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라베르나 제4과 라 베르나

Margaret K 2018. 10. 17. 06:44

제4과

 라 베르나


시작기도


프란치스코를 통해 당신의 십자가의 삶을 인내하신 주님! 온 마음을 다하고 온 넋을 다하여 당신의 수난과 고통과 사랑을 내 안에 모시려 하나이다. 당신만이 제 삶의 믿음이요 희망이요 사랑이기에 감히 아롤 수 없는 부당한 저희가 당신과 일치를 열망하며 청하나이다. 프란치스코가 살아간 길이요 당신이 가신 이 십자가의 길이 제 영에 각인되어 제 삶에서 사랑으로 드러나도록 채우시고 이끄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시며 저희는 오로지 당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바치나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 성흔은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오상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총이다. 이 오상은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을 열망하고 흠모했는지를 보면 더욱 뚜렷하게 그 은총의 의미가 드러난다. 프란치스코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은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었고 열쇠였다. 그는 혼신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살았던 것이다. 성인의 오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다. 성인의 삶이 그리스도로 옷입기를 간절히 열망하였고 하느님께서 그 사랑에 응답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성인의 십자가 사랑과 라 베르나에서 받은 오상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이것은 기적적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분의 사랑에 일치를 이루려는 성인의 내적 열망의 결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입는 사랑을 간직할 때 비로소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은 십자가 사랑의 열매라는 것을 때닫게 될 것이다.


1. 프란치스코와 라 베르나


1213년 5월 8일 몬테 펠크로가 성에서는 젊은 백작의 작위에 경의를 표하는 연회가 열렸다. 당시에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이 초청되었고, 그 중에 올란도 백작도 있었다. 이 연회에서 프란치스코는 설교를 하였고 올란도 백작은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린 젊은 수도자의 모습이 올란도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었다(잔꽃송이 2부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에 대한 고찰 참조). 연회가 끝나자마자 그는 신속히 프란치스코를 찾아 나섰다. '라 베르나'라고 불리는 산이 조용히 기도하고 참회할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되어 프란치스코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재력과 권력이 있던 올란도는 투스카니에 있는 자신의 산을 프란치스코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프란치스코도 그 제의에 감명을 받고 젊은 형제들에게 산을 둘러보도록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산이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산을 보러간 형제들도 좋다고 하자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라 베르나'가 프란치스코에게 주어졌다.


라 베르나의 날씨는 겨울에는 혹독하게 춥고 여름에는 덥다. 때때로 소나기 구름으로 덮였으나 산은 신비로웠고 하느님의 현존으로 충만하였다. 이 산은 기도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프란치스코에게 단식과 기도, 참회의 장소가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았기에 조용히 혼자 있기를 원하던 프란치스코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그래서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하느님과 깊이 호흡하며 기도 할 수 있었고 그 사랑에 감동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마음껏 묵상하며 흐느낄 수 있었고 온 몸과 영으로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2. 프란치스코의 십자가 사랑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와 이룬 완전한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에서부터 자기비하를 보게 했고, 마침내 갈바리아 십자가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자신을 온전한 봉헌물로 바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는 프란치스코에 의해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는" 것으로 관상되었고, 그 신비는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 전적으로 봉헌하도록 이끌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지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신심을 말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2첼라노 203). 회개 시초부터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 강한 음성을 프란치스코를 이끌어 내적 변화의 길로 들아서게 만들었다. 성 다미아노의 십자가가 말씀했던 그 날부터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들이 그의 마음 속에 깊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십자가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신비가 그에게 너무도 충만히 계시되어 그리스도의 신비 외에는 다른 어느 것도 따르지 않았으며, 오로지 십자가의 감미로움만을 맛보았고 십자가의 영광만을 전했다.


프란치스코의 십자가에 대한 이 사랑은 그의 영혼에 깊은 인호로 새겨졌고 점차 그의 살에 드러나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되었다. 즉 오상은 먼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사랑으로 이미 찍혀 있었고 다음에 외적으로 그의 살에 새겨졌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대한 애처로움이 그의 거룩한 영혼에 뿌리를 내렸고, 아직 살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경의로운 오상이 그의 마음속 깊이 찍혔음을 경건히 추측할 수 있다. ---얼마 후 그의 마음의 사랑은 그의 육신의 상처로 인해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는 자기 눈 앞에서 언제나 어른거리는 듯 그리스도의 수난을 큰 소리로 외치고 슬퍼하며 울음을 그칠 날이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기억하느라 길거리를 한숨으로 채웠고, 어떤 위로도 마다하였다. 절친한 친구 하나를 만나 그에게 자기가 슬퍼하는 이유를 알리자. 이내 그의 친구도 비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글썽거렸다(2첼라노 10~112).


성 보나벤투라는 이렇게 말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걸어간 길은 다름 아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바로 그 불타는 사랑이었다." 또 회개 시작부터 주님의 수난이 늘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듯이 탄식과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가 여행할 때면 영적인 기쁨으로 인해 프랑스 말로 하느님 찬가를 노래했지만, 많은 경우 이 기쁨은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통이 생각나 눈물로 변했고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녹아들곤 했다(2첼라노 127). 바오로 사도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갈라 6,14)라는 말은 프란치스칸 수도회의 표어가 될 정도이다.


그러면 성인의 생애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애정과 그리스도를 향한 몇몇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성인을 따라가 보자.


1) 십자가의 말씀을 들음


프란치스코가 나병환자를 만나는 결정적 체험을 하고 난 후,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십자가의 주님으로부터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하는 말씀을 들었다. 이 십자가의 주님의 말씀은 이후 프란치스코의 전 생애를 지배하는 말씀이 되었다. 이때부터 주님의 수난에 대한 기억이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혀서 회개의 결심이 깊어졌고, 그의 영혼은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녹아들기 시작하였다.


2) 1026년, 프란치스코 성인은 귀도 주교 앞에서 육신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하느님만을 아버지로 받아들였다. 1208년경에는 포르치운꿀라 성당에서 사도를 파견하는 복음 말씀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이 말씀을 생활 양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회개 생활 시작 때 입었던 은수자의 옷을 벗고, 통으로 된 십자가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성인이 십자가의 옷을 평생 입는다는 것은 영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성인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옷입었던 것이다.


3)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름


회개 생활 이후 프란치스코는 일생 동안 십자가를 향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랐다. 그른 언제나 수고와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살았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를 놀랄만한 사랑으로 지니고 간직하였다. 그리스도의 발자취에 대한 흠모는 그를 순교와 성지 순례에 대한 열망으로 인도했다. 그래서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의 땅에 대한 애정으로 예루살렘을 향했다. 그는 주님이 비천하게 나시고 사시다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땅을 직접 발로 밟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대한 성인의 애정은 교회 안에 '십자가의 길'이란 기도를 낳았다.


3. 하느님의 응답 -오상


죽음을 2년여 앞둔 1224년 8월 프란치스코는 다시 깊은 고독 속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만끽할 수 있는 라 베르나 산에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을 기도와 단식으로 지냈다. 성 미카엘 축일이 다가오면서 라 베르나에서 기도하고 있던 프란치스코는 예수께서 체험하신 그 사랑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은총을 주시도록 청하였다. 그 사랑의 선물로써 우리를 위하여 사랑으로 견디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에 아무에게도 베풀어지지 않은 특별한 특전을 받았다. 즉 그는 성흔으로 꾸며졌고, 이 죽음의 육체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몸과 한 몸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언어에는 이 일을 노래할 만한 어떤 노래도 없을 것이다. 이 기적의 이유를 물을 것이 아니라. 오직 감탄할 뿐이어야 하며, 이는 처음 있는 일이라서 그 유례를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2첼라노 2).


이 신비한 사건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지만 프란치스코의 영적 친구인 레오 형제는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한 광경 앞에 그만 멀리 떨어져 부를 때까지 있으라던 말을 잊어버리고 이 신비를 보게 되었다.


레오 형제가 하늘을 응시하는 동안. 매우 아름답고도 찬란히 빛나며 보기에 좋은 한 화염덩어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머리 위에 머므르더니, 한 소리가 화염 속에서 나와 말하자, 성인이 이에 응답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레오 형제는 그 광경을 보고 돌아서다 성인에게 들키고 말았다. 프란치스코는 레오 형제에게 다가와서 "누구십니까?"하고 물었다. 레오 형제는 부들부들 떨면서 "사부님, 레오 형제입니다"하고 겨우 대답했다. 성인은 "나를 엿보지 말도록 여러 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형제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나에게 말해주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레오 형제는 성인 앞에 무릎을 끓고 불순종의 죄를 고백하며 눈물로써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자기가 들은 말의 뜻을 해석해 주고, 자기가 이해 못한 것들을 설명해 달라고 성인께 간청했다. 그래서 다행히 프란치스코로부터 그 광경의 비밀을 듣게 되었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 양이여, 형제가 바로 들은 말을 내가 하느님께 아뢰고 있을 때, 두 줄기의 빛이 내 영혼을 비추었습니다. 하나는 창조주를 알고 이해하는 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빛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말했을 때 나는 묵상의 빛 속에 잠겨 있었고, 그 속에 슬퍼할 만큼 깊은 나의 미천함과 불행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한한 지혜와 선과 전능의 주시여, 당신은 누구시기에 황송하옵게도 가장 미천하고 가장 가증할 만한 벌레인 저를 찾아주십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는 내가 본 화염 속에 계셨고, 하느님은 화염 모습으로 이전에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것 중에서 하느님은 나에게 당신께서 세 가지의 선물을 바치도록 요구하셨는데 나는 '나의 주님, 저는 온전히 당신 것입니다. 당신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수도복과 허리때 그리고 바지 한 벌밖에 없습니다. 이 세가지도 모두 당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 대전에 무엇을 바치거나 드릴 수 있나이까'하고 말하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가슴에 네 손을 넣고 거기서 찾아내는 것은 무엇이고 내게 바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대로 가슴을 뒤져보니 금화가 하나 들어 있기에 그것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나는 이것을 세 번 했습니다. 세 번째 봉헌물을 바치고 난 후에 나는 세 번 무릎을 끓고 내게 바칠 것을 주신 하느님게 찬미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세 가지의 봉헌물이 바로 거룩한 순종과, 지극히 위대한 가난과, 빛나는 정결을 상징해 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즉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양심이 아무 것도 꾸짖지 못할 정도로, 이 세 가지 허원을 잘 지켰습니다. 내가 가슴에 손을 넣어 하느님 자신이 거기에다 넣어주신 세 개의 금화를 그분께 다시 돌려드린 것과 똑같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자비를 통해 주신 모든 좋은 것과, 모든 은혜에 대해 목소리와 마음을 다해 계속 하느님 당신을 찬미했습니다." 비밀을 다 설명하고 난 후 프란치스코 성인은 레오 형제에게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복음서를 세 번 펼치게 했다. 이 때 복음서는 세 번 모두 그리스도의 수난이 펼쳐졌다. 이것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은 전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따랐던 것 같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리스도의 수난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 십자가 축일날 새벽 성인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구하오니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소서, 먼제 제가 살고 있는 동안 제 영혼과 육신에, 사랑하는 당신 예수께서 가장 괴로웠던 수난 시간에 견디어 내신 그 고통을 기꺼이 견디어 내실 만큼 불타올랐던 넘치는 사랑을 제 마음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느끼게 해주소서."


성인의 강렬한 신심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분의 무한한 자비를 묵상했고, 그 열정은 너무도 높이 타올라 사랑과 연민으로 자신을 온전히 예수님으로 변모시켜 버렸다. 이렇게 묵상 속에 불태우고 있던 그 날 아침, 하늘로부터 찬란하고 불타는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세라핌 천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천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을 가졌는데, 두 날개는 머리 위로 뻗혔고, 둘은 날 수 있도록 펼쳐져 있었으며, 다른 두 날개는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 놀라운 환시가 사라졌을 때, 그 환시는 프란치스코의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강렬한 열정과 불을 남겨 주었고, 또한 그의 육체에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놀라운 모상과 인각을 남겨 놓았다. 그의 손과 발에는 세라핌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못자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손과 발은 가운데 부분들이 못으로 관통된 것 같았다. 즉, 둥글고 검은 색의 못의 머리가 손바닥과 발등의 살 밖으로 나와 있었고, 못 끝은 손등과 발바닥까지 너무 깊숙이 관통하여 쑥 나와 휘어, 구부러진 못의 양끝 사이로 손가락을 쉽게 넣을 수 있는 모양으로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에도 창에 찔린 자국이 나타나, 살이 헤어져 붉게 피가 맺혀져 있었다. 그의 거룩한 가슴에서는 여러 번 선혈이 흘러나와 수도복과 바지를 적시곤 하였다(잔꽃송이 제2부 제3장 참조).


프란치스코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오상의 은총은 말로 표현하거나 밝혀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의미에 대해 토마스 첼라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무늬들이 지니는 빼어난 위엄으로 해서, 만왕의 아들에게만 어울렸던, 그와 같은 무늬로써 군인을 장식하여 주셨으니 이 얼마나 특별한 선물이며 각별한 사랑의 표시이런가! --- 무겁지만 가볍고 찔러도 부드러워 죽은 살이 살아나고 약한 정신이 굳세게 되는, 그리해서 죽은 이에게 생명을 주는 그 살아있는 십자가의 장엄한 광휘여! 당신이 매우 영광스럽게 치장해 드린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끔찍히 사랑하시었도다. --- 이것은 정녕 진실하신 자비의 아버지께서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한 프란치스코에게 주신 상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다(1첼라노 114)


성인의 오상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특별히 십자가의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일치의 표시이다. 성인의 오상은 십자가의 주님의 발자취를 일생토록 따라간 성인의 삶과 사랑의 절정이다. "그의 마음이 내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입을수록 그의 육신도 외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입었다."(3첼라노 2)는 말은 본래 성인이 회개 생활 후에 십자가의 옷을 입은 데에 대한 설명이지만 그 의미는 오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내적으로 십자가를 입은 데에 대한 외적인 드러남, 그것이 바로 오상이다.


이와 같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십자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주어진 하느님 사랑의 지고한 현현이다. 일생동안 주님의 십자가만을 따라 산 성인의 생애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의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은 라 베르나 산을 제2의 골고타가 되게 하였다. 



성인은 십자가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적 의미의 말씀을 들었으며, 십자가와 같은 옷을 입고 일생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따라갔고, 그 정점에서 오상의 은총을 받았다. 우리는 이 은총에 놀라워하지만 말고 우리 역시 프란치스코처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라 베르나를 순례해야 한다. 그럴 때 성인처럼 그리스도의 오상을 마음과 영혼에 새기고 간직하는 삶이 될 것이다. 오상을 지니는 삶, 그것이 프란치스칸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제 오상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는 성사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사랑을 깊이 호습하고 탄식하여 십자가에서 단맛을 느끼고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겠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오상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프란치스코의 십자가 사랑과 이에 대한 하느님이 응답인 오상에서 내가 지향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3. 십자가에 대한 묵상을 할 때 그 안에서 고통과 사랑의 깊이가 어떤 모습으로 느껴지는가?


과제물


1. 나의 십자가는 무엇이며, 그 십자가를 주신 의미는 무엇인지 A4 용지 1매로 써온다.

2. 마태오 15~28장을 읽고 묵상을 적어 온다.

3. 첼라노 3생애, 보나벤투라 대전기, 잔꽃송이에 나와 있는 오상에 대한 고찰을 읽고 묵상을 적어온다.


마침기도


감미로우시고 아름다우신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시여,

죽음에 넘겨진 임금님,

지극히 감미로우신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위하여 빌으시어,

주님이 당신의 어지심과 지극히 거룩하신 육화와

지극히 가혹한 죽으심의 힘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게 하소서, 이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신 기도-



201812월 유기서약 양성 공부

4  라베르나

시작기도 : P662 성 프란치스코의 찬미송

성서 묵상 나눔 : (회칙 4조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자아 성찰의 생활 : 사부님의 평생의 화두 -하느님 당신은 누구이시며 나는 누구입니까?

★★★★ 양성 기간동안 양성 교제 프란치스코처럼 공부했는지??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함을 낳는다

당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파스칼)  마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같이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것은 자아 발견의 여정을 선택함을 뜻한다. -Lester Bach,OFM 미국국가 영적보조자-

프란치스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Lester Bach,OFM –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 33)

변화되기 이전에 가졌던 본성이 바로 자기 소유인 것입니다. 내 소유가 비워져야 주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지난달 주제

십자가는 프란치스칸의 핵심 영성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내가 믿는 믿음은 모래성에 싸인

회개 초기 다미아노 십자가에서부터 온 삶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항한 사랑으로 마음에 안고 사셨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마지막에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2첼라노 105)

성녀 글라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혼의 거울로 매일 비추어 보십시오.(성녀 아네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9~24)

성보라벤투라 -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이를 수 없다. (세라핌적 박사)

 

이달 양성 주제

성인의 삶은 그리스도가 중심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은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었고 열쇠였다.

어디서나 십자가를 볼 때마다 공경을 드리셨고 형제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다.

십자가에 대한 사랑은 수도복까지도 십자가의 모습으로 만들어 입으셨다

성 프란치스코의 찬미송과 같이 온 생애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향한 사랑이었다.

그가 타우십자가를 좋아하여 방마다 벽에 타우자를 붙였고 편지에 서명을 타우로 하셨던 것 역시 십자가에 대한 사랑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향해 있었으며 세라핌적 갈망이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을 가진  세라핌 천사로 나타난 그리스도와 같아지게 되셨다(보나 13,3~ 4)

그의 손과 발에는 세라핌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본 것과 또 같은 못자국이 나타났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몸과 한 몸이 되셨다. 이것은 가톨릭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라베르나 -몬태펠트로 백작 올란도의 기부122443세 되던 해

미카엘 대천사 축일을 기해 성모 몽소 승천 축일부터 40일간 단식을 시작 성 십자가 축일

 

 내 사랑하는 하느님이여,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그리고 당신의 가장 미천한 작은 벌레이며 쓸모 없는 작은 종인 저는 무엇입니까?

창조주를 알고 이해하는 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빛이었습니다” (관상의 경지)

회칙 제 8조 기도와 관상이 자신의 온 존재와 활동의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구하오니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소서. 먼저 제가 살고 있는 동안 제 영원과 육신에, 사랑하는 당신 예수께서 가장 괴로웠던 수난시간에 견디어 내신 그 고통을 기꺼이 견디어 내실 만큼 불타올랐던 넘치는 사랑을 제 마음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느끼게 해주소서.

 

프란치스코의 십자가 사랑 -예수님의 온전한 자기 비하 (자신을 온전히 비움)을 깨닫고 온전히 예수님을 닮으려는 열망

십자가의 말씀을 들음

십자가의 옷을 입음

주님의 십자가 길을 따름

하느님의 응답 -오상

 

세라핌이 나타난 경위 : 1 첼라노 94, 95

성보나벤투라의 대 전기 : 13장 오상

잔꽃송이 P 174

 

종합 :

우리가 선택하고자하는 삶은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삶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려는 열망으로서 생애 마지막에 세라핌적 사부님은 예수님과 일치하셨다.

 

성인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법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때로 희생과 아픔이 있어도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날 수 없어도비판과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참된 진실과 정의를 위해서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속프란치스코회에 나오는 것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한 달 동안의 주님의 사랑을 내어주는 삶의 현장이다.

레지오에서 하는 주 회를 보면 한 주간 어떻게 주님의 복음을 살았는지를 나눈다.

 

 

 

다음달 교제 : 

마침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