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Margaret K 2022. 4. 25. 07:19

2022년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 사도가 선교 여행을 할 때 동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사도 12,25; 13,5.13; 15,37-39; 콜로 4,10 참조). 본디 이름이 ‘요한 마르코’(사도 12,12.25 참조)인 그는 또한 베드로 사도의 제자로 일했으며(1베드 5,13), 주로 안티오키아와 키프로스,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기원후 64년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고 난 뒤인 65년에서 70년 사이에 주로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기초로 삼아 로마에서 「마르코 복음서」를 기술하였다. 이 복음서가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된 것이다.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 16,15-20)

 

“Go into the whole world
and proclaim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며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 다음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어느 신부님께서 잘 아는 신자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에 같이 사목활동을 했던 수녀님께서 병으로 다리 절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활동에 제약을 느낄 수밖에 없는 다리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수녀님께서 의기소침해 있을까 싶어 곧바로 병문안을 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는 순간, 신부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수녀님의 표정이 너무 밝은 것입니다. 같이 병실을 쓰는 모든 사람이 수녀님의 영향을 받아서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수녀님을 위해 신자들과 함께 기도한 뒤에, 수녀님께 물었습니다.

“수녀님, 힘들지 않으세요? 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죠?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기쁜 것 같은데요?”

그러자 수녀님께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 제 다리는 이미 하늘 나라로 갔어요. 나중에 제가 죽으면 조금 가볍게 갈 수 있겠죠? 그래서 아쉽지 않아요.”

다리 절단이라는 문제에 집착하고 있으면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녀님께서는 이 문제를 하늘 나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삶에 만족할 수 있었고, 그 만족하는 모습에 같이 있는 사람들도 감명받아서 모두 기쁜 병실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전교가 있을까요? 자기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명을 주시며 파견하십니다. 이미 제자들을 파견했던 적이 있습니다(마태 10,5; 루카 10,1 이하). 이는 일종의 실습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처럼, 부활 이후에 이루어질 결정적이고 본격적인 파견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길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찾아가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민족으로 확장되어 있습니다. 처음의 파견에는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든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세례받는 사람은 구원받고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받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을 향한 표징을 뒤따를 것을 약속하시지요.

이 모든 말씀을 하신 뒤에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복음 선포가 바로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마지막 유언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시해도 되는 말이 아닌, 반드시 지켜야 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단순히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 될까요?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수녀님처럼 자기 삶으로 그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는 다른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하게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마크 트웨인).

 마르코의 메시지: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구원 

-이기우 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2cqSDmgMjA

 -조재형신부-

 

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하기 마련입니다우리말의 원형은 서울평양연변 중에 어디에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을까요서울은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고외국어와 외래어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말의 원형이 많이 사라졌습니다평양은 외국어와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면서 우리말의 원형을 유지하려하지만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적인 의미로 변하였다고 합니다우리말의 원형이 잘 보존된 것은 연변이라고 합니다시간이 지났지만 발전의 속도가 느리고변화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닐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그분의 십자가와 죽음으로 복음은 슬픔이 되었습니다하느님 나라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러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슬픔은 다시 복음이 되었고실패한 것처럼 보였던 하느님 나라는 계속 되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당시 상황에 맞도록 기록한 것이 신약성서입니다그 중에서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전하고 있습니다오늘 우리는 4복음서의 저자 중에 한명인 마르코 복음사가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은 무엇일까요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하느님의 아들은 말씀과 표징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그러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 그리고 대사제는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법정에 세웠습니다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십자가형을 선고하였습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었습니다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길이요진리요생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성령을 주셨습니다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복음 선포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병자를 고쳐주고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 사도는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금도은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의 은사를 베풀었습니다한 번의 설교로 삼천 명이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던 제자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교하였고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우리의 상황에 맞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이야기 했듯이 21세기의 복음은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복음이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 돌을 던지려고 했던 남성들로부터 부정한 여인을 보호하고 용서하셨듯이 21세기의 복음은 성직업신분이념세대지역의 갈등을 해소하는 평등한 복음이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주셨듯이 21세기의 복음은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복음이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작아지고 작아지면 어느새 찾아오실 당신...

 -양승국신부-

 

언젠가 형제들과 한 식당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메뉴를 들고 온 여종업원이 얼마나 친절한지 깜짝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서서 주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메뉴판을 건넵니다.

  

온몸에 친절이 철철 넘쳤습니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문을 받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앞에 저는 너무나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 여종업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교회의 모습도 저렇게 바뀌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런 겸손한 모습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살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자세가 아니라 낮은 자세로, 뻣뻣한 태도가 아니라 상냥한 태도로, 1대 다수가 아니라 1대 1로 접근하는 그런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훌륭한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환자는 제 고객이기도 하지만 제 스승입니다. 병원은 환자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혹은 숨질 때까지 책임져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끊임없는 연구는 의사의 의무이지,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이 세상 하나뿐인 생명을 맡겨주는 환자들과 하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오늘 첫번째 독서인 베드로 1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겸손의 덕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베드로 1서 5장 5절~6절)

  

베드로 사도, 예수님의 수제자로 살던 시절, 자신에게 있어 늘 부족했던 겸손의 덕이 늘 가슴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세 번에 걸친 수제자 배반 사건 이후, 철저하게도 무너져 내린 이후, 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피눈물을 흘린 이후, 그는 비로소 참된 겸손의 덕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그토록 처절한 체험, 절절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외치시니, 그 가르침이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당신이 그리우면

촛불을 켭니다.

작아지고 작아지면

어느새 찾아오실 당신...(하삼두 스테파노 화백)

 말씀 나누기 -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전장에 핀 꽃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