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12장 복음적인 형제적 공동체 -2

Margaret K 2017. 12. 18. 21:47


제12장 복음적인 형제적 공동체 -2 

8. 형제들의 상호 개방과 삶의 일치

“형제들은 신뢰심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서로 간에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가난을 지키는 형제들의 공동체에서는 물질적인 것이 많이 부족할 것이라고 프란치스코는 예측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 양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으로 인해 형제들이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열성적인 형제애가 보충하고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어려움에 있는 형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여러 방법으로 위로하면서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는 아픈 형제가 부끄러워서 먹지를 못할까 염려하여 단식일에도 몸소 먹곤 하였다. 그리고 아픈 형제를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고기를 구걸하는 것도 그에게는 부끄럽지가 않았다. 하루는 밤중에 한 형제가 ”배고프다!“라는 큰소리로 다른 형제들을 깨웠는데, 성인은 그에게 창피를 주지 않기 위해서 단식날인데도 모든 형제들에게 식당에 내려와서 그 형제와 함께 음식을 먹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른 날 환자인 한 형제가 포도를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성인은 그를 포도밭에 데리고 가서 함께 먹어주었다. 이와같이 사랑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규칙을 어기는 일이 있더라도 성인에겐 별 상관이 없었다. 「제1회칙」9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주님이 형제들에게 일러주시는 대로 모든 형제들은 필요한 것을 쓸 수 있습니다. 필요성 앞에선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형제들이 같은 대우를 받고 같은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공동생활”의 원칙은 오직 사랑의 대원칙이었다. 글라라 성녀를 중심으로 모인 성 다미아노 공동체 자매들의 공동생활도 그러했다 성녀의 「회칙」에 좋은 예가 있다:

“친척이나 다른 사람이 어떤 자매에게 무엇을 보내면 원장은 그것을 그 자매에게 줄 것입니다. 그 자매에게 그것이 필요하면 그가 사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필요한 자매에게 사랑으로 나눌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각 형제는 고유한 인간적 개성과 영적인 모습을 지닌 사람이며 각자는 감정과 관심사의 바닥이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형제를 받아들인 이 새로운 영적인 가족은 그를 출신 혈연 가족에서 떨어져나온 사람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수도 가족과 혈연 가족간의 어느 정도 사랑의 일치가 유지되어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각 형제들의 육신의 어머니를 모든 형제들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당신의 아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려는 뜻을 알게 된 단순한 요한의 부모들은 마음이 매우 아파서 울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위로하며 말했다: “여러분의 아들은 하느님을 섬기려 합니다.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 이로써 여러분은 영육간에 유익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의 한 자녀로부터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지금부터 우리 모든 형제들은 여러분의 아들이자 형제가 될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병든 형제가 누리는 특혜

환자 형제를 돌보는 것은 공동체가 지켜야 할 첫째가는 사랑의 의무이다. “프란치스코는 앓는 형제의 고통을 자기가 짊어졌고, 다른 방법으로 도울 수 없으면 동정어린 말이라도 했다”(2Cel 175). 환자들을 위한 형제애는 보답을 구하지 않기에 참된 사랑이다: “형제가 앓고 있어 보답해 줄 수 없을 때나 건강하여 보답해 줄 수 있을 때나 똑같이 그 형제를 사랑하는 종은 복됩니다.”

에행중에 누가 병으로 앓게 된 경우, 그를 혼자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고 형제 한 명이나 두 명이 함께 남아서 간호해야 했다. “형제들 중에 누가 병이 나면 다른 형제들은 자기 자신을 돌보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앓는 형제도 병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다른 형제들을 생각해서 지나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성녀 글라라도 지극히 높으신 가난의 서약을 유의하면서 성 프란치스코의 노선을 따라 이에 관하여 「회칙」에서 명한다:

“앓는 자매에게 있어, 원장은 직접 또는 다른 자매들을 통하여 그의 병을 치료하는 데 대해 문의할 뿐만 아니라 음식과 다른 필요한 것을 알아볼 준엄한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수도원의 형편에 따라 사랑과 어진 마음으로 그에게 마련해 줄 것입니다. 사실 모든 자매들은 자기가 병이 나면 자기 자신을 돌봐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앓고 있는 자기 자매를 돌봐주고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글라라가 수녀원의 앓는 자매들에 대해 스스로 실천한 어머니다운 사랑은 「시성식 증언록」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글라라는 자매들을 겸허하고 자애롭고 친절하게 대하였으며 자매들에게 동정을 베풀었다. 건강하였을 때 앓는 자매들에게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며 손 씻을 물을 가져다 주었고, 때때로 앓는 자매들이 사용하는 변기통을 닦아주곤 하였다.“

성녀 글라라가 기적을 통해 병 고치는 방식을 살펴보면 성녀의 기적적인 능력보다도 앓는 자매들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쏟은 동정심과 사랑이 매우 뛰어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아픈 자매들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이 없을 때 그들 위에 십자가형을 그은 후에 주님께 겸손하게 청원하곤 하였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자신은 병고 중에서 평화와 기쁨을 확고부동하게 유지하는 모범, 자신들을 하느님의 뜻에 내맡기고자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성인은 「태양의 노래」에서 용서에 대한 부분에 다음의 구절을 붙였다: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받으사이다.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시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소이다.” 그리고 글라라와 그의 자매들에게 권고하여 노래하였다:

“병고에 시달리는 자매들과 이들을 돌보느라 애쓰는 자매들은 평온한 가운데 인내를 가지십시오. 여러분 하나하나가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월계관을 받으리니, 여러분의 수고의 대가가 높으리이다.”

육신의 병이 걸린 형제들이 형제들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면, 형제들은 마음의 병에 걸린 형제들에 대하여 더욱더 신경을 써야 한다. 유혹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이나 절망에 빠진 형제들에 대하여 성 프란치스코는 아버지다운 마음을 품었고, 그러한 형제들의 사정을 알아채고서 이들이 다시 기쁨과 평화를 되찾게 하는 소질을 지니고 있었다. 성인은 「회칙」에서 봉사자들과 다른 형제들에게 어떤 형제의 나쁜 표양 때문에 화내거나 흥분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분노와 흥분은 ··· 애덕의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 필요하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죄를 범한 형제를 영적으로 도와 줄 것입니다”(RnB 5,8; RB 7,3).

성인은 특별히 「어느 봉사자 형제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범죄한 형제에 대하여 장상들이 가져야 할 자비와 한없는 이해심을 강조한다. 또한 이 편지에서 다른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한다: “어떤 형제가 범죄한 줄 알고 있는 모든 형제들은 그에게 창피를 주거나 비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큰 자비심을 품도록 해야 하며, 자기 형제의 죄를 비밀에 붙여야 하겠습니다.”

성녀 글라라는 영적으로 신음하는 자매들에 대해 모성적인 애정을 보여주었다: “글라라는 어떤 자매가 시련이나 괴로움을 당하고 있음을 알아챌 때면 그 자매를 따로 불러주어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해 주었다. 어떤 때 그 자매의 발에 엎드리기도 하였다.”

“실망에 빠진 자매들에 대해 동정어린 마음을 가졌다”고 시성식 증언들이 반복하여 말한다. 글라라는 「회칙」에서 자매들에 대한 원장의 봉사직 가운데서 다음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다: “원장은 괴로워하는 자매들을 위로하고 시련을 겪는 자매들에게도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RegCI 4,9). 그리고 고집하는 자매들에 대해 처신할 규율적인 방법을 제시한 후 덧붙인다: “그가 반항하는 동안 다른 자매들은 주님이 그의 마음을 회개에로 비추시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노와 흥분은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있어 애덕의 장애물이 되므로 원장과 그의 자매들은 누구의 죄 때문에 화내거나 흥분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입니다.


“수도원 회의”는 형제들의 만남과 식별의 장소

형제적 사랑의 분위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형제들은 서로 마음을 열 수 있고 양심의 비밀까지 서로 밝히기에 이른다. 첼라노는 형제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혹은 사도직에서 돌아온 후에 사부의 둘레에 모여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생활반성”을 하였음을 증거한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서 각자는 먼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성공한 일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각자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고백하면서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 다음에 성 프란치스코는 거기서 보고되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가르침과 충고를 주며 이미 서약한 생활을 더욱 열심히 살도록 격려하였다. 고백성사를 대신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형제들이 서로 겸손하고 깨끗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목적으로 성인은 형제들이 서로 죄를 고백하는 관례를 보존하기를 바랐다. 이것은 중세기에 사제의 부재시에 습관화 되었던 관례였다.

제일 먼저 “까삐뚤룸”(capitulum: 회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은 프란치스코가 아니고 이미 대수도원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프란치스코는 수도 생활 역사에서 제일 먼저 “까삐뚤룸”이라는 제도에 새로운 개념과 역할을 부여하였다. 맨 처음에 형제들이 이탈리아 중부 지방에 파견되어 얼마 동안 서로 헤어져 살다가 선교여행을 마친 후에 다시 모이게 된 기간은 정기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흘러서 정한 기간에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에 1년에 두 번 모였고 1216년부터는 모든 형제들이 1년에 한 번, 성령강림 대축일 즈음에 모였다. 비트리의 야고보(Iacobo de Vitry)는 바로 1216년의 모임을 들어 그러한 모임의 목적과 방법에 대해 귀중한 증언을 남겨주었다:

“작은 형제들은 1년에 한 번 일정한 장소에서 모임을 가진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기 위한 것인데, 이런 모임에서 적지않은 성과를 얻는다. 이런 기회에 유명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거룩한 생활 규정들을 작성하고 공포한 후 교황 성하의 인준을 청한다. 회의가 끝나면 다시 서로 헤어져 롬바르디아. 또스까나. 아뿔리아, 시칠리아 등지로 파견나간다.”

수련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형제들이 마지막으로 총회에 참석한 해는 1221년이다. 이 총회는 몇 천 명 형제들이 모였던 웅장한 대회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바로 이 총회에서 앞으로 총회에 참석할 자격을 관구장들에게만 한정시키면서 이탈리아 관구의 관구장들은 1년에 한 번, 나머지 관구의 관구장들은 3년에 한번 모일 것을 정하였다. 그리고 총회의 목적은 설립자 프란치스코가 「제1회칙」에서 명시하듯이 “하느님에 관한 일을 다루기”(RnB 18,1) 위한 것이었다. 1223년 「회칙」은 관구장들만이 참석하는 3년에 한 번 개최될 총회를 규정하는 한편, 각 관구와 속관구의 회의는 모든 형제들의 모임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3년에 한번 개최될 것을 규정했다.

성 프란치스코가 「회칙」에서 “수도원 회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수도원”이 설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식 수도원이 설립된 후로는 수련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형제들이 참여하는 수도원 회의가 생겼다. 1240년경 양성에 관한 책을 쓴 아욱스부르그의 다빗(David de Augsburg)은 수련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수도원 회의에서 의견을 밝힐 때 자유롭게 그리고 겸손하게 말하되,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말고 양심대로 말한 것으로 만족하라.”

불행히도 총회나 관구회의가 형제적인 만남의 성격을 잃고 하나의 행정기구로 변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도원 회의도 형식을 면하지 못한 하나의 고행의 신심행위로 변하고 말았다. 실은 “까삐뚤룸 꿀빠룸”(capitulum culparum)이라는 이러한 고행의 행위는 성 프란치스코가 동료들과 함께 실시했던, 형제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서로 충고하는 그 수련행위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형제적인 삶에 대해 영적인 역동성에 민감한 글라라는 수도원 회의를 실시했고 「회칙」에서 실시하도록 명하였다. 성녀에 의하면 수도원 회의는 제1부와 제2부로 구분되어야 한다. 고행의 성격을 지니는 제1부는 자매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나약함, 특히 서약한 삶에 대한 공통 결심에 위배되는 것을 서로 고백하는 것이고, 제2부는 자매들이 공동체의 삶과 수도원에 관한 안건들을 토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녀가 강조하는 “들음의 자세”k는 것이 지적할 만하다.

“원장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자기 자매들을 수도원 회의에 소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때 원장도 자매들과 같이 공동적이고 공적인 과실과 결함을 겸손되이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수도원의 편익과 선익에 관해 다루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모든 자매들과 함께 의논할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더 작은이에게 자주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글라라회에서도, 영적인 긴장과 참된 겸손이 요구되는 대화식의 수도원 회의는 차차 형식주의 성격으로 변했다. 이는 10년 후인 1263년에 우르바노 4세의 「회칙」에서 성녀 글라라가 정한 수도원 회의가 전통적인 “까삐뚤룸 꿀빠룸”,즉 외적인 과실을 공동으로 고백하는 고행의 행위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이「회칙」에 의하면 원장은 죄의 고백이 끝나면 ‘각자에게 관습에 따라 자비롭게 보속을 주어야 한다“. 우르바노 4세의 「회칙」에서 아직도 수도원 회의 2부가 글자 그대로 남아 있으나 실제로 얼마 안가서 실시되지 않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이같은 형제적 공동체의 이상이 결점과 죄가 많은 사람들의 집단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은 복음적 생활의 전체에도 해당되지만 특별히 예수님이 요구하신 사랑의 일치의 이상에 대하여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의 성취와 완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나라가 항시 건설중이고 건축되어 가는 과정이다. 하느님의 나라에게 사랑의 일치는 모두의 책임이다. 각 시대의 각 크리스천 공동체와 우리 각자가 그 건설의 짐을 져야 한다. 작은 형제들의 생활에 있어서 형제적 공동체도 마찬가지로 매일 건설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형제적 공동체는 이미 완성된 수준에서 새로 입회하는 형제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마치 이전의 형제들이 많은 노력 끝에 작품처럼 미리 만들어서 새로운 입회자에게 그것을 누리라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각 형제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매일 새로 시작하는 과업이라야 한다. 완전한 작품을 만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 이상을 갈망하면서 매일매일의 노력과, 다른 형제에게 완전한 형제가 되지 못하고 완전한 작은자가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매일매일 각 형제가 끊임없이 실천하는 그 사랑, 한마디로 매일 현실화되어 가는 각 형제와 모든 형제들의 사랑과 봉사가 참된 형제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형제적 공동체는 고정된 범주처럼 이론적으로 혹은 법적인 요소로써 정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순간마다 이루어지고 형성되어 가는 능동적 사랑의 자세이다.

크리스천 애덕은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며 무어보다도 자기 자신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있어서, 특히 양성 기간에 형제적 공동체의 능동적이고 책임감을 지워주는 현실적인 비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때때로 어떤 수도자 입에서 다음과 같은 불만이 나온다: “수도생활이 왜 이 모양이지”,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 실은 이렇게 후회하고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한 번도 다른 형제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건설하려고 능동적 노력을 하지 않은 형제들이다.

프란치스코는 형제회가 늘어감에 따라서 리보또르또(Rivotorto)의 초기 생활 같은 이상적 생활의 아름다움이 흐려져 가는 것을 본 후에도, 특별히 생의 마지막 몇 해 동안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모든 형제들의 형제이고 작은 자임을 느끼며 살았다. 성인의 「유언」을 보면, 그는 초기 생활을 그리워하면서도 “오늘”의 상황 속에서 가장 작은 단순하고 연약한 형제로서 다른 “복된” 형제들과 함께 살고 싶고 그들을 섬기고 순종할 것을 확고하게 원하였다. 형제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지만, 성인은 “오늘”의 현실 가운데서 한 형제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과거에는 큰 수도원에서 모든 수도자들이 규율에 따라 공동생활을 하고 시간을 잘 지키고 규칙적으로 움직일 때 공동체 생활에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외적인 체제가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공동생활을 잘하는 것과 형제적 공동체의 일치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써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몇 형제들이 작은 공동체에서 살 때 그 새로운 체험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얼마 안 가서 역시 실망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실망과 회의의 탓을 “같이 사는 다른 형제들”에게 돌리기 쉽다. 과거에 큰 규모의 공동체에서 그 체제 자체로 돌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항상 강조해야 하고 깊이 인식해야 할 점은 형제적 공동체가 우리에게 이미 만들어져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형제적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 모두를 통하여 형제적 공동체를 형성하신다. 그리고 형제적 공동체가 출발점이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적인 공동체를 이룩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이상을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현대 생활의 지나친 활동이 진정한 형제적 일치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형제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 각자는 자기 길을 가며 자기 일과 활동에만 집중할 때 옆에 사는 형제의 상황과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해질 수 있다. 형제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고 그의 필요성을 발견할 시간이 없으며 육적인 병이나 영신적 병을 앓고 있는 형제, 성소의 위기를 느끼는 형제와 함께 있어줄 시간이 없을 수 있다.

오늘날 프란치스칸 가족뿐만이 아니라 모든 축성생활의 수도회의 쇄신과 활성화의 비결은 형제적 공동체의 생활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있다. 새로운 교회법은 수도적 서약의 대상이 되는 세 개의 복음적 서원에 이어 모든 수도회에 해당되는 “형제적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제적 생활은 각자의 성소를 완성하기 위하여 모두에게 서로 도움이 되며 ···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 화해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