살아서 풍족하게 살았고라자로는 살아서 힘들게 살았으니 라자로는 죽어서는 편안함을 누려야 한다.’ 부자는 내가 풍족하게 살았던 만큼 라자로에게는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그래야 살아서도 죽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형제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누가 알려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부자가 가난한 라자로를 도와주었다면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쉬웠을 것입니다라자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의 삶이 너무 고단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곳간에 재물을 쌓아놓고 기뻐하는 부자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부자는 재물을 곳간에 쌓아놓고 기뻐하지만 부자가 죽으면 그 재물은 하나도 가져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그러니 우리는 썩지도 않고좀을 먹지도 않는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는 어디일까요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쌓아야 할 곳간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헐벗은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너희 중에 가장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너희 중에 외로운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너희 중에 갇힌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그리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도 하셨습니다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했던 레위와 사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강도당한 사람을 정성껏 돌봐주고 치료해 주었던 사마리아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그런 사람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고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였던 세리 자캐오를 만났습니다부자였지만 세리였던 자캐오는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그런 자캐오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예수님께서 동네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자캐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제가 빚진 것이 있다면 4갑절로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받았다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부자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부자일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자신의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이웃에게 나눌 수 있다면 하늘나라의 문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영근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이 재물 때문에 당신을 따르지 못하고 물러간 다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24)

 

여기에서 '부자'란 단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재물에 의지하는 사람, 재물에 집착하여 하느님을 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물'이란 단지 물질적인 재화 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가정, 재능과 지식, 이념과 신념 등 자신이 애착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재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하느님마저도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에 대한 집착이라면, 버려야 하는 재물이요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은 곧 재물 때문이라기보다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하느님을 멀리한 까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부와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을, 가난과 빈곤은 하느님의 저주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마태 19,25)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6)

 

이는 구원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자력으로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가진 재물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부자든 가난한 이든 죄인이든 자신(우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마태 19,30)

 

그러니 오늘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볼 일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것에 애착하고 있는가?

혹 나 자신의 몸이나 소유물이나 재능, 지식이나 신념이나 이상, 자기 방식의 사랑이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공동체 상이나 하느님 상에 애착하고 있지는 아닌가?

 

오늘 우리는 내가 바라는 가정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가정과 공동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고 믿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하느님이 되셔야 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24)

주님!

재물이 없어도 고집과 완고함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저는 부자입니다.

힘과 능력이 없어도 자신의 뜻으로 가득 차 있는 저는 부자입니다.

제 주장과 의견을 앞세워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가늘게 부수고 부수어 당신 바늘귀에 꿰소서!

아멘.

 「부자는 죄인인가?」

 -반영억신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19,23)는 말씀을 들은 한 부자가 “하느님, 낙타를 아주아주 작게 만들어 주시든지, 바늘귀를 아주아주 크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저의 재산 반을 당신께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답니다. 그렇다면 그가 재산을 바친다고 해서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수가 있을까요? 재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소유한 것을 포기하되 무엇을 버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버렸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의 인간적인 유익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렸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상을 백배로 받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버린다면, 결코 진정한 열매는 맺을 수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상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그분의 이름 때문에”(루카18,29. 마태19,29) 바쳤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입니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몇년 전, 올림픽대회 때 상을 위해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을 한 배드민턴 경기는 결국 실격을 당하였고, 러시아 육상선수들은 약물복용으로 인해 경기에 참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경기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때문에 전체를 얻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때문에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얻을 수 있는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사실 부자가 가진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재물에 눈이 가려 보아야 할 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물은 인간을 노예화하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상’만을 생각하면 부정을 해서라도 일등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신, 의미, 알맹이, 즉 내용을 보면 그 생각을 한순간 이미 경기에서 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부자는 죄인인가요? 사실 재물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잘 써야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쪼록 많이 벌되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들을 하나하나 만들기 바랍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버리고 또 버려도 버릴 것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은 누구이겠습니까? “돈이 많다고 우쭐대다가는 쓰러지지만 착하게 살면 나뭇잎처럼 피어난다”(잠언11,28).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지 않으면 결국은 하느님 나라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을 누리려 한 사람은 그것을 잃게 됩니다. 부디 모든 것을 얻는 기쁨을 차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30,8-9).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세상의 물질에 매여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헛소리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의 모두는 주님의 것입니다. 저의 모두를 당신의 뜻대로 써주십시오. 성령깨 기도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삶의 변화를 이루게 해 주십시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낙타와 바늘구멍』

 -송영진신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태 19,23-26)”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 라는 뜻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라는 말씀은,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부자’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재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좀 더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보다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더 원하는 사람,

또 재물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지 않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이 말씀 바로 앞에 나오는 ‘어떤 젊은이’는,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기를 망설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1-22).”

재물도 포기하지 못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포기할 수 없어서,

그 젊은이는 슬퍼하면서 떠나갔는데, 그의 ‘슬픔’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 대단히 컸다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라나설 때 모든 것을 버렸지만,

그것 때문에 슬퍼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젊은이에게 하신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나를 따라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곧 예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산 사람만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려면, ‘따름’을 방해하는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재물’은 ‘따름’을 방해하는 것들 가운데에서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을

‘재물을 섬기는 일’이라고 깎아내릴 수는 없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가난한 삶’을 선택하는 것을,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확대해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가난과 궁핍은 극복해야 할 ‘악’입니다.

그러나 가난하지 않은데도 더 큰 부자가 되려고 욕심 부리는 것은

재물을 섬기는 것입니다.

(좀 더 좋은 자동차로 바꾸고 싶어 하고, 좀 더 좋은 전화기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재물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크게 잘못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사치나 과소비는 신앙인으로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큰 부자’였고(창세 13,2),

욥은 ‘동방인들 가운데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욥 1,3).

그런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유대인들은 ‘부유함은 하느님의 복’이라고,

또 ‘부자는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면,

도대체 그 나라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다.

그 나라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허락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그 허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관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루카 12,33).”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7-10).”

 

아브라함과 욥이 누린 ‘하느님의 복’을

물질적인 부유함으로 표현한 것은 구약시대의 표현 방식일 뿐입니다.

“여인들(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신(루카 1,42) 성모님이

물질적인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분이셨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문은 결코 바늘구멍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런 신앙인들을 기쁨으로 맞아들이십니다.

말씀 나누기 - 연중 20주 화요일-나는 부자인가?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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