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Margaret K 2022. 8. 10. 06:33

2022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라우렌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태어났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중 수석 부제였던 라우렌시오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일이었다.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하였다. 258년 무렵이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이다 

☆☆☆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26)

 

"Amen, amen, I say to you,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just a grain of wheat;
but if it dies, it produces much fruit.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신다며,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며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가장 힘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요일은 언제일까요? 월요병을 생각하며 ‘월요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실제로 가장 힘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날은 ‘목요일’이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날은 토요일이었고, 주일은 월요일보다도 행복감이 낮게 나왔습니다. 주일은 행복이 다하는 시점이니 불행하고, 월요일은 이미 불행을 예감하고 준비하니 차라리 주일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결국 행복은 어디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바로 희망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곳으로 여행 가는 사람이 많고, 맛집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그 수가 대단한 것입니다.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의 행복도 희망에서 찾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리라는 희망, 그 희망을 바라보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여행 가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준비가 꼭 필요합니다. 사랑의 실천이라는 주님 뜻에 맞게 사는 삶이 가장 필요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희망의 완성이 바로 행복입니다. 희망의 완성을 위해 우리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살고 있나요? 특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에는 의료진들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산불이 났을 때는 소방관들의 활약으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희망의 완성인 행복에 모두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현세에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다 보면 결국은 목숨마저 잃게 될 것이니, 현세의 목숨은 내세의 영원한 생명을 겨냥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을 믿고 이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다 보면, 그 희생의 보상은 노력의 대가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만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미워하다’라는 표현은 복음적인 용법으로, 제 목숨을 부차적인 것으로, 더 정확하게는 영원한 생명을 일차적으로 생각하고 현세의 삶을 그 수단 또는 방법을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세의 삶 자체가 희망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첫 번째에 둘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더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어도 볼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오히려 눈을 감아야 보입니다. 그리운 사람이 그렇습니다(조용철).

 살려고 하다 죽었던 기억은 가끔 되세겨도 좋을 듯...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b5ZCF3Ap7Pk

우영우 5화에서는 권모술수 권민우와 우당탕탕 우영우의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권민우는 노력해서 이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왔지만 아무래도 우영우는 인맥이 있을 것이라 여겨 피해의식을 느낀 권민우는 우영우와 함께 같은 사건을 맡았지만 우영우에게 협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맡은 재판은 현금 인출기에 들어가는 현금 넣는 카세트의 특허권에 관한 것입니다. 이화 ATM은 자신의 경쟁업체인 금강 ATM이 자신들의 기술을 모방했다며 카세트 판매 가처분 신청을 합니다. 
    여기에서 권민우는 누가 봐도 옳지 않은 일이지만 승리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씁니다. 뒤처지고 있다고 느낀 우영우도 어쩔 수 없이 거의 위증에 가까운 증언을 하도록 조언을 줍니다. 그 덕분으로 금강은 카세트를 더는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리더스라고 하는 회사에서 똑같은 것을 이전에 만든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화 ATM은 감사하다며 권민우와 우영우에게 돈이 잘 벌린다는 해바라기꽃 그림을 선물합니다. 그들 사무실에 걸려있던 변호사윤리강령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돈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놓고 갑니다. 하지만 우영우는 마음이 찜찜합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성공에 눈이 멀었던 자신을 부끄러워합니다. 
  
    물론 금강은 리더스가 전에 만들었던 카세트를 고물상에서 간신히 찾아내 다시 판매하게는 되었지만 이미 이화가 대부분의 은행과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영우는 부끄러운 마음에 해바라기를 다시 떼어내고 그 자리에 왜 진실을 외면하느냐는 금강 사장이 보내온 편지를 부쳐놓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돈과 성공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행복을 사랑받는 것으로 여깁니다. 돈과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랑받지 못합니다.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미워한다는 말은 흘려버린다는 뜻입니다. 똥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흘려보냅니다. 그래야 삽니다. 모든 법칙이 그렇습니다. 내어 보내야 또 들어옵니다.
    나무가 살려면 물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흘려보내기도 해야 합니다. 왜 가뭄에도 산에서는 물이 계속 흘러내릴까요? 나무가 저장했던 물을 흘려보내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나무를 계속 두어야 할 이유가 줄어들 것입니다. 수많은 나무가 잘려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가 물을 흘려주는 바람에 인간은 나무를 보존하고 더 심습니다. 흘려보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40일을 굶어도 살지만 4일을 사랑받지 못하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현재 코로나로 돌아가시는 분들보다 자살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외적으로 보이는 바이러스에만 신경 쓰고 정작 우리 마음이 우울해져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이 훨씬 더 치명률이 높은 바이러스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죽고 싶어집니다.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죽고 싶은 아이가 친구와 말하는 내용은 이랬습니다. 위험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친구는 “내가 죽으면 아파할 사람이 많아서 난 그런 생각을 못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죽고 싶은 친구는 “내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꺼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야 생명력이 향상됩니다. 그러려면 생명을 흘려보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중고등부 여름 신앙학교 때 살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고등부 건장한 남자아이들이 저를 들고 물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고이 빠져주면 되는 것을 저는 괜히 힘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들을 빠뜨렸습니다. 그중에 덩치 큰 학생 하나가 기분이 나빴는지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살려고 하는 사람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때 왜 그냥 빠져주지 못했는지 항상 후회스럽습니다.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바로 죽음의 전조입니다. 
    이런 예는 아주 많습니다. 축구를 하다가 잘 보이려다 보니 나 때문에 넘어진 사람을 바라만 보고 일으켜주지 않았던 적도 있고, 주임 신부님께 불순종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내가 살려다 결국엔 찜찜한 후회로 오랜 시간 고생해야 했습니다. 
  
    우리에겐 분명 이런 기억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한두 개는 우영우가 자신이 외면한 진실이 담긴 편지를 자기 사무실에 붙여놓듯 우리 마음 안에 붙여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살려고 하면 기분이 좋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 자신과 자녀들에게 절대 경쟁해서 다른 이의 피를 흘리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피를 흘려 이웃을 살릴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밀알 하나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5-gko5UbpqQ

 -조재형신부-

 

9월 24일 뉴저지의 메이플우드 성당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있습니다본당 설립 50주년 감사미사가 있습니다. 50년 전에 작은 공동체를 시작한 사제가 있습니다. 7년 전에 선종하신 박창득 아우구스티노 몬시뇰입니다신부님은 교우들과 함께 3가지를 중점적으로 하였습니다첫 번째는 공동체의 분가입니다신부님의 땀과 노력으로 50년이 지난 지금 뉴저지에는 많은 한인 공동체가 있습니다제가 기억하는 공동체는 성 마이클, 103마돈나데마리스트메이플우드입니다두 번째는 문화의 복음화입니다신부님께서는 한국의 평화신문을 미국에서도 발간하도록 하였습니다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는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의 창간호에 축사를 보내 주셨습니다미주가톨릭평화신문은 미주 한인 공동체를 위한 선교지가 되고 있습니다신부님께서 발행하였던 미주가톨릭평화신문에서 저도 일하고 있습니다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발행되는 매일미사의 미주판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미주판 매일미사는 영어와 한국어가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영어가 편한 2세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미주판 매일미사의 수익은 북미주한인사제협의회의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한인 공동체를 위해서 가톨릭회관을 마련하였습니다가톨릭 회관에서 한인 공동체는 꾸르실료엠이성서공부 등의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가톨릭 회관에는 가톨릭 방송’ 있습니다가톨릭 회관은 한인 공동체의 오아시스가 되고 있습니다세 번째는 사제양성입니다신부님은 젊은이들이 사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신부님의 따뜻한 사랑과 도움으로 젊은이들이 사제가 되었고지금 한인 공동체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박창득 몬시뇰 기리며 사제들은 가톨릭회관에 박창득 아우구스티노 몬시뇰 기념관을 만들었습니다. 9월 17일에는 축성식이 있습니다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밀알 하나가 뉴저지에 떨어져 밀알 하나로 남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신부님의 열정과 헌신 그리고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에 동북부 엠이 주말이 있었습니다팬데믹 때문에 3년 만에 열리는 주말이었습니다준비하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엠이 물품을 준비하는 것주말 대요를 준비하는 것장소를 섭외하는 것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가장 큰 걱정은 주말에 참석하는 부부였습니다팬데믹 전에도 주말에 참석하는 부부가 적었다고 들었습니다팬데믹 이후 처음 하는 주말이라서 걱정이 컸습니다발표 부부를 비롯해서 많은 엠이 부부들이 동북부 엠이 주말을 위하여 홍보를 다녔습니다동북부에 있는 한인 성당은 모두 가서 홍보를 하였습니다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20부부가 신청하였고주말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열정과 헌신이 있으니 팬데믹의 터널도 잘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엠이 부부들의 땀과 노력이 20부부의 엠이 체험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뜨거운 태양을 온 몸으로 받으며 결실을 맺는 들판의 곡식들이 있습니다가을이면 들판에서 흘린 농부의 땀과 눈물은 기쁨이 될 것입니다.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마당에는 대추나무가 있었습니다작고부실한 열매들은 스스로 떨구어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래야만 알찬 열매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대추나무조차도 자신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살아가고 있습니다우리들 역시 하느님 앞에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부제도 바로 그런 봉사자였습니다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소나기처럼우리들 모두는 주님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몸은 지상에 닿아있지만, 영혼과 정신은 이미 천상에 올라가 있는 사람!
 -양승국신부-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선물이 하나 있으니, 그분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분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들은 이 세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몸은 지상에 닿아있지만, 영혼과 정신은 이미 천상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그 어떤 혹독한 고통이나 박해 앞에서도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라우렌시오 부제의 삶과 죽음이 그러했습니다. 혹독한 박해 앞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이 얼마나 당당하고 거룩했는지 모릅니다. 죽어가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너무나 의연하고 당당한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희미하게나마 교회 기록에 남겨진 자료를 통해 그의 영웅적인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던 시절 교황 식스토 2세는 지하 무덤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로마 황제는 지체없이 교황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교황의 오른팔 격이었던 라우렌시오를 폭군이 그만둘 리 만무했습니다. 난폭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활하기로 유명했던 발레리아누스는 라우렌시오 부제를 살살 설득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황제는 교회의 재산들, 특히 금으로 된 성작, 성반들이 탐이 났던지 교회의 보물들을 모두 모아 자신에게 바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앞으로 이러저러하리라고 장밋빛 청사진을 보여주며 회유책을 제시했습니다.
 
라우렌시오는 그렇게 하겠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답변합니다. 그 답변 이후 라우렌시오 부제는 엄청 바빠졌습니다. 당시 관리하고 있던 교회 재산, 보물, 귀중품, 기타 등등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을 박박 긁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부모 없이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던 고아들에게 뭉칫돈을 하나씩 쥐어줬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한숨만 쉬며 살아가던 여인들에게는 금으로 된 성작을 건네며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폭군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길길이 뛰면서 라우렌시오 부제를 당장 끌고 오라고 명합니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폭군은 사형도구로 고기 구울 때나 사용하는 석쇠를 달구라고 지시합니다.
  
모아오라는 보물들은 다 어디 갔냐고 묻는 황제의 질문에 라우렌시오 부제는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둘러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교회의 보물입니다.”
 
라우렌시오가 우리에게 남겨준 천상적 덕행의 목록은 다양했으나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웅적인 증거, 교회 공동체를 위한 관대한 봉사,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극진한 사랑, 교황께 대한 충실과 헌신...
  
“활활 타오르는 불꽃조차도 라우렌시오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라우렌시오의 육체를 불태우던 뜨거운 화염도 사랑으로 가득 찬 그의 영혼을 불태울 수는 없었습니다.”(성 대 리옹)
  
“라우렌시오는 영성체로써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 힘으로 그는 그토록 혹독한 고통도 웃으며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이영근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헬라인들이 예수님 뵙기를 청합니다.

그러자 이를 알리는 필립보와 안드레아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왔음을, 곧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요한 12,23)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대체 어떤 힘이 이 밀알을 죽음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묘하게도 밀알을 죽게 하는 힘은 생명력입니다.

그러니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는 힘’이 생명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밀알은 먼저 땅에 떨어져야 하고, 죽어 묻혀야 하고, 묻혀 사라져 자신이 없어지고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생명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통이 꼭 필요합니다.

곧 죽음의 고통은 ‘새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요, 자기를 벗게 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요한 12,2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당위성을 말해줍니다.

곧 땅에서의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참된 생명’('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곧 ‘죽음’이 실재를 보존하는 길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개방이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요한 12,26)

 

이는 ‘섬긴다는 것’과 ‘따른다는 것’의 긴밀한 연관성을 말해줍니다.

누군가가 따른다고 말하면서 따르는 그를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따름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섬긴다고 말하면서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도 진정한 섬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따라 나서서 그분을 섬길 때라야 진정 따르는 것이 됩니다.

곧 우리가 그분을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분을 섬기기보다 ‘따라 나선 자신’을 섬기고 있거나, 수도자가 집과 가족을 떠나 왔지만 ‘떠나온 자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진정한 따름에도 진정한 섬김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사람은 당신을 영광스럽게 할 그 죽음의 길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분의 죽음의 길에 함께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당신을 따르고 섬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삶 속에서 죽는 장엄한 순교의 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함께 있는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곁에 있는 형제를 존중하고, 함께 있는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

 -반영억신부-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2고린9,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소유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느님 앞에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탈랜트, 시간을, 능력, 재능을, 물질을,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몇 갑절로 늘려 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데 어찌 열매가 풍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의 밀알을 심는 것은 열매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원하면 그만한 정성과 사랑으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밀알이 땅속에 묻히면 죽어서 싹을 틔우게 됩니다. 만약에 씨앗이 땅속에 묻히길 거절한다면 아마도 새한테 먹히거나 짐승한테 밟혀 으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묻혀야 합니다. 밀알이 땅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짐을 뜻하지 않고 생명을 낳기 위하여 뿌리를 내림을 뜻합니다. 사실 죽는다는 것은 곧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얻기를 원하는 만큼 심어야 합니다. 얻기를 원하는 만큼 죽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을 위하여 감당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그리고 더 높은 가치 때문에 지상의 생명을 거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 그분의 나라 때문에 지상의 매력에 집착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안에서 이웃을 위하여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생명의 기쁨이 더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12,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하고 결국 그리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함께해 주시고 또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일상의 삶을 기왕이면 밀알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순명으로 하면 주님의 일이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내일일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하면 ‘내 나라’가 만들어지고, 예수님처럼 사랑하면 ‘예수님의 나라’가 만들어집니다. 사실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라우렌시오 성인은 “로마 교회의 부제직을 수행하고 거기에서 거룩한 피의 봉사자로 일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는 모진 박해를 예상하고 교회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며 총독에게“나는 주 하느님을 경배하며 그분만을 섬기니, 네 잔인한 고초를 두려워하지 않는도다.”하며 믿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총독이 라우렌시오를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 눕혔는데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후 "모든 것이 잘 구워졌으니, 뒤집어서 잡수시오!" 하고 말했답니다. 바로 그 믿음의 씨앗이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열매로 주어진 것입니다. 과연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입니다”(성 예로니모).

 

일상 안에서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상대를 위한 배려를 하다가 그만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당신도 바뀔 때가 되었지 않느냐! 이제는 철이 들 때가 되지 않느냐! 왜 나만 양보해야 하느냐! 이제는 당신차례야!”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된다는 것은 남에게 미뤄야 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묻혀 썩어야지 남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12,24). 그렇다면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나의 죽음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색을 내지 말고 끝까지 항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그날까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기쁨을 차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미약하게 보일지라도 풍성하게 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밀알의 두려움을 극복하십시오.“하느님은 당신의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2,13). 그러므로“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2코린 6,1).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밀알 하나가』

 -송영진신부-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3ㄴ-26).”

 

‘영광스럽게 될 때’ 라는 말은,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라는 말씀은,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이 드러날 때가 왔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이 드러나는 일은,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되는 일이고,

메시아를 보내신 하느님도 영광스럽게 되는 일입니다(요한 17,1-5).>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만 보고,

부활과 승천은 믿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그 사건들이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는 사건’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과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에만 그 영광이 보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는 말씀은, “안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나의 죽음이 죽음으로만 보이겠지만, 나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밀알 하나를 땅에 심는 일이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땅에 심은 씨가 땅 속에서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땅 속에서도 밀알은 살아 있고, 밀알 속에 있는 생명력도 살아 있습니다.

그 생명력에서 많은 열매가 생겨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눈에만 죽음으로 보일 뿐입니다.

여기서 ‘한 알 그대로 남고’ 라는 말은,

“안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한 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씨’의 존재 이유와 목적입니다.

따라서 땅에 심어지지 않는 씨와

열매를 맺지 않는 씨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은 밖에 버려집니다(마태 5,13).

그러니 땅에 심어지지 않은 씨는 한 알 그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맺으신 ‘많은 열매’는 ‘인류 구원’입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각자 자기 자신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을 하나의 밀알로 내주셨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의 밀알로 살아갑니다.

‘밀알’이라는 말에서 희생만 생각하고, 희생이라는 말에서 ‘남을 위한 일’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하나의 밀알로서 살아가는 것은,

즉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나의 ‘신앙의 증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되지만,

그래도 내가 구원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나부터 구원의 길을 걸어야 다른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또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는 예수님 말씀 때문에,

‘밀알’이라는 말에서 죽음만 연상하는 일이 많은데,

우리는 표현이 아니라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죽는 일’이 아니라 ‘사는 일’입니다.

우리는 죽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항상 주님과 함께 살아 있어야 합니다.

<순교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신앙을 증언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물론 최고의 증언 방법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1베드 1,23-25).”

신앙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영원히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씨앗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씨앗에서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은 각자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자기 인생이라는 밭에 말씀의 씨앗을 심는 일이고,

신앙생활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그 씨앗을 잘 가꾸고 보살피는 일이고,

하느님 나라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라는 말씀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나의 가르침대로 살아라.” 라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라는 말은,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은, 단순히 안 죽고 영원히 사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올바르게 따르고 섬겨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영예롭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인데,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람은 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또는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행복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복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말씀 나누기 - 연중 19주 수요일-그냥 죽겠습니까?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1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