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성녀 글라라의 영성
시작기도
성녀 글라라의 성덕을 통하여 세상을 빛나게 하신 주님, 우리가 성녀의 성덕과 영성을 본받아 참된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게 하소서. 또한 봉쇄를 살면서도 성 프란치스코의 복음벅 삶을 완전하게 이루어 내었으니 그 열정으로 우리도 복음을 살게 하소서. 말씀과 성체, 그리고 형제애와 봉쇄 안의 선교, 기도와 관상이 글라라 성녀를 자유롭게 하였듯이 우리도 하느님 안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성녀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충실한 제자로서 프란치스칸 이상을 자신의 고유한 관점에서 표현했다.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카리스마를 받아들여 여성들에게 적용시켰으며 또한 그 카리스마의 풍요롭고 영구한 가치들을 승화시켰다. 프란치스칸 전통에 끼친 글라라의 위대한 공헌은 자기가 '가난뱅이'로부터 받았고 또 세속에서 소위 지혜롭다는 자들이 도전했던 그 가난의 카리스마를 지칠 줄 모르고 방어한 데에 있다. 사부님을 잃고 그의 강력한 현존을 그리워하던 때, 글라라는 형제들에게 프란치스칸 정신을 전수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글라라가 프란치스칸 영성에 끼친 독특한 가치는 세속과 분리된 봉쇄 생활, 극단적인 가난의 추구, 서로간의 사랑의 일치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훈육, 자매들에게 준 감미로운 권고, 기도와 관상에의 열심, 고행과 단식, 침상과 의복에 있어서는 엄격함, 하느님 사랑에 대한 열성, 순교의 원의, 그리고 특별한 가난의 특전에 대한 사랑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성녀의 성품과 영성을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은 재속 프란치스칸이 우리에게 생활의 양식과 영혼의 유익이 되고 세속에서 복음을 생활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 형제애.
글라라 수도원의 생활은 끊임없는 기도와 지극히 겸손하고 가난한 생활이었다. 글라라는 성 다미아노 수녀원 자매들의 어머니이고 원장이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행동하였다. 추운 겨울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이 약하거나, 가난한 보속 생활에 익숙하지 옷해 힘들어 하거나, 몸이 추위에 얼어서 잠을 자지 못하는 자매에게 자지 않고 병자 곁에서 간호하곤 하였다. 귀찮은 일일수록 더욱 사랑과 기쁨으로 그 일을 하였으며, 병실 청소를 하고 곪은 상처를 동여매고 가장 비천한 일을 도맏아 즐겨하였다. 성녀의 충실한 동료였던 빠치피카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글라라는 정말 어머니처럼 겸손하고 친절하였으며 지극한 사랑으로 병자를 간호하였습니다."
또한 아시시 시장의 딸이었던 아네스 수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 비 내리는 날 오후 애긍을 청하러 다니는 자매 중 한 명이 저녁 때 발이 진흙투성이가 된 채 지쳐서 돌아왔다. 글라라는 손 씻을 물을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자매가 대단히 지쳐있는 것을 보자 대야를 자매 앞에 놓고 그 자매의 발을 씻겨 주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란 자매는 원장에게 그런 일을 시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발을 움추렸다. 그러자 그 순간 잘못하여 글라라의 입을 힘껏 걷어찼다. 자매는 놀라서 비명을 질렸다. 그러나 글라라는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고 빙그레 미소지으며 '몀려 말아요, 괜찮으니까.' 하고 말하며 자매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자매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글라라는 수녀들의 마음속에 청빈과 애덕의 거룩한 불이 꺼지지 않도록 늘 노력하였다. 어떤 자매가 유혹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린다든가 아니면 슬픔에 싸인다든가 하면 자연스럽게 그 자매만 따로 불러서 눈물로 위로하였다. 어떤 때는 침울해 있는 자매의 발 밑에 끓어앉아서 모성적 염려로 그를 위로하였다. 그녀의 뜨거운 사람에 감사할 줄 아는 딸들은 완전한 자기 봉헌으로 그 보답을 하였다. 실로 그들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였고 하느님의 정배 글라라 안에서 드러나는 거룩함의 선물에 감격하였다.
2.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
성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의 일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번은 성 프란치스코가 작은 형제들의 의견을 들어 성녀 글라라와 함께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음식을 함께 먹기로 하였다. 다른 자매와 함께 성모 마리아의 제대 앞에서 바치는 글라라의 기도 향기는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이어 프란치스코는 음식을 준비하고 한 형제와 더불어 식탁에 않았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빵을 나누는 대신 타오르는 열정으로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넑을 잃고 마음이 뜨거워져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그들은 모두 자신을 잃고 탈혼 상태가 되었다. 이때 멀리 아시시 주민들은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과 주변의 숲이 붉게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시민과 농부들은 깜짝 놀라 달려와 불을 끄려 하였으나 도착해 보니 불은 간 곳이 없고, 단지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다른 형제 자매와 함께 탈혼 중에 있었다. 거룩한 이 모습을 보고 난 주민들은 하느님 사랑의 나눔을 방해하지 않도록 모두 물러갔다.
3 봉쇄와 선교
성녀 글라라의 '봉쇄의 생활' 이것은 글라라가 선택한 독특하고 고유한 삶의 방식이다. 성녀 글라라는 '봉쇄의 숨은 생활'을 선택함으로써 성모님의 태중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은밀한 사람에 빠졌으며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게 된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선택한 이 봉쇄의 삶은 한정된 공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무한히 열려 있는 자유로운 삶이다. 또 인간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을 사는 삶이다. 글라라회 봉쇄의 특징은 독수자나 은수자의 삶이 아니라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봉쇄이다. 그들은 봉쇄 안에서 자매들을 통해 형제이신 그리스도를 뵙는다.
토마스 첼라노는 "글라라는 영혼의 닻을 내려 안전한 포구에 내리 듯 그곳 성 다미아노에서 더 이상 자리를 옮기느라 동요하지 않았고 협소하다 하여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적막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녀 글라라는 엄격한 고독의 생활을 택함으로써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타만 양육되었다. 좁은 다미아노 성당에서 42년간 관상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엄격한 사랑의 삶을 통하여 향유가 든 옥합처럼 교회 구석구석에 고결한 향기로 가득 채웠다. 글라라회 수녀들은 어머니인 글라라처럼 하느님을 뵙는 충만함과 단순한 기쁨으로 인도되었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늘 기쁨이 충만하였다.
또한 성녀 글라라는 작은 형제들 가운데 몇 사람이 모로코에서 순교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순교를 동경하였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그것과 달랐다.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반대로 다미아노에 남아 있어야 했다. 마치 귀한 진주 같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 지울 수 없는 복음전파에 목말라 하면서도 삶으로서의 순교자와 증거자로 기꺼이 봉쇄의 담장 안에 머물렀다.
4. 말씀과 성체 중심
성녀 글라라가 주님의 수난을 비통해 함은 익숙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완전히 도취되어 사랑이 그녀의 마음에 깊이 박아주신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생생하게 모셨다. 하루의 일과 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육시경과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신 구시경에서 그녀는 늘 비탄에 빠졌고, 제물이 되신 주님과 함께 자신도 제물이 되었다.
그녀의 기도가 구세주의 기도와 일치되자 몹시 괴로워했으며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슬품을 체험하였다. 십가가에 달리심으로써 사랑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사랑하는 글라라에게 당신 사랑의 마음을 부어 주셨다.
글라라는 자매들에게 이성이 지니는 제어력으로 육신의 허구성을 다스리라고 가르쳤다. 그녀는 훌륭한 설교자들을 통하여 하느님 말씀의 양식을 자녀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거룩한 강론을 들을 때 기쁨에 젖어들어고 예수님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음을 기뻐했다. 성녀는 프란치스코와 작은 형제들의 설교에 핵심적인 내용이 숨어있음을 믿었고 그 핵심의 진미를 즐겼다. 한번은 그레고리오 교활께서 형제들의 수녀원 방문을 금지시켰을 때, 영신의 빵을 얻어다 주는 형제들의 설교를 들을 수 없는 마당에 어찌 육신의 빵을 얻어다 주는 애긍 형제들을 두겠느냐며 거절하였다.
성 프란치스코가 그랬듯이성녀 글라라의 성체께 대한 신심 역시 특별하였다. 1240년 9월에 사라센인들이 아시시 주변을 포위하고 있을 때 성녀는 병석에 누어 있었다. 마침내 군인들이 성 다미아노 수도원까지 몰려와 공격하여 수도원 담장 안까지 들어서고 식당 문 앞까지 밀려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성녀는 굳은 믿음으로 성체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자매들을 이 위험에서 지켜 주실것을 간절히 기도 했다. 그때 이런 음성이 성체로부터 들려왔다. "네게 대한 사랑으로 내가 너희를 항상 지켜 보호하리라." 이어서 성녀가 위기에 처한 아시시를 위하여도 기도하였고, 기도를 하자. " 시는 갖가지 위험을 당하겠으나 내가 보호하리라."하는 말씀이 들려왔다. 이 대화가 오고 간 뒤 갑자기 소란이 멈추고 사라센인들은 쫓기듯이 자진하여 퇴각하고 말았다.
5. 가난 특전
성녀 글라라는 "가난한 어머니가 한 아기를 낳아서 좁은 여물통에 눕혔는데 바로 그분이 가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니 가난의 작은 둥지 안에서 가난하신 그분과 같은 모습이 되라."고 자매들에게 권고하였다. 또한 성녀 글라라는 자매들이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가난에 충실히 머물도록 하기 위해 교황으로부터 독특하고도 전적으로 유례없는 '가난의 특전'을 받았다. 글라라가 요청한 가난의 특권을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인준해 주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분은 오직 주님께만 헌신하기를 바라기에 현세의 모든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여러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발자취에 매달려 어떤 소유도 갖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마태 6,26) 들의 꽃을 입히시는 (마태 6, 28)분께서 지복직관의 충만성 안에서 여러분을 먹이고 입히시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도적 권한으로 여러분이 요청한 지극히 높은 가난을 살 제안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서한의 권한으로 아무도 여러분에게 재산을 가지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글라라의 자매들은 자만하지 않고 정말 가난하게 살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도원 전체 공동체는 어떤 종류의 재산도 갖지 말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형제들에게 소망했던 것이고, 또한 성녀 글라라가 자신의 자매들에게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녀 글라라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서원 때문에 두려우시다면 가난 특전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성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절대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도 관면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교황은 다시 한번 가난의 특전을 인준해 주었다. 성녀의 가난 생활에 대한 항구한 열망의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회칙 인준에 관한 칙서를 보낸 것은 성녀 글라라의 죽음 이틀 전이었다. 성녀는 자신의 회칙에 가난의 특전을 명시하여 넣었으며 이를 품에 안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수도원에 재산을 소유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이 독특한 가난의 특전은 글라라 수도회의 고귀한 유산으로 남겨졌다. 이 숨겨진 보물을 우리에게 전수해 주고 진정한 자유에 눈뜨게 한 '가난의 특전'을 위해 글라라는 온 생애를 헌신했다. 글라라 성녀의 이런 극단적인 가난은 가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그분께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
6. 기도와 관상
성녀 글라라는 참으로 육신에 죽었으며 이 세상에서 철저한 나그네가 되어 거룩한 기도와 찬미로 자기 영혼을 한껏 채웠다. 글라라가 불타오르는 기도의 용광로 안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받았으며 하느님의 선의 달콤함을 즐겼는가는 일상적인 여러 증거들이 말해 준다. 거룩한 기도를 마치고 기쁨에 싸여 돌아올 때 글라라는 주님의 제단에서 불타는 말씀들을 가져와서 자매들의 마음까지 불타오르게 하였다. 사실 글라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움에 자매들이 찬탄하였고 보통 때와는 달리 찬란히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기도에 잠긴 그녀의 영혼을 채우는 참 빛은 그녀의 몸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완전히 도취되었으며 마음에 깊이 새겨진 사람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생생하게 모시고 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가난한 동정녀여,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포옹하십시오. 그대를 위하여 천대받으신 그분을 바라보며 그대도 이승에서 그분을 위해 천대받는 자가 되어 그분을 따르십시오. 고귀하신 여왕이여, 인간의 아들네보다 짝 없이 아름다우시지만(시편 44,3)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 중에 가장 비천한 사람이 되셨고 멸시를 받았으며, 온몸에 수없이 매를 맞아 십자가의 참혹한 고뇌 중에 돌아가신 그대의 정배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바라보고 응시하고 깊이 생각하고 관상하십시오. 그대가 그분과 함께 고통에 참여하면 함께 다스릴 것이고, 애통의 십자가에서 그분과 함께 죽으면 그대는 성인들의 광채 속에서 천상 거처를 소유하게 될 것이며,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의 이름을 사람들이 영원히 칭송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지상적이고 자나가는 사물 대신에 세세에 영원히 하늘 나라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것들 대신에 영원한 선을 차지할 것이며 무궁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내신 둘째 편지 18~23)
이와 같이 관상 기도 속에서 성녀 글라라는 '지금 나는 하늘 아래에서 내가 바랐던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그 기쁨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글라라 성녀의 관상 기도는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라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7. 그리스도를본 받음
성녀 글라라의 삶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 중심이었으며 성삼위 하느님 안에서 천상 기쁨을 맛보았다. 성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고,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할 거울이라고 말하였으며, 이 거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거룩한 정혼을 하게 된 사람은 진정 복되 사람이며 천상의 복된 모든 군대들이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에 불을 붙입니다. 님에 대한 관상은 우리의 휴식이고 님의 어지심은 우리의 만족입니다. 님의 감미로움은 우리를 가득 채우고 님에 대한 생각은 부드럽게 빛나고 님의 향기는 죽은 이들을 살리며 님을 영화롭게 직접 뵙는 것이 천상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들에게 행복이 될 것입니다(프라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 11~13)
성녀 글라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님에 비유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님과 사랑에 빠져 정혼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영광의 광채요 영원한 빛의 반사이며 티없는 거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바라보고, 주의 깊에 관창하며 응시하고 깊이 생각하고 성령이 이끄심에 따라 관상하라고 권고한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세히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세 가지 특성이 있는데 즉,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반사되어 있다고 말한다.
먼저 거울 맨 밑에서부터 보시고, 말구유의 강보에 싸여 누워 계시는 그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오, 놀라운 겸손이여! 오, 기막힌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구유에 누워 계시다니! 다음으로는 거울(예수 그리스도)의 중간을 보시고 그분께서 지니셨던 겸손과 함께 복된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이제 끝으로 거울의 맨 위를 보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에서 가장 수치스런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신 그 분의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바라보십시오(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9~23)
성녀 글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거울의 밑 부분, 중간 부분, 맨 위 부분으로 나누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의 생애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으로 나누어 깊이 바라보았다. 그리스도께서 격으신 수난과 고통을 마음에 새기며 가난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곤 하였다.
성녀 글라라는 이와 같은 모습으로 다른 자매들이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정혼하게 되었을 때 자매들과 더불어 영의 즐거움으로 기뻐 용약하였으며, 하늘 아래에서 아무도 훔쳐 갈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진정 기뻐할 수 있다고 하였다(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낸 셋째 편지 5 참조)
성녀 글라라의 영성을 공부한 우리는 성녀를 본받아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하는 사랑의 일치를 세상 속에서 이웃들과 이루어 가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우리는 성녀 글라라처럼 봉쇄 구역을 설정하거나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성녀 글라라처럼 기도와 관상을 통하여 이 지상에서 천국의 기쁨과 풍요를 맞볼 수 있다. 진정한 봉쇄는 우리 마음 안에 있으며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영혼의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자리한 고귀한 성역이다. 그곳이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우리 영혼이 진정한 자아는 그분을 만나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행복한 순간 순간을 맛보며 그분을 누릴 것이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몸소 생명의 빵이 되어 우리 몸과 영혼 속에 들어오시고 우리와 함께 계셔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깊이 때닫는다면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두려움 없이 그분과 함께 생활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성부와 성자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와 함께 사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녀 글라라의 권고처럼 거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숙고하고 관상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사람으로 활활 불타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성녀 글라라의 영성 중에서 가장 닮고 싶은 삶은 무엇인가?
2. 성녀 글라라의 가난의 특전을 지금 이 시대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야 할까?
3. 거울을 통해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글라라처럼 사물을 통해 그리스도를 관상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누어보자
과제물
1. 성녀 글라라의 영성을 요약해 온다
1. 요한 복음 13~21장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적어 온다
3.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낸 4통의 편지를 읽고 감명 깊은 내용을 적어온다.
마침 기도
님의 사랑는 우리의 사랑에 불을 붙입니다.
님에 대한 관상은 우리의 휴식이고,
님의 어지심은 우리의 만족입니다.
님의 감미로움은 우리를 가득 채우고,
님에 대한 생각은 부드럽게 빛나고,
님의 향기는 죽은 이들을 살리며,
님을 영화롭게 직접 뵙는 것이 천상 예수살렘의 모든 시민들에게 행복이 될 것입니다.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낸 넷찌 편지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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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글라라의 영성
성녀클라라의 삶, 편지, 유언, 가난의 삶에 대한 염원으로 만들어진 회칙의 인가특징은?
- 그녀의 글들은 풍요롭고 사려 깊은 내적 삶을 사는 한 여인을 보여준다. 그녀는 기도했고,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 그녀는 삶의 여러 사건들에 대해 기억했고, 성찰했다. 그것이 프란치스꼬의 비젼에 충실히 남을 수 있었던 그녀의 능력이었고, 그녀는 그 능력으로 같은 삶을 살았던 형제들을 격려했다. 그녀는, 형제들 사이에서 프란치스꼬의 꿈이 사라져 가고 있을 때, 희망의 횃불이었다. 만약 그녀가, 프란치스꼬에 의해 심어진 작은 꽃이었다면, 그녀는 점점 커져, 그녀의 사랑하는 프란치스꼬 다음가는 그러한 꽃으로 성장했다.
- 그녀는 그녀의 생애동안 교회와 투쟁하였다. 그녀는, 재물 안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 한분만을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그녀의 방법인 가난의 특권에 대해 승인받고자 하였다. 실제적인 신자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글라라는 그녀가 하느님 한 분만을 의지할 수 있고, 의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그녀의 회칙에 대한 승인과 그녀가 진정 원했던 가난의 특권을 1253년, 8월 9일, 그녀가 죽기(1253년, 8월 11일) 이틀 전에, 받았다.
프라하의 아녜스자매에게 보낸 글라라의 한 편지는 따뜻한 여성 글라라를 보여준다.
“또 무엇을 더 말하겠습니까? 영혼의 혀가 이 모든 것을 말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제 육신의 혀는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 안에서 침묵토록 하겠습니다. 오, 복된 딸이여, 그대에 대하여 내가 지니고 있는 사랑을 육신의 혀는 말로 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었지만, 이 글에 반쯤은 표현이 되었습니다. 나의 이 말들을 너그러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시고, 사랑의 열기 안에 내가 그대와 그대의 딸들에 대해 매일 느끼는 그 모정만은 이 글에서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대와 그대의 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와 나의 딸들을 아무쪼록 기억해 주십시오. 이 나의 딸들 특히 나의 친동생인 지혜로운 동정녀 아녜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주님 안에서 그대와 그대의 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4프라하의 복녀 아녜스)
“그래서 부당하지만, 그리스도와 성 다미아노 수도원의 가난한 자매들의 여종이며 거룩하신 사부님의 작은 나무인 나 글라라는한편으로는 우리가 서약한 지극히 높은 생활양식과 그 위대한 사부님의 명을 생각하고, 또한 다른 편으로는 우리 기둥이시오 하느님 다음으로 유일한 위안과 기초가 되셨던 거룩하신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꼬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우리 자신도 두려워하던 우리와 다른 자매들의 연약함을 다른 나의 자매들과 함께 곰곰히 생각할 때, 현재와 앞으로 들어올 자매들이 내가 죽은 후, 가난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도록 자원하여 우리 귀부인이신 지극히 거룩한 가난에 충실하기로 약속하고 또 약속했습니다.”
(글라라 유언)
성녀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충실한 제자로서 프란치스칸 이상을 자신의 고유한 관점에서 표현했다
프란치스코 영성을 완성시켰다
프란치스칸 전통에 끼친 글라라의 위대한 공헌은 자기가 '가난뱅이'로부터 받았고 또 세속에서 소위 지혜롭다는 자들이 도전했던 가난의 카리스마를 지칠 줄 모르고 방어한 데에 있다
성녀 글라라는 자매들이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가난에 충실히 머물도록 하기 위해 교황으로부터 독특하고도 전적으로 유례없는 '가난의 특전'을 받았다.
글라라의 자매들은 자만하지 않고 정말 가난하게 살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도원 전체 공동체는 어떤 종류의 재산도 갖지 말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형제들에게 소망했던 것이고, 또한 성녀 글라라가 자신의 자매들에게 원했던 것이다.
글라라 성녀의 이런 극단적인 가난은 가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그분께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라라회 봉쇄의 특징은 독수자나 은수자의 삶이 아니라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봉쇄이다. 그들은 봉쇄 안에서 자매들을 통해 형제이신 그리스도를 뵙는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완전히 도취되었으며 마음에 깊이 새겨진 사람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생생하게 모시고 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가난한 동정녀여,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포옹하십시오. 그대를 위하여 천대받으신 그분을 바라보며 그대도 이승에서 그분을 위해 천대받는 자가 되어 그분을 따르십시오. 고귀하신 여왕이여, 인간의 아들네보다 짝 없이 아름다우시지만(시편 44,3)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 중에 가장 비천한 사람이 되셨고 멸시를 받았으며, 온몸에 수없이 매를 맞아 십자가의 참혹한 고뇌 중에 돌아가신 그대의 정배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바라보고 응시하고 깊이 생각하고 관상하십시오.(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내신 둘째 편지 18~23)
글라라 성녀의 관상 기도는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라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성녀 글라라의 삶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 중심이었으며 성삼위 하느님 안에서 천상 기쁨을 맛보았다. 성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고,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할 거울이라고 말하였으며, 이 거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거울 맨 밑에서부터 보시고, 말구유의 강보에 싸여 누워 계시는 그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오, 놀라운 겸손이여! 오, 기막힌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구유에 누워 계시다니! 다음으로는 거울(예수 그리스도)의 중간을 보시고 그분께서 지니셨던 겸손과 함께 복된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이제 끝으로 거울의 맨 위를 보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에서 가장 수치스런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신 그 분의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바라보십시오(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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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글라라 성녀는 참 행복의 길을 찾은 성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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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루카 6,20)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 7,5-7)
“참 행복”을 가져오는 “가난한”이란 말은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약함과 죄스러움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생명, 건강, 돈, 그 어떤 종류이든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것임을 기꺼이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루카 6,17)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 나라를 차지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신뢰를 둔 사람”은 이미 자신을 하느님의 다스림과 하느님의 사랑에 맡기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이들인 것입니다.
-이영근신부 묵상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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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생애동안 가난을 강조하신 성녀 클라라의 영성을 이해함이 저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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