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베르나
제 2과 프란치스코의 하느님 체험
시작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의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당신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불쌍한 우리로 하여금 실천케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항상 원하게 하시고, 내적으로 깨끗해지고 내적으로 빛을 받고 성령에 불타,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오로지 당신의 은총으로만 지존하신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당신은 완전한 삼위이시고 순수한 일체를 이루시며, 그 안에서 생활하시고 다스리시며, 세세 대대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영광을 받으시나이다. 아멘.
-형제회에 보내신 편지-
프란치스코의 회개 생활과 그의 영성의 출발은 하느님 체험으로부터 시작한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좋으심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를 부르셨고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 사로잡힌 자가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났으며 온통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느라 온 시간을 보냈다. 육화와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흐느끼곤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영의 움직임에 민감하였으며 거룩한 영의 뜻에 온 마음을 집중하였다. 언제나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였고 성령의 숨결 안에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시작하여 교회의 신앙인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영혼이 온전히 젖기까지 하느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보았다.
1.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를 부르시다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게 된 것은 페루지아에서의 병상 생활과 스폴레토의 환시, 나병환자와의 만남,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에서 받은 소명, 아버지와의 결별 등 여러 단계를 거쳐 복음적 소명으로 발전하였다. 회개하기 이전 그는 세속적 쾌락을 추구하기는 했지만 아주 방탕한 생활을 했다기보다 도덕적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고, 신분 상승을 위한 기사 정신은 가지고 있었지만 물질적 재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욕심이 없었다. 이런 특성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복음의 말씀을 만나게 됨으로써 프란치스코를 보다 높은 영적 생활로 이끌었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세속적 쾌락과 기사도에 대한 세속적 영광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지상에서의 기사에 대한 이상을 하느님 나라에 영신의 기사라는 보다 높은 이상으로 이끌어 주셨다.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를 당신께로 부르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면 프란치스코의 회개 과정과 하느님 체험의 단계적인 발전을 살펴보자
1) 나환자를 통한 인간 사랑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나환자를 만나게 된 체험은 유언에서 스스로 회개 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나환자와의 만남은 '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극적인 체험으로,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의미로 나가왔던 것이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 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 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 1~3)
이 진솔한 고백은 프란치스코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그는 나환자들을 돌보면서 인간이 겪는 고통의 깊이를 체험하였으며 그만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새로운 면을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그들을 통해 고동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마음 깊이 체험하였다. 그러기에 성인은 그리스도를 어루만지듯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이러한 신앙의 심화는 주님 친히 프란치스코에게 그의 생활과 수도회를 모든 완덕의 유일한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에다 세우도록 지시하셨을 때 비로서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된다.
2) 말씀 안에서 밝혀진 복음적 삶
프란치스코가 은둔자의 옷을 입고 하느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1208년, 마티아 축일의 복음 말씀(마태 10,7~10)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들려주신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이 복음 말씀을 듣고 프란치스코는 즉시 하느님의 영 안에서 기뻐 외쳤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온 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하던 바다."(1첼라노 22) 그리고 나서 기쁨에 넘쳐 자신이 방금 들은 영혼에 유익한 말을 서둘러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는 즉시 발에서 신발을 벗어버리고 손에서는 지팡이를 치워버리며 한 벌의 옷에 만족하고 허리띠는 가느다란 새끼줄로 바꾸어 버렸다.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알려 주신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프란치스코의 생활 양식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게 되었다. 퀸타발레의 베르나로도가 프란치스코와 함께 회개의 삶을 살고자 왔을 때, 프란치스코는 둘이서 아씨시의 성 니콜라오 성당에 가서 기도한 후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복음서를 세 번 펼쳤다(마태 19,21; 마태 16,24; 루가 9,3).
복음 말씀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삶과 미래의 형제회 삶이 복음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고, 즉시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생활이고 우리의 회칙이며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려고 하는 모든이의 회칙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여러분이 들은 대로 행하십시오."(대전기 3,3)라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공동체의 생활양식을 주신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동시에 형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이로써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형님이시며 오빠가 되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시라는 평범한 진리를 재발견한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인간을 위한 사랑을 체험하였다.
3)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형제들의 수효가 12명으로 증가되었을 때, 프란치스코는 자신과 형제들의 생활 양식을 교회로부터 인준받기 위해 1209년 로마로 갔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서를 통해 들려주신 생활양식의 이상을 분명히 또 확고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고위 성직자들이 그들의 생황양식을 반대하였지만 그 이상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성인은 유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몇마디 말로 간단히 기록케 했고 교황 성하께서 나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회칙 인준을 교회로부터 받게 된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은 교황 성하를 통하여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할 수 있었으며 교회가 맡긴 소명, 시대의 소명에 따라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해 세상으로 파견되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사랑,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시고 목숨까지 바쳐 사랑한 이 세상!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그 사랑을 그의 삶을 통해 세상 안에 뿌렸다.
2.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프란치스코의 하느님에 대한 인식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사랑의 보이는 정점이요, 그 사랑이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는 분은 바로 성령이심을 보았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친교 가운데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일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음을 재발견하였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된 프란치스코의 하느님 체험은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하느님이 누구이신가를 고백하게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하였다. 나아가 그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그분은 사랑이며 선하신 분이라는 것과 삼위이시며 일체이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신학자가 아니었지만 직관력으로 교회의 진리를 꿰뚫어 보았다. 그의 하느님 체험은 그가 얼마나 영적 감각이 뛰어났으며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에 민감하였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 안에 움직이는 성령의 숨결과 현존을 늘 인식하였던 것이다.
1) 사랑이시고 선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좋으시고 선하심은 프란치스칸 영성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이야말로 모든 프란치스칸 영적 활동의 이유이고 모든 문제 해결의 처음이요 마지막 열쇠이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지혜이시며 모든 것을 통달하고 계신 분이시다. 또 재판관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심판을 하시는 분이시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참으로 좋으심과 선하심을 강조하였다.
"당신은 사랑이시오며 자비이시나이다"(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4). 성인이 그렇게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도록 권하는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때는 늘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강조하고 간청할 때 프란치스코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인의 신심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형제회에서 첫째가는 법이 사랑이요, 프란치스칸들이 세상에 전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도 바로 그분께 대한 사랑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여 모든 장애물을 제거시키는 "신심의 정신"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고 돌려드리려는 자세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모든 선을 내려 주시는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되돌리게 해준다.
프란치스코는 사랑의 초대에 민감하여'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는 마치 밖에서 말하는 사람의 소리에 활이 마음 안에 있는 현을 긁는 듯이 곧 자극을 받아 꿈틀거렸으며 불이 붙었다. ``` 그리고 말하였다.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을 한없이 사랑해야 합니다."(2첼라노 196)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무한하게 초월하여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과 행복을 소유하고 계시다. 하느님은 무한한 사랑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착하시고 좋으시고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당신의 마음을 우리가 함게 나누어 갖기를 원하고 계시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선함과 사랑으로 가득하길 원하신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내가 그리워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분은 우리가 당신의 선함과 사랑으로 가득하길 원하신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버려두시기까지 우리가 사랑으로 가득하길 원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알려 주셨다. 프란치스코는 그분을 생각하고 대할 때마다 그분의 선하심과 한없는 사랑에 도취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만한 선, 모든 선, 완전한 선, 참되시고 최고 선이신 우리 창조주와 구세주이시고 유일하시고 진실하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홀로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양순하시고 감미로우시며 달고 달콤하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홀로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거룩하시며 의로우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홀로 인자하시고 무죄하시고 순수하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 회개한 모든 이들과 의로운 모든 이들과 하늘에서 함꺼 기뻐하는 모든 성도들의 모든 용서와 모든 은총과 모든 영광의 샘이신 하느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우리는 원하지도 바라지도 말며 다른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도 만족하지도 맙시다(1회칙 23)
2) 삼위일체 하느님
성인에게 있어서 하느님 체험의 절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다.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아드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빛 가운데 계시는 아버지를 뵈올 수 없으며, 하느님은 영적인 존재이시므로 영적으로써가 아니면 하느님을 뵈올 수 없고, 아드님도 아버지와 같이 영이신 만큼 아버지와 성령을 뵈옵는 방법과 다르게는 아무도 아드님을 뵈올 수 없다(권고1)는 것이 프란치스코의 체험이다. 즉 성인은 영적으로 삼위일체를 활동하시는 하느님으로 보고, 생명의 창조주로,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로, 성화의 작업을 이룩하시며 사랑의 일치로 초대하시는 분으로 각각의 위를 믿고 공경하였다.
모든 점에서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은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은 유일한 절대자이시고 프란치스코 자신은 그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분을 소유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절대적 최상 주권과 그분에 대한 변함 없는 추구는 프란치스코의 존재 방식이며 행동방식이었다. 그는 절대자이신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을 열망하였다. 프란치스코가 만나고 체험했으며 선포하고 노래한 하느님은 삼위이시고 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그 체험의 절정을 이루었다.
하느님은 무한한 존재이시므로 삼위일체 안에서 이루시려는 사랑의 원의는 한계가 없으시고 무한하시며 완전하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체 안에서 차고 넘치며 서로에게 충실하시고 항구하시어 온 세상으로 풍성하게 흐르고 있다. 삼위일체는 사랑으로써 그 존재 방식을 취하신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표지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신적인 사랑이며 그 사랑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며 이 사랑을 체험하게 한다.
이상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하느님 처험을 살펴보았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되취되어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응답했으며, 그의 일생은 이 응답의 결실이었다. 나환자를 통하여 형제들을 통하여, 복음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였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과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삼위시고 일체이신 분을 찬양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사랑인 은총의 생활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분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인간의 몸으로 하느님의 신적 생명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프란치스코처럼 선하시고 참 좋으신 하느님을 올바로 체험하고 받아들인다면,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다른 변화의 힘도 사랑의 힘을 능가하지 못하며,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새로운 새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프란치스코가 체험한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이다. 나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는가?
2. 나를 불러주신 하느님 체험은 어떤 것이며 그 체험을 어떻게 성숙시켜 가고 있는가?
3. 하느님의 부모적인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모님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4. 성 삼위 안에 드러나는 사랑처럼 내 생활에서 서로 내어주는 사랑의 체험을 나누어 보자.
과제물
1. 나의 하느님 체험을 적어 온다
2. 마르코 복음 9~16장을 읽고, 그 중 묵상한 내용을 적어 온다.
3. 작은 형제들의 제 1회칙을 잃고, 느낀 내용을 적어 온다.
마침기도
주님, "당신은'홀로 거룩하시오며,
"기적을 하시는" 주 하느님이시나이다.
당신은 힘세시고 위대한 분이시나이다.
당신은 지극히 높은 분이시며 전능한 왕이시나이다.
당신은 거룩한 아버지시며 하늘와 땅의 왕이시나이다.
당신은 삼위이시고 일체이시오며 신들의 주 하느님이시나이다
당신은 선 자체이시며 모든 선이이며 지상 선이시나이다.
당신은 살아 계신 주님이시오며 참 하느님이시나이다.
당신은 사랑이시오며 자비이시나이다.
당신은 지혜이시오며 겸손이시나이다.
당신은 인내이시오며 아름다움이시나이다.
당신은 온화이시오며 안식처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평화이시오며 기쁨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정의이시오며 절재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시오며 즐거움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를 흡족하게 하는 온갖 보화이시나이다.
당신은 아름다움이시오며 온화이시나이다.
당신은 피난처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보호자이시오며 방어자이시나이다.
당신은 힘이시오며 휴식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시오며 우리의 믿음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사랑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온전한 감미로움이시오며,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나이다.
위대하시고 감탄하올 주님,
전능하신 하느님, 자비로운 구세주이시여!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제 2과 프란치스코의 하느님 체험
◈ 시작기도 :형제회에 보내신 편지
◈ 성서 묵상 나눔 : 복음묵상 (회칙 4조: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
성 프란치스코의 재속 프란치스칸들에게 주신 생활양식인 회개하는이들에 대한 이해
연중 제28주일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르 10,17-27 )
◈ 자아 성찰의 생활 : 하느님 당신은 누구이며 저는 누구입니다.
◈ 지난달 주제:
재속프란치스칸의 정체성에 대해 쓰러져가는 교회를 고쳐라 (평화의 기도)
유기서약기: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영적 여정을 다시한번 더 깊이 있게 인식하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생활양식인 회칙을 내 삶안에서 접목시키는 시기
재속 프란치스칸들이란 성 프란치스코의 완전한 가난을 사신 성녀 글라라의 관상의 생활이 바탕이 되어
성 프란치스코가 알아듣고 실천하셨던 쓰러져가는 교회를 고치는 평화의 사도의 사명을
내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유기서약기를 시작하는 지금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조금 더 넓게 교회와 프란치스코와 형제회를 보게 될 것이다.
◈ 이달 양성 주제 : 2과 프란치스코의 하느님 체험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복음의 말씀을 만나게 됨으로써 프란치스코를 보다 영적 생활로 이끌었다.
성인의 평생의 화두( 하느님 당신은 누구이시며, 나는 누구입니까?)
라베르나 목차 훑어보기(2과 ~ 5과 성인의 생애)
2과 하느님 체험에 대해
3과 회개와 십자가 (회개 생활시작부터 십자가에 대해 사랑)
4.과 라베르나 오상 받으심
5과 태양의 노래 죽음 임박,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만든 노래, 죽음 앞에서 불러주기 원하심
프란치스코의 회개 과정과 하느님 체험의 단계적인 발전
1.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를 부르심
나환자를 통한 인간사랑(유언에서 회개 생활의 시작점이 나환자와의 입맞춤이라고 하셨다)
말씀 안에서 밝혀진 복음적 삶(복음 안에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2.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시고 선하신 하느님
삼위일체 하느님
사부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을 체험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당신은~~, 당신은 ~~, 당신은~~
프란치스코의 단순성 - 복음을 듣자 마자 즉시 실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사랑을 나눌 수 있듯이
좋으신 하느님 안에 머무시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얼마나 행복한 모습인가
2과 과제 나눔
1. 나의 하느님 체험을 적어온다. (나의 하느님 체험 나눔)
2. 마르코 복음 9~16 장 묵상한 내용 나눔
3. 작은 형제들의 제1회칙 24장으로 되어있다 (인준받지 않은 회칙)
1회칙 1장 :
작은 형제회의 회칙과 생활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1소유없이 정결과 순종의 삶
3 성무일도와 단식재
4 봉사자들과 다른 형제들 간의 관계
5 죄지은 형제들에게 주는 충고
7 봉사와 일하는 자세
11 헐뜯거나 비방하지 말고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19 가톨릭 신자답게 생활할 것입니다.
20 고백성사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
21 모든 형제들이 할 수 있는 찬미와 권고의 말
22 형제들에게 주는 훈계
23 기도와 감사
24 맺는말
◈ 종합 : 프란치스코의 하느님 체험이 나의 생활 안에서 깊이 체험하는 삶이 되기 위해
.
◈ 다음달 교제 : 2018년 11월 프란치스코의 회개와 십자가
◈ 마침기도 :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P30, 발자취P 664)(프란치스코가 체험한 하느님)
'양성 교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베르나 제4과 라 베르나 (0) | 2018.10.17 |
---|---|
라베르나 제3과 프란치스코의 회개와 십자가 (0) | 2018.10.12 |
라베르나 제 1과 유기서약기를 시작하며 (0) | 2018.10.02 |
제14과 형제적이고 복음적인 하느님 나라 건설 양성 지도안 (0) | 2017.12.18 |
제 13과 헹제애와 작은 자의 삶 양성 지도안 (0) | 2017.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