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라베르나 9과 정의 , 평화, 환경

Margaret K 2019. 2. 17. 05:41

라베르나 9과 

정의 , 평화, 환경


시작기도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포범이 수 염소와 함께 딩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딩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 때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없이 손을 넣으리라.

이사 11, 6~9


오늘은 정의 · 평화 · 경이라는 사도직을 살펴보면서 창조질서 보전의 관점에서 정의와 평화를 보려고 한다. 정의 평화 환경(혹은 창조질서 보전 이하 정평환이라 한다.) 이라는 개념은 단어의 의미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보다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이 좋다.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창조질서 안에서 정의는 평화를 가져온다(이사 32, 17). 평화의 열매는 정의(야고 3,18)가 된다. 회헌에도 평화는 정의의 산물(회헌 23조)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정평환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 세상을 창조 때의 모습으로 보전해야 하는 소명과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길을 가도록 행동해야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1. 인간과 피조물 그리고 하느님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각자의 선과 고유한 완전함을 지니고 하느님의 질서 안에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은 하느님의 성사이다. 자연은 하느님에 의해 생명을 가지게 되므로 인간과 함께 하는 생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질서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이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자연적 질서에 순응하는 가운데 스스로 고유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배려함으로써 창조 때부터 영속적 미래에 이르기까지 생명와 어울림이 유지되도록 하는 데 있다.


인간끼리의 불의와 이기주의는 자연을 수탈하게 되고 물질적인 가치에만 집착함으로써 삶의 근원인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타락하게 한다. 인간이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인간은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그것은 공동체의 파괴와 피조물에 대한 지배, 파괴, 폭력으로 이어진다. 생태계의 파괴와 위기는 인간이 피조물을 상대로 휘두르는 폭력의 결과이다(로마 8,10 ~22). 교회의 인간 중심주의는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와 '구원'에 그 뜻이 담겨 있다. 죄로 인해 파괴된 하느님과 피조물간의 사랑을 회복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개와 구원으로 새로운 창조 사업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2. 성 프란치스코의 정의 평화 환경 정신

성 프란치스코는 피조물을 단순한 소비의 대상이나 목적의 도구로 보지 않고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인식하며 하느님의 현존과 숨결을 느꼈다. 매력과 경의로 가득 차 있는 피조물의 세계를 존경하며 경탄함으로써 하느님께 찬미를 드린다. 프란치스코는 인간보다 자연이 하느님을 더 잘 인식하고 섬긴다(권고 5,2)고 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인간이 사물 위에 있지 않고 사물과 함께 하는 가족으로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오랜 전기들은 한결같이 그가 만물과 친구 같은 일치를 이루었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도취된 자와 같았다고 묘사한다. '피조물의 노래'는 보편적 형제성의 명백한 표현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모든 좋은 것을 돌려드리고 자유로움을 얻어 누리는 참된 행복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평화와 선'을 지향하여 불화와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과 용서를 심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로 되돌려드리는 가난의 영성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파괴와 남용을 포기하고, 자연을 자연 그대로 있게 하여 창조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삶을 요구한다. 


3. 새로운 복음화인 창조질서 보전 운동

창조질서 보전 운동은 새 하늘 새 땅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의 정신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복음화'를 시대적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실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복음화의 길은 세상에 앞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는(갈라 3,27)일이다. 새로운 복음화는 시대의 징표에 따라 대화하고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이루는 사회적 정의를 말한다. 또 환경과 바른 관계를 이루는 생태적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고 비폭력적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의 실천은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셨으며,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를 깨달아 프란치스코처럼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창조질서는 생태계 파괴라는 환경 위기 속에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1) 정의와 평화의 실천과 창조질서 보전

창조질서 보전 문제에 대한 총체적 접근 방식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경제 정의가 평화보장 문제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평화가 보장되지 못하면 환경의 보전도 있을 수 없다. 산업사회가 자연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혜택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됨으로써 가난과 자원의 고갈, 오염과 파괴를 초래한다. 또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전쟁으로 비화하여 평화를 유린하며, 혜택에서 소외된 빈국은 경제 자원을 위해 자연을 개발하고 무분별하게 파헤치게 된다. 창조질서는 젊은 의미로 인간이 파괴한 '자연과의 화해' 차원으로 풀어야 한다. 현재 벌어지는 인간 중심주의,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으로 조작된 상호의존에 영향을 받는 '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조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 정의 없이는 환경 보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 잘사는 사람들의 과도한 욕구로 인해 세상의 부가 그들에게 편중되어 있고, 대량소비와 재화의 낭비를 통해 지구 환경의 파괴가 심화된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열악한 처지가 환경 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는데, 가난을 그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 없게끔 하는 구조적 문제가 야기된다. 따라서 교회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를 촉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재화, 즉 자연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2) 우리의 선택

① 이 시대에 우리가 보여 주어야 할 모습은 "경건하고 절제할 줄 아는 삶", "물질적 외면적 풍요보다는 영적이고 내면적으로 풍요한 삶", "이기적 독점이 아닌 함께 나누는 삶", "만족할 줄 아는 삶"의 모습이다.


이를 위하여 형제회 안에 정평환 또는 적당한 이름의 위원회를 설치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지도를 해야 한다. 구성은 연령, 성별, 직분들을 망라한 조직체이어야 하며, 형식으로만 흐르는 조직체가 되지 않도록 의식화 교육을 해야 한다.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생명 경시 풍조와 생명 파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다. 생명과 자연 환경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여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리듬에 따라 생활한다. 환경운동은 교파나 종파를 초월하여 선의의 모든 이웃과 생명연대 전선을 구축해 가야 한다. 특별히 빈곤으로 인해 환경적 유해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가난한 이웃에 대해 감시하고, 필요할 경우 적극 대처하되 다른 종교 단체 및 사회 단체와 협력하도록 한다.


예를 든다면, 평화를 유린하고 미래세대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핵무기와 핵 발전에 대해 바로 알도록 한다. 이미 전쟁에 휩싸인 바 있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열화 우라늄탄과 같은 방사능 무기로 인해 많은 생명이 고통을 겪고 있다.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특수한 질병(예: 무뇌아 및 기형아 출산, 백혈병 및 암 발병 등)이 나타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계속 건설되고 있는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한 선상에서 독일 및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핵발전 중단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핵발전을 대체할 재생 가능한 에너지 정잭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과 병행해야 한다. 이런 모든 행위는 평화 구축과 창조질서보전과 직결된 것이다.


대기 오염의 주범은 자동차의 배기 가스와 공장의 매연이다. 특히 경유차에서 나오는 미세 먼지는 납과 카드늄 성분으로 벤젠 및 톨루엔 등의 발암성 물질과 혼합되어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이므로 가급적 경유차 사용을 자제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대중 교통 수단을 활용하거나 걷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성당에 갈 때는 되도록 걸어가도록 한다. 인근 지역의 기업이 대기나 토양, 수질 오염을 인지 가능한 정도 이상으로 할 경우, 자연 감시자로서 해당 관청에 고발하는 적극적 행위도 실천한다. 자연 보전에 관해 보편적 형제애를 가지고 지구를 살리는 마음으로 구체적인 행위를 지역적으로 실천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 바다를 살리는 작은 실천이라도 앞장서야 한다. 


② 생활 안에서

우리의 생활 양식을 자연 친화적 형태로 전환토록 노력한다. 그것은 근검 절약으로 소비를 줄임으로써 이것만으로도 만족하다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모든 이들이 소비와 안락을 위해 살 때 프란치스칸은 의식적으로, 불편하지만 만족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거슬러 살 줄 아는 우리의 소명이다. 예를 들어보면, 합성 세제와 공장 폐수는 하천(수질) 오염의 주범이다. 합성 세제의 주성분인 인산염과 음이온 계면 활성제, 형광증백제는 분해되지 않고 물을 오염시켜 인체의 면역성 감소, 위장 장애, 피부염 들을 일으킨다. 샴푸, 린스, 화학 세제 등의 사용을 절제하고, 가급적 비누와 밀가루, 쌀 뜨물, 뜨거운 물을 사용하도록 한다. 


에너지 절약을 적극 실천한다. 집에서 입지 않는 옷이나 물품을 서로 교환하여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실내 온도는 항상 적정선에서 유지하도록 하고 수도, 전기, 가스, 연탄등을 절약한다. 집을 짓거나 보수할 때 열 효율을 고려하고, 가급적 자연광을 활용한다. 작고 단순하게 생활하고, 적게 소유하기를 실천하는 데서 오는 불편을 감수하며, 공동체내에서 여분의 음식과 물품을 나눈다. 물질적 생활은 "일용할 재화면 족하고, 절제와 나눔의 삶이 선이다."라는 자세로 임하도록 한다.


청량 음료 및 커피 덜 마시기를 생활화 한다. 쥬스, 콜라 등은 식욕 감퇴, 충치와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콩으로 만든 음료나 식혜, 수정과, 미숫가루, 우리 차를 생활 음료로 활용한다. 가정이나 반모임, 구역모임 등에서 한 잔의 커피나 청량 음료보다 우리 고유의 차(감잎차, 유자차, 녹차, 칡차 드)를 마시는 실천을 한다.


폐지와 재생 가능한 쓰레기들은 한데 모으도록 하고, 쓰레기 버리는 양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생활 습관을 기르도록 하며, 이러한 실천을 이웃과 함께 하도록 한다. 비닐제품, 알루미늄, 랩 등은 될 수 있는 대로 사용량을 줄이고 1회용품(종이컵, 나무 젓가락, 알루미늄 접시 등)을 사용하지 않기로 노력한다.


인스턴트 식품을 가급적 먹지 않는다. 라면보다는 수제비가 국수를 먹는 것이 좋다. 인스턴트 식품은 감미료, 발색제, 방부제 등 화학 성분이 가미되어 신체 발육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점차적으로 몸을 병들게 하며 건강을 해치고 경제적 부의 편향을 가져오게 된다. 가공식품을 살 때는 식품 첨가물을 꼭 확인한다. 인체에 유해한 첨가물이 든 음식은 가급적 먹지 말고, 첨가물이 표시되지 않은 식품은 절대사지 않는다. 화학 조미료는 인체에도 해롭고 맛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웃이나 친척에 조미료 세트를 선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농약 성분이 함유된 수입 밀가루로 만든 빵에 손이 가지 않도록 하며, 그 대신 우리 밀이나 잡곡, 쌀로 만든 음식 문화를 장려한다.


의약품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갖는다. 약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남용은 오히려 몸을 해친다. 자연 건강법, 식이요법이 신체를 건강하게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이를 이용해 본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세계는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보듯이 유기체이다.(요한 15,1~10) 인간은 자연과 함께 자연의 일부로서 성장하고 삶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으며, 자연과 같은 형제 자매이며, 자연을 돌보도록 위탁 받은 청지기로서, 피조물의 세계에서 조정자이고 정보전달자라는 인간의 위치를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창세 2,4~9 ;시편 104,1~35).


하느님 구원 사업의 완성은 창조 세계를 하느님 영광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새날 새땅'이라는 전 피조물의 온전한 완성이다(로마 8,18~25). 생명문화의 윤리는 자연 지배적 인간 중심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와 인간이 상호 보완, 상보 상생, 균형과 조화, 지속과 순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선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가 드러내는 것이며 정의이고 평화이다.


'창조질서 보전 운동'은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체와 사회 공동체가 처음부터 유기체로서 존속하기 때문에 '창조질서 보전' 문체는 '정의', '평화', '사랑'과 분리할 수 없다. '정의, 평화, 환경(창조질서 보전)'은 지역사회의 풀뿌리 민주주의나 지방자치제 실시, 군비축소 같은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재속프란치스칸은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사회인으로서 적극적인 대응은 경제 사회 기득권 집단에 의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생태계 파괴를 조금이라도 방지할 수 있다.


오늘은 창조질서 보전을 통한 정의 평화의 실현을 살펴보았다. 정의나 평화를 주제로 한 '회칙'은 여러 개 있지만 그야말로 '창조질서 보전 회칙'은 아직없다. 어쩌면 정의나 평화라는 주제는 이미 오랜 교회의 전통 속에서 풍부한 반성과 논의를 거쳐 친숙해졌지만, 창조질서보전이라는 주제는 환경파괴의 역사만큼이나 짧은, 현 시대의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비폭력적 일을 통해 정의를 행하는 적극적 투신과 이에 상응하는 창조질서 보전 운동은 교회와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로우신 하느님,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 온갖 좋은 것을 주셨고 앞으로도 주실 하느님의 것을 그대로 보전하는 일은 참으로 고귀한 일이다. 정평환 운동은 진정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일이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 있어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의 기준들이 어떤 도움이 되는가?

2. 개발과 경제적 논리가 환경 보호의 논리와 상충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3. 정평환 운동 경험이 있는가?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는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과제물

1. 정평환 운동에 헌신하는 이와 단체를 3개 정도 선정하여 그들의 활동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리해 본다.

2. 한달 동안 실천한 정의 평화 환경에 대한 내용들을 적어 온다.

3. 사도행전 13~18을 읽고 묵상한 바를 적어 온다. 


마침기도

모든 창조물의 생명이시고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여전히 굶주리고 헐벗고 모욕당하고 파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파괴되어가는 자연 속에서 당신의 깊이 상처 입은 모습을 봅니다. 주님, 탐욕과 어리석음,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의 세태 속에서 저희로 하여금 그저 가난하고 단순했던 당신의 삶을 부디 따르게 하소서. 저희가 당신 창조 때의 모습을 실천해 갈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시고 나눔과 삼김, 조화와 공전으로 하느님 나라를 지켜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