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라베르나 8과 재속성

Margaret K 2019. 2. 17. 05:41

라베르나 8과 재속성


시작기도

우리를 세상에 내시고 세상에서 부르시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라고 재속프란치스코회로 불러 주신 주님! "생명에 이르게 하고 돌아가게 하는 좁고 또 그 길과 지름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들고 걸어가는 사람은 적습니다."(마태 7,13~14 참조) 그리고 잠시 동안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좀 있다 해도 거기에 항구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습니다."라는 말씀처럼 비록 좁은 길이나 이 길이 바로 당신을 만나고 살아가는 복된 자리이기에 저를 기꺼이 당신께 봉헌하오니 당신의 은총으로만 지존하신 당신께 이르도록 항구한 믿음을 주소서.


재속성은 교회의 본성 가운데 하나이며 재속프란치스칸의 특성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불림 받은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성화해야 하고 구원해야 하는 공동의 소명을 지닌다. 그러므로 재속성은 믿지 않는 이들이 추구하는 세상을 향한 의지와 완전히 다른 거룩함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칸 정신의 재속성은 재속프란치스칸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보배로운 특권이요 축복이다. 재속성을 지닌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살고 이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대한 사명이다.


교회는 그동안 과거의 회칙을 통해 재속 프란치스칸을 세속에 사는 수도자로 여겼다. 그리하여 수련장, 수련기, 착복 등 수도회적인 용어와 조직, 복장을 사용했다. 그러나 현행 회칙에서 이러한 요소를 벗고 재속성의 거룩함이 명백히 강조되었다. 우리가 카리스마를 이어받는 프란치스칸 가족에 속하면서 각자 삶의 자리가 다른 형태로 카리스마를 살게 된 것이다


이 과에서는 복음적 가치들을 우리 스스로 준비하고 예수님의 유언대로 세상을 복음과 하도록 세상에 파견된 교회의 사명에 재속성이 지니는 의미와 실천 과제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1 세상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라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세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한다. 성서는 '세상'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는데 하나는 우리가 죄를 짓고 에덴을 떠나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곳이다. "세상도 그 안에 있는 것도 사랑하지 마시오."(1요한 2,15)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어 구원을 이루는 곳이다(교회 3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였다."(요한 3,16~17) 즉 죄로 물든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인 교회가 존재하듯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세상에 하느님 나라로서의 세상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세속이라는 의미는 영원한 생명과는 관계없이 반교회적인 것으로 오직 인간만이 세상의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모든 사상을 지칭한다. 그러나 재속성이란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것이며, 성화 성소로 불림 받은 인간이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고 응답하는 특성을 지닌다. 또한 재속성은 이 세상의 모든 사회와 문화와 과학의 발전 등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은 분명히 구별해야 하지만 그것을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악에 감염되어 있는 세상의 속된 것을 거룩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1)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세상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을 세상에 '가져오려고'하기보다 이미 하느님께서 세상에 계심을 '보여주려고'노력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에 복종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였다. 프란치스코에게 세상은 하느님을 드러내는 성사이다. 프란치스코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성 프란치스코의 세상을 보는 눈을 살펴보면 성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늘 친밀하게 느낀 성 프란치스코는 피조물 안에 창조하신 분의 표가 새겨져 있으며 그분의 사랑과 관용 그리고 그분의 모든 특성이 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 자매라 불렀다. 프조물들은 그들을 창조하고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사물 안에서 아름다운 자체이신 하느님을 보았다. 모든 사물이 그에게는 선이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은 가장 좋으신 분입니다." 라고 성인은 외쳤다. 성 프란치스코가 보는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이다. 프란치스코에게 인간과 자연은 다 같은 피조물이며 동등한 관계로서 형제요 자매였다. 그에게 자연은 우리 삶의 도구가 아니라 동반자요 동료이다.


2) 버려야 할 세상

프란치스코는 가끔 세상에 대해 부정적 개념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지니는 '육의 정신','세속의 정신'등을 말함으로써 세속적인 가치관과 죄악을 경계한다. "악습과 죄악을 일삼고 욕정과 나쁜 욕망을 좇아 다니며 하느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고 육적인 욕망을 가지고 세속의 걱정과 살아갈 근심에 싸여 세상을 육적으로 섬기는 모든 사람들"(2신자 64~65)의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의 빛을 보지 못하는 악마의 자식들이라고까지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신학에서는 '세상'을 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마귀와 육신과 더불어 3구로 보기도 했다. 성 요한은 세상에 대해 악이 인간을 유혹하고 있는, 하느님을 반대하는 장소라고 하였다(1요한 2,15~16).요한이 말하는 세상은 죄로 인도하는 육체의 정욕과 현세의 쾌락과 생활의 자랑, 즉 현세적인 교만을 뜻하는 것이었다. 


옛 회칙에는 우리의 신원에 대해 '재속'이나 '세상'의 참여를 강조하지 않았다. 세상 안에 살면서도 '재속 신분'을 강조하지 않은 이유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그리스도교적 완덕은 먼저 이 세상을 포기하는 일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 이외에는 세상 안에서 삶이 헛되고 공허하다는 것이다. 소유욕의 포기, 육욕의 단절과 완전한 정결, 완전한 자기 포기에 의한 몰아의 경지를 성성의 이상으로 우러러 보고,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 최고의길은 수도 생활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평신도의 성덕은 세속에 사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수도 생활에 가까운 생활을 구체적으로 살아가는가에 의해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 6세 이전 회칙의 프란치스코 3회는 평범한 평신도와 신분이 아닌 성직자나 수도자의 신분으로 분류되었다. 즉 다른 단체와 일반 평신도와 구별하여 '평신도 수도자' 처럼 여겼던 것이다. 이것이 평신도가 세속에 살면서도 이룰 수 있는 구원의 지름길이요 완덕의 절정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자체와 세상에서 나오는 죄악을 구별해야 하고, 인간성 자체와 육신 안에 뿌리박힌 타락된 본성을 구별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창립자의 정신'으로 돌아가 우리의 신원에 대해 무엇보다도 '재속 신분(회칙 2조)'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신원의 규정으로 재속프란치스코회의 영성과 사도적의 형태가 나오게 되었다.


3)우리 삶의 터전인 세상

프란치스코는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육욕의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세상적 욕망을 꿈꾸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 십자가의 옷을 입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낫고 더 작은 세상으로 내려갔다. 그는 세상에서 내려가다가 내려가다가 몰골이 사나운 나병환자에게서 가난하시고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들에게서 형제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다.

 우리가 재속프란치스칸이 되는 것은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세상을 떠나는 것과 같다. 재속프란치스칸에게 세속은 더 이상 더럽고 경멸하거나 도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우리가 살아 내고 성화시켜야 할 삶의 자리'이다. 재속프란치스칸으로서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갈 때 우리가 가지고 가는 것은 바로 복음이요 십자가요 프란치스코의 모범이다.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낮아지고 작아지고 내려갈 수 있는 삶의 터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복음을 잘 실천할 수 있는 세상 가까이에 있다. 우리 삶의 터전이 조금씩 복음화 되면 그만큼 세상을 통해 프란치스코가 노래했던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생활하고, 삶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증인이 될 것이다. 재속프란치스칸은 복음의 재속성을 널리 알리는 당사자들이며 표지이다.


3. 세상 안에서

사회 구조의 심각한 변화로 이 시대는 도덕적 가치가 붕괴되고 개인이나 집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어 이로 인한 피해는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고 있다. 세상의 가치와 행위들이 프란치스칸 삶의 방향과 다르고, 복음과 반대되는 일들이 많아 프란치스칸은 세상으로부터 도전을 받는다. 그 도전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1)가정 안에서

가정은 복음화를 해야 하는 최우선의 장소이다. 형제회는 가정, 부부 영성에 도움이 되는 깋을 모색하고, 가정보호와 생명 존중, 신의의 가치를 기르는 일들에 협력한다. 또 어린이와 청년그룹을 위해 바른 길을 열어준다. 교회는 혼인의 목적을 부부가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부부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서로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하느님의 축복된 혼인 성사로 결합된 부부는 서로의 사랑을 통해 보다 거룩해지고 하느님 사랑으로 들어 높여진다.


또한 자녀는 혼인의 축복에 따르는 하느님의 복된 선물이다. 자녀들이 영육 간에 건강하게 자라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볼 줄아는 안목을 갖게 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심어 주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가정을 통해 복음화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재속프란치스칸의 성소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의 성소이다. 가정 생활은 재속성의 복됨과 기쁨을 드러내는 가장 첫 번째의 장소이다.


2)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를 위하여

우리는 창조 사업의 한 형태로 문명사회 건설에 참여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책임 의식과 사랑을 가진 형제애로 세상에 존재한다. 모든 형태의 착취, 차별, 소외 및 다른 이들에 대한 갖가지의 무관심한 행동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이들과 최우선의 관계를 맺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세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므로 교회와 사회 양쪽에서 자신의 직업과 일에 힘써야 하며 시민으로써 책임을 다해야 한다. 창조, 구원, 인간 공동체의 봉사를 위한 노동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 모든 직업은 존중되어야 하며, 일과 휴식에 있어서도 조화를 이루어 노동을 통해 더욱 인간적이 되도록 협력해야 한다. 


정의로운 일과 질서를 위해 신앙에 따라 구체적인 선택을 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처 입을 때는 분명한 태도를 취하며 불의에 의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폭력을 유발하는 모든 언어, 행위, 생각까지도 평화를 이루는 프란치스칸답게 사용해야 한다.


3) 재속프란치스칸의 사도직

프란치스코가 어떤 특정한 사도직을 행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특정한 사도직에 치중하지 않는다. 하느님 창조 사업을 계속하는 모든 일이 우리의 사도직이다. 우리는 교회 건설의 협력자로 불림을 받았다. 교회에서 교리교사, 교회 단체장 등 어떤 봉사직이든지 프란치스칸 정신으로 임하며, 가정과 형제회, 지역교회, 사회 등에서 우선 순위에 따라 그리스도교 봉사 정신으로 능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재속프란치스칸은 다른 평신도와 함께 이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가며, 각자가 받은 달란트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라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현재 내가 만나고 주어지는 일이 최우선적 사도직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해 나간다. 세상의 긍정적인 가치들은 넓은 의미로 볼 때 하느님의 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인 세상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긍정적인 세상의 가치들을 더욱 거룩하게 하는 일은 바로 우리가 일궈야할 소명이다. 


위대한 선배들인 재속 프란치스칸 성인 성녀들은 사회의 온갖 범주와 직업, 즉 귀족과 농부, 순교자와 회개자, 법관과 사업가, 의사와 대장장이들에서 나왔다. 몇몇 다른 수도회의 남녀 창설자들은 재속프란치스코회원으로 시작하였으며 자신들의 운동을 수도회 안에 집약시켰다. 아르스의 사제 요한 비안네는 재속프란치스코회를 하느님께서 교구를 도덕적으로 고양시키기 위해 뜻하신 수단이라고 보았다. 프랑스의 국왕 루도비코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은 재속프란치스코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되었는데, 이는 그들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일생을 의미있게 보냈기 때문이다.


재속프란치스칸들은 자신들의 서약과 생활양식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특별히 예의바르고 명량해야 한다. 우리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동참한다. 의식주, 가정생활, 승용차 등에 있어 우리의 '절제'는 가난한 그리스도의 가치를 증거한다. 우리는 형제애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심리적, 경제적인 보화를 이웃사람과 나눈다.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세상을 희망적, 낙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보다 향상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믿고 기대하고 노력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의 특성인 기쁨, 자유, 솔직함을 살면서 세상이 가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재속성이란 말을 나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2. 재속프란치스칸트로서 교회와 사회에서 실천하기 여러운 과제는 무엇인가?

3. 세상이 지니는 영성적 의미에 대해 나누어보자


과제물

1. '평화의 사도'를 읽고 재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을 적어온다.

2.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독거노인 들을 만나 대화를 나눈 후, 현재 내가 해야할 최우선적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온다.

3. 사도행적 1~12장을 읽고 묵상한 바를 적어 온다.


마침기도

오 주님, 우리 하느님, 저희는 갖가지 모습으로 온갖 일을 하면서 살지만 서로에게 서로를 내놓아 하나를 이루는 가운데서 교회의 부르심과 생활 안에서 세라핌적 사부 프란치스코의 카리스마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청하오니 저희가 매일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행하면서 복음에서 생활에서 복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회칙기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