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13장 “형제적 순종”

Margaret K 2017. 12. 18. 21:47

제13장 


“형제적 순종”

 

「수도생활의 쇄신과 적응」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령을 잘 연구해 보면, 수도생활 안에서 순종에 있어서나 장상들의 역할에 있어서 옛 전통적 개념과 많이 달라진 새로운 사상을 볼 수 있다. 이 새로운 사상의 요소들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구원적 순종이 수도자들의 순종의 근원이라는 점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는 것과, 다른 하나는 순종의 생활을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성숙한 자유의 완성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요소의 빛 속에서 아랫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책임적인 순종은 물론 장상들의 봉사의 역할도 새로운 가치관을 지니게 된다. 진실하게 하느님의 구원적 뜻을 찾아야 한다는 사랑의 노력은 장상이나 아랫사람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의무이다. 명하는 일과 순종하는 일은 똑같이 공동체를 섬기는 일이며 모든 사람에 대한 봉사를 위해 있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자녀들은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성인이 가르치고 강조하였던 순종의 복음적 차원을 재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적 순종의 신비

가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성 프란치스코의 생활의 전부이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장 위대한 길을 “순종의 생활”을 하는 일이다. “순종 안에 사는” 사람은 외적·내적 가난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다. “순종생활”위에 더 뛰어난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순교이다.

프란치스코는 성 바울로와 같이(로마 5,12-21) 죄를 아담의 불순종에, 구원을 그리스도의 순종에 연결시킨다. 하느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찾는 사람은 아담의 죄를 범하는 것이며, 하느님이 주신 자유의 선물을 부당하게 소유하는 것이다. 그 반면에 하느님 때문에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구원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Adm 2,3 참조).

자발적 봉헌생활의 동기는 그리스도의 사제적 순종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부를 사랑하신 나머지 순종을 바침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셨다. “그분은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시어 여느 사람 모양으로 드러나셨도다.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도다”(필립 26-8). “예수께서는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히브 5,*). 성 프란치스코는 총회에 모여 있는 형제들에게 「회칙」을 잘 지키고 순종생활을 하라고 권하면서 그 근거를 아름다운 표현으로 제시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께 대한 순종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EpOrd 46). 그리고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말한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당신의 뜻을 맞추려고 하셨고 ···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 아드님이 십자가의 제단 위에 자신의 피를 통해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EpFid II 10-11).

그러므로 프란치스칸 순종은 대수도원의(monastic) 규율생활이 요구하거나 공동생활의 질서가 요구하는 조건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하는 회개생활이 요구하는 조건이다. 성령의 작용에 마음을 열어 성소에 충실히 응답하려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순종의 생활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부의 말씀과 같이 “세속을 떠난 우리에겐 지금 오로지 주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밖에 다른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 순종생활은 도전적인 것이다. 작은 형제가 순종해야 하는 일차적인 동기는 장상의 명령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그리스도께 사랑의 선물을 바치는 데 있다. 이같은 영적인 자세를 보나벤투라 성인은 “사랑에 의해 충동된 순존”이라고 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자신도 순종이 가져다주는 이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자기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상을 두기를 원하였다.

이같은 순종의 수련은 형제들이 설립자를 중심으로 모여든 형제회의 초기에 실시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선교여행을 떠날 때 형제들 중 한 명을 책임자로 택하여 모든 이가 여행중에 그에게 순종하였다. 이것은 겸손의고행적인 행위 이상으로 구원의 차원에 오르기 위해 작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해야 할 적극적인 선택이다.


순종과 형제적 봉사

프란치스칸 순종의 특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형제적 공동체(fraternitas)가 먼저 성립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 성인을 중심으로 형제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의 자유를 체험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느님의 자녀들의 자유란 무엇인가? 이것은 성령의 작용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단계에 이른 자율성이다(personal autonomy). 바울로 사도가 말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말고 오히려 여러분은 서로 사랑으로 남을 섬기시오”(갈라 5,13).

이 택스트는 프란치스칸 순종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 가르침을 근거로 해서 프란치스코는 공동체 안에서 명하는 사람과 순종하는 사람의 관계를, “영적인” 사랑의 충동하에 이뤄지는 섬김의 열성과 상호적인 순종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인은 권한과 순종의 관계를 「제1회칙」에서 말한다:

“사랑의 정신으로 자진해서 서로 봉사하고 순종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거룩한 순종입니다.”

바울로의 택스트는 성인이 바로 위에 인용한 마태오 복음 20,28의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자도 봉사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러 왔습니다.”

참된 사랑이란 성 프란치스코가 「제3권고」에서 가르친 대로 “자기 몸을 잃는”, 즉 자기 자신의 포기를 전제로 하는 “서로”의 정신과 마음의 일치인 것이다. 이렇게 형제들간에 참된 공동체가 성립될 때, 형제들은 서로 봉사하기 위해서 순종의 필요성을 느낀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형제들의 집단에서 서로가 서로를 섬기려 할 때, 봉사하는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장상이 있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즉, 순종함으로 형제가 형제를 섬기고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이웃을 흡족케 하는 ··· 순종이야말로 사랑의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형제가 형제적 공동체를 더욱 굳게 뭉치게 하는 반면에 순종하지 않는 형제는 형제적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자기 자신도 그 이기심으로 인해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프란치스코에 의하면 순종치 않는 사람은 “살인자”다 왜냐하면 “자기의 나쁜 표양으로 많은 영혼들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Adm 3,11). 그리고 비록 장상이 권한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어떤 수도자가 양심을 따르기 위해 장상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있더라도 이것은 형제가 공동체와 친교를 끊어버릴 이유가 되지 못한다.

“장상이 영혼을 거스르는 어떤 것을 아랫사람에게 명한다면 순종하지 말아야 되지만, 장상의 곁을 떠나지 말 것입니다. 만일 이 때문에 어떤 형제들로부터 핍박을 당하더라도, 하느님 때문에 그들을 더욱 더 사랑하도록 할 것입니다. 실상 자기 형제들과 헤어지기보다는 핍박을 감수하기를 택하는 것이 자기 형제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기에 참으로 완전한 순종인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권한의 원칙이 손상되는 것에 대해서보다도 형제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순종생활을 떠나게 된 점에 대하여 매우 마음 아파하였고 이런 형제들을 엄하게 다루었다:"주님의 계명을 어기고 순종생활을 떠나서 돌아다닐 때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죄중에 머물러 있는 한, 순종생활을 떠난 그 모든 형제들은 자신들이 저주받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복음과 자기의 생활양식을 통하여 약속한 주님의 계명을 굳게 실행할 때 참된 순종 위에 자신들이 머물러 있음을 모든 형제들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들을 축복하시기를!“

두「회칙」에서 “순종에 받아들인다”는 말로 표현되는 수도회 입적은 입회자의 편에서 새로운 가정에 “예속”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공동체측에서는 그 형제를 예속시킬 권한이 있음을 의미한다. 각 형제의 개성과 인격을 지극히 존중한 성인은 유별난 행동을 참을 수 없었다. 주님의 정신은 각 개인의 변덕스럽고 유별난 경향에 맞추게 하면서 공동체의 친교 밖으로 따나도록 인도하지 않는다.

성 프란치스코의 시대의 수덕학(Ascetica)에 의하면 순명덕은 겸덕과 연결되어 있었고, 신학자들은 순명을 정의와 함께 다루곤 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순명의 위치를 높이면서 애덕과 관련시킨다. 「덕행들에게 바치는 인사」에 순종에 관한 프란치스코의 종합적인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귀부인이신 거룩한 사랑이여, 주께서 당신의 자매인 거룩한 순종과 함께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 거룩한 사랑은 악마의 온갖 유혹과 온갖 육적인 유혹과 온갖 육적인 두려움을 부끄럽게 합니다. 거룩한 순종은 온갖 육신적이며 육적인 원의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리고 순종은 육이 영에 순종하고 자기 형제에게 순종하도록 육신을 제어합니다. 순종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가축과 야수들에게까지 복종케 하고 그들 수중에 있게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주님이 하늘에서 허락하시는 한도 내에서 이것들은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서로 봉사하고 섬기도록 하는 “영신적 사랑”은 작음성(minoritas)과 순종을 함께 묶어, 이 두 가지 덕으로 하여금 형제적 공동체라는 더 높은 가치관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제적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열러 있고 피조물을 모두 포용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앞에서 순종적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써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형제들이 “항상 거룩한 교회에 복종하여 순종하고” 사제들을 “주인과 같이” 여길 뿐만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들 앞에서도 “쓸모없는 종과 같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들에게 양순함을 보이기를”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성인은 모든 사건과 지성이 없는 각 피조물을 하느님의 섭리가 임하는 도구로 삼을 것을 가르친다. 그래서 그는 옷에 붙은 형제 불을 끄기를 거절했던 것과 같은 정신으로 쳐들어오는 강도들에게 항거하기를 금하였으며(RnB 7,14 참조) 교황청의 특전에 힘을 입어 주교들의 뜻을 억누르려고 하지 않았다(Test 25 참조) 이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뜻을 끊임없이 그리고 신중히 받아들이는 성인의 정신이다.


봉사를 위한 권한

순종이라는 개념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들 할 것 없이 모두를 포함한다. 모두다 “주님의 정신으로” 이끌려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 형제는 장상에게 순종함으로써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확실한 표를 발견하는 것이고, 장상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각 형제 안에서 성령의 길을 발견한 후 형제가 그 길을 따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성령이 형제들의 공동체와 각 형제 안에 임하심을 굳게 믿었고 또한 “유익한 모든 것을 계시하시는 성령의 작용”에 모든 형제들이 마음을 열어드리리라고 믿었다. 따라서 너무나 구체적인 규칙으로써 형제들의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려고 조심성을 보였다. “성령의 정신과 그의 거룩한 활동”을 막지 않으려는 성인의 사상이 「레오 형제에게 보내신 편지」에 잘 나타난다.

이와같이 자발성(personal initiative)은 순종과 반대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길을 걸어가는 행위로서, 자기 자신의 뜻을 하느님 때문에 포기한다는 목적과 사람보다 하느님께 먼저 순종해야 한다는 인간의 고유한 권리와 일치한다. 여기서 아랫사람의 양심의 자유가 유래되는 것이며 만일 장상이 형제 안에 들리는 성령의 부르심을 무시하려고 할 때 아랫사람은 장상 앞에서 자기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장상에게 권한의 한계선을 분명히 정한다: 즉, 장상들은 형제들의 양심과 복음적 생활에 대한 충실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형제의 이 두 가지 권리는 양심적 자유와 순종의 형제적 감독과 효율적인 충고에 놓는다. 이같은 사부님의 의도는 복음적 생활을 확실하게 보존하려는 것이었다. 「제2회칙」에서 장상들에 대한 형제들의 감독에 관한 규정은 완화되었지만, 장상이 양심과 회칙에 반대되는 것을 명할 때나 어떤 형제가 장상 때문에 혹은 외적 · 내적 환경 때문에 살고 있는 장소에서 “영적으로 회칙을 지킬 수 없을 때에 아래 형제의 정당한 저항은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복음적 생활의 이상을 사는 데 있어서 그 마지막 책임은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 복음적 이상의 구체적 해석은 장상들을 통하여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 각자의 올바른 자세에 달려 있다.

초창기에 프란치스코가 교황에게 순종을 약속한 것처럼 형제들을 프란치스코에게 순종을 약속했고 그의 지도를 받으며 살았다. 이 당시에 형제들을 성령의 움직임에 따라 살았고 이들에게는 순종의 기준이란 형제적 사랑밖에 없었다. 심지어 비계획적인 삶은 복음적인 모험의 일부를 이루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 조직체를 형성할 필요성이 생겼고 마침내 형제들의 수가 증가됨에 따라 전 수도회를 조직할 필요성에 이르렀다.

프란치스코는 형제적 공동체의 가치를 잃을까 염려해서 하향식 계급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권한의 법적인 수행은 형제들의 평등을 해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인도 생의 마지막에 무질서를 막기 위해 장상들의 권한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는 모든 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 따라 장상들을 계속 봉사자, 종이라 불렀다, 「제1회칙」에서 말한다:

“이와같이 모든 형제들은 이 점에 있어서 특히 형제들 서로간에 어떤 권한이나 지배권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통치자들은 백성들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릅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형제들 중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들의 봉사자와 종이 되어야 합니다. ···’ 그리고 아무도 장상이라고 부르지 말고 반대로 모두를 구별없이 작은 형제들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발을 씻어줄 것입니다.”

형제를 “인도”해 준다는 것은 형제적 봉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이것은 “형제들의 영혼을 돌보는 것”, “형제들을 방문하고 겸손과 사랑으로 충고하는 것”, “영적으로 위로해 주고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모든 일들은 봉사의 행위이다.

형제회가 내부적으로 조직화됨에 따라 “미니스떼르”(minister: 봉사자)라는 명칭은 고위 장상들에게만 적용되었고 나머지 장상들은, 성 프란치스코가 은둔소에 사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형제들에게 권하는 것처럼, 형제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꾸스또스”(custos: 보호자)라고 불렀다. 마침내 “꾸스또스”는 지역 장상을 뜻하게 되었고, 수도원들이 생길 때는 수도원 원장이 독일어에서 따온 “과르디아누스”(guardianus)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봉사한다”, “보호한다”는 직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여러번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설명한다. 이 직책은 무엇보다도 사목적 책임이다.

“봉사자들과 종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또한 자신들에게 형제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 맡겨져 있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잘못이나 나쁜 표양 때문에 형제들의 영혼에 어떤 해라도 입게 된다면, 심판날에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헴바쳐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과 형제들의 영혼을 잘 돌보십시오.”

프란치스코는 “봉사”나 “섬김”과 같은 용어를 순수한 의미로 사용한다. 따라서 “봉사자가 된다”, “종이 된다”는 것은 겸손과 사랑으로 형제들을 섬기라는 것과, “형제들이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것처럼 형제들이 봉사자에게 말하고 대할 수 있을 정도로” 형제들을 대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장상들은 이러한 사랑의 의무를 누구보다도 육신적으로나 앓는 형제들에 대하여 실행해야 한다. 영적으로 앓는 형제 - 죄에 빠진 형제 - 는 애정과 동정이 깃든 사랑의 치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성인은 1223년에 어느 관구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형제가 죄를 짓고 나서 그대 얼굴을 보고 자비를 구했는데도 그 자비를 얻지 못하고 물러서는 형제가 이 세상에 절대로 없도록 할 때, 나는 그대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고 또 하느님의 종이며 그대의 종인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알고 있겠습니다. 그 형제가 자비를 구하지 않았어도 그대는 그가 자비를 원하는지를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후에도 그가 그대의 눈앞에서 수천 번 죄를 짓더라도 나보다 그를 더 사랑하여 그를 주님께 이끌도록 하시고 이런 죄지은 형제를 항상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기회가 닿는대로 그대도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음을 수호자 형제들에게 알릴 것입니다.”

「첼라노의 제2생애」와 「완덕의 거울」에 성 프란치스코가 생각하는 총봉사자의 “상”이 비교적 잘 그려져 있다: “봉사자는 아주 진실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신중하고 덕망이 높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정해진 사람에게만 호의를 베풀어 전체의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사사로운 애정이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거룩한 기도에 열중하는 사람이이야 하며 ··· 기도를 하고 나와서는 모든 이가 그를 귀찮게 해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모두에게 해답을 줄 수 있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공평함과 차별심이 장상의 인품을 추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 모든이에게 바쳐야 할 사랑을 자신을 위하여 이용하기 때문에 - 명예욕은 더욱 그러하다. 형제들의 봉사를 자기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거나 맡고 있는 직책에 대햐여 애착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들을 “소유하는”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봉사자는 형제들에 대한 봉사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말 것이며, 오히려 면직되면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어느 때라도 자기 직책을 떠날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고 있는 형제는 그 장상직에 대해 명예스럽게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발을 씻어주는 직책이 면직되는 데 대해 흥분하는 이상으로 장상직이 면직될 때 흥분한다면 자기 영혼의 파멸을 향해 유다처럼 자기 돈주머니를 챙기는 것이 됩니다.”

장상과 다른 형제들간의 관계에 관하여 성 프란치스코가 남겨준 글들이 많은데, 성인은 대수도원 전통에서 장상직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된 명칭을 고의적으로 피했을 뿐만 아니라, 장상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명칭도 그의 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작은 형제들의 공동체는 가장(paterfamilias) 밑에 모여든 가족적 제도가 아니라. 완전히 평등한 형제들의 집단이요, 서로간에 봉사하도록 책임지는 형제들의 집단다. 그리고 이 집단의 형제들은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밀접한 사랑으로 뭉쳐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상과 다른 형제들의 관계에 있어서 장상의 역할을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역할로 보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가정에서 희생적 보살핌과 필요한 모든 것을 장만하는 어머니의 역할 말이다. 「은둔소를 위해 쓰신 회칙」에서 성인이 부각시키는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형제 중 두 명은 교대로 어머니의 역할을 하면서 “마르타”의 생활을 하며 다른 두 형제들을 “보호하는”것이다. 빠치피꼬 형제가 한번은 성인을 “매우 사랑하는 어머니”라 불렀던 일도 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레오 형제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어머니”처럼 그에게 말하고 “아들”이라고 부른다. 첼라노는 「제1생애」에서 프란치스코가 엘리아 형제를 자기 어머니로 삼고 그를 다른 형제들의 아버지로 택했다고 말한다.

「제1회칙」과 「제2회칙」에서 봉사자들과 종들은 단순히 “형제”라고 불린다(참조: RnB 4,2; 5,9; 6,3 RB 10,1). 실은 창설자이기 때문에 모든 형제들이 프란치스코를 아버지로 여기고 성인 자신도 형제들과 성 다미아노 자매들에 대하여 아버지라는 의식과 아버지다운 마음은 가지면서도 그는 정식으로 “아버지”라 불러주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엘리아 총장은 1221년 총회에서 “형제들이여, 형제(프란치스코)가 이와같이 말씀하신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지아노의 요르단(Jordan de Giano)은 “형제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프란치스코를 형제라고 불렀다”고 설명하여 기록한다. 물론 성인이 죽은 후에는 그를 주로 아버지나 사부로 모셨다. 엘리아 형제는 온 수도회의 형제들에게 사부님의 죽음을 전하면서 그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형제들이 고아가 되었다는 슬픈 심정을 전하는 편지에서 프란치스코를 “아버지”라 부를까 “형제”라 부를까 많이 망설이고 있는데, 결국 편지 첫 부분에서는 “형제와 아버지”라 부르고 다음에는 “아버지와 형제”,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버지”라 부르고 있다.

성녀 글라라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 프란치스코의 지도 외에 다른 권한 없이 3년간 형제적 공동체의 생활을 체험한 후에야 “성 프란치스코의 강요와 자매들의 요청으로 자매들에 대해 다스리고 통치하는 직분을 맡게 되었다”. 또한 성 베네딕도의 「회칙」에 딸 “Abbatissa”(원장)의 명칭으로 불리기를 받아들여야 하였지만 수녀원 내에서는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종, 자매들의 종”이라고 자칭했다. 비록 모든 자매들이 “원장”을 어머니처럼 여기고 그에게 사랑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였지만, 성녀는 「회칙」과 「유언」에서 수녀들에게 말할 때 딸이라고 부르지 않고 항상 자매들이라 불렀다. 성녀 글라라의 시성식을 위한 증거물을 보면, 성녀가 어머니의 대우를 받으려고 했거나 어머니와 같이 딸들을 보호하려는 자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자매들을 축복하는 그의 글에서 “자매요 어머니”라 자칭한 것과 같이 자매들에 대한 성녀의 태도는 “큰언니”의 태도였고, 성녀는 각각 자매들의 필요를 기꺼이 돌보고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자매들에게 봉사하는 데 재빨랐다. 첼라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는 남의 위에 있기보다는 겸손되이 밑에 있기를 원했으며, 그리스도의 종들 가운데서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기를 아주 기꺼이 소원하였다.” 같이 살았던 자매들은 글라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글라라는 자매들에게 뭘 하도록 명할 때 아주 두려워하며 겸손하게 명하였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른 이들에게 명하기보다는 그녀 자신이 가능한 한 빨리 실행하기를 원했다.

성녀 글라라는 수도원에 들어온 이래로 자매들의 발을 씻어줄 정도로 겸손하였다. ··· 이외에도 복되신 글라라는 물로 자매들의 손을 씻어주곤 하였으며 밤에는 춥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주곤 하였다.

복되신 어머니의 겸손은 지극하여 자기 자신을 모든 점에서 경멸하였으며, 다른 자매들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다른 자매들보다 늘 밑에 놓으면서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는 출신 가문으로 봐도 고귀하였으나 성교회와 자기 수도회에 대한 성녀의 열심은 더욱더 고귀하였다.

병고를 앓고 있는 중에도 성녀는 결코 수도회의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신을 떼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정말로 성녀는 자매들을 권고하고 돌보는 데 지극히 충실하였으며, 병약한 자매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데도 열심하였으며 자신을 겸손되어 가장 보잘것없는 자매들 밑에 두고 항상 자신을 멸시하였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노력하였고 자매들을 하느님 사랑 안에서 돌보려 애썼으며, 영육에 있어 자매들에게 아주 자비로웠다.

성녀는 고통중에 있는 자매들에게 큰 동정심을 지녔고, 모든 자매들에게 인자하고 자유로웠다. 특별히 성녀 글라라는 애덕으로 온전히 불타 있었으며 자매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였다. 어떤 때 혹시라도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어떤 것을 듣게 되면, 성녀는 크나큰 자비심으로 지체없이 그것을 고쳐주려 애썼다. ··· 그리고 자매들은 지상에서 그토록 신중하고 인자하게 수도회와 가난에 대한 약속에 충실하도록 다스렸던 거룩한 어머니께서 천상에서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

「성녀 글라라의 시성식에 대한 칙서」는 그녀의 통치의 방식을 다음과 같이 칭송한다:

“최초의 가난한 자, 겸손의 지도자, 절개 있는 사람들의 교육자, 보속하는자들의 수도원장인 이 여성은 자기에게 맡겨진 수도원과 가족을 다스리는 데 정성과 신중함,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과 봉사의 정신, 수도회의 규율에 대한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돌보는 데 있어서 깨어 있었고 자매들을 섬기는 데 있어서 열심하며 훈계에 주의를 기울이며 일깨워주는 데 있어서 부지런하고 동정심에 있어서 변함이 없고 침묵에 있어서는 분별력이 있으며 언행에 있어서는 성숙하고 완벽한 다스림에 관련되는 모든 일에 능숙하고 명령하기보다는 섬기기를 원했으며 칭찬받기보다는 칭찬하기를 원하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훈육과 가르침이 되었다.”

이로써 글라라가 「유언」에서 표현하는 개념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자매적 친교를 간절하게 권고한 다음에 덧붙인다:

“자매들은 돌보는 직을 맡는 자매에게도 부탁합니다. 다른 자매들보다 직으로가 아니라 덕행과 거룩한 생활로 앞장서도록 노력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자매들은 표양으로 자극을 받아 의무만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 때문에 그에게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원장은 또한 착한 어머니가 자기 딸들을 대하듯이 자매들에게 슬기롭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원장은 또한 자매들이 자기를 위해서나 다른 자매들을 위해서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안심하고 원장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고, 신뢰심을 가지고 어느 때라도 그에게 달려갈 수 있을 정도로 어질고 가까이하기 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글라라는 이같은 「유언」의 몇 개 권고 말씀을 「회칙」에 삽입했고 성 프란치스코의 「제1회칙」에 따라 공동체의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원장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자신에게 위임된 양떼에 대해 헴바쳐야 합니다.” 마침내 자기가 생각하는 원장상을 그리면서 권고한다:

“원장은 어느 한 자매를 더 사랑함으로써 결국 모든 자매들에게 추문이 생기지 않도록 특별 애정을 가지지 말 것입니다. 또한 원장은 괴로워하는 자매들을 위로하고 시련을 겪는 자매들에게도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 원장은 모든 일에 있어서 특히 성당, 침실, 식당, 병실과 의복에 있어서 다른 자매들과 똑같이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