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프란치스코처럼 제 24장 무지개너머

Margaret K 2019. 4. 12. 18:55

프란치스코처럼 


제 24장 

무지개너머


인생은 많은 시작과 끝맺음으로 엮어진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 가셨을 때 예수님의 사명은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부활하셨고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프란치스코도 자신의 삶의 양식을 그의 동료들이 수행해 나갈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였지만 80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란치스칸은 건재하고 있다. 개인적인 비극은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게 되고, 살아있다고 해서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극을 당한 우리의 이웃을 위해 동정심과 측은함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다. 이것이 인생의 과정이다. 영성적인 의미로는 죽음과 부활이 성령 안에서의 삶을 새롭게 하는 파스카 신비라고 한다.


우리는 입회기의 시작이 형제회 생활의 출발점임을 보았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여정을 따라 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여정을 따라 이를 살펴보았다. 그 안에서 인간적인 약점과 경이로움도 함께 보았다. 그러나 아직 공동체 생활의 토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자로 참여하는 임무를 선택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프란치스코 형제회 안에 두셨다.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들이마시고 프란치스코의 카리스마로 채색된 삶을 내뿜으려고 한다. 얼마나 큰 특권이가! 얼마나 큰 작업인가!


우리의 개성은 각자가 다르며, 나는 내 삶의 중요한 사람들과 가치관을 나누고 장래를 이야기한다. 우리의 가정 교육이 세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라고 말하는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에는 중요한 사람들과 모든 것을 나눈다는 생각을 한다. 이 모든 추억과 경험은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했다. 프란치스칸은 이 사실을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행실을 보신다. 악하게 살았다면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착하게 살았다고 해서 우리의 염원이 채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권한이다. 그런데도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더 받게 되면 하느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게 좋은 일만 있다고 착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삶의 여정을 통해 계속 물어야 할 것이고 우리 연구 자료의 근원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가 밝힌 인식과 가치관을 지속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함에 있다. 우리는 우리를 가르치신 분의 뜻을 거절하지 않고도 인식이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실제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이 격려가 되기보다 부담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가 변화되기를 바란다.


무지개들

프란치스칸 삶이란 무지개가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무지개는 비와 햇빛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무지개는 나타나지 않는다. 비는 햇빛이 무지개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비 없이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없고 , 무지개 끝에 있을 상상적인 금항아리도 없으며, 계약의 표시도 없을 것이다. 인생도 바로 이와 같다. 우리는 비 때문에 우울할 수도 있고 햇빛을 종아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비와 햇빛이 함께 오도록 꾸준히 기다리기도 한다.


창세기 9,12~16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게약의 징표는 이것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두리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새우는 계약의 징표가 되리라.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나는 나와 너의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면시키지 못하게 하리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리라.


무지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약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에게는 늘 희망을 주는 성서가 있다. 하느님은 우리와 맺은 계약을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 프란치스칸은 계약을 신뢰한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프란치스칸으로써 계약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하루 24시간 내내 복음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약속의 한 부분이다. 우리 삶의 양식은 이러한 응답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모두 함께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를 닮아 복음적 삶을 충실히 따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발견하여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좌절하거나 약해질 때, 우리에게는 치유해 주시는 하느님이 계신다. 우리가 어떤 일을 잘 했을 때, 그것을 확인해주시는 하느님이 계신다. 만약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즉시 일깨워 주시는 하느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러한 사실의 대부분은 성서에서 알아 볼 수 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주기에 우리는 일어설 수 있다. 프란치스코의 제자로써 우리는 세상 만물을 예수님과 복음의 시각으로 보고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의 도움은 주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이시로다.


이사야 43,10~11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가 나의 증인니다. 너희는 내가 선택한 나의 종이다. 이는 너희가 깨쳐서 나를 믿고 내가 바로 그분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나 이전에 신이 만들어진 일이 없고 나 이후에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내가, 바로 내가 주님이다. 나 밖에는 구원해 주는 이가 없다. 


이사야 43 1~3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물을 지난다 해도 너에게 넘처흐르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의 구원자이다.

내가 이집트를 너의 몸값으로 내놓고

에디오피아와 스바를 너 대신 내놓았다.


하느님은 우리를 돌보신다. 우리는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친구이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지 못함이 하느님의 외면 때문이라고 상상하여 보라. 우리는 쉽게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는 걸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성서는 많은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예수님이 곧 결정적인 모습이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품안에 계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요한 1, 18)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알고 계신다(요한 3,13~15 참조). 예수님은 훌륭한 인간상을 가지고 계셨다(루가 4,16~21 참조).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신다(마태오 9,10~13 참조). 복음의 눈으로 예수님과 복음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인간성을 찾아라. 이것이 당신 마음을 울리게 하고 당신의 상상을 촉구하게 하라. 이것이 당신 마음을 울리게 하고 당신의 상상을 촉구하게 하라. 프란치스칸은 강생의 신비 위에 자신의 삶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셨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배웠다. 우리 인간을 위해 성령께서 오셨고, 진리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이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심은 진리이다. 프란치스칸은 의식적으로 이 사랑이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도록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삶에 적용시키고 키워나갔다.


사랑의 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싶어하지만

겉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입맞춤을 하며,

손을 잡고 포옹합니다.

때로는 작은 선물이 사랑의 말을 대신합니다.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내 안에서 흘러 넘쳐 서로를 만집니다.

주고받는 말 안에서, 마음 안에서, 침묵 안에서, 눈짓 안에서, 몸짓 안에서

서로를 만집니다.


사랑은 언제나 같이 있으려 하고 느끼려 하고 일치하려 합니다.

사랑 안에서 영원과 순간의 구별이 없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환하게 알게 합니다.


때로는 사랑의 탈을 쓰고는

아름다운 글과 다정한 포옹,

유러한 언변, 훌륭한 문장과 '정중한'악수,

정열적인 포옹, 거침없은 화술,

'서로를 치켜세우면서'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교모한 말과 겉모습 속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습니다. 


숨겨진 거짓 사랑은 감정의 줄을 타고 자라나

거북함, 불편함, 거리감의 느낌으로 자랍니다.

숨은 감정이 결코 외부로 표현된 적이 없고,

말한 적 없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거리를 두고, 벽을 쌓고, 간격을 두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준 사랑에 대해서 대가를 바랍니다.

네가 더 성숙하면, 사랑할께,

네가 더 자라면, 술을 끊으면, 몸무게를 줄이면,

나이 값을 하면, 네 생각을 바꾸면,

좋은 직장을 가지면, 서로 말이 잘 통하면 사랑할께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드러내기는 여러운 일입니다. 

자주 가까이 했음에도, 고독에도, 사랑의 갈구에도,

그러나 고백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으며,

악을 생각지 않으며,

양순하게 감싸주며,

온화하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을 고백했을 때,

사랑의 길을 뒤돌아보고는

영원한 삶으로 이끄시고 당신의 모상대로 지으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랑의 길이며

우리는 이 사랑을 먹고사는 사람들입니다.


1요한 4,7~8,16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실상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고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십니다.


믿으시오. 프란치스칸이여. 믿으시오! 당신의 삶이 당신 신앙을 표현하도록 하시오. 약속한 것에 대해 충실하고 회칙이 매일의 삶을 이끌도록 하시오. 복음이 여러분이 마음을 완전히 채우도록 하고 예수님을 통해 전해진 복음이 당신 자신의 삶을 통하여 증거가 될 수 있도록 하시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거처하시므로 확신을 가지시오.


요한 12,23~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습니다.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루도록 보전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르시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영예롭게 하실 것입니다.'


회칙 제 4조

회원은 특별히 복음을 자주 읽어서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


제3조

이 회칙은 "생활지침"(Memoriale Proposisi, 1221년)과 니콜라오 4세 (1289년)와 레오 13세 (1883년) 교황 성하께서 인준하신 회칙에 이어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변천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성 교회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회칙의 해석은 성좌가 하고, 그 적용은 회헌과 특별규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 3조의 요점은 많은 설명이 필요 없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의 역사에는 세 명의 교황이 관련되어 있으니, 니콜라오 4세, 레오 13세와 바오로 6세이다. 각 교황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새 회칙을 마련해 주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각기 특정한 시대에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변천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성 교회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게 하려는" 이 부분이 '레오 13세 회칙'을 개정한 이유이다.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위하여 새 회칙을 쓰는 작업은 1960년대 시작되어 거의 15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이 회칙은 성급히 쓰여진 것이다. 오히려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심사 숙고하여 훌륭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1978년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 회칙을 승인하였다. 이 회칙은 재속 프란치스코회가 지켜야 할 지침이다. 이 회칙은 프란치스칸 가족의 일원으로부터 재속 프란치스코회가 갈라지지 않고 목표를 위하여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프란치스칸은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힘을 합하고자한다. 우리는 협력해서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문제가 되는 쟁점들을 발언하고 계획한다.


서약은 이 길을 걷기로 결정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이 선택은 많은 생각과 기도로써 결정된 것이며 복음의 이상과 복음의 가치로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노력은 개인적인 것이든 공동적인 것이든, 이 목적에 초점이 모여 있다. 우리 자신부터 변화되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사랑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복음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를 들고 기도하고, 성서에서 생각을 얻는다. 우리는 사람들을 돕고 전 사회를 돕는 일에 실질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성서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형제회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든가, 단지 사교적인 모임이 된다면 이러한 핵심을 잃고 있는 것이다.


모든 회원은 형제회의 모임을 의미 있고 기쁜 모임이 되도록 해야할 큰 책임이 있다. 대화는 즐겁고 신중해야 하며, 모든 회원들은 출석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회의 활성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서약은 이러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우리의 의무이다.


회칙을 해석하는데 의견의 충돌이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헌을 찾아 볼 수 있다. 회헌과 규정 들의 법규가 명백하게 이를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안되면 상급 형제회에 문의할 수 있다. 만약 그 문제가 상급 형제회도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 국제 형제회를 통하여 로마 교황청에 해결을 요청할 수 있다. 


에수를 알고서

주님, 생활은 삶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삶 너머를 보게 하는 힘을 줍니다.

믿음은 서로 나누기를 원하고

희망은 당신의 힘을 믿는 것이기에

나 예수님 안에서 그 첫 시작을 합니다.


예수님 당신은 

당신을 감추시고 비천하게

그러나 영광 중에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가난고 두려움과 굶주림으로 

신비롭게 오셨습니다.

고요한 침묵의 큰 힘으로

일의 결실 속에서도 조용히

그렇게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오셨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길이 아닌데도

당신은 그렇게 오셨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고통과 아픔,

그리고 기쁨 안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고통 자체에 동참하기보다

평화로이 아픔을 참아 받으며,

피조물 안에서 기뻐하기보다

당신이 거기 계시기에 기뻐합니다.


말씀이 거기 계시기에

복음 안에서 기뻐하며

당신이 거기 계시기에

성체 안에서 기뻐합니다.


주님, 프란치스코를 따르도록 도와주소서.

나 당신을 따르기 소원이오니,

이 길을 가도록 도와주소서.


<프란치스칸 공부>

아시시에는 상점들이 즐비한데 좋은 물건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제가 아닌 것도 있는가 하면 그 지방 예술가가 만든 아름다운 작품도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특별한 물건을 사려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답니다.


그곳에서 딸과 같이 상점을 운영하는 이탈리아 할머니를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영어를 못했고 나는 이탈리아어를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우리는 음악으로 곧 친구가 되었답니다. 나는 파바로티 노래를 들으며 이탈리아 곡조를 익혔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그 상점에서 할머니와 나는 노래를 같이 부르곤 하였습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그 상점에서 함께 노래를 하고 춤추며 즐거워 하였슺니다. 어떤 날은 다른 사람들까지 와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였습니다. 음악을 나누자 언어의 장벽 같은 것은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단순하게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인 수도자와 이탈리아 할머니가.


그 경험은 나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무얼 하라고 초대하였는가 하는 상징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뿐더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서로의 벽을 허물고 기뻐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자. 아니 노래할 구실을 찾자. 그러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위에 예수께서 주신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를 함께 모으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현실입니다."(2고린 4,7)


<토의 주제>

1.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당신은 어디에서 큰 영향을 받았는가?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

2. 성체의 신비를 당신 삶 안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3. 우리와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하여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창세기 9,12~17에 나오는 계약을 성서에서 묘사하고 있는가?

4. 회원들이 형제회에 갖고 있는 책임을 열거하라. 이 책임감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5.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무지개를 창조할 수 있는가? 복음적 이상과 가치를 전파하는데 어떤 자질을 갖출 것인가?

6. 서약은 영원한 것이다. 서약이 다가오니까 느낌이 어떠한가? 왜 계속해서 양성을 받아야 할까?

7. 회칙을 해석하는데 누가 최종적인 권한이 있는가? 재속프란치스코회에서 결정이 필요한 일에 대하여 원칙은 어떠한가?


<성서 묵상>

+필립비서 1,3~11

사도 바오로의 이 말을 묵상하고 서로 나누시오. 이 구절과 프란치스칸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