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 9장 사랑하기 위한 자유로운 마음

Margaret K 2017. 12. 18. 21:43

제 9장

사랑하기 위한 자유로운 마음


정결하게 산다.

프란치스코에게 ‘정결하게 산다“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섬기는 데 있어서 성인이 강조하는 ”마음이 깨끗함과 정신의 단순성“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정결이란 마음이 가난한 데에서 우러나온다. 마음의 깨끗함은 영혼이 높이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장애물에 대한 이탈이요 해방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 5,8). 진정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지상 사물을 멸시하고 천상 사물들을 찾으며, 살아 계씨고 참되신 주 하느님을 깨끗한 마음과 영신으로 항상 흠숭하고 바라보는 일을 그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기적인 자아”의 요구 - 탐욕, 안락, 자애 - 를 억제하고 초월하는 마음은 깨끗함을 지니고, 이런 영혼은 해방되어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봉사자들과 다른 형제 모두에게 부탁합니다: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온갖 근심 걱정을 멀리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주님이 무엇보다도 요구하시는 일, 즉 주 하느님을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정신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흠숭하도록 하십시오.”

복음적인 동정성은 실로 이러한 해방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정결이다(마태 19,12). 그리고 특별한 카리스마를 받아 정결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떻게 주님의 마음에 들까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하면서 아무 걱정 없이 지내기를 바라고 ··· 육으로나 영으로 거룩해져 ··· 품위있게 살며 딴 생각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려고 한다”(1고린 7,32-35).

성인은 「덕행들에게 바치는 인사」에서 정결의 덕을 열거하지 않는다. 순수한 성서적 개념에 의하면, 정결이란 일종의 덕행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 자세이기 때문이다. 해방된 상태에서 마음을 다 바쳐 하느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정결은 결혼생활의 포기나 육체적 안락을 포기한다는 뜻을 초월하는, 더욱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육체적 정결보다도 영신적 정결이다. 그리고 마음의 정결의 목적은 항상 “순렬한 마음과 순력한 정신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흠숭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육”, “육적인 것”을 설명하는 프란치스코의 뜻을 볼 수 있다. 성인에 의하면 이기주의, 자기 편의, 자기 뜻을 찾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육적인 것”이고 정욕, 자애심, 교만과 헛된 욕망, 현세의 근심 걱정에서 나오는 것도 “육적인 것”이다.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을 마음에 간직하고 주님께 깨끗한 마음으로 항상 기도하고, 박해와 병고에 겸허하고 인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는 모든 형제들에게 권고한다: “마귀는 우리가 육적으로 살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원한 생명에서 우리를 떼어 놓기를 ··· 원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그 악습과 죄와 함께 미워합시다.”

정결생활을 보호하고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한 프란치스칸의 길을 사랑이다. 사랑에서 포기가 나오고, 포기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정결을 거스르는 유혹을 성공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덕행들에게 바치는 인사」에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룩한 사랑은 악마의 온갖 육적인 유혹과 온갖 두려움을 부끄럽게 합니다.”

어떤 형제가 정결의 유혹으로 고민하며 지도를 청하면 성인은 그 형제를 깨끗한 사랑, 신뢰하는 사랑, 자아를 모르는 사랑의 분위기로 인도하였다.

프란치스코는 비록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몸과 마음이 지극히 정결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는 육정의 유혹에서 해방된 사람이 아니었고, 바로 유혹과 투쟁하는 가운데 인간의 나약함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얻었다.

정결에 관한 유혹이 강렬할 때 성인은 어떠한 방법을 이용했는가? 다음의 이야기들이 얼마만큼 역사적인 신빙성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성인이 육체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 눈 속에 뛰어들고, 가시덤불에 뛰어들었으며 자기 몸을 편태로 때렸다는 ··· 등등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어 그 앞에서 묵상한다는 이야기가 성 프란치스코의 창조적 성격에 가장 걸맞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성인이 이 점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친 방법은 「잔 꽃송이」제3부에 잘 표현되어 있다: 에지디오, 시몬, 루피노와 쥬니뻬로 형제가 함께 모여 영적 대화를 나누는데, 에지디오 형제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음란한 유혹을 물리치려면 어떻게 하느냐?”하고 묻자. 시몬 형제는 “죄의 더러움과 비참한 것을 묵상한다”고 대답했고, 루피노 형제는 “땅에 엎드려서 주님과 성모 마리아께 기도한다”라고 말 하였다. 그러자 쥬니뻬로 형제는 “멀리에서 유혹의 소리를 듣자마자 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마음 안을 거룩한 생각과 상상으로 가득 채워 방어 대책을 세운다. 그래서 유혹이 문을 두드릴 때, 이미 내 집이 가득 차 있어 들어올 자리가 없으니 물러가라고 한다”라고 하자 에지디오 형제는 “나도 쥬니뻬로와 동감이다”라고 하여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그러나 성인은 정결을 지키기를 원하는 형제들이 실제적인 유혹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형제들의 생활은 항상 세상 사람들과 접촉이 많은 생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기에 성인은 실제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의심이 날 만한 일에서까지 형제들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성인은 “불순한 눈으로 여자들을 바라보거나 만나지 말 것입니다”라고 하는 「제1회칙」12에서, 형제들에게 눈을 조심하고 여자들과 가지는 교제를 피하고 “그들과 단독으로 이야기하거나 길에서 그들과 함께 걸어가서나 식탁의 같은 그릇에서 식사하지 말 것”을 명했다. 그리고 사제들은 여자들에게 회개생활을 하도록 영적 권고만 주라고 성인은 덧붙여 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자신을 힘써 지키고 우리의 모든 오관을 깨끗하게 보존합시다”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제1회칙」에 의하면, 가톨릭 신앙을 지키지 않은 형제와 마찬가지로 간음한 형제도 형제회에서 제명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준된「제2회칙」11장에는 모든 형제들이 여자와 의심스러운 교제나 이야기를 하지 말고 교황청으로부터 특별한 허가를 받은 형제 외에는 수녀원을 출입하지 말라고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당대의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 추문을 피하기 위하여 형제들이 남자나 여자의 대부가 되는 것을 금했다.

그러나 여자들에 대한 성인의 태도는 그 당시 수덕학이 가르친 부정적이고 금욕적인 자세와는 꽤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당시 수덕학의 책을 보면, 여자들을 “마귀의 가장” 혹은 “단맛의 독” 등으로 취급하고 유혹의 대상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보았다. 첼라노도 「제2생애」에서 여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성인의 말이나 행동을 기록할 때 그 당시 금욕적 경향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부님의 생각과 자세를 올바르게 해석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프란치스코는 여자들을 죄악의 대상처럼 피하거나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는 그 당시 기사들이 여자들에 관하여 가졌던 그 존경심과 예의 바른 자세를 취하였다. 특별히 그리스도 왕에 대한 성인의 충실성은 모든 여자들을 존중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영적인 눈으로 볼 때 모든 여자들은 정배이신 그리스도께만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들에 대하여 불순한 마음을 둔다면 그리스도의 소유인 그들을 부당하게 차지하는 도둑이 된다. 첼라노에 의하면 한번은 어떤 어머니와 그녀의 딸이 성인과 동료 한 사람을 초대해서 음식을 준비하여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성인은 그 음식을 먹는 동안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었지만 한 번도 그 두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집에서 나와 길에서 그 동료가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을 때 성인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쳐다보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또 첼라노의 증언에 의하면, 성인은 자주 형제들에게 어떤 왕이 여왕에게 보낸 두 사신의 비유를 말하곤 하였다. 한 사신은 여왕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메시지만 전하고 돌아왔는데, 다른 사신은 여왕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고는 왕에게 돌아와서 자기가 목격한 여왕의 아름다움을 왕 앞에서 자랑하였다. 그 때 왕이 화가 나서 그 사신을 왕궁에서 쫓아내면서 “네가 나의 부인을 불순한 눈으로 보았단 말이냐?”하고 꾸짖었다.“

그러므로 여자들을 대할 때 성인은 오관을 삼가고 눈을 하늘로 돌리는 자세로 여자들과 필요없는 대화나 관계를 피하였다. 그리고 한번은 동료에게 이런 비밀을 밝힌 바 있다: “나는 얼굴을 봐도 그 여자가 누군지 모릅니다. 두 여자만 빼고 말입니다. 두 여자의 얼굴은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릅니다.”


정결과 우정

여기서 성인은 세떼솔리의 야고봐와 성녀 글라라를 두고 말한 것 같다. 성인은 영적 딸인 두 분과 매우 친한 사이였고 그들의 사랑에 진정한 우정으로 보답하려고 했다.

세떼솔리의 야고바는 품위있는 부인인데다가 형제들을 대하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태도 때문에 성인은 그녀를 “야고바 형제”라고 불렀다. 야고바가 처음으로 1212년, 로마에 있는 자기 집에서 성인을 모실 때 불과 22세밖에 안되었다. 성인과 그녀 사이에 깊은 우정이 생겼다. 형제들은 그 은인을 형제회에 영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자매로 여겼고 형제처럼 대했다. 그래서 형제들이 사는 뽀르찌웅꿀라 수도원에 여자들이 출입하지 못한다는 엄격한 봉쇄의 규칙이 야고바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 주는 이야기들은 많다. 글라라는 열일곱 살이였고 프란치스코는 스물 아홉 살이었다. 어린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열렬한 설교에 마음이 이끌려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불타기 시작하였다. 글라라의 친구 보나가 「시성 증언」에서 밝히는 것처럼 글라라는 개인적으로 성인의 영적 지도를 받기 위해서 당시의 엄격한 관습을 무릎쓰고 자기와 함께 부모 몰래 비밀 장소에서 성인을 몇 번 만났다. 프란치스코도 그 첫 번 제자 중 하나인 필립보라는 형제와 함께 글라라를 만나 열렬한 영적 권고의 말씀을 통하여 그 어린 처녀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인도하였다. 이렇게 순수한 지향의 영적 담화를 나누는 가운데 성인과 글라라 사이에 분리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일치가 솟아났다.

프란치스코를 위한 성녀 글라라의 사랑은 영적인 것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자녀다운 순종과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열렬한 것이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가 성인품에 오른 후에는 사부를 위한 성녀의 사랑은 열렬한 신심으로 변하면서 그의 사랑은 한층 더 커졌다.

글라라를 위한 프란치스코의 사랑은 아버지다운 사랑으로서, 글라라가 그리스도를 가난과 단순성의 길로 따르는 데 보여준 그 열성과 성실함에 감동되는 기쁨과 감격 그 자체였다. 성인은 글라라를 자기가 심어놓은 “작은 나무”라고 부르면서 같은 복음적인 이상을 지닌 동반자요 협력자로 생각하였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뽀르찌웅꿀라에서 즐겼던 영적 만찬의 이야기는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서 두 분 성인 창립자 사이의 고결한 사랑을 증명해주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후대인들에게 남아 있다.

프란치스코는 처음에 성 다미아노 수녀원에 자주 가서 그 가난한 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그러나 성 다미아노 수녀원이 우골리노 추기경의 지도하에 차차 대수도원(monastic)의 양식을 취함에 따라 성인이 방문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다른 이유는 뽀르찌웅꿀라에 사는 형제들이 항상 그 가난한 자매들에 대해 분별있는 태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프란치스코가 그 출입을 규제해야 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자기도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주 못 갔다는 결과가 나온다. 성인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내가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길러내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들을 그리스도와 하나로 묶어준 일은 더 큰 잘못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가끔 성인은 성 다미아노 성당에 가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형제에게 “글라라 자매를 보러 가자”하고 자기 딸들을 방문하러 갔다.

성녀 글라라와 그 딸들에게는 사부님의 방문과 말씀 없이 지내는 것이 더욱 참기 어려웠던 일이었다. 프란치스코는 한번 자매들에게 이 점에 대하여 좋은 교훈을 남겼다. 사부님의 말을 들으려고 다함께 모였는데 성인은 아무 말 없이 하늘로 눈을 들어 기도만 하였다. 다음에 재를 가져오라고 하여 그것으로 원을 그리고 나서 - 봉쇄 표징 - 자기 머리에 재를 뿌렸다. 이렇게 침묵 속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시편 50(Miserere)편을 외우고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이 방문의 규제에 대하여 과장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여러 기록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형제들이 계속적으로 또한 자유스럽게 성 다미아노 성당의 자매들과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또한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와 정배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정배다운 일치는 부활하신 구세주의 생활에 참여케 하는 일치이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풍성한 샘이 솟아나온다. 동정생활로 그리스도께 봉헌된 사람은 교회의 구원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작은 형제들의 사도적 활도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더 정결한 생활의 이상을 갈망하게 되었다. 목격자인 비트리의 야고보(lacobo de Vitry) 추기경은 이점을 증거한다. “작은 형제들은 죄악의 부패에서 세상을 정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결생활의 이상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프란치스코는 인간적인 사랑의 품위를 높이면서, 결혼한 많은 이들이 깨끗한 생활을 하도록 이끌었다.

성녀 글라라와 그 자매들의 높은 성덕과 특히 그들의 동정생활이 풍기는 향기로 말미암아 그들이 사는 그 지방 크리스천 백성의 도덕적 수준이 높아졌다. 이 점에서 성녀 글라라의 영향은 매우 컸다. “육신으로 동정이었고 정신으로 지극히 정결했던” 성녀 글라라를 두고 성 보나벤투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녀 글라라는 봄에 피는 흰 꽃과 같이 사방으로 정결의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다.” 첼라노는 「제1생애」에서 성 다미아노 공동체가 풍기는 성덕의 향기를 목격하고 기록하기를 “동정과 정결의 백합은 감탄할 향기를 온 집안에 뿌려, 세상사를 생각에서 떨쳐버리게 하고, 오직 천상 것들만을 명상하고 싶어지게 했다. 또 그들의 영원한 정배께 대한 사랑이 마음으로부터 일게 하여, 바로 이 거룩한 사람의 완전성이 이전의 생활에서 그들이 지녔던 온갖 습관을 그들에게서 몰아냈다.

글라라의 생각에 그리스도께 대한 봉헌은 사람에게서 능동적이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응답을 요구한다. 즉, 스스로 자기의 모든 것을 내주신 가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조건 없는 협력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성숙을 이루고 여성으로서의 감수성과 예민성을 더할 나위 없이 지닌 글라라는 특별히 자기와 같은 복음적인 투신을 함께하는 자매들을 사랑하였다. 이 자매들은 시성식 증언 속에서 글라라가 자기들을 사랑해 주신 그 다정하고 매우 자연스러운 방식에 대해 값진 증거를 남겨두었다. 글라라는 자기 어머니 볼뗄라나를 사랑하였고 수녀원에서 자기 곁에 살도록 어머니를 기쁘게 맞이하였다. 글라라는 또한 자기 여동생 아네스를 각별히 사랑하였고, 그녀가 몬띠첼로(Monticelli)의 수녀원에 도착하자마자 언니에게 써 보낸「편지」에 이 상호간의 사랑의 열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침내 글라라는 멀리 사는, 얼굴도 모르는 자기 영적인 딸 프라하의 아네스를 무척 사랑하고 있었고, 이것은 그녀에게 써 보낸 「편지」, 특히 작별의 마지막 「편지」에서 열정적으로 묘사된다.

“내 영혼의 반이요 내 마음의 특별한 사랑의 보고이며 ··· 나의 극진히 사랑하는 어머니이고 모든 딸들 중에 특별한 딸이신 아네스 자매여 ··· 그대에 대한 사랑의 불이 그대의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전보다 부드럽게 타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 자매여, 이 가련한 어머니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그대를 다른 누구보다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내 마음의 판에 굳게 새겨놓았음을 아십시오.”



정결과 형제적 사랑

“수도자가 서약하는 천국을 위한 정결은 ··· 사람의 마음을 각각 독특한 모양으로 자유롭게 하며 더욱더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타게 한다. ··· 회원들 사이에 공동생활에 있어서의 참된 형제애가 충만할 때 정결은 더욱 확실하게 지켜진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다.”

한편 전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하느님께 유보된 정결한 마음은 자신을 한없이 형제들에게 푸짐하게 내어줄 줄 안다. 다른 편으로 정결한 마음은 삶과 이상을 주님의 선물인 형제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감수성의 성장을 위해 가장 알맞은 분위기를 발견하고, 투쟁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즉, 정서적인 잠재력을 온갖 이기적인 속박과 소유적인 경향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순결하고 복음적으로 가난한 마음은 남의 애정을 소유하려는 경향을 거슬러 자신의 자유를 내세워야 한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매우 적합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특히 공동체의 일치를 보존하고 창조해 나갈 책임자 형제 자매들에게 어떤 형제 자매의 사랑을 독점함으로써 공동체에 불화를 일으키는 일에 대해 주의시키고 있다. 그분들이 사용하는 표현은 “사적인 사랑”(amores privati)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전기 작가는 초기 공동체의 생동적인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겨주면서 형제들간에 콤플렉스나 허식이 없는 자발적이고 매우 형제적인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그 비결까지 매우 적절하게 풀이해 준다.

“참으로 그들은 모든 지상적인 것을 가볍게 보고 절대로 이기적인 사랑으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으며, 온 사랑을 공동체에 쏟았고 형제들의 필요에 서로 응하기 위하여 각자가 헌신하려고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