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14장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형제적 공동체 -2

Margaret K 2017. 12. 18. 21:49


제14장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형제적 공동체 -2

9. 사라센인들과 다른 비신자들 앞에서

프란치스코에게 모든 사람은 “형제들이다”. 그리고 작은 형제들은 복음을 믿는 사람들로서 “말다툼이나 싸움을 하지 않고” 마호메트의 추종자들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살 수 있다”(RnB 16,5-6). 프란치스코는 양쪽 적대 세력 사이에서 군사적인 대립보다도 더 복음적이고 크리스천적인 만남의 길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십자군의 정신에 동의하지 못했다. 십자군의 정신은 이교인들을 대항하여 벌이는 투쟁을 기사의 영웅적 행위의 목표로 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병사”(miles Christi)에 대한 새로운 신앙관을 만들었다. 이것은 성 베르나르도의 “이교도 한 사람을 죽일 때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라는 표현대로 그리스도의 병사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위해 죽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와 반대로 프란치스코는 다미에따(Damiet) 성 밑에서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금치 못했다.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

성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를 “평화의 천사”라고 부른다. 이전에 이미 토마스 첼라노는 이것을 확인한 바 있다:

“이분을 지켜본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종이 살아 있는 동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세월은 갖가지 좋은 일들로 얼마나 풍성하게 채워져 있었는지도 알고 있다.”

프란치스코의 평화적 영향의 비결은 어디 있었겠는가? 그는 폭력을 고발하지도 않고 평화를 건설할 어떤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으며 인권헌장을 선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평화의 메시지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평화를 선언하는 방법이 매우 순수했다는 것뿐이다. 프란치스코는 사랑과 용서의 복음, 양순함과 기쁨의 복음, 사람들간의 형제적 일치의 복음을 살았다.

하느님께서 회개의 은총을 통해 프란치스코를 “죄중에 있는” 세속에서 구해내실 때부터 그는 평화 이전의 단계인 용서의 은총을 체험하였다. 이와같이 평화의 하느님과 만남을 이룬 사람은 자기가 발견한 결실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다. 첫째 결실은 형제에게 용서를 베푸는 일이다. 용서의 모델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모든 용서의 샘이 있다”(RnB 23,9). 프란치스코는 자기 공동체 안에서 형제적 용서를 베푸는 방법을 가르쳤고, 성녀 글라라도 자기 자매들의 공동체에서 그러하였다. 실은 용서는 참된 형제적 사랑의 조건이요 요구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표양이 되는 것이다. 초창기에 형제들이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박해를 받을 때 용서에 대한 사부의 가르침을 실천할 기회는 많았다: “그들은 ‘주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며 모든 이에게 마음으로 용서하였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은 “남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RnB 21,5)하고 설교하면서 주님께 찬미드리고 서로 용서하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바로 이러한 상호적인 용서에 대한 외침을 통해 성인은 평화를 건설하는 활동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미 어떤 농민이 자기 주인에 대해 품고 있는 원한을 풀었다는 사건을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아씨시에 미친 사회적 영향 때문에 더 의미가 있고 잘 알려진 사건은 1226년 9월경에 시 당국과 주교간에 이루어졌던 화해의 사건이다. 그 비결은 하느님의 음유시인들인 작은 형제들이 아씨시의 주교와 시 당국 앞에서 노래했던, 「태양의 노래」 끝부분에 실려 있는 용서에 대한 구절이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받으사이다.”

「잔 꽃송이」는 더 상징적인 차원에서 굽비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 조건으로서의 용서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굽비오의 시민들에게 자기들에게 많은 해를 입혀 준 사나운 늑대를 너그러이 용서해 줄 것을 당부한다.

성인은 「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이 당신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인사를 주님이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Test 23).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파견의 복음에서 부탁하신 말씀이었는데, 프란치스코는 복음에서 그 내용을 읽고 나서 그 인사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설교할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전에 항상 먼저 평화를 기원하였다: ‘주께서 여러분께 평화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는 만나는 모든 남녀 행인들에게도 언제나 열심히 평화를 전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평화를 싫어하고 또한 구원도 싫어했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화를 간직하게 되어 평화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구원을 갈구하는 이가 되었다.”

그는 형제들이 평화의 인사를 형제회의 특징과 소개 방법으로 택하기를 원하였으며 이것을 두 개의 「회칙」에서 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평화의 인사가 빈말이 되지 않도록 형제들을 파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사람들에게 평화를 전하십시오.”  “그리고 입으로 전하는 평화를 마음속에 풍부하게 간직하십시오. 아무도 분노와 악 표양으로 자극시키지 말고 오히려 여러분이 양순함을 통해 모두를 평화와 선한 마음과 화목에로 인도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소명입니다.”

작은 형제들의 소명과 사명은 평화의 사람이 되고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다(참조 RnB 11,1-4; RB 3,10-11).

프란치스코의 설교는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로서 많은 효과를 냈다. 그 가운데 특히 잘 알려진 것은 아레쪼(Aresso)시의 화해 사건이다. 그 도시의 기록에 의하면 1217년에 보스똘리(Bostoli)의 힘센 가문 때문에 큰 불화가 일어났을 때 프란치스코의 설교로 인해 화해가 이뤄졌다. 「잔 꽃송이」에 기록되어 있는 시에나의 화해 사건은 1221년으로 추측된다. 옛 기록에 의하면 이때 갈레라니(Galerani)와 말라볼띠(Malavolti) 가문 사이에 유허의 전투가 발행했다 한다. 볼로니아 시가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통해 평화의 혜택을 받은 날짜는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이것은 1222년 8월 15일이었다. 이것을 목격한 스팔라또의 토마스(Thomas de Spalato)라는 증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성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설교이 내용은 적대심의 불을 끄고 영속적인 평화를 위한 새로운 합의를 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 하느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크나큰 능력을 부으시어, 유혈상태까지 이르렀던 옛 적대감의 풀 수 없는 격분을 품었던 많은 귀족 가문이 화해를 이룩하도록 합의하였다.”


새로운 인본주의의 부흥

토데(H. Thode) 독일 사가는 유럽 문화의 역사 과정에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를 새로운 인본주의를 창조한 인물로 소개한다. 이 새로운 인본주의는 인간이 인격체로서 자기 사명에 대하여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 세상 앞에서 자신을 새로운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이 독일 사가에 의하면 예술과 종교심, 문화 및 사회 생활 등 다방면으로 나타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이 프란치스코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프란치스코를 인간과 세상에 대한 크리스천 비전을 새롭게 발견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하나의 크리스천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표현한 생활양식 때문이다. 크리스처니즘은 고대에서 인간 중심으로 된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변혁시켰다. 그리스의 인본주의는 인간 중심으로 된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변혁시켰다. 그리스의 인본주의는 인간을 모든 것의 척도와 원형으로 세워 신까지도 인간의 척도와 모습과 유사성으로 보았다.

크리스천 신학은 만물을 하느님의 창조 원의에 따라 존재되고 하느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모습과 유사성에 따라 지으신 것을 전제로 해서 각 인간의 삶과 인류의 역사, 나아가 창조물과 인간의 관계를 구원의 역사로 보고 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란 다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간절한 소망의 역사이다. 하느님은 죄인이 구원된 인간으로서 자유로이 응답하기를 기다리시면서, 계속적인 초대를 통해 사람을 당신의 생명과 사랑에 참여케 하신다. 하느님이 간절한 소망과 인간의 구원적 긴장의 중심은 하느님이요 인간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인류와 창조물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성취를 이룬다. 그런데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격체이신 하느님과 인격체인 인간간에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이제는 이스라엘과 같은 선민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격체인 각 개인을 만민 가운데서 불러내어 새로운 선민을 이루시는 것이고, 각 개인은 한 가족, 한 종족, 한 사회계급, 한 민족에 속하는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인격체로서 응답하여 그 새로운 선민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 바울로의 말씀에 따라 혼자 걸어가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함께 가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중세기 사회는 반 유목민족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여러 세포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각 개인은 자기 독립적인 선택을 강하게 제한시키는 가족, 사회, 윤리, 종교 등의 복잡한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구조가 만들어진 것으로 믿어지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게 되어 있었다. 다른 편으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상징주의적인 개념에 따라 사람은 이미 획일적으로 부여된 일과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배정받고 있었기에 개인적인 창의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나” 대수도원에서 영적인 자유를 구하는 사람도 자기를 보호만 해주는 새로운 수덕적이고 문화적인 체제를 만날 따름이었다.

프란치스코는 크리스천 생활에 대한 인습적인 형식주의와 거리를 둠으로써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인격적 관계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명에 대한 의식을 깨달으며 무엇보다도 인간 자체의 존재를 발견한다. 즉, 성령의 인도를 받기에 열려 있는 정도에 따라 각 인간의 자율성, 개인 독창력의 가치,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각 개인의 사명을 발견한다. 여기서는 각 개인의 사정에 대한 특별한 민감성이 생기고 각자가 삶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형제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그래서 형제적 공동체는 이 인본주의의 중요한 구성원이 된다.

성 프란치스코가 인간을 보는 관점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성인이 고독한 생활을 추구한 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도망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마음을 좀 더 성실하고 효과적으로 열 수 있게 자신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였다. 성인은 틀림없이 「준주성범」이 인용하는 옛 철학자의 말, 즉 “내가 사람을 만날 적마다 항상 전만 못하여 돌아왔노라”고 세네카 철학자가 말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은 인간을 하느님이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실 때 생각하셨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오 사람이여, 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당신 아드님의 모습대로 그대의 육신을, 또한 당신 자신과 비슷하게 그대 영혼을 창조하시고 지어내셨으니, 그분께서 그대를 얼마나 높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Adm 5,1).이 신앙심 안에서 성인은 각 사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이 하느님이 계획에 배반하고 반역하는 실정을 잘 인식하고 있다. 실은 크리스천 인본주의는 죄의 실재와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위한 회개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간의 현 상황에서는 하느님께서 용서함으로써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고 그분의 구원의 대화는 끊임없이 인간을 회개로 부르시는 초대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프란치스칸 대화는 회개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일 것이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주 하느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과 ··· 세상 어디서나 현재 있고 앞으로 있을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모든 국가와 모든 국민들에게, 다른 방법으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기에, 우리 모두가 참된 신앙과 회개에 항구하기를 우리 모든 작은 형제들이 겸손되이 부탁하고 간청하나이다”(RnB 23,7).

같은 노선에서 사람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자세가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에 잘 나타나고 있다. 겸손과 존경심, 형제라는 의식, 각 사람의 구원에 대한 열성, 삼위일체 안에서의 사랑과 생명의 일치에 대한 기쁨의 자세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수도자들, 성직자들 및 평신도들과 온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남녀들에게 여러분의 종이며 아랫사람인 프란치스코 형제가 여러분에게 경의와 존경을 드리며 하늘의 참된 평화와 주 안에서 진실한 사랑을 기원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종이기에 모든 사람들을 섬겨야 하며 내 주님의 향기로운 말씀들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생각하건대, 내 육신의 병고와 허약함으로 일일이 직접 방문할 수 없어 이 편지와 글로 아버지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영이며 생명인’ 성령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의의 덕

만인에게 열려 있는 형제적 공동체의 주제를 다룰 때, 성 프란치스코가 복음적인 덕행 중에 열거하는 예의에 대해 한 마디 안할 수가 없다.

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인간들의 상호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자세가 있는데, 이것은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중세기에도 기사에게 첫째로 요구되는 조건이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성격상 그리고 기상의 정신을 입은 사람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예민성을 지니고 있었다. 첼라노도 성인의 품행을 말할 때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고, 인심이 좋고, 관대하고, 약속을 꼭 지치는 분”이라고 하였다. 고위 성직자나 귀족을 대할 때 성인은 정중하고 공손한 표현을 사용하였고, 형제회 공동체 안에서도 형제들간의 차별과 형식을 없애버렸지만, 예의를 지키는데 있어서 형제들이 서로 정중하게 행동하고 무례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였다:

“어디에 있든지 또 어느 곳에서 만나든지 형제들은 영적으로 사랑을 가지고 서로 대하며 불평 없이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성인은 “영신의 형제”라는 말을 쓰는데, 이 표현의 뜻은 형제들이, 신앙에 의해 특징이 지어지고 생기가 얻어지는 친절하고 정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영적인 만남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사귐과 무관한 것이다. 시에나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함을 알게 된 형제들이 그에게 형제회를 위해 마지막 유언의 말을 남겨달라고 청하자, 프란치스코는 “나의 유언은 무엇보다도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이 덕행을 실천했고 형제들을 대할 때 특히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품위가 높은 형제들에 대하여도 존경의 표시를 아끼지 않았다.

성인은 예의를 지킨다는 것을 높이 평가했고 입회자들한테서 이 자질을 요구했다. 「잔 꽃송이」는 프란치스코와 그 동료를 친절하게 대해 준 한 신사의 이야기를 한 후에, 그 집을 떠난 다음에 성인이 다음과 같이 칭찬의 말씀을 하였다고 기술한다.

“참으로 저 귀족은 하느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웃과 가난한 이에게 인정 깊고 친절합니다. 우리 동료감으로는 참 훌륭한 사람이니, 사랑하는 형제, 잘 알아두십시오. 자비는 하느님의 한 특성입니다. 그분께서는 의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태양과 비를 주십니다. 또한 정중한 예의는 애덕의 자매로서 미움을 저버리고 사랑을 보존시켜 줍니다. 나는 저 어진 사람에게서 그와 같은 천상적 덕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에 그를 우리 동료로 삼고 싶소.”

프란치스코가 폰떼 꼴롬보(Fonte Colombe)에 있을 때 매우 가난한 부인에게 망토를 줄 생각으로 원장한테 가서 “원장 형제, 형제는 나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또 한 번 친절함을 보여주십시오”하고 허락을 청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은둔소에서 눈 수술을 받는 중 의사가 달구어진 쇠를 그의 눈에 대려고 할 때 프란치스코는 불을 향하여: “형제 불이여, 하느님의 창조물 가운데서 가장 고결하고 쓰임 많은 불이여, 내가 너에게 늘 사랑을 베풀어 주었으니, 너도 이제 나에게 친절하게 해주렴”하고 말하였다. 성인은 예의와 친절함을 복음적 덕행으로 높여서, 그렇게 고생시킨 자기 육신에게 죽기 전에 용서를 빌었다.“


***

지금까지 여러 측면에서 살펴본 주제는 현대인의 흥미를 끄는 것이므로 당연히 다음의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과 역사에 열려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 성 프란치스코가 꿈꾸었던 그의 이상은, 성인이 살았던 것과 매우 다른 오늘의 사회적 · 문화적 세계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 오늘날에 있어 성 프란치스코 자녀들의 예언적인 현존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프란치스코는 소위 “세속”이라는 것 앞에서 확실하게 예언적인 태도를 취하는 용감한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과 동시에 건설적인 낙관주의를 동반하는 복음적인 직관에 이끌려 당대 사회가 안고 있었던 긍정적인 가치를 수용하면서 그 가치들에게 새로운 크리스천 가능성을 불어넣었다.

오늘의 사회에서 비가치란, 즉 하느님의 나라와 반대되는 “세속”이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 또한 참된 크리스천 인본주의의 기초 조건에 알맞은 가치관들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10세기를 통한 복음적 누룩의 소산인 사회의 긍정적인 면을 수용하고 촉진시킴과 동시에 개인생활상과 인간의 상호관계에 대해 비크리스천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즉 복음과 반대되는 부정적인 면을 밝힐 용기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오늘의 사회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하느님의 나라에 상응하는 가치관

- 성별과 관계없고 차별과 특전이 없는 인간의 평들에 대한 의식

- 경제와 사회 생활,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 인권 존중과 개인 양심에 대한 존경심(양심수)

-공동체 의식, 협동정신, 민족의식, 동시에 개인 한계성의 의식과 성공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동행해야 할 필요성

- 우주적이고 국제적이고 보편적인(ecumenical)정신

- 형식주의와 인습주의에 대한 저항과 참됨에 대한 요구

- 창의력, 삶과 사회에 대한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개념; 돈의 기능적인 개념‘ 일시적인 것에 대한 의식

- 물질 및 자연에 대한 올바른 평가, 하급 사람에 대한 보호의식; 세상에서 사람의 사명에 대한 크리스천적인 새로운 개념; 인간의 긍정적인 습성을 개발시키는 기술의 좋은 영향

- 실용적이고 구복적인 신앙을 넘어선 더 깨어있고 성서적이며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하느님과의 통교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과 종교심; 현실과 결속쇠는 신앙심


우리 사회에서 하느님 나라와 반대되는 가치관, 즉 “세속”

- 대중화 및 비인격화, 도시생활에서 인간의 익명화

- 제도적이고 반역적인 폭력, 태러행위

- 배타주의,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과학

- 향락주의, 복리의 추구, 삶을 안락으로 삼는 경향

- 에로티즘, 성생활에 한정된 사랑, 상업화된 성생활

- 관료주의, 사목과 자선사업의 제도화

- 가족, 윤리생활, 직업에 따르는 의무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 우울증, 삶의 의미 상실, 마약을 도피의 도구로 사용

- 생명에 대한 폭력 행위; 낙태, 살인, 전쟁, 민족학살

- 실질적인 무신론, 하느님을 외면하는 현대인의 태도, 종교를 사생활로 몰아치는 경향

- 신앙과 윤리간의 혼동, 신앙에 따르는 윤리적 요구 때문에 신앙을 멀리함

- 일시적인 것에의 집착과 영구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 진지한 약속과 결정적인 선택에 대한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