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 5장 교회의 모형이신 마리아

Margaret K 2017. 12. 18. 21:42

제 5장 교회의 모형이신 마리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시대에는 하느님의 모친에 대한 공경과 신심이 널리 퍼져 있었고 당대의 음유시인들은 자기네 종교시를 통해 성모를 고결한 표현으로 찬미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음유시 종에 성모의 찬가 몇 개를 인용하고 있다. 실은 그는 회두한 후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성모께 찬기를 바쳤다”. 그리고 성인이 세 번째 수리할 성당으로 뽀르치운쿨라 성당을 택한 이유는 그의 전기작가가 말하는 대로 “온갖 선의 어머니이신 분께 대한 공경심으로 불탔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천사들의 모후 성당 옆에 수도원을 형제회의 모원으로 정하게 될 때에도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성 보나벤투라가 지적하듯이, “그가 천주의 동정 성모의 성당 옆에서 살고 있었을 때에 그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말씀을 잉태하셨던 성모께 끊임없이 그리고 눈물로써 자신의 변호자가 되어주시길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는 자비하신 어머니의 중재로 자신이 복음적 진리의 정신을 잉태하고 낳는 은혜를 얻었다”.


젊은 글라라도 아버지의 집을 도망치던 밤에 바로 이 작은 성당 제단 앞에서. 성모님이 굽어보시는 가운데 프란치스코에게 순명을 약속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따르기로 서약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아의 글과 기타 역사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마리아에 대한 프란치스칸 영성의 근본적인 노선을 그려보기로 한다.



삼위일체에 의해 간택되시고 축성되신 마리아

프란치스코는 마리아를 우리에게 하느님의 육화의 선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도구가 되신 특은을 받으신 분으로 여긴다. 그래서 마리아를 삼위일체의 구원적 계획에 들어가 있는 분으로 관상한다: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들을 창조하셨음같이 우리들을 사랑하신 그 거룩한 당신 사랑 때문에,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분을 영원히 영화로우시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이시며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사오니.... 아버지께 감사드리나이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탄생 예고에 대한 복음을 묵상하는 데서 당신이 후에 자기의 것으로 하며 다양하게 표현할 신학적인 개념들을 취하였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큰 선물인 당신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신자들에게 말할 때 그렇다. “하늘에 계신 지존하신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이 위대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말씀이 거룩하고 영화로운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임하시리라고 당신의 거룩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마리아의 태중에서 연약한 우리 인간과 똑같이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성탄절을 위해 배정된 「수난 성무일도」시편에서 프란치스코는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에게서 나게 하심으로써” 당신 아드님을 선물로 보내주신 아버지께 찬미드린다(XV 3). 그래서 천주의 모친이라는 바로 이 탁월한 칭호 때문에 마리아가 공경을 받는 것은 지당하다(EpOrd 21).

어떤 의미에서 볼 때,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가족의 형제적 근거를 마리아가 천주의 모친이시라는 사실에서 발견한다.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는 가득하였다. 그것은 성모님께서 엄위하신 주님을 우리의 형제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별한 찬미들을 그녀에게 읊었고, 기도를 쏟아부었으며, 애정을 바쳤고, 그것이 너무 많고 훌륭하여 인간의 혀로는 그것을 헤아릴 수가 없다.

음유시에 속하는 이 찬가 중에서 신학적 내용이 깊은 두 개의 시가 보존되었는데, 하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인사”이고 또 하나는 「주의 수난 성무일도의 각 시간경 끝에 프란치스코가 읊은 후렴이다. 두 시에서 마리아가 거룩한 삼위일체의 각 위격과 가지는 특별한 관계가 강조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각 신자와 맺으려는 온갖 관계의 원형이요 모형이다.

성모 마리아는 여기서 “하늘에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에 의해 간택되시고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시며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협조자이신 성령과 함께 축성되신”(SalBMV 2) 분으로 칭송되고 있다. 프란치스코가 이 개념들을 취한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와 가진 대화의 내용을 묵상한 데서이다.

「주의 수난 성무일도」의 후렴에 나오는 표현, 즉 “당신은 지극히 높으시고 지존한 왕이신 천상 아버지의 딸이시며 여종이시옵고 지극히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성령의 정배이시옵나이다”(OffPass 후렴 2)라는 표현도 성 프란치스코가 같은 예수 탄생 예고의 이야기에서 끌어낸 것이고 이 표현들은 비록 성인에 의해 창작된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는 의미가 매우 풍부했다.

그러나 오늘날 마리아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성령의 정배”라는 칭호를 작가들 중에서 처음으로 성모님께 적용시킨 분은 성 프란치스코인 것 같다. 그리고 마리아의 경우만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에 의하면, 각 신자가 하느님과 이루는 신비적 일치에서도 이 정배적 관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이와 관련해서, 프란치스코가 「성녀 글라라와 그 자매들에게 보내신 생활양식」의 내용을 비교한다면 유사성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지극히 높으신 왕,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딸과 여종들이 되시고 성령의 정배들이 되셨습니다”(Form Vit 1).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의 관찰에 의하면, 충성된 여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간택은 성모 마리아의 간택하심에 그 원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위에 말한,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글라라와 그의 자매들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프란치스코가「성녀 글라라에게 보내신 생활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다. 이 편지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비록 여러분이 하느님께 여종과 같이 자기 자신을 바쳤지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크신 자비로 여러분을 딸과 같이 삼으시며, 성령의 작용과 은총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정혼시키셨습니다”.



아드님의 가난의 신비에 참여하신 마리아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자들의 처지를 예수와 함께하시는 “가난한 동정녀”에 비추어 소개하는 택스트들은 많이 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당신의 어머니이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와 같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가난을 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주님뿐만 아니라 복되신 동정녀도 제자들도 가난하셨고 나그네 되셨으며 동냥으로 사셨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런 동기를 말하면서 동냥하러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형제들을 격려하곤 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애긍을 청하러 나가는 일을 부끄러워 마시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그의 어머니를 본받아 참된 가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탄생 신비가 동정녀 마리아가 처해 있었던 궁핍한 상황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바로 이 날에 가난하신 동정녀께서는 그 궁색함이 얼마나 컸을까 싶어 프란치스코는 눈물을 지으며 회상에 잠기곤 하였다. 그가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한 형제가 복되신 동정녀의 가난과 그 아들 그리스도의 빈곤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곧 프란치스코는 식탁에서 일어나 맨바닥에 주저앉아 한숨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나머지 빵을 먹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왕이신 그리스도와 여왕이신 성모님 안에서 현현하게 빛을 발한 이 가난의 덕을 왕의 덕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는 궁핍 중에 있는 각 사람 안에서 가난하신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의 가난하신 어머니도 발견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모든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가난한 부인의 아들을 보았고, 그녀의 손에 알몸으로 안고 있었던 그 아들을 그도 마음 안에 알몸으로 안았다.” “성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오, 형제여, 형제가 가난한 사람을 볼 때 거기에는 주님과 주님의 가난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형제 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인은 글라라와 그의 자매들을 위해 남기신 마지막「유언」에서 복음적 가난의 서약을 제시할 때 마리아의 가난을 언급한다: “나 작은 형제 프란치스코는 지극히 높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생활과 가난을 따르고 끝 날까지 그 생활 안에서 항구하기를 원합니다.”

한편 그녀의「회칙」과 「유언」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성녀 글라라가 복음적 가난을 이해하는 시각도 성 프란치스코와 동일하다. 보호자 추기경 라이문도는 글라라의「회칙」의 인준 칙서에서 기록한다: “여러분은 .... 그리스 자신 및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지극히 높은 가난 안에서 주님을 섬기기로 선택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의「회칙」에는 그리스도의 가난만 기록되어 있지만, 글라라의「회칙」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하신 어머니의 가난이 네 번이나 명시되어 있다.

마침내 글라라는 「유언」에서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그의 영광스러운 동정녀이신 어머니의 가난과 겸손을 따르는”(TestCI 13)것을 근본적인 요소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가난을 특징으로 하는 마리아의 어머니다운 사명을 육화 신비와 비하의 신비와 연결시키며 묵상한 성녀 글라라는 프라하의 아네스에게 이 신비를 밝힌다:

“그토록 위대하시고 높으신 주님께서 동정녀의 태중에 임하실 때, 세상에서는 하찮게 보이려 하셨고 궁핍하고 가난해지려 하신 것은 ···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소유함으로써 ··· 풍요롭게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대는 영예보다 이승의 멸시를, 지상의 부보다 가난을 택하였으니 ···· 그대는 지존하신 성부의 아드님과 영화로우신 동정녀의 자매요 배필이요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늘도 담을 수 없었지만, 동정녀께서 잉태하시고 거룩한 태중의 작고 은밀한 곳에 모셨고, 동정의 품에서 기르신 그 위대한 아드님의 지극히 감미로우신 어머니께 매달리십시오. ····”

성녀의「전기」작가는 글라라가 베들레헴을 표본으로 삼으면서 자매들에게 한 열렬한 권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성녀는 가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가난의 작은 둥지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자매들에게 격려하였다. 그것은 거룩하신 어머니가 폭이 좁은 구유에 갓난아기를 눕히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대한 응답의 원형이요 모형이신 마리아

프란치스코가「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신 인사」에서 특이한 표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 표현을 이상하게 여긴 옛 사본 필사자들이 마음대로 변경시킨 예가 있다. 현대의 원물 비판본에서는 원래의 형으로 회복시켰다. 이 특이한 표현은 “교회가 되신 동정녀 마리아”(SalBMV 1)라는 것이다.

이같은 신학적인 개념이 교부들의 가르침에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전통을 받아들여 마리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 성 암브로시오의 말씀대로 신앙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에 있어서 천주의 모친은 교회의 전형이다. ···교회는 복되신 동정녀로 말미암아 이미 완덕에 도달하여 티나 주름이 없는 교회가 되었지만(에페 5,27), 그리스도 신자들은 아직도 죄를 극복하고 성덕에 자라도록 더욱 노력한다. 따라서 신도들은 뽑힌 이들 공동체 전체에 덕행의 모델로 빛나고 계신 마리아를 바라본다.“

마리아는 참으로 온갖 덕행의 모델이시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가 성모님께 인사드린 다음에 “성령께서 당신의 은총과 비추심으로 믿는 이의 마음에 부어주시는 거룩한 모든 덕행들에게” 인사하면서 양쪽의 인사를 어떻게 관련시키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품에 모시는 일의 모델이시다. 이에 대해 글라라가 프라하의 아네스에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동정녀들 중에 영화로우신 동정녀께서 육신적으로 그분을 품으셨듯이, 그대도 성모님의 발자취를, 특히 그분의 겸손과 가난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대의 정결하고 순결한 몸 안에서 영적으로 그분을 항상 품을 수 있습니다.“

글라라는 마리아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리스도께 충실하는 이의 모델로 제시하였는데, 후에 성 다미아노의 자매들과 다른 이들은 글라라 자신을 성모를 가장 완전히 모방한 모델로 생각하게 되었다. 글라라는 전기와 옛 성무일도에서 “천주의 어머니의 틀”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프란치스코가 “제2의 그리스도”라 일컬어진 것처럼, 글라라는 “제2의 마리아”라고 칭송되고 있다.



변호자의 보호자이신 마리아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동정 성모의 전구와 공로를 믿으면서 자주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였다.

“사부님이 성모님을 형제회의 보호자로 삼으신 일은 우리에게 가장 기쁜 일이고, 그가 이 세상에 아들들을 고아처럼 버릴 때에 그들을 성모님의 날개 밑에 들여보내어 성모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기르시고 끝까지 보호하시게 하였다.

가난한 자의 보호자시여! 아버지께서 정해 두신 때가 올 때까지 우리에게 당신의 보호 직무를 다하소서.“

「유언」마지막 「축복문」에서 자기 가난한 자매들을 위해 성모님의 보호를 청한 글라라는 죽기 전에 동정녀 중에 동정녀이신 마리아의 방문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 벤베누따 자매가 환시를 통해 보고 증거한 바에 의하며, 글라라가 죽기 3일 전에 거룩한 동정녀들의 무리에 싸여 내려오신 성모 마리아께서 매우 아름다운 흰 베일로 성녀의 몸을 덮고 성녀에게 친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