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7월 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Margaret K 2022. 7. 20. 06:36

2022 7 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다. 
(마태오 13,1-9);

 

"A sower went out to sow.
And as he sowed, 
some seed fell on the path,
and birds came and ate it up.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태중에서 성별하시어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우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어떤 씨는 길에 떨어져 새들에게 먹히고, 돌밭에 떨어져 말라버리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숨이 막히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 활동하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봉사 활동의 기쁨으로 성당 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부탁은 자기를 부려 먹는 것만 같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간섭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보면서 미움이 가득해졌습니다. 이제는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봉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 아예 성당 가는 것도 싫어졌습니다.


어느 날, 성당 동생이 이 자매에게 “언니! 나 성당 나오기 싫어졌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밝은 분위기를 만들며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동생이었기에, 성당 나오기 싫다는 동생의 말에 깜짝 놀라서 “왜?”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나 잘한다고 칭찬을 안 해줘. 언니도 전에는 칭찬을 많이 해주더니, 요즘에는 전혀 안 하잖아.”

그때 자신이 왜 힘들었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동생처럼 ‘칭찬을 못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니, 먼저 칭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오늘 너무 예뻐 보여요.”라고 말하면, “당연하죠. 저 예쁘잖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슨 말씀이에요? 자매님이 더 예쁘신데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곧바로 대답하지 않더라도 이른 시일 안에 칭찬한 사람을 향해 칭찬의 말을 건네줄 것입니다.

내가 칭찬하지 않으면 상대로부터 칭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칭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성당 나가는 것이 즐거워질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자신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퍼져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랑을 이기심과 욕심으로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내가 사랑받아야 나도 그만큼의 사랑을 베푼다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먼저 사랑의 말과 행동을 해야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뿐 아니라 내 주위에도 많은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길에 떨어진 씨, 돌밭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가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죽어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씨가 떨어진 곳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로지 사랑의 마음만이 주님의 말씀이 많은 열매를 이 세상에서 맺도록 합니다.
하루하루를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같이 살아라. 언젠가는 그날들 가운데 진짜 마지막 날이 있을 테니까(레오 부스칼리아).

 코로나가 무서워 성당에 못 나오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 백성 맞을까?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5Oe5p2y1r2I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농부는 씨를 길과 자갈밭, 가시밭에 뿌리고 좋은 땅에도 뿌립니다. 당연히 좋은 땅에서만 30배, 60배, 100배의 소출을 거둡니다. 
    길은 교만을, 자갈밭은 육욕을, 가시밭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뜻합니다. 이것이 있는 땅에서는 말씀이 죽습니다.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잃습니다. 삼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비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산도 돈이요, 물도 돈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세속에 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져서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대신 공부를 잘하고 모든 것의 이면을 바라볼 눈을 지녔습니다. 사건을 맡아서 해결할 때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런데 우영우가 가장 잘 먹는 음식이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김밥이라는 독특한 설정도 나옵니다. 저는 이것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나보다 위의 세상에 사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은 다 비유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만약 제가 끝까지 교만하였다면 어머니를 믿지 못하였을 것이고 지금도 다리 밑에서 진짜 엄마를 찾아다닐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야 그 다리가 어머니 다리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의심될 때는 어머니가 주시는 음식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비유를 이해하여 어머니가 참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가 주시는 음식 안에 어머니의 살과 피가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면 하나를 끓여주더라도 반찬 투정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생명의 빵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것들이 하나의 상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영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례나 성체성사와 같은 교회의 성사가 하느님의 살과 피로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체를 영하면서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란 프로에 보면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을 재현한 셰프의 요리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출연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어머니가 해 주셨던 음식과 똑같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다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면 결국 이해하게 되는 것이 ‘밥’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코로나 때문에 성체를 영하러 오지 않는 이전의 신자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저는 그들이 아직은 세속-육신-마귀에 사로잡혀서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한 이들이라 여겨집니다. 만약 말씀의 열매를 맺었다면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기를 원치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본다면 수십 년을 신앙생활하고도 코로나라는 작은 병균에 생명의 양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교만하거나 육욕에 빠졌거나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빵의 가치를 몰라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태 13,34)라고 합니다. 꿀을 먹어본 사람은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비유로밖에 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의 수준을 배워갈수록 이 비유 말씀을 더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들을 귀’가 필요합니다. 들을 귀는 바로 ‘도움의 은총’입니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 묵상하여 말씀을 잉태하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셨다는 뜻은 성모님께서 세속-육신-마귀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들을 귀가 생기고 그래야 천상의 비유가 이해되며 그래야 순종할 수 있고 그래야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세속-육신-마귀의 욕구와도 싸워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씨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Cna_4Pz-tRE

 -조재형신부-

 

수녀님들과 함께 LA에 있는 예수 마리아 피정의 집에서 8일 피정을 하였습니다산 위에 있는 마을처럼 피정의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었습니다교구에 있을 때면 매년 피정을 하였습니다피정은 1년을 살아가는 영적인 양식이 되었습니다하느님께서 제게 수녀님들과 함께 피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수녀님들과의 피정은 신학생들과의 피정과는 달랐습니다신학생들은 젊기도 했고사제직으로 가는 과정에서 하는 피정이었기에 갈망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수녀님들은 먼 타국에서 지내는 어려움도 있고오랜 시간 수도자로 살았기 때문에 피정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모두 진지하였습니다모든 것을 잊고 하느님의 품 안에서 머물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전례는 엄숙하면서 정갈하였습니다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수녀님들은 강의 내용을 마음에 담으려고 하였습니다성당에서는 하느님 앞에 머물고 있는 수녀님들이 있었습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번 피정을 통해서 수녀님들은 100배의 열매를 맺었으리라 생각합니다수녀님들의 마음이 좋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100배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텃밭에 흙을 고르고돌멩이를 골라내고거름을 주고적당한 물을 주면 좋은 땅이 됩니다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우리의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첫 번째는 갈망입니다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습니다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고 했습니다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열매 맺기 위해서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뜨겁지도차갑지도 않은 신앙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척박한 땅에 거름을 주면 싱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우리의 마음에 기도의 거름을 주면 주님의 말씀을 싱싱하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일은 기도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놀라운 표징의 뒤에는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세 번째는 나눔입니다모든 암세포는 자신의 영양분을 받기만 하지 나누지 않는다고 합니다건강한 세포는 영양분을 나눈다고 합니다예수님께서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네 번째는 희생입니다아담의 죄로 죽음이 이 세상에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영원한 생명이 왔습니다갈망과 기도 그리고 나눔과 희생이 있으면 하느님의 말씀은 10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끊임없이 자라는 잡풀을 뽑아 주어야 합니다잎을 갉아 먹는 벌레도 잡아 주어야 합니다그렇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있다면 버려야 할 것입니다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그것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헛된 욕망과 욕심이 있다면 역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시기와 질투로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도 버려야 합니다우리의 마음을 비옥하게 만들어야 사랑희망믿음은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꽃봉오리입니다.

 -양승국신부-

 

맑고 깨어있는 영혼으로 말씀을 경청할 때, 신비로운 체험을 가끔 하곤 합니다. 말씀이 지니고 있는 역동적인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말씀이 마치 사람처럼 살아서 움직입니다.

  

말씀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와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고달프고 지친 나를 위로하고, 내 영혼 깊은 곳을 뒤흔들고, 나를 살게하고 움직이게 합니다. 

 

오늘도 생명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말씀의 씨앗이 세상곳곳에 뿌려지는데,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여러 유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길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돼지 발에 진주 격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가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기에 아무리 소중한 생명의 씨앗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마음이 돌처럼 단단히 굳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나 복음 말씀이 좋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이 너무나 완고하다보니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생명의 씨앗을 적극적으로 가슴에 안고자 하는 수용성, 감성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피상적이어서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그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지만 조금도 열 기색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 귀로 듣지만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에 몸과 마음이 온전히 쏠려 있어 말씀이 파고들 틈이 없습니다.

  

육체가 영혼을 지배하고 있으며 지상의 것들이 천상의 것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절망으로 끝나고 맙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씨앗을 자신 안에 소중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복음 안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이뤄낸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놀랄만한 선물 한 가지를 선사하시는데, 그 선물은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는 것입니다.

  

영의 눈, 생명의 눈,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경이로움과 축복의 대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꽃봉오리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다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런 생명의 이치를 한번 깨달은 사람의 삶은 점점 더 넉넉해지고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더욱 풍성하게 내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 열매 맺는 삶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이영근신부-

 

마태오복음 13장에서, 예수님서는 하늘나라의 대한 일곱 가지의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첫 번째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비유는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요, 둘째는 뿌려진 씨에 대한 이야기, 곧 열매인 결실에 대한 이야기요, 셋째 씨가 뿌려진 땅에 대한 이야기, 곧 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우선 이 이야기는 첫째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서 밭을 구별하지 않고 씨를 뿌리는 구원의 보편성을 말해주며, 둘째로는 그 씨앗은 열매를 맺고 실현되고 성취된다는 사실을 밝혀주며(이사 55,11), 셋째로는 씨가 뿌려진 밭을 잘 가꾸어야 할 하느님 자녀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마지막 구절에서, 결론처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8)

 

그렇다면 분명 나에게도 말씀의 씨앗이 뿌려졌을 터인데, 지금 나에는 몇 배의 열매가 맺혀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내가 좋은 땅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떨어질 때 그 땅이 ‘좋은 땅’이었는지 아니었는에 따라 열매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뿌려지면 그 땅은 그 씨앗으로 말미암아 좋은 땅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땅은 ‘씨앗’과 함께 일구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씨앗으로 말미암아 밭이 일구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씨앗이 뿌려지기 전의 땅의 상태가 좋은 땅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뿌려진 후에 땅을 갈고 가꾸는 것에 의해 그 땅의 성질이 결정지어지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의 씨를 가꾸는 농사법’은 먼저 밭을 잘 쟁기질 한 다음에 씨가 뿌려진 것이 아니라, 어느 땅이든 상관없이 먼저 씨가 뿌려진 다음에 그 밭이 쟁기질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땅은 씨앗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할지라도 쓸모없는 땅인 것입니다.

황무지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밭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씨앗이 거룩하고 씨앗으로 말미암아 밭이 거룩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밭에 씨앗이 선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 씨앗의 존재를, 그 가치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베풀어진 씨앗을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그 씨앗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9)

그러니 씨앗이 내 안에 뿌려진 채 여전히 묻혀 있지 않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를르의 체사리오는 말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먹지’ 않는다면, (먹지 않고 저장된) 말씀은 만나에 구더기가 끓었듯이 구더기가 끓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땅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은 뿌려진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신 안에 사랑이 부어졌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요, 뿌려진 씨와 함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소명을 짊어지는 사람입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밭에서 일할 줄 알며 땅의 노래를 하늘과 함께 부르는 사람이요, 하늘의 노래를 땅과 함께 부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땅을 매만지며 피땀 흘려 자신의 지문을 새기며 사랑할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 열매로 자신의 배를 채우기보다 타인에게 내어주는 사람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말씀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저희가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마태 13,4)

주님!

당신 밭의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일구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하시고, 뿌려진 씨앗으로 제가 거룩해 지게 하소서.

아멘.

「수고와 땀으로 최선을 다하고」

 -반영억신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이 튼실해야 하고 땅도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알맞은 기후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기후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해야 할 힘을 다하고 그다음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씨앗의 비유입니다. 씨를 뿌렸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땅이 중요합니다. 좋은 땅에서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좋은 씨앗이 아니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좋은 씨앗과 좋은 땅은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알맞은 기후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니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삼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좋은 땅이 아니라면 땅을 일구고 거름을 하여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또한, 좋은 씨앗을 구하려면 그만한 경륜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후를 맞추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환경을 얼마나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마음의 밭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좋은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수고와 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후 열매는 하느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에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씨앗인 말씀이 있어도 무관심하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좋은 밭인 마음이 있어도 전해주는 말씀이 없으면 또한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시면 서른 배, 예순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부드럽고 우리의 마음은 단단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듣게 되면 마음이 열려 하느님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교부푀멘). 그리고 말씀은 귀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새겨들어야만 참된 이익을 거둘 것입니다. 더더구나 말씀대로 실천하게 되면 그 말씀의 능력을 만나게 됩니다. 경청과 행동은 믿음을 견고하게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러저러한 일에 접하게 되고 서운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길바닥, 돌 밭, 가시덤불에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일은 적잖은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실은 내 생각대로 쉽게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고와 땀으로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씨앗의 법칙

1.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둔다.

2.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3.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4. 뿌린씨 전체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5. 뿌린 것 보다는 더 많이 거둔다.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7. 종자는 남겨두어야 한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송영진신부-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3ㄴ-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꾸준히 노력해서 열매를 맺으라는, 즉 구원을 받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당시의 농사법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또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별로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비유의 배경 설명에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땅인 사람도 없고, 처음부터 나쁜 땅인 사람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성인 성녀인 사람도 없고, 악인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갓난아기일 뿐입니다.

처음에 ‘말씀’이라는 씨를 받을 때의 사람들의 상태는 백지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쁜 땅인 줄 알지만 좋은 땅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일부러 나쁜 땅에 씨를 뿌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 백지상태이고, 모두가 다 좋은 땅이 될 가능성과

나쁜 땅이 될 가능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땅이 되었다가 죄를 짓고 나쁜 땅이 되기도 하고,

나쁜 땅이 되었다가 회개해서 좋은 땅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예가 사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

사도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좋은 땅이 되어 있었고,

말씀을 받아들여서 많은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반자 유다는 변절해서 나쁜 땅이 되었고,

나쁜 땅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잠깐 나쁜 땅이 될 뻔 했는데,

곧바로 회개하고 금방 좋은 땅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박해자 시절의 바오로 사도는 우리 교회 입장에서는 나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좋은 땅이 되었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사도 6,7).”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에 사제들은 대부분 박해자들 편에 섰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많은 사제들이 믿음을 받아들인 일은,

나쁜 땅이 좋은 땅으로 변화된 일이 대규모로 일어난 일입니다.

티모테오 2서를 보면,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2티모 4,10)” 라는 말이 있습니다.

‘데마스’ 라는 사람은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였으니 좋은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현세를 사랑해서, 즉 복음 선포 활동을 하면서 고생하는 것보다

세속 일을 하면서 편안하게 사는 쪽을 선택해서, 그쪽으로 가버렸습니다.

좋은 땅에서 나쁜 땅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은 ‘악한 자(악마)’에게 말씀을 빼앗기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마태 13,19).”

‘듣고 깨닫지 못하면’은 ‘듣기는 하지만 믿지 않고 실천하지도 않으면’입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참 좋은 말씀이다.’ 라고

생각만 하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듣기에 더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은 쪽으로,

즉 이단 종파나 사이비 종교 쪽으로 잘 넘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돌밭’은 뿌리가 없어서 금방 넘어지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마태 13,20-21).”

뿌리가 없다는 말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없고,

또 ‘인내’와 ‘끈기’도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과 생활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힘든 일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고난이 닥치면 금방 믿음이 흔들리고, 결국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덤불’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태 13,22).”

유혹을 물리치는 힘이 약한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이든 유혹이든 그런 것을 물리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가시덤불’의 우거진 모습을,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유혹하는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땅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좋은 땅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한,

박해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을 믿음과 의지로 잘 극복하고,

넘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계속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더욱더 좋은 땅이 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황무지도 잘 개간하면 옥토가 됩니다.

지금 기름진 땅이라도 방치하면 황무지로 변해 버립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쉽고 편안하게 성인 성녀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태 13, 3)
-한상우신부-

 

 

씨를 뿌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씨를 뿌리시는
주님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를
살게하여 주시는
주님이시다.

끝을 알 수 없는
주님의
마음이시다.

주님의
농사법은
우리를 향한
믿음과
희망이다.

씨앗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자라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의 씨앗이며
주님의 열매이다.

주님의 자리에서
주님의 열매가
자라난다.

열매는
씨앗의
가장 큰
기쁨이다.

주님을 알게되는
우리 삶의
모든 여정이다.

주님을 맞이하는
모든 시간이
실은 열매라는
은총의 시간이다.

은총임을
잊고 살았다.

은총을 통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열매의 길임을
알게된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고있는지를
씨 뿌리시는
주님을 통하여
묻는다.

어제의 열매가
아니라 오늘의
열매이다.

사랑은
씨앗으로
시작되고

은총은
열매로
드러난다.

은총의
주님께서
은총의 씨를
뿌리신다.

주님을
사랑한다.

 

 말씀 나누기 - 연중 16주 수요일-아이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6년 7월 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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