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기고 싶은 글들

2021년 12월

Margaret K 2021. 12. 1. 07:28

12월 24일 금요일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가 1,67-79)

---

 

12월 23일 목요일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루가 1,57-66)

---

 

12월 22일 수요일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루가 1,46-56)

---

 

12월 21일 화요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가 1,39-45)

---

 

12월 20일 월요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가 1, 26-38)

---

- 아우구스티누스-

“마리아는 몸으로 우리 주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잉태하셨다."

---

믿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확인한 후 그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보지 않고도 '그렇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믿기 위해 아는 것이 인간적이라면, 알기 위해 믿는 것은 신성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요한 20, 29).

-반영억신부-

---

 

12월 19일 일요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39-45)

---

 

12월 18일 토요일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 마태오 1,18-24)

---

 

12월 17일 금요일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오 1,1-17)

---

마태오 복음은 아브라함으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의 족보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총 14대씩 세 번 끊어서 설명하는 이 예수님의 족보 설명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첫 14대는 이스라엘의 순종으로 부터 시작된 번영을,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의 14대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그에 대한 결과로서의 쇠퇴를, 그리고 바빌론 유배에서 부터 그리스도까지의 14대는 새 희망과 구원의 실현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에 이르기까지의 이 족보 언급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구체적인 삶 안으로 특히 사랑으로 개입한 구원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삶, 역사에 사랑으로 개입 하셨듯이, 똑같이 우리 삶, 우리 역사 안으로 들어 오십니다. 우리 삶의 여러 사건들을 떠올려 보며,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어떻게 이끄셨고, 또 앞으로 이끌어 주실 지, 이번 남은 대림기간동안 잘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태승신부-

---

 

12월 16일 목요일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루카 7,24-30)

---

 

12월 15일 수요일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루카 7,18ㄴ-23)

---

 

12월 14일 화요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마태오 21,28-32)

 ---

 맏이는 포도밭에 일하러 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처음엔 반대했지만 나중엔 갔고, 다른 아들은 처음엔 가겠다고 했지만, 나중엔 가지 않았습니다. 왜 마음이 바뀐 것일까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묵상’을 한 것이고 한 사람은 그저 자아와의 대화인 ‘생각’을 한 것입니다.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맏이는 그동안 아버지께서 해주신 일들에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하는 묵상 기도를 했고, 가겠다고 했던 다른 아들은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말에 따를 필요가 없겠다는 불만족인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전삼용신부-

 

12월 13일 월요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마태오 21,23-27)

---

   그러니 세상에 나를 가난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절제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꼭 붙드십시오.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곧 사랑이요, 행복이요, 영원한 생명인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입니다. -전삼용신부-

 

12월 12일 일요일

군중이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3,10-18) 

---

 

12월 11일 토요일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마태오 17,10-13) 

---

 

12월 10일 금요일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오 11,16-19)

---

  ‘단테 알리기에리’는 우리가 잘 알듯이 이탈리아 표준어의 시발점이 된 『신곡』(Divina commedia)을 쓴 사람입니다. 『신곡』은 단테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피렌체의 최고 공직까지 올랐으나 정치적 격변으로 추방당하여 이탈리아 각지를 유랑하다 라벤나에서 사망하기까지 자신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랑생활을 하며 지은 이 책은 ‘지옥-연옥-천국’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특별히 지옥은 35살(당시 평균 연령이 70세) 피렌체의 최고 공직인 프리오리가 된 시점에서 ‘삼구’(三仇)로 길을 잃고 있었던 자신을 나타냅니다. 

    지옥의 입구에서 그는 세 무서운 동물을 만납니다. 표범(육욕)과, 사자(권력욕)와, 암늑대(재물욕)가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만든다는 교리를 표현한 것이고, 자신이 그런 처지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지옥을 거쳐 연옥에서 천국으로 갈 때, 그를 천국까지 인도하는 이는 ‘베아트리체’(Beatrice)라는 여인입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9살 때, 그리고 18살 때 딱 두 번 만났을 뿐인데도 그는 평생 그녀를 자신의 연인으로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9살 때 그녀를 본 순간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의 딸이 아닌 신의 딸처럼 보였다.”

 

    그때 그는 감히 그 소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18살 때 다시 한번 천사와도 같은 그녀를 만납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부유한 집안으로 시집을 갔고 불행히도 1290년 향년 24세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만남에서는 잠깐 대화를 나눕니다. 단테는 이미 1283년 다른 여인과 결혼한 상태였고 3남 1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단테는 단 두 번의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음을 말하기 위해 『새로운 인생』(La vita nuova; 1295)이란 책을 씁니다. 그 이후에 10년 동안 세속-육신-마귀에 빠져 지옥의 삶을 살기는 했지만, 자신을 천국으로 이끌어준 사람은 그 여인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그녀와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서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자리를 떴다. 외로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 고상한 여인에 관한 생각에 빠져들었고, 그녀를 생각하면서 달콤한 잠에 떨어졌다.”

 

    자신의 아내인 ‘젬마 도나티’에 대해서는 어느 책에서도 일절 언급이 없던 그가 단 두 번 만난 여인에게 어떻게 그런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날 그녀의 의상은 매우 고귀한 색상인 예쁜 주홍빛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가 달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해서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 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를 자신의 영혼과 결혼한 신이라 표현한 것이고 그녀를 심장에 품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것만큼 어떤 누군가를 심장에 받아들이면 그 누군가가 평생 그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그는 순수했던 시절, 자신의 심장 안에 들어온 그녀를 통해 다시 정화되어 천국의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입니다. 단테는 고귀한 사랑만이 그 사람과 함께 머물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천국으로 안내할 수 있다는 지혜를 평생을 거쳐 베아트리체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사랑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세례자 요한이고 베아트리체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사랑하면 그분이 심장 안에 머물며 우리를 가난으로 이끌고 이어 사랑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을 체험합니다. 먼저 세속-육신-마귀를 이기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삶으로 말하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신 그리스도께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라고 하십니다. 왜 우리는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에 무심할까요? 사랑하지 않아서입니다.

 

    내가 더 고마워하고 사랑하는 것과 머물게 되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돈이나 쾌락, 명예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것과 반대의 길로 이끄는 세상의 세례자 요한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인 그리스도께로 여러분을 안내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천국에 오르는 계단도 사라집니다.

-전삼용신부-

---

 

 

12월 9일 목요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오11,11-15)

---

 

12월 8일 수요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26-38)

---

 

12월 7일 화요일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준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마태오 18,12)

---

 

12월 6일 월요일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5,17-26)

---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용서를 청했다면 어땠을까요하느님은 바로 용서해 주셨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들은 서로 상대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서로 심판하였습니다이들은 죄책감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죄책감으로 사람을 심판하거나 어떤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에너지로 사용합니다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죄책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무지’(無智)에서 나옵니다아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지혜가 없는 것입니다죄책감은 어떤 일에 있어서 내가 나의 탓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심판은 항상 우월한 사람이 더 낮은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다시 말해 내가 내 안에 나를 심판해도 된다고 허락해 놓은 우월한 존재가 있다는 뜻입니다우리는 그 우월한 존재가 자아임을 압니다.

-전삼용신부-

---

12월 5일 일요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 3,1-6)

----

 

12월 4일 토요일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마태 9: 35―10,1.6-8)

---

 

12월 3일 금요일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은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마태오 9,27-31)

---

 

12월 2일 목요일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마태오7,21,24-27)

---

   지금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이 기쁘고 삶에 도움이 되면 그것을 하십시오책을 읽는 것이 기쁘거나 동영상 보는 것이 즐거우면 그것을 하십시오그게 내 수준입니다소리기도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묵상기도를 강요하면 나중엔 소리 기도까지 포기하게 됩니다가난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난에 대한 논문을 쓰라고 하면 나중엔 신학 공부 자체에 대한 맛을 잃습니다

    내가 배움의 진전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수준을 내가 잘 모르고 무언가를 배울 때입니다많은 경우에 소리기도 단계에서 벗어나야 하는 사람이 그것에만 머무르거나 혹은 묵상기도를 해야 하는 사람이 관상에 도전할 때 생깁니다실천은 하나도 없는데 신학원에 입학하여 머리만 키울 때도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실천이 없는 배움은 아무 쓸모가 없고 오히려 몸에 해롭습니다.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공부와 기도를 합시다그래야 진전이 있습니다공부하는 맛이나 기도의 맛이 아니라 내 삶이 변화되는 것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아는만큼 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모르는 것입니다죄를 지으며 기도의 수준만 높이려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영성과 지식은 죄로부터의 벗어남과 함께 가야 재미도 있고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전삼용신부-

---

 

12월 1일 수요일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마태 15,29-37)

---

'되새기고 싶은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 11월  (0) 2021.11.01
2021년 10월  (0) 2021.10.01
2021년 9월  (0) 2021.09.01
2021년 8월  (0) 2021.08.02
2021년 7월  (0)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