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폰태콜롬보 제 6과 끊임없는 회개의 삶

Margaret K 2020. 11. 15. 04:56
 

제 6과 끊임없는 회개의 삶 양성 지도안

주제

끊임없는 회개의 삶

 

학습목표

1. 회개란 무엇인지 안다

2. 프란치스코의 회개 과정을 통해 회개 생활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3. 재속프란치스칸은 끊임없이 회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구분

내용

시간

준비

인사, 시작기도(예시된 기도 외에 다른 기도나 성가), 출석 점검

3분

도입

1. 전시간 학습 상기

2. 주제 제시: 끊임없는 회개의 삶

3. 프란치스칸에게 회개란 복음적 생활의 시작점이면서 동시에 일생동안 지속되는 여정이다. 재속프란치스칸은 삶의 원천이 회개생활

2분

전개

1. 회개란 무엇인가?

1) 회개란 하느님의 부르심에 고개를 돌려 응답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과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2) 예수께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듯이 우리가 복음적 생활을 하는 선행조건은 바로 회개이다.

2. 프란치스코의 회개

1)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회개의 삶이 주님 친히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하였다.

2) 프란치스코의 회개생활은 스폴레토에서 “주인을 섬기겠느냐? 종을 섬기겠느냐?”는 주님의 물으심에 주인을 섬기겠다는 응답으로 시작되었다.

3) 아씨시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 체험을 통해 완전한 내적 변화의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4)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5) 성당 수리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돈을 마련한 일로 아버지와 갈등이 생기게 되고 결별하게 된다. 프란치스코는 교회 법원에서 입을 옷을 벗어 아버지 앞에 놓고, 주교와 군중 앞에서 “앞으로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겠습니다.:라고 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6) 세 개의 성당을 수리한 후 마티아 사도 축일에 들은 복음 말씀(마태 10,7-10)은 프란치스코에게 주님과 복음의 그의 길이 되게 했다.

7) 프란치스코의 회개는 이렇게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먼저 고개를 돌리심으로 시작되었고,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께 자신을 되돌림으로 지속되었다.

3. 끊임없이 회개를 살아가는 사람들

1. 회개하는 이들

① 회칙은 “복음의 강력한 힘에 자극받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적 변화에 의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것”을 회개라 한다.

② 프란치스코가 초창기 ‘회개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회개하는 이들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회개하는 이들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악습과 죄악을 미워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사람들이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회개하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축복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다.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않으며, 악습과 죄악을 일삼고 육적인 욕망을 가지며 세상을 육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이들이 받는 ‘축복의 길로 돌아오라’는 프란치스코의 초대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회개의 실천

① 우리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말씀의 전례, 생활 반성, 피정, 영적지도, 참회 예절 들을 통해 회개를 실천한다.

②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악습과 죄악을 미워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생활을 해야 한다.

③ 화해의 성사는 우리를 회개의 길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므로 우리는 자주 화해의 성사를 보아야 한다

40분

종합

1. 회개란 하느님의 부르심에 고개를 돌려 응답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과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2. 프란치스코가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했던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3. 하느님 사랑의 이웃사랑, 악습과 죄악을 미워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일은 회개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4. 회개의 실행을 위해 내적으로는 주님과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외적으로는 회개의 열매를 맺는 생활로 끊임없이 회개를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3분

심화실천

제속프란치스칸은 끊임없이 회개를 사는 사람들이다. 회개의 걸림돌이 되는 내적인 요소들을 찾아내고 회개를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자

1. 나의 회개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

2. 참된 회개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면의 변화’이다. 내가 체험한 근본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3. 나는 화해의 성사에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있는가?

4. 이웃과 화해하기 힘들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해보자.

10분

과제물

예시된 과제물이나 그 외 별도의 과제물을 내준다

 

마침기도

예시된 기도문 외에도 다른 기도나 성가를 할 수 있다.

2분



제 6과 끊임없는 회개의 삶


회칙 제7조


‘회개하는 형제 자매’로서 회원은 자기 성소 때문에 복음의 강력한 힘에 자극받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적 변화에 의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그리스도와 일치시켜야 한다. 복음은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인간의 나약성 때문에 이 회개는 날마다 이루어져야 한다. 이 자기 쇄신 과정에서 화해성사는 성부의 자비심의 특별한 표지이고 은총의 샘이다.


시작기도


저희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촉구하시는 주님!

저희가 복음의 강력한 힘에 자극받아 완전한 내적 변화에 의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회개하는 형제자매가 되도록 도와주소서. 저희는 저희의 나약함 때문에 회개가 날마다 이루어져야 함을 알고 있사오니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의 특별한 표지이고 은총의 샘인 화해성사를 통해 자기 쇄신을 이루게 하소서.


프란치스칸에게 ‘회개’란 복음적 생활을 하는 시발점이면서 동시에 일생동안 지속되는 여정이다. 초창기에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은 ‘회개’를 설교하고 다녔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어디서 온 자들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아씨시의 회개자들’이라고 했다(세동료 37; 익페 19 참조).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회개 생활’이라고 말한다(유언 1).


초기 재속프란치스칸도 ‘회개의 형제 자매들’아라 불렸는데, 이는 우리 삶의 원천이 회개 생활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재속프란치스칸은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해 온전히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함을 깨닫고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오늘은 복음적 생활을 하는데 필수 요건이 되는 회개 생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회개란 무엇인가


인간은 나약함 때문에 죄악에 빠져 하느님과 멀어지기 쉽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인간을 부르시고 친교 맺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의 이 부르심에 고개를 돌려 응답하는 것이 회개이며, 자신의 뜻과 행동을 하느님의 뜻과 말씀에 맞추어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회개이다. 하느님의 숨에서 나온 인간이 하느님을 외면했다가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의 본질이다. 우리는 하느님께 되돌아감으로써 다시 하느님의 생명 안에 있게 되고 하느님과 내적 친밀을 이루게 된다. 회개는 이렇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며, 회개를 통해 나와 나 자신, 나와 자연, 나와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때가 다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선행 조건은 회개이다. 회개는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숴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제 하지 않는 것이다.”(이사 58,6-7) 자신이 죄인임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께 되돌아 올 수 있다. 또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여 온전히 열려 있는 상태에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2. 프란치스코의 회개


성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 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안 있어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1-3)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는 회개의 삶이 주님 친히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회개는 환시로 시작되었다. 기사가 되어 영광을 얻고자 했던 프란치스코는 브리엔느 월터군에 입대하러 아폴리아로 가던 중 스폴레토에서 머물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잠을 자고 있는데 때를 맞춰 누군가가 그에게 환시 중에 두 번째로 말을 건네 왔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려느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에 질문을 던진 자에게 그는 자기 취지를 알리고 나서, 싸우려고 아폴리아로 출정하려가는 중이라고 말하자, 그는 하인과 주인 중에서 누가 더 너에게 좋겠느냐고 신중한 질문을 받았다. 프란치스코가 대답하였다. ‘주인(dominus)이오’ 상대방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너는 주인 대신에 종을 구하느냐?’ 프란치스코가 말하였다. ‘주여(dominus), 제가 무엇을 해야 하오리까?’ 이리하여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거라. 네가 본 이 환시는 나를 통해서 영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는 벌써 순명의 모범이 되어 있던 터였으므로 미련 없이 돌아갔다(2첼라노 6).


프란치스코는 아씨시로 돌아왔으나 하느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졌다. 혼자 동산을 거닐기도하고 빈번히 아버지와 말다툼도 하였다. 그는 자주 아씨시 성 바깥벽을 의지하고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갔다.


어느 날 아씨시 아래 있는 들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프란치스코는 한 나병환자를 만났다. 전혀 뜻밖에 만난 것이어서 프란치스코는 그를 보았을 때 협오감을 느꼈다. 그 때 그는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결심을 상기했다.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그 불쌍한 사람에게 달려가 입맞추었다. 그리고 말에 올라 타 사방으로 이리저리 똑똑히 바라보았으나 거기엔 나병환자의 자취도 없었다. 그는 깜짝 놀랐으나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고, 미래에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을 결심하며 큰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대전기 1,5)


프란치스코의 나병환자 체험은 자신의 완전한 내적 변화의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역겨운 일이었으나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그들을 떠나 올 때는, 호개 전의 상태인 역겨움에서 회개하는 이들의 모습인 몸과 마음에 단맛으로 변했음을 내면 깊숙이 느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이 나병환자 체험 후 세속을 떠났다고 말한다(유언 1-3). 그 일이 있은 후, 집과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황폐한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조용히 기도하던 중 그는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세동료 5,13)


프란치스코는 지체 없이 성당 수리에 나섰고, 집안의 옷감을 팔아 성당 수리의 비용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아버지와 심한 갈들에 휩싸이게 되었다.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는 너무나 화가 났고 아들이 미쳤다고 생각되었다. 이런 갈들은 급기야 법원 소송까지 가는 일로 번지게 되었다.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와 아들 프란치스코는 교회 법원의 판결을 받으러 귀도 주교 앞에 섰다. 귀도 주교는 프란치스코가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그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을 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옷을 벗어 아버지의 발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광장에 둘러 선 군중 앞에서 벌거벗은 채 “앞으로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겠습니다.”(1첼라노 6,15) 그때부터 새로운 삶이 프란치스코의 앞길을 인도하였다.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확신으로 인도되었다.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육신의 아버지에게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후 시작한 일은 성당 수리였다.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성당과 성 베드로 성당,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을 수리하게 된다. 그가 한 일은 기초부터 새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허물어진 곳을 수리하여 원상태로 돌리는 일이었다. 그는 모르고 성당 수리를 했지만 특권은 늘 그리스도께 유보했다. 아무도 다른 기초를 좋을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이미 놓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208년 마티아 사도 축일에 포르치운쿨라 천사들의 상 마리아 성당에서 들은 복음 말씀으로 그는 은둔자의 옷을 벗고 회개를 선포하게 된다.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오. 병든 이는 고쳐주고 죽은 이는 일으키며 나병환자는 깨끗이 해주고 귀신을 쫓아내시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시오. 전대에 금화도 은화도 동전도 지니지 마시오. 일꾼은 양식을 얻을 자격이 있습니다. 어느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누가 마땅한 사람인지 살펴보고, 떠날 때까지 거기 머무시오.”(마태 10,7-11) 이 말씀에 대한 사제의 설명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온 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하던 바다.”(1첼라노 22)라고 외쳤던 것이다. 이로써 주님과 복음이 프란치스코의 길이 되었다.


프란치스코의 회개는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먼저 고개를 돌리심으로 시작되었고,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께 자신을 되돌림으로 지속되었다.


3. 끊임없이 회개를 살아가는 사람들


회칙은 ‘복음의 강력한 힘에 자극 받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적 변화에 의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는 것을 회개라 말한다.



프란치스칸에게 있어 초기부터 지금까지 회개란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다. 프란치스코가 전 생애동안 추구했고, 그의 형제 자매들에게 따라야 할 이상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회개의 삶’이다. 프란치스칸의 삶은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를 실행함’이란 말로 요약된다. 프란치스코가 회개를 산다고 하는 것은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사는 것’이다. 따라서 재속프란치스칸의 성소는 바로 ‘회개의 삶’이다.


1) 회개하는 이들


프란치스코가 초창기 ‘회개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보낸 편지는 회개하는 이들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여기에서 프란치스코는 사람을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회개하는 이들’에서는 회개의 길을 걷는 이들의 축복과 기도가 이어지고,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서는 저주와 경고를 한다. 프란치스코는 이 편지에서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인의 축복이 펼쳐지는 ‘회개의 길로 돌아오라.’고 강력히 초대하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회개하는 이들에 대해 말하기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주님의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마태 22,39) 사랑하고, 악습 및 죄악과 더불어 자신들의 육신을 미워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 오, 그런 일을 실행하며 항구하는 남녀 모든 이들은 얼마나 복되고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들인지!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내리고‘(이사 11,21), 주님이 그들을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이며‘(요한 14,23), 그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기 때문입니다.“(참조: 마태 12,50)(1신자 1-7)라고 하였다.


하느님의 아들들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며 그리스도의 어머니들이 되는 것, 이것이 회개하는 이들이 받는 축복이다. 회개하는 이들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직접적인 친교를 누린다. 그러므로 회개의 길은 기쁘고 행복한 길이며 영으로 충만한 삶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회개 중에 있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않으며 악습과 죄악을 일삼고 욕정과 자기 육신의 나쁜 욕망을 쫓아다니며 하느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고 육적인 욕망을 가지고 세속 걱정과 살아갈 근심에 쌓여 세상을 육적으로 섬기는 남녀 모든 사람들, 악마의 짓을 그대로 하고 악마의 자식들이 된 이들은 악마에게 붙들려 눈이 멀었습니다. 참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이 죽든 보속을 할 수 있는데도 보속을 하지 않고 회개와 보속 없이 대죄 중에 죽으면, 당해 보지 않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격렬한 고통과 시련 중에 마귀는 그의 몸에서 그의 영혼을 빼앗아 갑니다.”(1신자 2,1-7. 15)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가 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복음 생활을 실현했듯이 재속프란치스카의 회개는 ‘복음의 강력한 힘으로 자극된’ 회개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던 모든 것에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행동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2) 회개의 실천


우리가 하느님과 일치하지 못할 때 교회는 여러 방법으로 회개의 길을 마련해주고 있다. 재속프란치스칸은 “개인적으로나 형제회 안에서 프란치스칸 성소의 특성을 진작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말씀의 전례,  생활, 반성, 피정, 영적 지도, 참회 예절 등이 있고 그리고 형제회 안에서든 하느님 백성과 더불어서든 공동체적으로 거행하며, 자주 화해의 성사를 볼 것이다.”(회헌 13,1) 재속프란치스칸은 완전한 내적 변화를 위해 회헌이 제시하는 내용들을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악습과 죄악을 미워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며, 기도와 자선과 단식 등으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자선 행위는 끊임없는 회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맺는 열매이다. 회개로 인도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회개 생활을 시작했다고 해도 인간은 나약함으로 인해 자주 죄악에 빠져들어 지속적으로 실행하기가 어렵다. 이 때 화해의 성사는 우리의 회개 생활을 끊임없이 실행할 수 있는 계를 마련해준다.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는 사제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1신자 22)라고 한다 화해의 성사를 준비하는 동안 하느님 앞에서 나의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며, 내가 회개해야 할 부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의 생각과 행동으로 일치할 결심을 하게 될 것이다. 회원은 습관적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과 행동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에게 역겨운 요소들이 단맛으로 변하도록 실천적인 행동을 해야 할 것이며, 매일 매일의 반성과 묵상, 피정이나 전례를 통해 자신의 나약함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노력은 회개를 지속적으로 실행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 재속프란치스칸은 끊임없는 회개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며 하느님 안에 친교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오늘은 회개가 무엇이며, 프란치스코의 회개 과정을 통해 하느님께 돌아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또 우리가 어떻게 회개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았다. 매일의 회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며 여정이다. 회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근본적인 요소이며 우리의 이상인 복음적 생활을 시작하는 문이다. 재속프란치스칸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자주 하느님께 자신을 열어 보이며 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하지 못한 요소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회개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누리는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나의 회개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가?

2. 참된 회개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면의 변화’이다. 내가 체험한 근본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3. 나는 회해의 성사에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있는가?

4. 이웃과 화해하기 힘들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해보자.


과제물

1. 하니과의 화해, 이웃과의 화해인 ‘회개’에 대해 묵상하고 나의 회개할 부분은 무엇인지 적어온다.

2. 회칙 7조와 회헌 14조를 써온다


마침기도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성당에 대한 크나큰 신앙심을 주셨기에, 다음과 같은 마로 단순하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였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유언 중에서-


당신의 정거장

우리는 정거장에서 차를 기다린다.

기다리던 사람을 맞이하기도 하고 아쉬운 사람을 따나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거장은 우리들 눈에 보이는 정거장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정거장을 통해 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정거장에 나가 맞아들이고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을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

희망, 보람, 도전을 맞아들인 사람은 탄력이 있다.

절망, 권태, 포기를 맞아들이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한테는 주름이 나타난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 레일에서 기쁨은 급행이나 슬픔은 완행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찬스를 실은 열차는 예고 없이 와서 순식간에 떠나가나, 실패를 실을 열차는 늘 정거장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정거장에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돌아오지 못한다.

누구이건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택하여야만 한다.

행복이냐, 불행이냐, 기쁨이냐, 슬픔이냐, 성공이냐, 실패냐, 그러나 모두들 행복과 기쁨과 성공을 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열차는 왔다가 탄환처럼 사라진다.

어떠한 순간에도 정신을 놓치지 않는 사람, 꽃잠이 오는 새벽녘에도 깨어 있는 사람, 작은 꽃 한송이에도 환희를 느끼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맞이할 수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정거장은 수평선이나 지평선 너머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현제의 당신 가슴 속에 있다 (정채봉)


참고문헌

사제 양성 18,2

성 프란치스코의 유언 1-3

신자들에게 보내신 첫째 편지 1,1-7

신자들에게 보내신 둘째 편지 2,1-7. 15;22

토마스 첼라노 1생애 6,15,18,22

토마스 첼라노 2생애 6

세동료 전기 37,5,13

익명의 페루지아전기 19

보나벤투라의 대전기 1,5; 2,4; 7; 8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24,26,27,43 참조

회개하는 형제 자매들의 삶 PP 172-194

프란치스칸 소명 PP. 25-37

양성교제 ‘회칙 생활1 PP. 29-34

양성교제 ‘ 야성교제 1 PP. 157-165

성서신학사전 PP 678-683, 광주신학대학

프란치스칸 삶과 사상 2001 특집, PP 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