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프란치스코의 회개와 십자가
시작기도
이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세상은 곧 사랑이고 모든 생명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오니 저희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대하여 살도록 재촉하시나이다. 저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끊임없는 회개를 통하여 항상 탕자로서 아버지의 품안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몸이오다.
-프란치스칸 신앙고백 중에서-
오늘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와 십자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자. 신앙은 회개를 전제로 한다. 회개는 단순한 '죄의 누우침'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느님께로 돌려놓는 것이다. 주님의 생각과 행동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맞추어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 이것이 회개의 진정한 의미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떤 과정을 통해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을까? 또 그 과정에서 프란치스코에게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가 좀 더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지니는 의미이다. 회개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는 길이며,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이다.
1.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
1) 회개의 의미
프란치스코 성인이 회개한 경로를 따라가 보면 그가 지녔던 이상의 원천을 볼 수 있다. 그에게 매우 단순하면서도 살아있는 신앙이 그의 영혼 안에서 환히 빛났다. 이 빛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회개가 그의 영혼에 흘러 넘쳤다. 다음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의 마음속에서 활활 타는 사랑에 불을 붙여주었다. 바로 이것이 완전한 크리스천 생활로 나아가는데 있아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인 자아포기라는 정화의 훈련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게 하는 힘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랑이 그를 이끌어 그리스도를 닮도록 해주었다.
프란치스코는 신학자가 아니었지만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 육화의 신비를 알아듣게 되었다. 사실 성인의 회칙이나 편지들, 그리고 권고문 구석 구석에는 이 사랑이 그의 삶에 얼마나 철저하게 녹아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육화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는 그에게 있어 참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시며 구원이시고, 희망의 원천이시고, 세상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그분을 닮는 것이 프란치스코 성인이 지니셨던 최대의 이상이요 희망이었다. "그의 가장 높은 지향과 주된 사람과 최고의 결심은 복음을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실행하는 것이었고,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열의를 다하여 애타게 갈망하는 온전한 정신과 뜨겁게 타오르는 온전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었다."(1첼라노 84)
성 보나벤투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이었으니, 살아있을 때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려 애썼고, 죽음을 맞이할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하려 애썼으며, 심지어 죽었을 때도 그리스도와 같아지고 싶어했고, 상급을 받을 때는 그분과 온전히 닮아지는 것으로 장식되고자 했다.:(대전기 14,4)
프란치스코 성인은 주님을 부분적이거나 혹은 순전히 외적으로 닮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또, 멀리서, 희미하게 같아지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끊임없는 관심사는 영의 내적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온갖 위선을 피하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실상 육의 정신은 말을 하는 데에 많이 노력하고 애쓰지만, 실천에 옮기는데 있어서는 노력을 적게 합니다. 그리고 내적으로 신앙과 성화를 얻으려하기보다 사람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신앙과 성화를 얻기 원하고 열망합니다."(1회칙 17장)
프란치스코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그대로 살았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이 마음을 여러분 안에 지니십시오. "(필립 2,6~11). 그러므로 프란치스코의 소망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또 할 수 있는 한 그리스도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그가 늘 바라는 것은 주님께서 겪으신 것을 자신의 몸과 영혼에서 체험하는 것이었다.
2)회개 과정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 생활을 시작하도록 해주셨습니다.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지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 1~3).
유언을 통해 프란치스코 성인의 마음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 수 있다. 외적으로는 나병환자를 보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내적으로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일순간에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변화는 꽤 오랜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1202년 20세의 프란치스코는 아씨시와 페루지아와의 전쟁에 가담하여 아씨시가 패배하자 포로가 되었고 석방 후에 병석에 눕게 되어 점차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1205년 다시 기사가 될 마음으로 아풀리아로 가서 백작 월터군에 입대하여 전쟁터로 나가던 중 '스폴레토'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프란치스코는 곧장 아씨시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주님이 프란치스코 성인을 부르신 것이다. 이 부르심 이후에 성인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동굴에서 기도하곤 하였다. 스스로 거지가 되어 구걸하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처럼 애긍하여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였다. 12006년 로마 성 베드로 무덤 순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병환자와 입맞춤한 사건이 있었고,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다오"(1첼라노 10)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에 따라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회와 경당들을 손수 수리하고 그곳에서 기도하며 생활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 모든 것을 실천하고 있었으면서도 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해인 1207년 아버지와의 결별 사건을 인해 비로소 육신의 아버지를 떠나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함으로써 완전히 하느님께 속한 아들이 된 것이다.
1208년 2월 23일 '포르치운쿨라' 성당에서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미사참례 중에 마태오 복음 10장 3~10절의 말씀을 자신의 생활 규칙으로 삼았고 죽을 때까지 이것을 실행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성인의 회개과정은 약 3년에 걸쳐 일어났다. 프란치스코의 회개 과정은 여러 번의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성숙되어 갔다. 그의 회개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은 그를 점점 십자가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고 복음으로 인도하였다. 주님께서는 프란치스코의 회개 과정에 늘 함께 하시면서 그를 인도하고 계셨다.
회개 과정 동안 프란치스코 성인에게는 세 번의 하느님 계시가 있었고,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계시를 받아들이는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와 극기, 그리고 애덕 실천이 뒤따랐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받게 되었던 조롱과 멸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었던 세 번의 계시와 의미를 살펴보자.
① 주인을 섬겨라
우리가 육적인 것들에 몰두하고 있다면 우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가 육적인 것들에 몰두하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에 하느님이 들어오실 자리는 없다. 먼저 육적인 것들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이 자리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이러한 계시의 말씀을 들은 후 자신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완전한 확신을 가졌으며 즉시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주인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골몰하였다. 그전의 부유한 생활과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생활을 벗어 버리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아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길 기다렸다. 그 때 아씨시 성밖의 한적한 곳에서 만난 나환자를 통해 인간과 하느님의 고통과 사랑을 깨달아 갔고 스스로 거지가 되었다.
② 가서,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프란치스코가 아직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 달라고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려 주셨다. 그는 아직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여 세 개의 성당을 수리하였다.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에 있어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실하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것을 봉헌하여 하느님의 사업에 임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계셨다. 그가 가야 할 곳은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세상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쇄신이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나아가야 할 곳은 허물어진 곳이었다.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를 부르신 것은 세상으로 가서, 창조된 세상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견실한 수리였던 것이다.
③ 여러분은 전대에 금도 은도 동전도 지니지 마시오. 길을 떠날 때에 자루도 속옷 두벌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시오.
프란치스코가 이 말씀의 의미를 알아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생명의 환희와 기쁨으로 넘쳤다. 이 말씀은 그에게 기쁜 소식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뿐만 아니라 작은 형제들은 이 말씀을 생활양식으로 여겼고 그렇게 살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는 유언에서 밝힌 것처럼 모든 것이 주님의 이끄심이었다. 회개 역시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나병환자를 보는 것이 마음의 단맛으로 느꺼지게 되는 마음의 변화를 가능케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회개가 지니는 마음의 단 맛은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였다.
2. 프란치스코 성인과 십자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 과정에서 십자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은 그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소명을 깨닫게 된다. 프란치스코에게 십자가는 그를 인도하는 빛이었다. 또 프란치스코는 십자가를 통해 가난하고 겸손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성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가난과 겸손의 극치였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십자가는 그의 삶의 절정이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 24~25)라는 말씀에서 자신의 삶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회개에 있어서도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극도의 가난(비하)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가난'에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성인은 가난한 삶을 통해서 특히 나병환자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한 몸에 지닌, 가난하게 탄생하시고 고통 중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형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전하였다. 성인은 먼저 가난한 사람 안에서 주님을 발견했기 때문에 성당의 십자가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형제'로 알아보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풀어주는 열쇠요,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되었다. 그는 생의 마지막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마지막에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2첼라노 105)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의 생애에 있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분이었다. 그의 회개 중에 다미아노 성당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말씀은 그를 완전히 변화하게 하였던 것이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 생애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향하여 올라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첼라노도 "프란치스코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고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살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향락이 그에게는 하나의 십자가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갔기 때문이다."(2첼라노 211)라고 하였다. 이처럼 십자가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자아 포기와 내적 가난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성인의 삶과 회개에 있어서 십자가는 회개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한 이정표인 동시에 목적이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심으로써 그의 회개는 완전해지고 있었다. 또한 십자가를 지고 따르려는 열망이 그의 회개 생활을 항구하게 해 주었다. 십자가에 대한 성인의 태도는 우리가 성무일도 전-후에 성당에서 바치는 기도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새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저희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유언 5)
성인은 레오 형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 가운데서 가장 훌룽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 고통, 수치, 모욕, 불쾌한 것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달게 참아 받는 그것입니다. 하느님의 다른 선물들을 자랑거리로 삼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께서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가라 6,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잔꽃송이 8).
오늘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 생활과 십자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매순간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크리스천으로서 그리고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으로서 우리의 삶은 연속되는 회개의 삶이다. 그러나 회개의 생활은 결코 순조롭거나 평탄하지 않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에서 잘 알 수 있다.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것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고 이 회개 생활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고통을 십자가의 사랑에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이며, 고통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하느님의 크신 상을 느끼게 된다. 성인의 삶에 있어서 회개가 하나의 전환점이라면 십자가의 신비는 지금 살아야 할 규범이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한 제시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이 성인에게 있어서는 회개를 완성시키는 것이었고, 십자가에 대한 깊은 묵상은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게 했다. 프란치스코의 십자가 사랑이 구체화 된 것이 성인의 오상이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우리 생활 안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회개와 보속은 무엇인가?
2. 회개와 십자가는 어떤 관계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3.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일치시켜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는가?
4. 주님께 내어드리는 사랑으로 스스로 지는 적극적인 십자가는 무엇인가?
과제물
1. 프란치스코의 유언을 읽고 요약해 온다
2. 마태오 복음 1~14장을 읽고 묵상을 적어 온다.
3.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적고 자유롭기 위한 실천을 한 후 느낌을 적어 온다.
마침기도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셨기에 저희는 그분의 가난과 고통을 나누어 받고자 원하오며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봉사에 더욱더 헌신하고자 하나이다. 저희는 권력과 특전과 권위로써 보다는 단순성과 겸손과 작음의 덕성으로 이러한 삶을 영위해 나가고자 하오며, 그리스도처럼,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저희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 되고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하나이다.
-프란치스칸 신앙고백 중에서-
제 3과 프란치스코의 회개와 십자가
◈ 시작기도 :양성교제P31 프란치스칸 신앙고백 중에서
◈ 성서 묵상 나눔 : 복음묵상 (회칙 4조: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
◈ 자아 성찰의 생활 : : 성인의 평생의 화두( 하느님 당신은 누구이시며, 나는 누구입니까?)
◈ 지난달 주제: 2과 프란치스코의 하느님 체험
1.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를 부르심
나환자를 통한 인간사랑(유언에서 회개 생활의 시작점이 나환자와의 입맞춤이라고 하셨다)
2.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부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을 체험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당신은~~, 당신은 ~~, 당신은~~
◈ 이달 양성 주제
십자가는 프란치스칸의 핵심 영성이다.
이달의 양성주제 회개와 십자가와 다음달 양성 주제인 라베르나는 프란치스칸의 주요 핵심 영성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와의 일치에 대한 것이다
성인은 제2의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받으신분이며. 삽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성인께서 서로를 포옹하고 계신 동상을 많이 볼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떤 과정을 통해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을까? 또 그 과정에서 프란치스코에게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프란치스코 성인의 회개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십자가 (초기 : 성 다미아노 십자가에서의 계시 →말기 : 라베르나에서의 오상)
프란치스코의 십자가 사랑이 구체화 된 것이 성인의 오상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세파핌적 사부)은 생애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에 대한 열렬한 사랑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19~20)라고 하신 바오로 사도와 또 같은 십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일생을 사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마지막에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2첼라노 105)
성녀 글라라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혼의 거울로 매일 비추어 보십시오.(성녀 아네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9~24)
성보라벤투라 -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이를 수 없다. (세라핌적 박사)
성인의 생애 초기에 회개의 과정
- 1205년 봄 스폴레토 계곡에서의 환시 - 주인을 섬길 것인가 종을 섬길 것인가
여름 회개생활 시작
가을 “나병환자를 만남후에 얼마 있다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1 ~3)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의 계시 - 가서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 1206년 귀도 주교 앞에서 육신의 아버지와 결별,
은둔자의 옷을 입음, 성 다미아노, 성 베드로, 포르치운꿀라 성당 수리
- 1208년 2월 24일 포르지웅쿨라에서 성 마티아 축일 미사 중에 받은 생활 규칙 –
전대에 금도 은도 동전도 지니지 말고 길을 떠날 때…
프란치스칸들은 회개하는 형제자매들이다. (회칙 7조)
회칙 17조 회개하는 형제자매로서 회원은 자기 성소 때문에 복음의 강력한 힘에 자극 받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내적 변화에 의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그리스도와 일치시켜야 한다. 복음은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재속프란치스코회는 완덕의 학교이다 왜?
프란치스칸의 회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회개란? 단순한 ‘죄의 뉘우침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느님께로 돌려 놓는 것이다.
끊임없는 회개 생활은 프란치스칸의 특징이다. 프란치스코는 회개 생활을 성령의 은총이라고 한다.
프란치스칸의 회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 나눔을 위한 주제
성인이 깨달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가난과 겸손의 극치,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극도의 가난(비하)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 마지막에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2첼라노 105)
◈ 종합 : 성체를 모실 때의 나의 마음가짐에 대한 성찰,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으로서 우리의 삶은 연속되는 회개의 삶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
)
발자취 회개하는 이들 P 29마음을 다하고 …. 오 그런일을 실행하며 항구하는 남녀 모든 이들은 얼마나 복되고 얼마나 축복 받은 삶들인지… 믿는 영혼이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정배들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의 형제들이 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입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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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달 교제 : 2018년 12월 라베르나
◈ 마침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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