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프란치스코처럼 제 5장 성서에 귀를 기울이는 삶

Margaret K 2019. 2. 17. 05:56

프란치스코처럼 


제 5장

 성서에 귀를 기울이는 삶


프란치스칸과 성서는 서로 너무도 잘 어울리는 관계이며, 성서는 프란치스칸 삶의 원전이다. 성 프란치스코에 의하면, “주님께서 나에게 몇몇 형제들을 보내주신 후, 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지 않았지만, 가장 거룩하신 주님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복음의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고 계시하셨습니다.”(유언 14)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은 이렇게 말한다."이 형제 자매들은 각자 재속 신분으로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성령께 인도되어, 서약으로 교회가 인가한 이 회칙에 따라. 성 프란치스코처럼 복음적 생활을 추구한다. "(회칙 제 2조) 초기 공동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계시 자체였다. 예수님과 그분을 증언한 공동체는 신약성서가 쓰여지기 전부터 있었다. 그 공동체가 겪은 경험들을 대부분 복음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각 복음서는 성령의 인도로 하느님의 계시를 증언하고 있다. 


성서에 귀기울이는 방법들

1.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고 성서의 의미가 우리를 어떻게 감동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묵상한다.

2. 성서의 인간적인 차원은 성서 저자의 성격과 당시 시대의 관점이 반영되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3. 성서 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발견할 수 있는데, 하느님이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시려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4. 우리 자신이 성서의 사건 안에 들어가 말씀을 듣는다면 내 삶의 이야기가 성서 속에서 어떻게 반추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5. 성서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신앙의 진실을 찾아볼 수 있다.

6. 성서 속에서 하느님이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성소 속에서는 우리의 배반으로 인해 하느님이 슬퍼하시는 것과 우리를 용서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새로운 약속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7. 성서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분의 인간적인 감정들, 그분의 의지와 힘, 고통과 가르침, 그리고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배려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로 주님의 말씀을 저술한 책을 성서하고 부른다. 성서와 성전, 둘 다 인간 가운데 계신 예수님 존재의 신비체를 밝힌다. 성서 연구를 하느데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각각의 방법은 본문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어떤 통찰력을 제시해 주지만, 그 어떤 방법도 성서의 의미를 완전히 해석하지는 못한다.


 

1.    먼저 성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해 그는 무엇을 알리고 싶어하는가?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는 어떤 방법들을 동원하였는가? 따라서 우리는 성서 저자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 문화, 언어, 그리고 성서의 자료 등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성격과 그것이 성서의 본문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기도 해야 한다.

2.    성서 저자가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해 쓸 때 어떤 저술 방법을 택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저자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적 배경을 떠나서 일화나 비유 들을 이용해서 진실을 전달하려 하고, 때로는 반어적 표현이나, 우화, 상징적 표현 등을 쓰기도 한다. 저자가 어떤 표현 방식을 썼는지를 아는 것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3.    성서의 한 구절이나 책의 일부는 성서의 다른 부분들과 같은 맥락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성서의 한 부분을 이해하면 다른 부분의 이해도 가능해진다. 복음서의 용어나 개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전(Tradition)을 통해 알아볼 수도 있다. 복음서나 성전에 거스르는 성서 해석은 다시 재분석될 필요가 있다.

4.    계시는 이미 주어졌어도, 그 계시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도 과제로 남아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로부터 더욱 깊은 중요성과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학자들은 성서나 성전을 더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

 

성서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세상에 알리는 이들이 늘 있어 왔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미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이들을 위한 넘치는 가능성들로 가득 차 있다.

 

근본주의

성서 해석을 둘러싼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나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가 논박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겠군요.” 그녀는 반박하였다. “나는 그 정도로 융통성 없이 성서를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근본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성서 공부가 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더도 덜도 말고 성서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표현방식들을 연구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성서를 번역한 말 한마다 한마디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근본주의의 주장들을 알아보기 전에, 그것이 단정적인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이 모두 그렇듯이 근본주의도 그 정도는 다양할 수 있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따르는 사람도 선량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근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견해도 여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인정하고, 근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견해도 여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들을 고정관념의 시각으로 보지 않길 바란다. 비록 우리가 그들의 성서 해석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그들의 성실한 노력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복음은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정중하게 대하기를 가르치고 있다. 당신이 근본주의자를 만나면 상냥하게 그의 말을 들어주고, 좋은 신앙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과 일해야 한다. 그들과 성서에 대해 언쟁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근본주의자의 믿음에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가르침이 바탕이 된다.

1.    성서는 결코 오류가 없고, 틀리지 않으며 문자는 영감을 받아 된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신성은 동정 마리아로부터의 탄생을 통해 증명된다.

3.    예수님의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

4.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이전의 모습대로 부활하심을 믿는다.

5.    우리이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속죄하셨음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근본주의는 극단적인 이원론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과 인간, 신성과 인성, 영혼과 육신 등으로 분류한다.

1.    근본주의자들은 성서를 저술한 이들의 저술 능력은 정지된 상태에서 하느님이 그들을 그저 비서와 같이 쓰게 하셨다고 믿는다. 반면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성서 저자와 그들의 인간적인 능력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도록 한다고 믿는다.

2.    근본주의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하느님이실 뿐이지 인간적인 면모는 거의 없다. 그들은 성자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들이 구원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가톨릭 신자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우리가 구원된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인간 본성을 지니셨고 인간 가운데 사셨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와 함께 나누신 것이었다.

3.    근본주의자들은 죽은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 그들은 예수님이 1세기경에 우리를 떠나 천국으로 가신 한 유다인이라고 믿는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부활하셨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영원히 계신다고 믿는다.

4.    근본주의자들은 세상은 악이고 세상 안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현세는 하느님으로 인해 파멸되고 다시 창조되어야 한다고 하며, 심판날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믿는다.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이 세상에 강생하신 하느님을 믿고, 세상은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신성한 상징들로 넘쳐흐른다고 믿는다. , 하느님의 예언대로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에게 현존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의 신성함을 믿는다.

5.    근본주의자들은 인류의 본성이 악하다고 믿으며 유일무이한 놀라운 은총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 거기에는 중간이 있을 수 없고, 중재자도 없으며, 오직 하느님이 이 악한 세상에 오시어 구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이 우리 공동체의 만찬, 성찬식, 입회식, 화해와 치유의 순간들, 결혼과 장례식 등 모두에 함께 계신다고 믿는다. 또한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심으로써 우리의 중재자 역할을 하셨고 믿음의 공동체에서 성령의 선물을 우리에게 내리신다고 믿는다.

 

성 프란치스코가 이야기한 다음과 같은 말은 근본주의자들에겐 너무 대담한 표현일 것이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그런 이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마태오 12,50) “여러분은 값을 내고 사들인 사람들이니 이제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시오.”(1고린 6,20) “이처럼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오.”(마태오 5,16)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참조.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에게 있어 예수님은 신적 권한으로 먼 발치에서 세상과 인간을 조종하시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과 성령의 은총을 통해 그분의 자녀들 가운데 항상 함께하시는 사랑의 존재였다.

 올바른 성서 교육의 필요성은 명확하다. 프란치스칸에게 이것은 필수적이다.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살아있는 삶의 지침으로 수용하고 그 속에서 오늘날 이 세상에 전달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온 마음으로 듣고 받아들인다. “누가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하실 분이 따로 계십니다. 내가 말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입니다”(요한 12, 4~48)

 

어떤 가톨릭 신자들은 근본주의적인 자세로 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교회법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반면 정해진 규정 안에서만 행동하면 안심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성령의 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규정을 따르되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있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늘 가진다. 내가 어떻게 나의 해석이 맞다고 가정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영어 해석이 정확하다고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누가 나의 해석이 맞다고 결정할 수 있는가? 어떤 판단의 기준이 나의 해석이 맞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만약 또 다른 근본주의자가 본문 해석하기를 달리 한다면? 내가 어떻게 어떤 것이 정확하다고 알 수 있는가? 본문에 다른 이해와 방법이 있는가?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를 믿고 확신한다.

 

성서

성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하느님이 전달하고자 하시는 진리가 인간에 의해 인간의 언어로 저술된 것이다. 성서는 그들의 성격과 교육, 세상에 대한 이해, 그들의 문화와 그들이 살았던 시기를 반영한다. 성서의 언어는 영감을 받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그것은 과학적이기보다는 신학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성서의 역사는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적 관점과는 다른 관점으로 쓰어졌으며, 다양한 모습의 변화와 신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보통 원본의 번역판을 읽게 되는데 번역은 완전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번역을 하면 단어와 그 의미는 종종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게이(Gay)'라는 단어는 어떤 맥락에서는 '즐거워함'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또 다른 맥락에서는 '동성연애자'로 해석될 수 있다. 언어의 의미가 바뀔 수 있을 뿐 아니라, 쓰어지는 언어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언어를 연구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데, 이미 번역된 글도 늘 재번역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개신교의 번역을 제외하고 공동 번역과 200주년 번역 등이 있다.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만약 삶의 문제들이 막막하기만 할 때 성서를 읽으면 우리는 혼란스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반면, 모든 일이 잘되어 가고 있을 때는 또 다르게 듣는다. 우리가 무엇에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 성서의 말씀이 각각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최대한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는 그 말씀을 겸허한 자세로 들으며 그 속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서의 구조

성서란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저술된 여러 권의 책들이다. 여러 저자들이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그들은 사회와 역사의 다양한 계층 출신들이었다. 예를 들면 랍비와 율법학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바오로가 쓴 책은 어부였던 베드르가 쓴 책과는 서로 다른 점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그저 서로 다를 뿐이다. 또한 예언자들은 시편의 저술가들과는 다르게 쓴다. 그와 같은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좀더 현명하게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구약성서를 나누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구약성서는 예수님이 탄생하기 이전에 히브리 사람들이 쓴 책들인데, 아래에 구약성서를 구분한 한 가지 예가 있다. 


모세오경 :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   :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기 상-하, 에즈라, 느혜미야, 마카베오 상-하. 

예언서   : 아모스, 호세아, 미가, 이사야, 즈가리야, 나훔, 하바꾹, 예레미야, 에제키엘, 하깨, 애가, 스바니야, 다니엘, 

 오바디야, 말라기, 요엘, 요나, 바룩

지혜서    : 시편, 잠언, 욥기, 아가, 룻기, 전도서, 토비트, 집회서, 유딧, 에스텔, 지혜서


성서의 정전

영감을 받은 성서의 목록을 '성서의 정전'이라고 한다. 393년 개최된 히포 공의회와 397년과 419년에 열린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는 '성서의 정전'목록을 작성하였는데, 이 성서의 최종 목록을 작성한 것은 15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였다. 우리 가톨릭 교회의 성서는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으로 되어 있다.


다른 교회에서는 구약의 일곱 권을 '외경'이라고 부른다. 즉,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 상-하이다. 이를 '외경이라고 분류하거나 아예 모두 빼버리기도 한다.


이런 견해 차이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히브리 원전으로부터 발생하였다. 당시 구약을 연구해 온 두 개의 학파가 있었는데 팔레스티나 학파에는 구약성서의 이 7권의 책이 없었던 반면, 이집트의 알렉사드리아 학파(70인역 Septuaginta)에는 이 7권의 책이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70인역 (Septuaginta)을 받아들인 반면 다른 교회는 팔레스티나 원전을 따른 것이었다.


신약성서

신약은 대략 50여년 동안에 걸쳐 저술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예수님 부활 후 20년이 지나 씌여졌고, 마지막 신약성서의 본문은 1세기 말에 씌여졌다. 바오로 서간은 복음이 쓰여지기 전에 저술되었다. 바오로 서간은 개종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때론 새로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다루기도 했다. 그는 신학을 발달시킨 개척자였다.


그의 첫째 편지인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는 48~51년에 씌여졌으며, 그의 최후의 편지인 '로마서'는 15년 뒤에 저술되었다. 바오로는 로마에서 67년이나 68년에 순교를 당하였다. 베드로의 편지들, 야고보의 편지, 유다의 편지는 64~80년경에 씌여졌고, 묵시록, 요한의 1-2-3서, 요한 복음은 1세기 말 경에 저술된 것이다.


공관 복음 저자들(마태오, 마르코, 루가)은 다양한 정보로부터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 저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었고, 그들의 책을 읽는 계층도 서로 달랐으며, 그들이 수집한 정보의 근원도 달랐다. 그들은 복음을 각자의 계획과 청중들에 맞게 썼으며,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달랐다. 그런 차이점은 당연한 것이었다. 


유대인이었던 마태오는 많은 유대인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게끔 영향을 준 내용을 많이 다루었다.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마르코 복음은 사건들을 매우 진솔하게 묘사하였기에, 사도들에 관한 좋지 않은 기록도 있으며,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방인이었던 루가는 다른 이들에 비해 용서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담았다. 그의 메시지는 보편적이며, 인물 묘사와 치유의 이야기도 잘 전재되어 있다. 저자들은 이처럼 다른 점들도 있으나 공통된 부분들도 있다. 나중에 저술된 요한 복음은 이들 공관 복음사가들과는 다른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 주제도 다르다. 요한 복음은 64년경부터 100년 사이에 저술 되었다.


프란치스칸과 성서

프란치스칸의 삶은 성서에 의해 인도된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주 성서를 인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성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인의 마음 자세였다. 프란치스코는 성서를 '먹었다' 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서는 그의 한 부분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 살아가며 일어나는 일들, 고통, 희망, 공동체를 보는 그의 관점에 영향을 주었다.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건강, 음악과 광고 선전, 정부의 방침과 교회의 가르침, TV와 인타냇 정보도 영향을 준다. 즉각적인 해결을 바라는 욕망도, 책과 영화, 테러리즘과 폭력, 평화를 추구하는 자비로운 사람과 우리 가족들도 영향을 준다. 이런 영향을 주는 것들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 프란치스칸의 과제이다. 예수님의 복음 그리고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은 '날마다'우리를 변화시키려고 우리를 초대한다. 다음 단계들은 그것을 이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현재에 어떤 결정에 내리는데 원동력이 되는 것을 찾아낼 줄 알고 그 영향력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어떤 것들은 선하고, 어떤 것들은 세속적이거나 비 그리스도적이다. 또 어떤 것들은 성숙되어야할 필요가 있는가 하면 버려야 하는 것들도 있다.

2. 우리는 성서가 가르치는 가치와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성서 공부와 묵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복음적인 가치와 우리가 우선시하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서 서로 대조시켜 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3. 우리는 다른 프란치스칸과 늘 대화를 해야 한다. 복음적인 사람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배워나가야 한다. 복음적인 지침은 받아들이기 쉬운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에 프란치스칸 공동체의 지지가 필요하다.

4. 기도는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기도를 함으로써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친밀해질 수 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설령의 힘으로만이 성화 될 수 있다. 고독의 시간들, 공옹체의 기도, 묵상, 개인적 기도는 모두 복음적인 삶의 요소들이다.


회칙 제 7조 

'회개하는 형제자매'로서 회원은 자기 성소 때문에 복음의 강력한 힘에 자극 받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적 변화에 의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그리스도와 일치시켜야 한다. 복음은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인간의 나약성 때문에 이 회개는 날마다 이루어져야 한다. 이 자기 쇄신 과정에서 화해성서는 성부의 자비심의 특별한 표지이고 은총의 샘이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

제 4조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의 회칙과 생활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행하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리스도를 당신 생활의 영감을 주는 분이자 중심으로 삼으셨다. 그리스도는 성부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로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며, 우리가 성령을 통해 도달하는 진리이며, 삶의 충만함을 주려고 온 생명이시다. 회원은 특별히 복음을 자주 읽어서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5조

그러므로 회원은 형제들 가운데서, 성서와 교회 안에서, 그리고 전례 행위 안에서,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드님을 내 육신의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성 프란치스코의 믿음이 회원의 성체성사 생활에 대한 영감이 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해설

성 프란치스코의 성서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모델이다. 전기를 읽으면서 누군가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 회칙과 복음을 따르며 산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다음의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해야할 것

1. 성서와 좀 더 친밀해져야 한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수 없이 읽어서 닳아버린 성서를 지니고 있는 이의 삶은 결코 닳지 않을 것이다!' 성서와 함께, 성서를 공부하면서 드리는 기도만큼 좋은 것은 없다.

2. 좋은 성서를 구하라, 돈을 더 주고서라도 좋은 번역판의 성서를 사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3.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성서에 대한 지식은 일단 접어두고 시작하라.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운다. 성서 공부를 하지 않으려는 갖가지 핑계거리는 대지 않도록 하라. 성령은 계속하여 성서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깊게 하신다. 성서를 정기적으로 읽어라.

4. 성서 공부에서 배웠던 것들을 실천하라, 성서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은 성서를 당신의 것으로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5. 성서의 의미는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해야 함을 인정해야 한다.

6. 성서가 당신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며, 매일의 삶에서 실현되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

1. 모든 것이 쉽게 된다는 것을 예상하지 말아야 한다.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노력과 기도가 필요하다. 

2. 근본주의자적 관점으로 성서를 접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므로써 성서의 중점을 놓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3. 성서에 대한 당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을 서슴치 말아야 한다. 특히 형제회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4. 성서를 단지 하나의 지식으로만 공부하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살면서 실천하여야 한다.

5.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대해 수용할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통찰과 이해는 복음적인 삶을 풍성하게 할 것이다.


복음은 가정, 사회, 직장, 슬픔과 기쁨의 순간, 교히, 그리고 여가 시간과 노는 시간 동안에도 실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또한 복음을 우리의 자세와 정치관, 사회적 가치들, 개인적인 성장, 폭력, 원수들, 그리고 우리의 기도와 삶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즉, 삶의 크고 작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적용해야 한다.


유언 14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칸 공부>


성 프란치스코에 관한 글과 전기

1.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글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가 직접 저술한 회칙, 기도문, 묵상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한국판: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 작은형제회 한국관구, 분도출판사 1985.4.15. 발행 267쪽


2.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토마스 첼라노는 프란치스코의 전기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두 가지 전기를 저술하였다. 1생애는 1228~1229년에 기록된 것으로 12세기와 13세기 당시의 성인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방식으로 쓰여진 불후의 명작이다. 2생애는 프란치스코 초기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죽은 지 20년 후에 저술되었는데 주로 성 프란치스코의 덕행들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한국판: 토마스 첼라노저, 작은형제회 한국관구 분도출판사, 1986.2.15 발행 460쪽


3. 성 프란치스코의 대전기

1263년 성 보나벤투라가 기록했다. 보나벤투라는 신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관점으로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해석하였다. 이 책은 기도할 때도 사용하지만 전기로도 중요한 사료이다.

한국판: 성 보내벤투라 저 권숙애 역, 콘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편, 분도 출판사. 1979.11.14.발랭, 223쪽


4 세 동료의 전기

대략 1246년, 작가 미상. 레오, 루피노, 안젤로가 저자들로 거론되지만, 누가 저자인지는 이직도 불확실하게 남아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초기 생애에 초점을 맞추어 순서가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에 관해 쓴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인데, 프란치스코가 임종에 다다랐을 당시의 공동체의 삶을 잘 그려준다.

한국판 : 작가 미상, 프란치스칸 사상연구소 역 2001.3.9.말행 270쪽. (세 동료 전기,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페루지아 전기 합본)


5.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페루지아의 요한이 1240~1241년에 저술했다.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초기 전기 중 하나이며 '세 동료의 전기'는 주로 이 책에서 자료를 구해 쓰여졌다. 이것은 프란치스코의 생애에 관한 상당히 객관적인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한국판: 작가 미상, 프란치스칸 사상 연구소 역, 2001.3.9 발행 270쪽 (세 동료 전기,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페루지아 전기 합본)


6. 페루지아 전기

1246년. 이 책은 프란치스코의 마지막 여생에 중점을 두었고, 특별히 그의 질병과 은둔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크레신시오 총장의 지시아래 수집되었다. 이 책은 당시 수도회의 파벌을 반영하여 논쟁적인 양식으로 쓰여졌다. 

한국판: 작가 미상, 프란치스칸 사상 연구소 역, 2001.3.9 발행 270쪽 (세 동료 전기,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페루지아 전기 합본)


7. 완덕의 거울  

1318년, 이 책은 14세기에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지극한 공경심과 헌신을 묘사한 글이다.

한국판 : 작가 미상, 류기식 역,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 편, 분도출판사, 1281.10.1 발행. 204쪽


8.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1325~1326년. '피오레티(Fioretti)라고도 불리우는 이 책은 프란치스코와 그의 초창기 동료들에 관한 흥미 있는 일화를 다루고 있으며, 상징적 의미가 심도있게 담겨있다. 

한국판 : 작가 미상,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 역편, 분도출판사, 1975.1.20.발행. 227쪽


9. 가난 부인과 성 프란치스코의 거룩한 교제

1227년. 이 작품은 프란치스코가 임종할 당시에 '가난부인'과 수도 공동체에 대해 일화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 글은 가난의 의미와 그 아름다움을 다룸에 있어 성서 내용과 가난의 삶, 그리고 프란치스코 개인의 이야기를 접목하고 있다. 

한국판 " 작가 미상,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 역편, 분도출판사. 1987.4.5발행 63쪽 


성녀 클라라에 관한 글과 전기

1.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글

성 프란치스코아 성녀 클라라가 직접 저술한 회칙, 기도문, 묵상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한국판 " 작가 미상,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 역편, 분도출판사. 1985.4.15발행 267쪽 


2. 클라라

한국판 : 엘레나 베르가다노 저 , 고영심역, 성 바오로출판사. 1992.12.26 발행 85쪽


3. 성녀 클라라 :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동정녀

한국판 C.A 라이나티저 익산 클라라 수녀원 역, 성 황석두루가 서원, 1993.8.30 발행 207쪽


<토론 주제>

1. 왜 성서가 재속 프란치스칸의 삶에 중요한가?

2.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복음을 듣는 방법을 설명해 보시오.

3. 왜 근본주의자가 프란치스칸 복음적 삶에 장애물이 되는가?

4. 근본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가장 좋은 접근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5. 다음 사항에 대해 당신의 견해를 적고 복음적인 삶의 자세와 어떻게 비교 되는지 말해 보시오.

  +외국인 +이질적인 문화 + 권위주의자 +범죄인 +교계제도 +근본주의 +변화

6.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당신 자신에게 특별히 와 닿은가? 당신은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


<성서 묵상>

+야고보 3,13~18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서로 대조해 가며 설명한다. 그 설명들이 성서 읽기와 실천에 어떻게 연관되는가? 답변과 그 이유를 말해보시오.


~~~~~~~~~~~

 성서에 귀를 기울이는 삶

-성서는 프란치스칸 삶의 원전이다성 프란치스코에 의하면, “주님께서 나에게 몇몇 형제들을 보내주신 후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지 않았지만가장 거룩하신 주님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복음의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고 계시하셨습니다.”(유언 14)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그런 이가 내 형제요자매요어머니입니다.”(마태오 12,50) “여러분은 값을 내고 사들인 사람들이니 이제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시오.”(1고린 6,20) “이처럼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오.

올바른 성서 교육의 필요성은 명확하다프란치스칸에게 이것은 필수적이다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살아있는 삶의 지침으로 수용하고 그 속에서 오늘날 이 세상에 전달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온 마음으로 듣고 받아들인다

프란치스칸의 삶은 성서에 의해 인도된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주 성서를 인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성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인의 마음 자세였다. 프란치스코는 성서를 '먹었다' 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서는 그의 한 부분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 살아가며 일어나는 일들, 고통, 희망, 공동체를 보는 그의 관점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성서가 가르치는 가치와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성서 공부와 묵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의 회칙과 생활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행하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리스도를 당신 생활의 영감을 주는 분이자 중심으로 삼으셨다. 

-회원은 형제들 가운데서, 성서와 교회 안에서, 그리고 전례 행위 안에서,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드님을 내 육신의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성 프란치스코의 믿음이 회원의 성체성사 생활에 대한 영감이 되고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