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과 기도와 성사 생활 양성 지도안
주제 |
기도와 성사생활 |
|
학습목표 |
1. 기도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를 알아본다 2. 스스로가 기도였던 프란치스코의 기도의 모습과 관상 생활을 알아본다. 3. 성사 생활과 전례기도를 통한 재속 프란치스칸의 기도생활을 살펴본다. 4. 재속프란치스칸은 기도와 관상이 자신의 존재와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
|
구분 |
내용 |
시간 |
준비 |
인사, 시작기도(예시된 기도 외에 다른 기도나 성가), 출석 점검 |
3분 |
도입 |
1. 전시간 학습 상기 2. 주제 제시: 기도와 성사 생활 3.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와 탄원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하느님과의 대화요 호흡이다. |
2분 |
전개 |
1. 기도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 1) 예수께서는 기도의 모범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다. 기도는 그분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2).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하는 기도를 올렸고, 아버지께 대한 자녀다움 신뢰와 의탁의 기도를 하셨다.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자녀덕 의탁을 잘 나타낸다. 2. 스스로가 기도였던 프란치스코 1) 마음을 들어 하느님께로 ①프란치스코의 기도는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에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② 프란치스코는 마음을 들어높여 그의 모습과 영혼은 늘 천상 왕국의 높은 고을에 머물러 있었다 ③프란치스코는 삼위이시고 일체이신 하느님게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올렸고 늘 하느님으로 충만하였다 2) 예수 그리스도처럼 ①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늘 기도하였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여쭈었다. ② 프란치스코는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기 위해 순례자의 생활을 택했다. 순례자의 삶은 주님의 영의 활동에 늘 깨어 있어야 하며, 기도와 신심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 ③프란치스코의 기도의 원천은 복음과 십자가이다. 3) 프란치스코의 기도의 특징 ①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② 기도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기도이다. ③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상 기도이다. ④내적 고요함에 머무는 고요와 단순함의 기도이다. ⑤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 전적인 신뢰의 기도이다. 3. 관상 생활 1) 관상의 의미 ①관상은 하느님의 현존에 내 자신이 함께 머무는 것이다. 고요함과 침묵 가운데 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내어 맡기는 자기 비움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②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선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③프란치스코는 성체와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모든 피조물과 사람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았다. ④ 프란치스코는 성체와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모든 피조물과 사람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았다. 2) 관상의 실천 ①재속프란치스칸은 기도와 관상이 언제나 이루어져야 하지만 특별히 기도를 위한 시간을 마련할 것이다. 4. 성사생활과 전례기도 1) 성사 생활 ①교회는 칠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의 통로를 마련한다. 재속프란치스칸은 특별히 미사성제에 참례함을 본분으로 생각하고 성체성사와 화해의 성사에 자주 참여해야 한다 2) 전례기도 ①성무일도는 교회의 공식적인 전례기도이다. 우리는 전례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재현한다. |
40분 |
종합 |
1.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의 모범이시다. 그분은 늘 기도하셨으며,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자녀적 의탁으로 기도하셨다. 2. 프란치스코는 온전히 하느님을 향한 끊임없는 기도로 스스로 기도 자체가 되었다 3.재속프란치스칸은 기도와 관상이 자신의 존재와 활동의 원동력이 되도록 시간을 내어 기도와 관상생활을 해야 한다. 4. 재속프란치스칸은 성사생활과 전례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재현하며 온전히 하느님을 향한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
3분 |
심화 실천 |
재속 프란치스칸은 기도와 관상이 존재와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각자 자신의 기도생활을 살펴보고 어떠게 기도하고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 결심하도록 하자. 1. 나의 하루의 기도 생활에 대하여 나누어 보자 2. 개인적으로 하느님의 형존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으며 특히 묵상과 관상기도를 위한 시간을 갖는가? 3. 기도가 어떻게 ‘자신의 온 존재와 홀동의 혼’이 되게 할 수 있는가? |
10분 |
과제물 |
예시된 과제물이나 그 외 별도의 과제물을 내준다. |
|
마침기도 |
예시된 기도문 외에도 다른 기도나 성가를 할 수 있다. |
2분 |
2004년 10 월 입회반 교육지
폰테 콜롬보 제 7장 기도와 성사생활
회칙 제 8조
예수께서 성부의 참 흠숭자이셨던 것과 같이 회원도 기도와 관상이 자신의 온 존재와 활동의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한다. 회원은 교회의 성사 생화르 특히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교회가 제정한 형식에 따라 전례기도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재현해야 한다.
시작기도
세상 모든 만물을 통해 흠숭을 받1)으시는 주님! 저희가 기도와 관상을 온 존재와 홀동의 원동력으로 삼아 당신께 참된 흠숭을 드리고자 하나이다. 또 교회의 성사 생활 특히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교회의 전례기도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재현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참 흠숭을 드리게 하소서.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와 탄원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하느님과의 대화요, 호흡이다.1)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이요. 신앙의 표현이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직접적이고 생생한 대화를 할 수 있다.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인격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재속프란치스칸은 기도와 관상이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흠숭하였듯이 우리도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흠숭해야 한다. 특히 성체성사는 성사 생활의 정점이 된다. 오늘은 기도 생활과 성사 생활의 여러 가지 면들을 살펴보고, 또 교회의 공식적인 기도인 전례기도가 회원들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1. 기도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기도의 모범이시다.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루가 3,21), 광야에서 받은 유혹을 기도로 이겨내셨고(마태 4,1-11), 열두 사도를 뽑기 전에는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셨다(루가 6,12). 또 외딴 곳에 가시어 혼자 기도하셨고(마르 1,37),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제자들의 말을 믿고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이를 위해서 기도하셨다(요한 17,1-26). 수난 전에는 올리브 산에서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고(마르 14,32-36), 십자가 위에서는 아버지께 울부짖으며 기도하셨다(마르 15,34). 또 제자들에게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마태 6,5-15). 예수께서는 특별한 사건을 앞두고 기도하셨고, 늘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분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흠숭하였다. 예수께서 드리신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자녀다운 전적인 신뢰이며 의탁이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고, 하느님을 내적 친밀 안에서 아버지라 부르셨기에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의 내적 친밀 안에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무른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아들이 되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에 의하여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8,26)라고 하였다.
예수 께서는 참된 기도, 예배, 그리고 흠숭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모범이 되셨다. 곧 그분은 모범을 보여주기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대한 사랑을 말고 행동으로 실행함으로써 성부의 <참 흠숭자>가 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 아버지께 자녀다운 모습으로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이시고,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모범이시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흠숭과 자녀다운 청원을 드리는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흠숭하고 찬미하며 하느님께 청을 드려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2)
2. 스스로가 기도였던 프란치스코
1) 마음을 들어 하느님께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어 기도는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에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었다. 토마스 켈라노는 프란치스코에 대해 “기도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스스로가 곧 기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영의 방문을 받으면 즉시 주님의 방문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망토로 방을 만들거나 옷소매로 얼굴을 덮어버리기도 하였다. 그거마저 허락되지 않을 경우, 가슴에 성전을 만들어 몰아에 들어갔기에 흐느낌이나 한숨이 없었고 거친 숨결이나 외적인 움직임이 없었다. 주님의 방문을 받으면 그때마다 주님과 말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실로 자신의 전 존재를 여러 면으로 번제물이 되게 하기 위해 지극히 단순화된 자기의 모습을 놓곤 하였다. 그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마음 속으로 자주 관상을 하고는 하였다. 그가 주님께 빌어 얻고자 했던 그 하나를 향하여 그는 그의 전 존재를 바쳐 자신의 모든 집중과 열정을 이끌어갔다.(2첼라노 94-95)
프란치스코는 온 생애, 온 존재를 다하여 늘 기도에 사로잡혀 있었다.3) 프란치스코는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에게 몸과 마음과 생명을 모두 다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시는 주 하느님을,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속량하셨고 온전히 당신 자비로써 구원하실 주 하느님을, 불쌍하고 비참하며 부패되고 추악하며 배은망덕하고 악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고 또한 주고 계시는 주 하느님을 ‘마으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마르 12,30) ‘지혜4)를 다하고’(마르 12,33)능력을 다하고 정력을 다하고 노력을 다하고 정을 다하고 예를 다하고 소망과 뜻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합시다.”(1회칙 23,8)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는 기도 안에서 자신의 약하고 불쌍한 상태를 깊이 인식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항상 삼위이시고 일체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온전히 열려 있었다.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내어맡김으로써 프란치스코는 모든 구원의 섭리를 기도 안에서 묵상하였다. 성인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발견했고,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와 같이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 대한 충만한 관상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성인의 기도는 찬미와 감사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5) 삼위이신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프란치스코의 기도는 생명과 구원과 자비의 원천이신 하느님과의 일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는 매순간 드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소유하며, 하느님으로 충만하엿다.
2) 예수 그리스도처럼
스폴레토 계곡에서 아씨시로 돌아온 후 프란치스코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물엇다. 나환자를 만난후 다 허물어져 가는 다미아노 성당에서 드리던 기도는 그 동안의 어둠을 벗고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했다. 수도회가 커지면서 기존 수도회와 같은 형태를 취해갈 때도 그는 주님께 여쭈었고, 수도회는 바로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확신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기도하셨던 것처럼 프란치스코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기도로써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여쭈었다. 또한 언제나 홀로 하느님과 내적 친밀 가운데 머물기 위해 은둔소6)를 찾아 기도하며 하느님을 흠숭하엿다.
성인은 한곡에 머무는 정주 생활을 택하지 않고 순례자의 생활을 택했다. 순례자의 삶이란 불안정하고 모호하여 위험이 따르는 삶이다. 프란치스코의 순례 생활은 예수를 철저히 따르고 모든 의지를 하느님께 되돌리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순례자의 삶은 주님의 영의 활동에 늘 깨어 있어야하며, 기도와 신심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걸으면서도 기도하였고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기도 하였다. 그는 하느님을 향한 놀라운 감각을 지니고, 맑고 순수한 시선으로 하느님을 바라보았으며 마음속에 온전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는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을 복음의 빛으로 바라보는 ‘순례하는 관상가’였다. 이 작은 순례자의 양식은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형제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었으며, 유일한 피난처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마음의 은둔소였다.
프란치스코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원천은 바로 복음과 십자가이다. 그는 성서를 읽고, 한번 읽은 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새겼다. 프란치스코는 들은 말씀에 대해 부단하게 묵상하였기 때문에 그의 기억력은 책을 대신할 만했다(2첼라노 102)7). 또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2첼라노 105)8)라고 했다. 프란치스코는 십자가로 각인된 사람이었고 라 베르나 산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살아있는 형상이 되었다.9)“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거룩하신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속하셨기에 저희는 여기와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유언 5)라고 하는 프란치스코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의 기도가 대부분이었다.
성인은 성령께 자신을 맡겼기에 구체적인 기도 방식에 얽매이지 않았지만 프란치스코 기도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첫째,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정감적인 기도이다. 둘 째, 기도의 장소나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기도이다. 셋째, 모든 것을 통하여 모든 것을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상 기도이다. 넷째, 내적 고요함에 머물고 마음에 은둔소를 갖는 고요와 단순함의 기도이다. 다섯째,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기도이다.10) 여섯째,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드리는 전적인 신뢰의 기도이다.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은 하느님의 진실한 흠숭자이셨고, 하느님의 아버지와 항상 일치하여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고 프란치스코처럼, 복음 생활을 위한 기도와 관상이 자신의 존재와 활동력이 되어야한다. 기도없이 활동만 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그분과 호흡해야하며, 그분이 불어 넣어주는 숨으로 살아가야 한다.
3. 관상생활
1)관상의 의미
재속 프란츠사칸은 프란치스코가 언제나 하느님과의 내적 친밀 안에 머물렀던 것처럼,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하며 존재의 원동력이 되도록 하느님을 바라보는 관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관상은 하느님의 현존에 내 자신이 함께 머무는 것이다. 고요함과 침묵 가운데 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내어맡기는 자기 비움으로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도 중에 하느님과 사귐이 깊어지고 하느님의 현존이 자리하게 되면, 하느님과 내적 일치를 방해하는 사고와 감정과 지성이 더 이상 마음 안에 자리하지 않게 된다. 이때 아무것도 하려하지 a라고 순수하게 그냥 머물로 있어야 한다. 관상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선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성체와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세상과 온갖 피조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았다. 어떤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만나고, 보고 온갖 피조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았다. 어떤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만나고, 보고, 주어지는 모든 것 안에서 언제나 하느님을 바라보았다. 프란치스코는 선을 바라보는 데 탁월했고, 선을 바라봄으로 그의 마음은 하느님의 무한한 선으로 가득 채워나갔다. 성인은 하느님이 부어주신 선에 자신을 잃고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선이란 ‘좋음’이다. 모든 좋ㅇㄴ 것, 좋은 체험 안에서 선이 들어있다. 선을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니믕 좋음을 바라보며 잠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사건 안에서 좋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이 좋음을 느낄 때, 우리 안에는 이미 선이 함께 하며 그 선과 하나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을 느낄 때 선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관상을 통하여 선 자체이시며 모든 선, 완전한 선, 최고 선, 지상 선, 모든 선의 샘, 모든 선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바라보았다. 성인은 선이신 하느님과 일치되었기에 선 자체이신 그분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모든 좋은 것을 되돌려 드리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더 나아가 충만한 선, 모든 선이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도 마음에 들어하지도 말라고 권고한다)(1회칙 23,9).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통해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사랑을 관상하였고, 온갖 피조물을 통해 삼위이시고 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나아갔다. 그는 대화 중에 어쩌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크게 감동받곤 했다(2첼라노 196).11)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참된 현존을 바라보았다. 관상은 거룩한 영으로 하여금 우리가 참된 살과 피의 형상으로 육화된 하느님의 실재를 바라보게 한다. 이 바라봄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온갖 피조물과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선과 지극한 사랑 안에 머물게 한다.
2) 관상의 실천
모든 피조물 안에 스며있는 하느님의 선을 바라봄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모든 피조물과 형제적 친교를 갖는 것이 관상 생활이다. 매일의 일상사와 모든 존재 안에서 특히 아름다운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그 안에 머무는 관상은 사람의 생명력을 약동하게 하고 마음에 고요함과 충만함을 준다. 이 충만함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인간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제공할 수 없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준다.
재속 프란치스칸은 기도와 관상이 언제나 어디서나 이루어져야 하지만 회헌은 특별히 기도를 위한 시간을 마련할 것을 권한다.12) 재속 프란치스칸은 시간을 따로 내어 하느님을 내적으로 만나야 하고, 사도직 활동을 하면서도 그분과의 일치 안에 있어야 한다. 성부의 참된 예배자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분께 경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다. 회원은 온전히 기도에 전념할 수 있는 침묵과 묵상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회헌 14,5).
4. 성사 생활과 전례기도
기도생활과 더불어 성사 생활은 분명히 개인과 형제회 모두에게 중요하다. 성사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은총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은총이다.13) 하느님의 현존과 은총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드러나고 있으며 교회는 특별히 일곱 가지의 성사14)를 통해 그 은총의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
재속프란치스칸은 성 프란치스코처럼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의 성사와 회개를 향한 화해의 성사를 삶의 본질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미사성제에 참례하는 것은 교회 생활의 중심이며 회원의 본분이다. “미사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신과, 또한 사람들을 한 몸으로 결합시킨다. 우리는 그리스도 생애의 모든 신비를 살았던 프란치스코의 미사성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기억하여, 가능한 한 자주 미사에 참여해야 한다.”(회헌 14,2) 또한 “회원은 각자의 본당에서 전례가 생동적으로 거행되도록 특히 세례, 견진, 혼인 및 병자성사에 능동적으로 협력해야 한다.”(회헌 14,3) 재속 프란치스칸은 특별히 개인의 성화와 교회의 성장을 위해 성사 생활과 전례 기도에 능동적인 참여를 함으로써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전례기도는 당신의 몸인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성부께 드리는 기도이다. 성무일도는 성교회의 공식 전례기도로써, 하루의 모든 시간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대한 찬미와 그를 통한 인간의 성화에 그 목적이 있다. 회칙은 성무일도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전례기도에 참여하길 권한다. 회헌은 “회원과 형제회는 교회 전례기도의 양식과 예절서의 지침에 유의하며, 특히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을 특전으로 여겨야 한다.”(회헌 14,4)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전례기도를 통해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재현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개인적으로 구송기도를 좋아하셨고, 교회의 아들로서 공식 기도에 참여하려는 열망이 강했기에 성무일도를 특별히 강조하고 사랑하셨다.
오늘 우리는 기도와 관상, 성사 생활과 전례기도를 알아보았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불리웠고, 교회 안에서 거룩한 생활로 인도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음을 알았다. 재속 프란치스칸은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재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주어진 것에 더없는 기쁨과 영광된 마음으로 자신과 형제회, 나아가 교회 공동체으 성화에 힘쓸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온전히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내 존재와 활동의 원동력이 온전히 기도를 통해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영과 그영의 거룩한 활동에 온 존재를 내어맡겨 생명이 넘치는 삶이 되도록 이끌야 한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나의 하루의 기도생활에 대하여 나누어 보자
2. 개인적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으며 특히 묵상과 관상기도를 위한 시간을 갖는가?
3. 어떻게 기도가 ‘자신의 온존재와 활동의 혼’이 되게 할 수 있는가?
과제물
1. 묵상과 관상 기도를 해보고 체험을 적어온다.
2. 회칙 8조와 회헌 12, 14조를 써온다.
마침기도
보십시오! 그분은 어좌에서 동정녀의 태중으로 오신 때와 같이 매일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매일 그분은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로 오십니다. 매일 사제의 손을 통하여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제대 위에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실제로 육으로 거룩한 사도들에게 보여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축성된 빵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는 그분의 육신만을 보았지만 영신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육신의 눈으로 빵과 포도주를 볼 때, 그것이 참되고 살아 있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라는 것을 보도록 또 굳게 믿도록 합시다. 이와 같이, “나는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하고 당신 자신이 말씀하시는 대로 주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이런 형상으로 항상 계십니다.
권고 1 그리스도의 몸
참고 문헌
작은 형제회 1회칙 23,8; 23,9
성 프란치스코의 유언 5
토마스 첼라노 II생애 ·02,105,196,165
보나벤투라의 대전기 9,2
회개하는 형제 자매들의 삶 PP. 19-234
신비가 프란치스코 PP. 191-198, P. 165
양성교제 ‘회칙생활 I' PP. 34-40
소명 PP. 119-131
프사상 99특집호 PP.93-189. 5호 PP. 27-43
성사란 무엇인가 레오나르도 보프.
'양성 교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폰태콜롬보 제9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 (0) | 2020.11.15 |
---|---|
폰태콜롬보 제8과 성모 마리아 (0) | 2020.11.15 |
폰태콜롬보 제 6과 끊임없는 회개의 삶 (0) | 2020.11.15 |
폰태콜롬보 제 5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0) | 2020.11.15 |
폰태콜롬보 제4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삶 (0) | 2020.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