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프란치스코처럼 13 프란치스칸과 가정생활

Margaret K 2019. 3. 16. 02:12

프란치스코처럼


제13장  

프란치스칸과 가정생활


오늘날 우리의 가정생활은 심각한 혼돈가 갈등에 직면하고 있는 젊은 부부들은 그들의 부모를 떠나 핵가족을 이루고 있다. 또한 부모들은 과중한 엄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과 같이 놀아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결혼생활은 이혼과 별거로 얼룩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원만한 부부생활을 하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고 있다. 많은 어린이들은 안정된 결혼생활에서 오는 사랑보다 이혼을 먼저 알게 된다. 통계에 의하면 결혼한 부부의 절반이 이혼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혼으로 인한 파탄은 어떤 모습이 건전하고 좋은 부모의 모습인지를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부모가 어느 한쪽만 있다든지 또는 여러 명의 부모를 거친다는 것은 어린이가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가지 예에서 보듯이 그렇게 자란 어린이들은 건전하고 모범적인 부부 생활에 대하여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안전에 대한 결여는 삶의 의미를 모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회적인 통념으로서는 삶의 의미에 대해 돈을 벌면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좋은 직업을 갖고 많은 봉급을 받게 되면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주변의 광고물들은 우리가 만일 시대에 뒤떨어진다면 행복한 삶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최신의 스타일과 최신의 컴퓨터, 최신의 자동차와 흥미로운 취미 활동의 추구, 헤어스타일, 육체미, 날씬함 또는 젊게 보이기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듣게 된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간혹 어쩌다 한번 생각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한 모든 것이 좋다고 배우게 된다. 자신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 활동과 태도, 행동에 대한 옳음과 그름을 결정한다. 어느 누구도 네가 하는 일을 간섭하지 못하게 하라. "각성제가 우리의 근심 걱정을 잊게 한다. 그러니 몇 가지 약품을 합법화하라. 우리가 황홀한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중독에 빠지는 것쯤이야 괜찮다."고 말한다. 또 의학이나 과학의 실험에 있어서도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는가?" 이지, "이것을 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가 아니다 윤리는 이미 구닥다리이므로 다양한 기술 속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쿄육제도의 몇 가지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데에만 폭표를 두고 있다. 직업을 가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는 비윤리적인 시대에 둘러싸여 있다. 그 누구도 만지고 보고 경험하는 물질세계 너머에 있는 존재의 근원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는다. 초점 없이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고, 삶 자체는 거의 가치가 없다.


이것은 25세의 젊은이들이 성 경험을 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는 이 시대에 특히 더 그렇다. 12살 밖에 안된 여자아이가 산모가 된다. 성에 대한 건전한 개념이 없으며,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성관계를 해서는 안된다는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미혼모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로 인한 무서운 요청에 직면하게 된다. 젖먹이가 어린 미혼모의 삶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의 문제를 가져온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 가정 안에서 겪고 있는 문제의 일부이다. 이러한 문제에 책임을 지는 것은 부모나 당사자인 어린 미혼모에게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며, 새로 태어난 갖난아이는 책임을 질 줄 모르는 그의 어린 미혼모에게 의지하게 된다. 비난하고 나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루기 어려운 여러가지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문제이다.


재속 프란치스칸 생활 양식은 믿음의 관점에서 가정생활과 인간관계가 중시된다. 재속 프란치스칸 생활양식은 결혼 생활의 경이로움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삶의 의미는 주식시장의 소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따름으로써 얻는다. 재속프란치스칸은 배우자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젊은 부모들은 세상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라'라는 지침과, 해서는 안되는 한계를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재속 프란치스칸은 아이의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행동을 주시한다. 다루기 힘든 상황과 이웃 관계 안에서 안전하고 위험하지 않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함께 힘을 모은다. 마약과 알코올로부터 자녀들이 보호받도록 노력하며,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마약과 알코올 들으로 인한 무책임의 결과를 가르친다. 아이의 친구들이 아이를 예상치 못한 다른 길로 이끄는 일은 다반사이다.


재속 프란치스칸으로서 삶의 의미를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녀들엑 삶의 의미를 억지로 부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뜻을 실행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 자신의 생활 태도, 즉 고통과 괴로움, 여가 선용, 인간관계에 대한 그들의 생활 태도가 건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전달하려고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삶을 통해서이다. 사람들은 관대하고 친절한 마음을 지식으로 알기보다는 봄으로 써 더 쉼게 배우게 된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봄으로써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다시 말하면, 가정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사회적인 관습이 가정의 중요성을 아무리 간과한다 하더라도 가정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이 크다. 


남자와 여자

태초에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만들어졌다(창세 1,27). 교회의 많은 책들은 하느님을 남자로 그리고 있지만 성서는 항상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성의 차이게 대한 것보다 성서에서 우리에게  하느님 모습에 대하여 제시하는 것만을 따라가기로 하자. 이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모습을 살펴보자.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청새거 1ㅡ2) 하느님은 빛의 원천이시다. 빛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었다. 여기에 남성과 여성의 구별은 없다. 단지 창조하시는 하느님이 계실 뿐이다. 


탈출기에서 우리는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하는 당신 백성들을 염려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과 햇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탈출기 3,7~8) 하느님은 자상하신 분이시며 힘있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인정이 많으신 분이시며 당신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해 주시는 분이시다. 위대하신 하느님께서는 노예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고 염려하신다.


신명기 15,7~8,10

주 너의 하느님께서 너에게 주시는 땅 어느 성에서 너의 동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있거든, 가난한 그 동족에게 매정한 마음을 품거나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너의 손을 활짝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어야 한다. 너는 그에게 반드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줄 때에 아까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이 일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가 손대는 모든 것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


이 말씀이 하느님의 본성을 얼마나 잘 나타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는 하느님을 남자와 여자로 나타내지 않고 남자, 여자 모두를 포함하여 나타내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의 어머니보다 더 어머니다운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수님은 어미 닭을 비유로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을 말씀하신다. 성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남성과 여성의 모습으로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 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이사야 66,13)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15)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있다."(이사야 49,16) "예루살렘, 예루살렘, 예언자들을 죽이고 보냄 받은 사람들을 돌로 치는 것아! 암탁이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식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당신네는 끝내 마다했소"(루가 13,34)


하느님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형상은 남성과 여성을 의미하는 것보다 더 넓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남자와 여자로 논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하느님을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신비스런 분이시다.


호세아 11,1~5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재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에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시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기고 젖먹이처럼 들어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고 아시리아가 바로 그들의 임금이 되리니 그들이 나에게 돌아오기를 마다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느님은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사랑으로 만이 표현할 수 있는 타오르는 분노를 드러내신다.


호세아 11,8~9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브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트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하느님의 분노는 사소한 일이 아니며 하느님이 분노를 억제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 성서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모습은 매우 깊은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아빠의 형상에 대해서 하느님을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서 묘사하고 있다. 루가 15장에 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강렬하다면 우리의 아빠는 어떠한 모습인지를 생각해 보자 하느님은 우리의 제한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으신 분이시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야 55,9)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건전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마도 한 쪽이 없다면 불평을 할 것이며 하나의 성으로 두 역할을 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건전한 가정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서 가장 잘 유지되며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한 쪽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을 다룰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프란치스칸 가족은 형제적인 가족 안에서 남들의 요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필요한 것을 알기 위하여 서로 방문해야만 한다.


가정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든 가정에 적당한 답은 없다. 필요한 것은 가정을 가진 부부가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대화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칸은 이러한 요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그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프란치스칸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우선권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아야 한다.


어린이들이 자랄 때에는 그들이 탐구하는 자유와 함께 해서는 안될 한계도 알려주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융통성 있게 만족시켜주는 틀은 없다. 어린이와 부보들은 갈등을 겪게 되고 아이 친구들의 영향력은 부모의 영향력과 대등해지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하여 상식과 이해가 요구된다. 7세 초등학생과 15세 중학생을 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규칙을 독단적으로 그리고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으며 유연성이 필요하다. 규칙은 너무 구체적이어서도 안되고 너무 단순해서도 안된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재속 프란치스칸 부모들은 자녀들을 기르는데 있어서 많은 문제에 부딧친다. 하느님을 믿는 믿음조차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부모들은 어린이들의 질문에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의문의 과정은 종교적인 이해를 돕는데에 좋은 기회가 되므로 부모는 자녀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어야 하고 자신의 신앙도 계속 성장시켜 나아가야 한다.


가정 안에서 각 사람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강압적인 면 대신에 모든 가족구성원은 그러한 변화를 성장을 위한 기회로 삼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희망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우리는 변화해 가야할 것이다.


가정생활을 위한 행복선언


자녀가 우유를 엎질렀을 때. 벽에 낙서를 했을 때, 용서해 주는 부모는 복이 있다.

그들은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10대들의 고민과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부모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장의 과정을 알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부모는 복이 있다

지식은 이해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부모는 복이 있다.

그것은 안정의 기초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화를 내거나 분노하기보다 '안된다'라고 말을 하는 부모는 복이 있다,

확실한 결정은 안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이들을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 부모는 복이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기질에 맞추어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위하여 시간을 마련하는 부모는 복이 있다.

그들은 미래의 시간을 절약할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부모는 복이 있다.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벙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세계를 변화시켜 가는 임무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안정되고, 창조적이고, 화목하고, 사랑스런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은 모든 가정의 일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문제에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정 생활에서 문제는 있게 마련이다. 비극과 손실이 재속 프란치스칸 가정이라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없다.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로멘틱한 사랑과 더불어 많은 대화와 상호 의견교환, 기본 신앙과 가치관에 대한 일치를 의미한다. 성생활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에 그 안에 포함된다. 프란치스칸은 결혼 준비를 도와주는 좋은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참여한다.


좋은 가정 생활이 가정 안에 있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화를 통한 사랑과 가치는 부모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도움을 준다. 일생동안 이러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결혼의 중요한 기준으로써 성 또는 기쁨에 대해 성숙하지 못한 사용은 결혼생활에 실패를 가져오게 된다. 결혼 생활에서 서로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배우자로서 책임성 있는 판단이 아니다.


두 사람이 그들의 삶을 서로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고, 서로가 모든 것을 공유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성숙, 존경심 그리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은 필수적이다. 결혼생활이 성숙되어 갈수록 신혼초기의 사랑이 자라고 꽃을 피워야 하며, 삶의 태도를 변화시켜가야 하는 것은 계속 되어져야 할 일이다.


프란치스칸 부부는 예수님 안에서 신앙의 의미를 발견한다. 프란치스칸 생활양식은 그들이 따르기로 선택한 좁은 길이다. 복음의 말씀과 신앙의 가치들은 생활 안에서 최우선적이며, 부부 관계의 정직과 믿음은 사랑 안에서 나눔과 대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사랑은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서로간의 신뢰를 요구한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가 신앙 안에서 성장함에 따라 발생하는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일 뿐만 아니라 노력이다.


사랑의 표현은 말과 행동으로 일치를 이루고 표현되어야 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서로를 용서할 필요가 있다. 부부는 사랑 안에서 성숙되어 나가야 하며,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몇몇의 부부들은 같이 살지만 결코 친밀하게 지내지 못한다. 같은 집에서 산다고 해서 즉각적인 친밀함이 생기지는 않는다. 배우자에게 자신을 표현하려는 준비만이 이 친밀함을 가져올 수 있다. 그들은 기도가 필요하며, 예수님과 친교를 나누고 유지하는 방법으로써 신앙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프란치스칸 부부는 지나친 욕심과 인색함과 단순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요란한 생활태도를 피해야 한다. 부부는 함께 생활하면서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서로 깊은 인간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침대를 정리하고 빨래를 하는 것은 어린이와 배우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갖고 싶은 것보다도 필요성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돈과 사치스런 생활 태도는 소박한 생활과 풍부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의해서 조절되어져야 한다. 


부모는 사회적인 친구들과의 만남과 활동도 필요하다. 자녀들도 돌보아야 하지만 부모 자신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친구관계도 중요하다. 합리적인 선에서 사회적인 봉사에 참여하는 모습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봉사의 가치를 보여주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것은 균형 있는 활동이어야 하며 현실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생활은 급격히 쇠퇴할 수 있다. 가정의 구성원들은 모두 도움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인간적인 성숙을 가져오게 되고 신앙의 성숙을 꽃피운다. 만일 도움이 필요하다면 건전한 가족 구성원에게 도움을 구할 것이다. 가정이란 개인주의만 있는 장소나 시간이어서는 안된다.


성장의 몇 가지 요소

가정생활과 배우자 관계에서 우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한 다음 몇 가지 제안은 도움이 될 것이다.

1. 우리는 한계를 지녔으며 우리의 모든 요구를 다 만족시킬 수 없지만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2. 사랑 안에서의 성실함은 매일매일의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이 결혼했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3. 친밀함은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온다는 점을 기억하라. 서로에게 자신을 감추면 감출수록, 진정한 친밀함을 이루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4. 자녀들이 결혼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이 쏠려 부부는 서로에 대하여 잊을 수 있다. 그렇게 만들지 마라.

5. 보는 것이 믿는 것임을 기억하라. 당신의 행동은 큰 소리처럼 울린다. 당신의 행동은 말고 일치함으로써 당신의 자녀들에게 선물이 된다.

6. 규칙은 도구임을 기억하라.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말고 오히려 공정함을 나타내는 유연함을 드러내라. 엄격함은 가정생활의 덕이 아니다.

7. 당신의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표현되어야 함을 기억하라. 만일 사랑의 표현이 없다면 우리는 사랑이 존재하는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배우자가 당신의 사랑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리는 사랑의 말을 듣고 사랑의 행동을 느끼고 사랑이 없다면 시들어 버리는 인간임을 기억하라.

8. 어린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것임을 기억하라. 벌을 줄 때는 합리적을 주고 화를 내지 않도록 하라.

9.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들과 함께 있어 주고 그 충격을 너무 많이 감소시켜 주지 말아라. 그들은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를 배울 필요가 있다. 만일 그들이 행동의 결과에 대한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나쁜 행동을 계속 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강인한 사랑이 필요하다.

10 자녀들이 성장해 갈 때에 자녀들의 삶에 간섭하지 말고 어른이 되게 하라.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고 그렇지 않으면 일일이 간섭하지 말아라.

11. 가정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매우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이다.

12. 자녀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들이 잠재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였을 때 책임을 지려고 하지 말아라.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므로, 그들의 책임에 끼어 들지 마라. 

13. 좋은 조부모가 되도록 하되 너무 지나치지 말아라. 당신은 아직 살아가야 할 당신의 삶이 있다.

14. 가정 밖에서도 건전한 관계를 유지해 가야 한다.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라.

15. 각 가정의 구성원들이 가정의 전통과 생활방식을 창조해 가야함을 기억하라. 다른 사람의 모범이 도움이 되겠지만 당신의 가정에서 행하는 일은 가족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16. 다른 부부들과 공동 관심사에 대하여 함께 하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만이 뮨제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7. 만일 당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찾는데 주저하지 말아라.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특권을 갖도록 허용하라.


골로사이 3,12~16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동정심, 친절, 겸손, 온유, 인내를 입으시오. 누가 누구를 탓할 것이 있다 해도 서로 참고 은혜로이 용서하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은혜로이 용서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시오. 사랑은 완덕의 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을 다스리게 하시오. 이 평화를 위해 한 몸 안에 부름받았으니,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물게 하며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시오, 성시와 찬가와 영가를 은총안에서 마음으로 하느님께 노래하시오.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

제17조

회원은 가정 안에서 평화와 성실, 생명 존중의 프란치스코 정신을 살아,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된 세상의 표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부들은 혼인의 은혜를 살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서 증거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순수하고 개방적인 크리스천 교육으로 각 자녀의 성소에 유의하면서, 자기 자녀와 함께 인간적이고 영적인 여정을 기쁘게 걸어가야 한다.


해설

재속 프란치스칸은 삶에 있어서 더 나은 몇 가지 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특별히 강조할 세 가지 점은 평화와 봉사와 충실이다. 


평화 

평화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적대감의 극복을 의미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다. 사람들이 안전감을 느끼고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이 관심을 받고 있음을 느끼는 분위기이다. 평화는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며 거절되는 경우가 없는 곳이고 김빠진 시시한 장소가 아니다. 평화는 직접 사랑으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기대감으로 대화하는 곳이다. 평화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가정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하여 완전한 이해를 하게 하는 곳이다. 평화는 인간적인 실수가 허용되는 곳이며, 또한 실수를 지적하여 다시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곳이다. 


평화는 사랑의 마음으로 부터 온다. 사랑은 아무리 일이 어렵다 하더라도 강하게 견디어 낸다. 가족 구성원의 평화는 그들이 항상 환영받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앎으로서 온다. 평화는 아무리 갈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랑의 갈등은 우리를 지켜주는 일부분이 된다. 가끔 가정 안에서의 긴장은 무엇이 잘못되고 있다는 메시지이다. 긴장은 가정생활 안에서 무엇인가가 고쳐지고 알려져야 한다는 표지이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다. 그러나 사랑의 해법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모든 사람들이 문제점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한다. 


봉사

우리는 외딴 섬에 살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채울 수는 없다. 사람들의 필요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모습이듯이 모두 다르다. 봉사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다. 필요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으며 프란치스칸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고 채워주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재능에 합당한 봉사 직분을 찾아야 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 봉사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 생활은 봉사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가끔 봉사의 역할이 가정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정을 벗어나 봉사의 법위를 넓혀가는 것이 또한 필요하며, 중요한 것은 이를 행하는 것이다.


크리스천 교육

프란치스칸 부모는 교육자이다. 그들은 자녀들을 믿게 할 수는 없지만 배움과 믿음이 자라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는 있다. 그들 믿음과 충실성은 자녀교육의 밑거름이 된다. 사회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자녀들에게 가르침이 된다. 그들이 찬성하는 정치적인 정책이나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생각은 자녀들에게 좋은 가르침이 되고 서로를 용서하는 마음은 자녀들에게용서를 실천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의 열린 애정 표현은 자녀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리치게 된다. 


충실 

프란치스칸 부부는 서로에게 충실하여야 한다. 자신의 결혼에 대한 맹세는 부부 이외의 다른 이들에 대한 우정의 표현에 한계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를 잘 이해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며 다른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즐기고, 우리를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거기에는 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애정과 비교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부부 사이의 충실성이 높게 평가되지 않고 있다. 첫번째 어려움은 자주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칸 부부는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충실성에 대한 힘든 노력은 그들의 삶에 종요한 요소이다. 충실한 사랑에 대한 안전함은 강조되어야 한다.


간음은 이 세상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것은 배우자에 대한 충실성의 결여를 의미하며, 자신에 대한 불충실을 의미한다. 프란치스칸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충실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네가 장차 당할 고통을 겁내지 말아라. 보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려고 너희 가운데 몇몇을 감옥에 던지려 하고 있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너희는 죽기까지 충실해야 한다.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주겠다."(묵시록 2,10)


생활에 대한 존경

프란치스칸은 예수님이 생명의 원천이시고 우리의 삶의 빛이심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은 고귀한 것이다. 삶을 파괴하고 위축시키는 것은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프란치스칸은 모태 안에 있는 생명에서부터 노인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존경심을 가지고 생각한다. 생명에 대한 존경심은 영혼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도둑이 온 것은 다만 도둑질하고 잡아죽이고 망치려는 것이지만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0,10)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며

삶이란 주는 것입니다.

재능은 선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

쉬운 삶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강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해낼 수 있는 일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일을 해 내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당신 자신 스스로가 기적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내게 주어지는 삶의 풍요로움이

매일 당신 자신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누구나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바로 당신 곁에 

당신을 생각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까푸친 작은 형제회 솔리누스 케이시 신부-


<프란치스칸 공부>

성 프란치스코는 고독을 매우 사랑하셨다. 중부 이탈리아의 동굴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시간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고독은 가르침의 동반자였다. 그는 가난 부인을 의식하고 살아왔으며 예수님에 대한 지식 안에서 꽃을 피웠다. 그는 복음에 충실할 수 있는 자신의 활동 안에서 성장해 갔다. 명상과 활동 사이에는 갈등이 없었으며 단지 조화가 있었을 뿐이다. 


'은둔소를 위한 회칙'에서 프란치스코는 셋 또는 네 명의 형제가 같은 은둔소에서 살도록 했다. 두 사람은 어머니로서 마르타 역할을 했고, 두 사람은 마리아로서 고독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마르타는 마리아에게 봉사했다. 이것이 가정의 일이며, 아무도 혼자가 아니다. 형제들을 위한 봉사는 기본적인 공통 분모이다.


이 간단한 규칙 안에 건전한 정신이 있다. 어린이를 돌보는 것, 환자 또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해서 시간을 내는 것은 프란치스칸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다. 서로를 위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 구성원들과 우리 자신을 위하여 이 일을 수행하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은둔소의 형제들은 공동체로부터 떨어진 것이 아니고 재속 프란치스칸은 기도의 고요함을 찾아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형제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 조용한 장소를 찾도록 돕는다. 은둔소를 위한 규칙은 우리가 서로에게 기도의 장소를 찾는 것을 도와주도록 초대하고 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시오. 나를 믿는 이는 마시시오. 성서가 말한 대로 '생명수의 강이 그의 배에서 흘러나올 것입니다."(요한 7,37~38) 성서의 말씀대로 "그 마음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토의 주제>

1. 오늘날 가정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프란치스칸은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하는가?

2.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는 가정생할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가?

3.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하느님의 이미지를 갖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것이 가정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4. 결혼생활에서 충실성은 어떨게 지켜질 수 있는가? 왜 그것은 중요한가?

5. 평화와 봉사와 생명에 대한 존경을 자신의 말로 정의해 보시오. 이것들은 가정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6. 부부가 좋은 가정생활을 만들어 나가려면 어떠한 태도가 가장 중요한가?

7. 좋은 가정과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고독과 기도는 무슨 역할을 하는가?


<성서 묵상>

+1데살로니카 4,9~12

사도 바오로는 사랑의 생활 안에서 계속 회개하기를 초대한다.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도 바오로는 사랑하기 위해서 어떠한 태도를 원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