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1년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Margaret K 2021. 12. 20. 07:39

2021년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가 1, 26-38)


“Behold, 
I am the handmaid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한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지금 수많은 실험실에서 망각을 촉진하기 위한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기억을 깨끗하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내용이나 그 심상들만 지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트라우마에 빠지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이를 통해 충만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는다면 어떨까요? 모두가 행복한 기억 속에서 지금을 충실하게 살게 될까요? 저 역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화끈합니다. 그러나 지워져서는 안 됩니다. 기억하고 있기에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금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 역시 우리의 과거입니다.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는 더 인간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자기가 살았던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예수님 잉태 소식을 알립니다. 이런 예를 들어 봅니다. 산간 벽촌에 사는 철부지 10대 소녀에게 도사가 찾아가서 “너는 앞으로 대통령을 낳을 것이다.”라고 했다면, 소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10대이기에 결혼 자체가 너무나 먼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 아기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낳게 된다고 하면, “뻥 치지 마세요!”라고 화를 내지 않을까요?

성모님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보다 더 큰 인물을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자를 알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당시에 간음죄는 너무나 큰 죄였습니다. 공개적으로 돌에 맞아 죽는 벌을 받게 됩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갖게 되면 당연히 간음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깜짝 놀랄만한 어마어마한 소식이었지만 분명 피하고 싶은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좋은 일도 많은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냐면서 불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우리의 반응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7)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하느님의 뜻이기에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우리에게도 피하고 싶은 상황이 계속 주어집니다. 지워야지만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모님처럼 말이지요.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공부해라!!

학창 시절에 “공부하라”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던 담임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당시에 저는 ‘공부 머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즉, 공부해야 하는 머리와 그렇지 않은 머리로 구분을 했었지요. 그래서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보니, 그런 머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공부는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물건도 계속 사용해야 길이 드는 것처럼, 머리도 멈추지 않고 계속 사용해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으며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올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으로 인권침해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여성은 복장의 자유도 없고, 또 취업의 불공평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여성은 교육받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전쟁으로 인해, 성별 차이로 인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탈렌트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땅에 묻어 둔 사람은 크게 혼나고 맙니다. 어떻게든 변화하는 방법은 공부입니다. 참, 학교에 가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가 바로 공부의 시작입니다.

 

 

  <받을 준비가 안 됐는데 받는 은총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독이 된다>  

 -전삼용신부-


 오늘 복음은 성모 마리아께서 성자를 잉태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이 은총은 성모님을 인간 중에 가장 복되신 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모님께서 여인 중에 복되신 분이 되신 것은 성모님의 공로보다는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 아니었다면 ‘은총 자체’이신 분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은총은 인간이 죄를 지을 때 빠져나갑니다. 성모님은 의지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총을 하나도 잃지 않고 보존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기에 그것을 보신 하느님께서 천사를 성모 마리아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작은 은총을 보존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사실 큰 은총을 주는 것은 멸망으로 이끄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복권에 당첨되면 대부분 그들은 자신이 받은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춘기 어린 나이는 지금 받은 것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19살의 나이에 143억 원의 복권에 당첨되었던 마이클 캐롤은 그 많은 돈을 4년 동안 다 탕진하고 지금은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1983년 영국 노퍽주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는 통조림 공장을 했으며 아버지는 군인이었지만 마이클이 태어난 지 18개월 때 군사 감옥에 구속되었습니다. 

  

    그가 7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새 아버지 밑에서 살았지만 새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며 괴로운 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학대 후유증으로 난독증이 생겼으며 중학교를 졸업했음에도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습니다. 13살 때 절도 혐의로 감옥에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복권에 당첨된 것은 19살 때 쓰레기 수거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짓눌렸던 삶에 보복이라도 하듯, 호수 근처의 고급 주택을 현금으로 구매하고 마약, 도박, 술에 빠지게 되었으며, 스포츠카도 여러 대 사들이고 하루에 4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지기도 하는 등 사치스럽고 문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 이모에게는 각각 10억 원씩 주었으나, 2017년에 그의 이모는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돈을 가진 그의 횡포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으며, 술김에 싸움을 걸거나 차나 상점의 유리에 쇠 구슬을 던져 총 42개의 전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복권 당첨 4년 후인 2006년 모든 돈을 잃게 됩니다. 현재는 집도 없이 비스킷 공장에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를 받으며 빵을 포장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은총을 받을 그릇이 되지 않았음에도 더 큰 은총을 받으면 행복할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자신이 얼마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그릇의 크기가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많이 받으면 그것은 자신을 멸망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미국에 2002년 당시 사상 최고 당첨 금액인 약 3천 600억 원의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잭 휘태커라는 사람인데 그의 인생은 어땠을까요? 그의 가족에까지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순탄했습니다. 회사의 사장으로서 어느 정도의 재력도 있었고 딸과 손녀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복권 당첨 8개월 후, 그의 자동차 유리가 깨져있었고 가방에 들어있던 5억 4천만 원의 현금이 도난당했습니다. 또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2명의 클럽 직원이 그에게 약물을 먹여 가방의 돈을 빼앗으려다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더욱 큰 사건이 발생하는데, 손녀의 남자친구(18세)가 약물 중독을 일으켜 잭의 집에서 사망한 것입니다. 3개월 후에는 손녀의 시신이 차 안에 버려진 채 발견됩니다. 살해범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둑이 12개 지점 은행에서 각각 12장의 위조 수표를 현금화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빼갔습니다. 손녀의 죽음이 있은 5년 후 그녀의 어머니, 곧 잭의 딸도 죽은 채 발견되었고 자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에는 잭이 회사에서 일하던 중 집에 불이 나 모두 전소되었고 방화범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은총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물론 복권에 당첨되고 잘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복권에 당첨된 것을 알리지 않고 다니던 직장을 이전처럼 계속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이전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전에 받은 은총에 감사하던 사람은 더 큰 은총을 받아도 잘 관리할 줄 알지만, 이전의 삶에 감사할 줄 모르던 사람들은 그 작은 것들도 가질 자격이 없어서 더 큰 은총은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은총을 독으로 만드는 이들의 특징은 삼구(三仇)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삼구는 불만을 자아내고 큰 은총을 받을 자격을 잃게 합니다.

    복권에 당첨되고 바로 이혼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프리 댐피어’입니다. 제프리는 1996년에 복권 당첨금으로 약 227억 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50:50으로 돈을 나누는 조건으로 이혼합니다. 크리스탈 잭슨을 만나 재혼한 그는 오랜 세월 꿈꿔왔던 팝콘 가게를 시작했지만, 처제인 빅토리아와 불륜에 빠집니다. 빅토리아는 제프리에게 많은 돈을 뜯어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자친구와 함께 보험금을 갈취할 목적으로 그를 납치 살해합니다. 두 사람은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복권을 산다는 것 자체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절대 복권을 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현재에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이기에 나중에 돈이 모여도 그 돈을 관리할 능력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가진 것에 먼저 감사하고 지금 주님께 봉헌하고 남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 받은 은총을 잘 관리하여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셨습니다. 은총도 능력이 있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은총 중의 은총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는 아주 작은 은총도 죄로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은총은 하느님의 피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계약의 궤가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그 나무의 표면이 드러나지 않도록 빈틈없이 금칠이 된 것과 같습니다. 금은 은총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성령으로 성자께서 잉태되시는 완전한 은총의 준비가 됩니다. 성모님은 감사로 당신을 겸손하게 하시어 어떤 교만의 틈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만이 그리스도를 잉태할 자격을 갖추신 것입니다.

  

    가리옷 유다도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셨습니다. 그러나 그 몸은 그의 몸이 썩어 내장이 터져 나오는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은총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고 우리도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봉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모님은 불만족으로 은총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하와와는 달리 감사의 봉헌으로 완전한 은총의 그릇이 되셨습니다. 저도 신학교에 늦게 들어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정말 큰 은총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감사를 생활화하여 우리가 받는 성체가 멸망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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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왕권의 숨은 비밀

 -이기우신부-


오늘 복음은 가브리엘 천사가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젊은이와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온 이야기를 전합니다. 천사는 영문을 알지 못해서 몹시 놀라는 마리아에게 뜻밖의 인사말로 시작했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마리아가 이때 들은 인사말의 내용인 은총이 과연 무엇인지는 두고 두고 밝혀지게 됩니다. ‘두고 두고’ 밝혀진다는 말은 이 은총의 내용이 믿음으로만 알 수 있어서 많은 경우에 마치 숨겨진 비밀처럼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음을 알려주는 천사는 그 ‘은총’에 대해서 우선 직접적으로 알아야 할 사실부터 운을 떼었습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ㄱ). 약혼만 했지 아직 부부생활을 하기도 전인 마리아에게 잉태 예고를 함으로써 그로 인한 마음의 충격을 덜어준 다음에 천사는 더 중요한 전갈을 전해 주었는데, 그것은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게 될 아기가 과연 어떤 인물일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2ㄴ-33). 

 

‘조상 다윗의 왕위’라든가, ‘영원한 다스림’ 또는 ‘그분의 나라’ 등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나타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세속적으로는 천사의 예언은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는커녕 그분은 유다인의 왕 노릇을 해 보지도 못하셨는데도, 그런 누명을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채로 참혹하게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공생활과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요한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어린 막내였지만, 예수님의 신원과 이를 미리 알려준 천사의 전갈을 믿었고 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복음서 곳곳에 이를 알 수 있는 코드를 깔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적인 계시의 참다운 의미에 대하여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록해 놓은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배운 뽈리까르뿌스가 또 다시 자신의 제자 이레네우스를 통해 2 세기 경에 교회의 기록에 처음으로 운을 떼었으니,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자로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야흐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기로 하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도 교회의 주류에서는 사도 신경 등 신앙정식을 확정하면서도 이러한 창조 신앙에 대해서는 소수 의견으로만 취급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한찬 흐른 후에야 이 비밀을 푸는 코드를 알아낸 사람이 나타납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프랑스의 사제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뎅이 고생물학자이면서도 신학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내세우는 놀랄만한 주장을 폈더니, 한때 교회의 주류로부터 급진적 사상을 펴는 위험한 이단자로 단죄를 받았다가 그에 동조한 신학자들이 모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서 비로소 교회에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창조는 끝난 것이 아니며 자율적으로 진화되어 오다가 오메가 포인트인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진화가 거대한 도약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오늘 가브리엘 천사의 예고는 그 시작이며 강생으로 나타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새 창조가 본격화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탄생된 교회는 새로운 인류로서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신자로 세례를 받는 이들은 모두 새로이 탄생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 아담, 그리스도 교회를 새 하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새로운 인류로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신앙에 의해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신비스럽게도 성령에 의한 역사적 개입임을 대림 시기마다 듣고 있고, 이러한 개입은 예수님에게서 시작되었을 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열려 있는 은총임을 거듭 거듭 교회는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를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보는 힘은 하느님께 불가능한 일이 없으며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계시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의 귀로 들어야 말씀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성찬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며, 믿음으로 움직이는 손발로라야 비로소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평등하게 주어져 있는 신앙 감각을 알아보고 존중하는 일도, 공동으로 합의하는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일도 결국 믿음의 능력입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 왕권을 행사하시고 그 다스림이 영원하시리라고 주님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의 전갈은 그분의 부활을 믿는 백성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시작되었고, 이 나라는 부활하신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는 이들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사회적이고 영적인 실체입니다. 결국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도 부활 신앙에 의한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복음인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나, 그 나라에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의 창조에 대해서나 또 그 과업에 참여하자면 반드시 필요한 부활 신앙에 있어서나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고, 또 신자들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서 비밀처럼 감추어져 있지만 중요하고 명확한 진리입니다. 이것이 천사로부터 마리아가 들은 ‘은총’의 숨겨진 뜻이면서, 종종 감추어져 온 그리스도 왕권 사상의 숨은 비밀로서, 부활 신앙으로 본격화되는 그리스도 신앙의 창조적 국면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2ㄴ-33).

-조재형신부-


‘번개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친구가 왔을 때, 연락해서 모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주교님이 오시면 사제들이 모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리 약속은 없었지만 꼭 모여야 할 이유가 있으면 모이는 것입니다. 번개처럼 갑작스럽게 모인다고 해서 ‘번개팅’입니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희망을 파는 사람들’이라는 재단을 운영하는 가수가 왔습니다. 노래도 좋고, 의미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다들 그렇게 번개 같은 연락을 받고 희망을 파는 사람들의 1890회 공연을 ‘장의사’에서 보았습니다. 공연을 하는 가수도 여러 곳에서 공연을 해 보았지만 장의사에서는 처음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고인과 이별의 아픔을 나누는 장례식장에서 희망과 사랑의 따뜻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로, 교통사고로, 전쟁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희망을 파는 사람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간직하고, 생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공연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던 마포대교에서 10년 동안 공연했다고 합니다. 역 앞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해서, 소록도에서는 나환우들을 위해서, 요양원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캄보디아에서는 아이들을 위해서 공연했다고 합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뉴욕에 사는 자매님이 가수의 노래를 들었고, 그 취지와 의미에 감동해서 뉴욕에서의 공연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뉴욕에서도 ‘희망을 파는 사람들’ 지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있으니 추운 겨울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노래도 좋았고, 중간 중간에 들려주는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7년째 부산역 앞에서 노숙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7년 전에 가족들과 처음으로 여행 간 곳이 부산이었다고 합니다. 부산에 도착할 무렵 교통사고가 났고, 10일 후에 깨어보니 아내와 딸은 이미 하느님 나라로 갔고, 본인만 살았다고 합니다. 가족을 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부산역 앞에 머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돈도, 명예도, 능력도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옆에 있는 가족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88세 노인이 작년에 하느님 품으로 간 할머니를 위해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60년 넘게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그립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와 노래가 어우러져서 진한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바쁜 가운데 번개팅을 주선해주신 하늘가족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주선하신 ‘번개팅’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자렛에 사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께서 이루시려는 일을 마리아에게 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거냐고 이야기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니 가능하다고 전합니다. 이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선하신 번개팅은 마리아의 순명으로 아름답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놀라우신 구원계획은 나자렛 시골처녀 마리아의 순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운명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장소, 태어날 성별, 태어날 집안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운명처럼 주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유다는 희망을 버리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베드로는 절망을 버리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으뜸 사도가 되었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희망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번개처럼, 운명처럼 다가오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나자렛의 마리아처럼 ‘순명’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나자렛의 마리아처럼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나의 순명과 숙명을 통해서 어둠 속에 빛을 밝히듯이 희망의 불을 밝혀 주실 것입니다. 아! 곧 성탄이 다가오네요.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은총이 가득한 이”>

 -이영근신부-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고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이사야의 예고대로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잉태하게 된 경위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주님의 탄생 예고는 성전 ‘성소’에서 전해진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는 달리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던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5)에 있는 작은 동네 나자렛의 시골 처녀의 ‘집’에서 전해집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처를 성전 안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두시게 됩니다.

 

그런데 천사의 인사말은 마리아가 이미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였음을 말해줍니다.

곧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전에, 믿음으로 충만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즈카르야는 ‘의심’하여 자신의 목소리까지 잃어버리고 벙어리가 되었지만,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하여 구원의 말씀을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마리아는 몸으로 우리 주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잉태하셨다."

 

또 즈카르야에게는 아기가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루카 1,17)이라는 ‘사명’이 예고되지만, 마리아에게는 아기가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외아드님”(루카 1,35)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는 ‘신원’이 예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루카 135)으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은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드러납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나이다.”

(루카 1,38)

 

여기에서 드러나는 마리아의 ‘희망’에 대해서만 보고자 합니다.

이는 마리아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 그것을 저도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곧 그분의 희망을 희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리아의 희망과 하느님의 희망이 같아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원하신 바를 이루시도록 그분의 뜻에 승복하는 일이요, 그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품고 자신의 희망이 아니라 그분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요, 당신의 사랑을 이루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허용하고 수락하는 일이요,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고, 그분의 은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그분이 하시는 일에 함께 일하는 협조자가 되는 일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으십니다.

저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고 저희 안에서 사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마리아와 함께 진정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희망이 있다는 이 사실이 말입니다.

우리를 희망하는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기쁨인지요!

내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놀이터요 일터라니!

 

이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야곱의 “Eureka!”, 그 깨달음의 외침과 같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창세 28,17)

 

오늘 우리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바야흐로 성탄의 기쁨이 몰려옵니다.

희망이 이미 수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의 희망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희망이 진정,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28)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하오니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항상 저를 향하여 있는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아멘.

 곰곰이 생각하고 맡겨라

 -반영억신부-


믿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확인한 후 그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보지 않고도 '그렇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믿기 위해 아는 것이 인간적이라면, 알기 위해 믿는 것은 신성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요한 20, 29).

성경을 보면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메시지를 들은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루카1,18) 하고 그 메시지가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메시지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벙어리로 지내야 하였고, 비로소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먼저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무턱대고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곰곰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런 다음에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1,34). 라는 마리아의 질문은 곧’ 어떻게 해서 처녀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우리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천사의 대답은 명확합니다.“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7).

사실 이 대답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친히 하셨던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창세18,13-14). 그리고 마리아의 그에 대한 대답도 확실 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이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일은 진정으로 당신께 온전히 봉헌하는 이들 안에서 이루어집니다"(우리야).

우리도 마리아처럼 곰곰이 생각하고 되새긴 후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그리고 맡기면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기적이나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먼저 믿으면 애당초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시련과 고통 안에서 더욱 빛나게 됩니다. 마리아의 대답은 바로 목숨을 내 놓는 기도였습니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써는 처녀가 임신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지만 당신의 일을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도구 삼아 하십니다. 인간의 자발적인 협력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의 은총과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열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믿음에 따르는 순명을 통하여 예수님을 낳아드려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만큼 우리의 믿음이 더해지길 희망하며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를 도구로 쓰십시오.’하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 

 -송영진신부-

 

‘메시아 강생’을 요한 사도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ㄱ).”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필리 2,6-7)”

성모님은 ‘나중에’ 메시아가 되고 하느님의 아드님이 될 아기를 낳은 것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분이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을 낳았습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무슨 일이든지 당신의 일을 협조자 없이

당신 혼자서 하실 수 있고, 그렇게 하셨고,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는 일만큼은 당사자인 인간들이 협력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인간들 자신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구원’은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점 때문에도

인간들의 협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의 첫 번째 협력자로 선택되신 분이고,

그 선택에 기꺼이 응답하고 순종함으로써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되시는 분입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26-33)”

 

하느님께서는 왜 성모님을 선택하셨을까?

그것은 성모님이 가장 적임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그때’였을까?

예수님께서 왜 ‘그때’ 세상에 오셨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이것은 종말의 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것과 같은 성격의 일입니다.)

왜 ‘그곳’이었을까?

이스라엘, 갈릴래아, 나자렛 등은 우연히 선택된 곳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고 준비하신 곳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잘 모릅니다.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요셉과 성모님을 함께 선택하셨음을 나타내고,

또 두 사람이 약혼할 때까지 기다리셨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선택하셨음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기뻐하여라.”는 겉으로는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여기서는 하느님의 선택에 ‘기쁨으로’ 응답하라는 권고로 해석됩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라는 말도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선택하셨음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주님께서 성모님하고만 함께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성모님 쪽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음을 부각시키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라는 말에서 ‘놀랐다.’는 ‘두려워했다.(무서워했다.)’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일이 갑자기 일어난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나타냅니다.

(뒤에 나오는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천사의 말도 ‘무서워하지 마라.’가 아니라,

그냥 ‘놀라지 마라. 당황하지 마라.’입니다.)

성모님이 놀란 것은 천사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의 은총’을 받았다는 말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34-38).”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라는 뜻이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지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뜻입니다.

(의심을 나타낸 말이 아니라, 실행 방법을 묻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라는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모님 쪽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응답하고 협력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성모님의 ‘응답’은 하느님께서 바라신 바로 그 응답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말은,

주님의 종이니 어쩔 수 없이, 시키시는 대로 복종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바랍니다.’ 라는 말입니다.

성모님이 원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모님의 순종과 응답은

성모님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원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쁨과 사랑으로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그 응답과 순종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성모님은 기도하고, 또 깊이 묵상한 뒤에 응답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라는 말은, 천사가 성모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가, 대답을 들은 뒤에 떠나갔음을 나타냅니다.

 복음: 루카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조욱현신부-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 이런 인사는 남자가 들은 것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인사였다.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새로운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 품에 오시어 사람이 되셨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1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의미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고 한다.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물 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신 분도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에게 내려와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의 양식인 빵과 포도주에 내리시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거룩한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믿는 이들의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마리아의 잉태는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요한 1,13) 성령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다.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 37)

-한상우신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만나시는
가능성의
이야기가
사랑 가득
펼쳐진다.

가능성의
마음을
다시 만난다.

모든 가능성의
뒤에는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

사랑의 방식은
가능성의
방식이다.

오늘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새로운
날이다.

새로움이란
불가능을
가능으로
어루만지는
성장의 멋진
시작이다.

이와같이
참된 사랑은
서로를
성장시키며
살게한다.

원망이 아닌
현실을
받아들인다.

껍질을 벗고
나오면
모든 것은
은총이 된다.

은총과
분리될 수 없는
우리의 오늘이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아닌
가능성으로
노래하신다.

복음서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가능성의
사람들이다.

가능성의
하느님께서
구원을 향해
앞장서
걸어가신다.

무엇이 우리를
살게하는 지를
다시 만나는
기쁜 대림이다.

모든 기쁨에는
뜨거운 울림이
있다.

울림의 깊이는
사랑과
가능성의
깊이이다.

최선을 다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가능성의 선물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인가.

가장 좋으신
사랑을 믿는다.

 경륜이 쌓일 때까지 머금는

 -김찬선신부-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성탄을 가장 가까이 그리고 잘 준비한 분들을 계속해서 보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준비한 마리아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렇데 준비라고 하지만 임박한 출산을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앞선 바로 수태로부터 시작되는 준비입니다.

그러기에 주님 성탄 준비에 있어서

마리아에게 제일 중요했던 것은 바로 수락이었고,

제일 중요했던 순간도 바로 수락의 순간이었지요.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를 낳을 것이라고 예고했을 때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그 예고를 일축했다면 말씀이신 주님은 

말씀이 아니라 개소리가 되어 이 귀로 들어와 저 귀로 나가고 말았겠지요.

 

그러나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과의 첫 대면에서 그러지 않았습니다.

일단 말씀을 수락하였고, 그리고 머금었습니다.

 

커피가 대세인 요즘 커피를 마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커피를 머금는 분이 있는지 모르지만,

상당수의 사람은 머금지 않고 혀와 코 정도로 맛을 음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녹차의 경우 그 맛이 은은하면 할수록

차를 후루룩 마시지 않고 머금어야 그 맛을 제대로 다 알 수 있는데

마리아가 바로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머금고 곰곰이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해되지 않음에도 하느님 말씀을

마리아가 머금고 곰곰이 생각한 것은 신중함입니까?

 

제 생각에 이것은 물론 신중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한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존경입니다.

 

우리 인간 사이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얘기는 바로 걷어차지 않고,

존경하는 사람의 얘기는 더더욱 걷어차지 않는데

하느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경외하면 할수록

이해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그 말씀을 머금고 곰곰이 생각할 겁니다.

 

사실 그렇게 오래 머금어야 이해되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부모나 어른들의 말씀들이 그렇잖습니까?

예를 들어, '너도 애 낳아 봐야 안다'는 말씀이 그렇지요.

 

경륜에서 비롯된 말씀은

나도 그만큼 경륜이 쌓인 다음에야 이해되는 법이지요.

 

이사야서 11장을 보면 오실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인간의 경륜은 경험만큼 쌓이지만

신적인 경륜은 주님의 영이 내릴 때 주어지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니 성탄절까지 남은 기간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오래 머금어야 할 것이고,

또 머금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감싸시도록

성령을 이불처럼 덮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9년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