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7장 주님의 영과 그의 거룩한 작용

Margaret K 2017. 12. 18. 21:42

제7장 

주님의 영과 그의 거룩한 작용


하느님의 자녀들이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것은 합당하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로마 8,14)이다.

“주님의 영”이라는 표현은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있어서 특이한 요소이며 성서적 배경에 기초를 둔 요소이다. 이 표현은 우연한 빈말도 아니고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니며, 사부님의 영신적 체험과 그 깨끗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깊은 뜻을 포함하는 하나의 사상이다.


영의 사람인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는 회개를 시작할 때부터 일생을 통하여 자기 안에서 그리고 자기를 통하여 주님께서 하시는 업적에 감탄하면서 이것을 깊이 인식하며 살았다. 이 의식은 참으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모든 표징 앞에서 순응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성 프란치스코의 마음을 이끌었고, 자기가 선택한 복음적 이상을 주저없이 따르도록 인도했다.

성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주님의 영”이란 신앙 안에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로서 인간에게 빛, 확신, 길, 사랑, 증거의 자극제가 되는 각 사람 마음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사실 이 요소는 다름이 아니라, 성 바울로의 신학의 가르침과 같이 사람 안에 머무르시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거 해 주시고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시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우리 인격을 개선해 나가시는 성령이시다.

성인의 회개 과정을 기록한 첼라노는, 성인의 간절한 원의는 하느님이 자기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성인은 하느님의 뜻이 밝혀지자 그것을 따랐고 새로운 뜻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살았다.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뜻이 뽀르치운꿀라에서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프란치스코에게 드러났다. 이때부터 성인에게 하느님의 뜻을 확실히 알기 위한 첫째 방법은 성서 말씀을 읽는 것이었다. 이는 성인의 말대로, “영이며 생명인 성령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첼라노에 의하면 “복된 사부는 성령의 방문을 부주의로 그저 지나쳐 버리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한 기회가 오면 그것을 좇았으며, 주께서 허락하시는 한 이와같이 그에게 찾아온 감미로움을 즐기곤 하였다. ···· 길을 갈 때도 동료들을 앞에 가게하고 그는 새로운 영감의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서 가만히 뒤에 서 있곤 함으로써 은총을 헛되게 하는 일이 없었다”.

어떤 크고 작은 결정을 하기 전이나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느님의 손이 당신의 뜻대로 자기의 걸음을 인도하실 수 있도록” 먼저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뜻과 섭리가 일상생활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사건과 특히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가장 높은 철학과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불꽃을 튀긴 궁극의 바람은 단순한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그리고 완전한 사람이나 불완전한 사람에게서 진리의 길을 터득하는 것이요. 지선에 이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성령으로 채워짐으로써 그는 모든 마음의 괴로움을 견딜 준비가 되었고, 모든 육신적 고통을 참을 각오가 되었으니, 만일 그의 소원이 받아들여질 경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자비스럽게 그에게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분”. “주님의 영에 도취하신 분”과 같은 표현을 첼라노는 성인에 대하여 자주 사용하였다.

성령의 작용과 일치의 체험을 한 후 기도에서 나온 성인은, 자기가 하는 말과 일과 결정 등은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친히 자기를 도구로 사용하여 하시는 말이요, 일이요, 결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성인은 우리에게 비정상적인 일로 여겨지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첼라노가 이것을 증언한다: “그가 문안 편지나 권고 편지를 쓰게 할 때, 그는 비록 거기에 어쩌다 불필요하고 마땅치 않은 글자나 구절이 있어도 그 글자와 구절을 지우지 못하도록 했었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활동은 성인의 설교에 나타났다. 프란치스코의 설교는 열정과 기쁨이 풍부한 그의 내적 생활에서 우러나온 간단하고 단순한 설교였고 회개를 목적으로 하는 설교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강론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분의 강론 준비는 구원의 큰 신비를 관상하는 방법이었다. 그 다음에 설교할 때 말주변과 효과를 “주님의 영”에 맡겼다. 이 점에 대하여 첼라노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는 맑은 마음을 지녔기에, 설교 중에 신념을 보여줄 수 있었고, 미리 준비하지 않고도 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이야기를 모두에게 하였다. 그는 설교하기 전에 한참 동안 묵상하고서도 때때로 그 묵상한 것을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잊어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곤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였지만 전혀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노라고 고백하곤 하였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능변이 되어 청중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몰아넣곤 하였다. 때때로 그는 말할 것이 없을 때면 강복만 주어 보냈지만 사람들은 이 강복만으로도 거기에서 훌륭한 설교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하였다.”

그러니까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가 신자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성인의 설교의 내용 자체보다도 그분이 성령의 도구로서 말한다는 것을 신자들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성인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를 움직이시는 성령에서 오는 확신으로 가득차 매우 곤란한 상황 -예를 들어 우골리노 추기경이 작성해 준 연설을 교황 호노리오 3세 앞에서 할 때와 같은 경우 -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성인은 두 설교자의 비유를 말하면서 당신이 실천한 설교 방법이 제자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원했다. 이 비유는 유식한 설교자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간단한 말로 설교하는 경우와, 반면에 무식한 설교자가 성령의 영감에 이끌려 하느님의 도움으로 열정과 슬기와 감미로움으로 설교하는 경우를 말한다.

성 프란치스코와 그 제자들이 설교에 성공했던 이유는 그들 마음의 깨끗함, 즉 내적 가난에서 솟아나는 자발적이고 확신에 찬 설교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설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보다 자기들의 복음적인 체험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그들의 생활양식을 인준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들을 파견했다: “형제들이여, 하느님과 함께 떠나십시오.” 성 프란치스코도 「제1회칙」에서 비슷한 말로 설교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형제들에게 훈계한다. 따라서 형제들이 설교를 할 때 활동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시기 때문에 형제들은 자만하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는 하느님의 선물을 함부로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성 바울로의 몇 개의 택스트를 해석할 때에도 그렇듯이 프란치스코가 사용하는 “하느님의 영”이라는 말은 어떤 때에는 빛과 은총을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의미하고 다른 때는 삼위일체의 제3위격을 칭한다. 그러나 성서신학의 관점으로 볼 때 이 두 가지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즉, “주님의 영”이란 우리 안에 머무시면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고 우리를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성령의 실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성령에 의해 사로잡혀 인도를 받는다.

성녀 글라라에 대하여 초기 프란치스칸 문학이 남겨준 상징적인 표현이 있는 바「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에서 글라라는 “성령의 감실”이라고 일컬어진다 「잔 꽃송이」에 의하면,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글라라를 “성령의 감실”로 여겼기 때문에 하늘나라와 하느님에 관하여 성녀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성녀를 방문하기를 좋아했다. 이와같이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인 글라라는, 성인이 성녀에게 보내신 “생활양식”에서 밝히듯이, “성령의 정배”로서 늘 주님의 영과 일치하여 살면서 그 작용에 늘 깨어 있었다.

첼라노의 토마스는 “가난한 자매들”의 기원을 저술할 때 프란치스코가 성 다미아노의 성당을 수리하는 동안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거룩한 동정녀들의 회”의 시작을 예언하였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성녀 글라라 자신도 「유언」에서 이것을 증언한다. 또한 같은 전기 작가는 프란치스코가 고의적으로 성 다미아노 수녀원에 대해 ‘발길이 차츰 뜸해졌지만 성령 안에서 글라라와 그 자매들을 보살피는 정은 여전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성인은 죽기 전에 당신이 가난한 자매들에게 하신 보살핌의 약속을 명심하라고 형제들에게 당부하였다: 이는 ”이 세상으로부터 형제들과 가난한 자매들을 끌어낸 것은 한 가지 영이며 같은 영이었기 때문이었다.“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성령의 선물과 현존을 굳게 믿어 일생 동안 이것을 살았다. 성녀는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을 때 삶의 선물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어서 세례 때 성령이 자기 안에 부어졌음에 대해서도 감사드렸다. 시성 조사에서 증거하는 자매들은 성녀 글라라가 성령께서 자기의 복음적인 여정에서 차지하신 부분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왔다고 증거한다: “모든 이들의 공동 의견은 성녀가 시작 때부터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글라라의 전기」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라라는 어머니의 입에서 공손한 마음으로 신앙의 기초교육을 받았다. 동시에 성령에 의해 영감을 받고 내적으로 양성된 그 깨끗한 잔은 은총이 가득한 잔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거룩한 사람이 일으키는 자극을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는 ··· 성령의 부드러운 작용으로 지혜를 받아 무가치한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

같은 「전기」작가는 글라라의 여동생 아네스의 가출을 저술하면서 ‘그녀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기 언니와 합치기로 서둘렀다“고 기록한다.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와 마찬가지로 자매들을 지도하는 일에서 자신이 오직 성령의 도구이며 성령께서 친히 자매들을 영적인 순응성의 길로 인도하심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한 자매는 글라라가 죽기 얼마 전에 속삭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나에게 말하도록 해주신 그분이 허락하시는 대로 여러분이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영을 식별하는 방법

프란치스코는 자기 자신만이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감”(Divina Inspiratio)으로 소명을 받음으로써 자기와 같은 생활을 받아들인 형제들도 같은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체험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RnB 2,1 Form Vit 1). 성녀 글라라도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RegCI 2,1: 6,5). 그리고 같은 공통 복음적인 소명 안에 사는 각 형제들도 특별한 사명을 이루기 위한 주님의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예을 들어 선교의 소명이 그렇다(RnB 16,3: RB 12,1).

더 나아가 형제회 자체도 그를 일치시키고 생기를 불어넣는 성령의 현존을 누린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성령을 형제회의 총장이시라고 부른다. 성령께서는 사람에 대한 차별 없이 모든 형제들 위에 똑같이 머무르신다. 따라서 모든 형제들이, 즉 명하는 형제와 수하 형제, 학자나 못 배운 형제 모두가 차별 없이 성령을 환영해야 하고 그의 소리를 들을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각 형제들에게는 독특한 은혜가 있다. 프란치스코에 의하면 이러한 은혜는 초자연적인 은총만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질과 재능과 경향들도 내포하며, 이것들은 모두 성령께서 부여해 주신 선물들이다. 이것을 고려하여 성인은 규율과 질서가 무너질 위험을 무릅쓰고 각 형제의 인격을 존중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 자연적 은혜 중에 사부는 “형제적 봉사의 은혜”. “침묵의 은혜”, “일을 할 은혜”를 열거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은혜는 기도와 신심의 정신을 끄지 않도록 할 것이며 그 정신에 이바지해야 한다(RB 5,20). 따라서 다양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모인 행복한 가정,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 마음에 드시는 가족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성인은 기쁨 중에 말하고 하였다.

리보또르또에 모여 사는 최초의 그룹은 세상의 걱정에서 해방되고 불타는 신심과 열성으로 성령의 열정을 뚜렷하게 체험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은 그들의 젊은 창립자가 성령의 계시로 자기들의 숨은 행동과 생각까지 알고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성인은 형제들이 어느 때 주님의 영의 정신으로 인도되고 어느 때 육의 정신으로 인도되는가를 분별할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식별의 원칙을 「제 12권고」에서 명시한다: “하느님의 종이 주님의 영을 지니고 있는지 없는지를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를 통해 어떤 선을 행하실 때 그의 육신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천한 자로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보다도 더 작은 자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인이 자주 사용하는 육과 영의 사상은 성 바울로의 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육이라고 할 때는 다만 육체와 육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육정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령이 자유로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장애물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로 사도가 말하는 “낡은 인간”이다. “낡은 인간”이 죽어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여 풍부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육”과 육의 정신이란 이기주의와 같아서 오직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모든 선과 영광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차지하려는 교만과 욕심을 의미한다. 반면에 주님의 정신이란 각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과,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과 은총의 생활, 그리고 성화 및 봉사의 길인 애덕의 생활을 뜻한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 온갖 교만과 헛된 영광을 조심합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지혜와 육의 정신에서 우리 자신을 지킵시다. 실상 육의 정신은 말을 하는 데에 많이 노력하고 애쓰지만. 실천에 옮기는 데 있어서는 노력을 적게 합니다. 그리고 내적으로 신앙과 성화를 얻으려 하기보다 사람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신앙과 성화를 얻기 원하고 열망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주님의 영은 육신이 괴로움과 모욕을 당하기를 원하며 육신이 천한 것으로 여겨지는 멸시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은 겸손과 인내, 순수하고 단순하며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힘씁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사랑을 얻기를 갈망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여기서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요한 6,63)라는 요한 복음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산다”. “육적으로 산다”는 말은 영이나 육이 얼마만큼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의미하며 따라서 자아 포기와 내적인 가난의 정도와 관련이 있다.

형제회 안에서 모든 형제들은 “영신적인 형제”이다. 이것은 주님의 영이 그들을 함께 모아주고 그들의 상호 유대를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장상을 포함해서 만일 어떤 형제들이 서약한 생활에 따라 “영신적으로 살지 않고 육적으로 산다면” 그들은 충고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형제가 죄를 범하는 일이 있으면 그 형제를 “영신적으로 도와 주어야 한다”. 이교인들에게 가는 형제들은 그들 가운데 “영신적으로 살 때” 증거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형제회의 은인들은 “영신적인 친구”라고 불린다(참조: RnB 5,4-5: 1,5: RB 4,2).

그러므로 작은 형제들이 무엇보다도 바라고 힘써야 할 것은 “주님의 영과 그영의 거룩한 활동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다(RB 10,8). 프란치스코는 「형제회에 보내신 편지」의 끝맺는 기도에서 작은 형제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을 다음과 같은 훌륭한 말로 묘사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의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당신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불쌍한 우리로 하여금 실천케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항상 원하게 하시어, 내적으로 깨끗해지고 내적으로 빛을 받고 성령에 불타,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은 완전한 삼위이시고 순수한 일체를 이루시며 그 안에서 살아계시고 다스리시며, 세세 대대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영광을 받으시나이다. 아멘.”


영의 자유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씨시의 주교 앞에서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놀라운 마음의 자유를 체험하였다. 이 해방과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명해 주신 성령”이 자기 마음속에 현존하신다는 체험은 성인에게 더욱 큰 확신을 주었다.

성 바울로의 말씀대로 “우리가 받은 성령은 우리를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로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시다(로마 8,15). ”주님은 곧 성령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고린 3,17).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죽은 글자와 죽음과 죄의 노예에서 해방을 시키심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참된 자유를 주셨다(갈라 5,1 참조). 그리고 진리 안에서 산다는 확신은 마음의 자유를 준다. 진리가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 “진리가 여러분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루가 4,18: 요한 8,31-36).

성 프란치스코가 참된 영신적 자유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다:

① 하느님을 대하는 그의 인격적이고 직선적이며 신뢰가 있는 태도 ② 성령의 은총이 자기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그의 개방된 마음 ③ 특히 다른 형제들을 지도하는 그의 방법들이다.

「뻬루지아 전기」에 의하면 “성인은 성령께서 친히 형제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고 한다. 성인은 또한 형제들도 성령의 작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형제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 때문에 성인은 형제들의 생활과 자유를 세밀한 규칙으로 제한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성인은 「회칙」에서 특히 형제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장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하였다:

“하느님이 계시하신 대로”혹은 “하느님의 뜻에 맞다고 생각할 때에” 등이다.

이렇게 해서 성인은 형제들의 충실함을 믿고 형제회가 언제나 “장소와 환경 그리고 추운 지방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적응할 것을 바랐다.

성인은 형제회의 내부 조직과 활동이 자유 정신으로 생기를 가지기를 원했으며, 따라서 수도회의 제도를 보존하기 위하여 세밀한 규칙이나 계획 등을 세우기보다는 각 형제의 인격적 카리스마가 으뜸을 차지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형식에 얽매인 수덕적 관습과 마찬가지로 “대수도원적” 체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성인은 예기치 못할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첫 번 제자들과 함께 사랑의 정신이 마음껏 날아갈 수 있는 자유의 모험의 길을 택하였다. 당대의 보속과 고행의 양식 앞에서 성인은 분별과 현실을 고려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예를 들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고행을 실천했지만 일부 형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행할 방법을 세밀하게 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대담한 용기를 가지고 그 전의 수도자들이 지켜왔던 의무적 단식의 규정을 상당히 완화시켰고 수도자라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금육을 의무화시키지도 않았다. 이것은 세상에 다니는 작은 형제들이 “복음에 따라 차려주는 모든 음식을 먹어도 되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nB 3,3: RB 3,14).

젊은 글라라도 밤에 집을 도망친 후, 프란치스코의 발 앞에서 복음적 생활을 서약한 그 순간에 자유로워짐과 무거운 짐을 털어내듯 가벼워짐을 느꼈다. 「유언」과 「회칙」에서 재차 자기 선택의 자발성을 확인한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은총의 빛을 비추심에 따라 ··· 나는 ··· 자원하여 사부님께 순종을 약속했습니다”(TestCL 7). 그리고 자매들에게도 자신들이 순명을 통해 자유로운 의사로 주님께 봉헌하였음을 상기시킨다(TestCI 20 참조).

한편 프란치스코는 “생활양식”에서 글라라와 그 자매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확인한다(참조 ; FormVit 1: RegCI 6). 교황 인노첸시오 4세도 「회칙 인준 칙서」에서 이 점을 말한다: “여러분들은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남겨주시고 또한 여러분이 자원하여 받아들인 생활양식을 ·····확인해 줄 것을 우리에게 겸손되이 요청한 바 있습니다”(RegCI Apr 1).

성녀는 프라하의 아네스 자매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가난을 서약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자유에 대해 그녀와 함께 기뻐하고 있으며, 어떤 지상적인 끈도 이 자유를 빼앗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고 권고한다(EpAgP 1,5-14 참조).

프란치스코와 마찬가지로 글라라는 성령께서 자기와 각 자매들 안에서 활동하심을 굳게 믿고 있기에 무엇보다도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을 마음에 간직할 것을”(RegCO 10,7) 추구하도록 자매들에게 권고한다. 자기는 바로 이 자유를 찾고 보존할 목적으로 자매들과 함께 엄격한 봉쇄생활을 택한 것이다. 리날도 추기경이 「회칙 인준 교령」에서 이것을 증명한다: “여러분은 ··· 자유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기 위해 ··· 봉쇄 안에 머물기를 선택하였습니다”(RegCI 4).

형식주의에 얽매임과 반대되는 이 영의 자유는 성녀 글라라의 회칙 여러 군데에 나타나며, 절재와 분별에 가득 찬 진정한 복음적인 그녀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진실성이 믿어지는 이러한 신뢰심의 분위기는 형제 자매들이 영적인 사람임을 전재로 하고 있다. 즉, 형제 자매들이 자신의 욕심에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인도되어 내적으로 가난해지고 아무것도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참된 신뢰심의 분위기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만 프란치스코가 레오 형제에게 준 황금의 원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분의 발자취와 가난을 따르는데 있어서 그대가 보기에 어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주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그리고 나도 거기에 뜻을 같이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2년 8월 15일 프란치스칸 가족의 네 총장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 프란치스코는 비록 자유라는 말을 자쥬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전생애는 복음의 자유를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였습니다. 성인의 모든 행동과 활동은 애덕을 최고의 법으로 삼으며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신 그분의 내적인 자유와 자발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자유는 교회에 대한 순종과 반대되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유는 순종에서 나옵니다.  인간이 자유롭고 우주의 주인이 되는 인간의 본래의 그 완전한 모습이 특별한 모양으로 그분 안에서 빛났습니다. ··· 그러라 무엇보다도 성 프란치스코의 자유는 그의 자발적인 가난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영의 정신을 최고의 원칙으로 세워 왔던 프란치스칸 카리스마는 다른 수도회와는 달리 하나의 “학파”를 이루려는 경향을 면한 것 같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학파”라는 말이 있지만, 그 특징은 바로 자발성과 정해진 노선에 대한 해방이다. 즉, 정해진 노선에 대한 추종보다는 생활양식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칸 철학” 혹은 “프란치스칸 신학”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특징은 “사색”에 앞서 “사랑”이 우선하고 의지를 으뜸으로 하며 진리에 앞서 “선”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칸 학자들은 각각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공통의 프란치스칸 카리스마를 뛰어나게 입고 살았던 “성 안토니오, 성 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 오캄, 라이몬 룰, 브린디시오의 성 로렌조”와 같은 학자들은 각각 다른 특징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진리를 향한 프란치스칸들의 다양한 성격을 한 학파로 묶을 수는 없다.

현대는 일정한 “학파”나 “학설”의 배타주의적 사상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은 어느 때보다도 학문 분야를 자유롭게 개척해 나아갈 수 있으며, 진리 편에 대담하게 설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생활 면에서 프란치스칸은 문자의 좁은 길을 돌파하여 끊임없는 사랑의 넓은 길을 택할 수 있다.

성 바울로의 가르침과 같이 사랑은 크리스천 자유로 하여금 질서를 파괴시키지 못하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갈라 5,13). 사랑 위에 기초를 두는 자유라면 서로 종이 되도록 하며 봉사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자극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