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 3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

Margaret K 2017. 12. 18. 21:40

프란치스칸 소명


제 3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


복음은 교리이기에 앞서 생활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먼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 안에서 발견하였던 그리스도는 이제 복음 안에서 생생하게 그리고 매우 가깝게 성인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성인은 복음을 묵상할수록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kenosisi)의 신비 안에서 발견하였다. 즉, 성부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형제가 되시고 인간의 신분을 취하시며 자신을 비우고 버리신 그 비하를 말한다.

신앙으로 보는 프란치스코의 눈앞에서 그리스도의 생애 전부는 비하의 신비를 특징짓는 것으로 나타나고 이 비하는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심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성 바울로 신학에 의하면(필립 2,5-11) 그리스도께서 최종의 영광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였다. 첼라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끊임없는 묵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겼고, 예리한 사고력으로 그리스도의 행적을 되새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이 그를 사로잡았으므로 그는 다른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이 쓴 글에서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아버지의 영광중에 계시는 분으로 관상하는 동시에 그의 지상생활에서 십자가의 겸손과 부활의 승리에서, 성체성사 안에서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각 사람과 피조물 안에서까지도 그리스도를 관상하였다.



아버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프란치스코가 반복하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는 표현은 마치 이단자들의 그릇된 사상에 대항하여 대답하는 것과 같이 보이는 그의 신앙고백인 듯하다.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을 통해 만물이 창조되고 속량되었으며 화해되었다. 아버지가 그분을 구세주와 해방자로 세상에 보내주셨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가장 큰 선물이고, 우리는 합당하게 그 은혜를 갚고 감사할 길이 없다. 오직 “아버지를 언제나 모든 면에서 만족해 드릴 수 있는” 그리스도만이 성령과 함께 아버지께 합당하게 감사드릴 수 있다(참조 RnB 23,5-11)


그리스도는 또한 아버지의 지혜이시고(EpFid II,67)말씀이시다. 그런데 천사를 통해 마리아께 전해지신 이 말씀은 마리아의 태중에서 연약한 우리 인간과 같이 육신을 취하셨다(EpFid II, 4 참조).


따라서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영이며 생명인’ 성령의 말씀을”(EpFid II, 3)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성인은 그리스도를 주님과 스승(OffPass 후렴). 그리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고백한다(요한 14,6). 또한 프란치스코에게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인도해 주는 길이요 우리 영혼들을 지키고(1베드 2,25). 양들을 앞장서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시는(요한 10,4.11) 착한 목자이시다. 마침내 그리스도는 우리의 갈 길을 비춰주시는 참 빛이고 우리의 생명이며 굳셈이시다.“


성녀 클라라도 이런 체험들을 자기의 것으로 한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들에게 ‘길’이 되셨는데,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본받은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께서 말과 모범으로 이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가르쳐 주셨습니다.”(Test Cl 1) 이것이 바로 그 “좁은 길” 생명에 들어가게 하는 그 “문”이며, 우리가 받은 소명에 응답하려면 이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참조 Test Cl 21).



그리스도를 따름에 대한 열정


성 프란치스코가 자기 글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이것보다 역동적인 표현인 “그리스도의 생활을 따른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른다”, “그리스도의 발자취와 가난을 따른다”라는 표현을 항상 예외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지적할 만한 점이다. 영적 권고 중의 하나가 “주님을 본받음”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것이 사실이나 이것은 곧 착한 목자에 대해 말할 때 후기 편집자가 붙인 것이다.


사실 복음에서 예수님의 초대는 따름의 표현으로 되어 있다: “따라오너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너라”. “너희들은 나를 따라왔다”.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등이다. 프란치스코는 <제1회칙>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를“것을 서약하고 이어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근본적인 따름과 관련되는 세 개의 복음 구절을 삽입시킨다(참조 RnB 1,3-6).


성녀 클라라의 글에 본받음에 관한 개념이 몇 번 나오지만, 그의 <회칙>과 더불어 ,<유언>과 <편지>들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개념은 따름에 대한 것이다. 초기 전기 작가들의 글에도 두 개의 개념이 나오기는 하지만, 성 프란치스코가 사용한 용어를 더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프란치스코의 “기사 정신”의 태도가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 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된 바 있다.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이, 그의 젊은 시절에, 당대의 유럽에 그 절정에 달했던 무용 찬가와 가사 이상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기품이 있는 프란치스코의 정신은 예의바른 사랑과 충실스러움과 헌신적인 업적을 목적으로 하는 그 정열적인 문화의 분위기와 조화를 잘 이루는 것이었다. 그가 이렇게 느끼면서 살았던 양식이 그의 많은 영적인 행동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을 너무 강조해서도 안되고, 더구나 그가 그리스도와 가졌던 관계에 있어 이 특징을 근본적 요소로 봐서도 안된다.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교훈과 격려의 말을 들려줄 때 흥미있게 하기 위해 음유시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내용과 의미는 당시에 기사의 이상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봉건적 영주처럼 여기면서 그분께 노예적인 복종을 바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은 열정을 띤 성인의 고유한 글에서 잘 드러나 있으므로 우리가 여기서 찾아내야 한다. 최초의 전기 작가는 단한 번 프란치스코를 들어 “그리스도의 용사”라고 부른다.



정배, 형제, 아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을 자기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로 알게 해주시는 예수의 말씀(마태 12,50참조)을 묵상하는 데서, 또한 성령께서 이루시는 정배적 일치를 체험하는데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맺어지는 사랑스러운 마음의 일치를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 신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리고 이것들을 실행하며 끝날까지 항구하는 모든 남녀들에게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임하실 것이고’ 그들은 당신의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실천하기에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 됩니다. 믿는 영혼이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정배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마태 12,50)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에게 형제들입니다. 우기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그러한 형제와 아들을 모시는 것이 오, 얼마나 거룩하고 좋은 일인지!”(EpFid II, 48-56).


성녀 클라라도, 프란치스코에게서 자주 들은 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체험되고 표현되는 이러한 삼중의 형을 기꺼이 자기의 것으로 한다. 그녀는 프라하의 아네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사랑하는 자매, 아니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이고 어머니이며 자매이시여,···· 그대는 지존하신 성부의 아드님과 영화로우신 동정녀의 자매요 배필이요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 천상의 지존하신 임금님의 자매요 정배이시여,  ··· 지존하신 임금님의 딸과 지극히 정결한 정배이시여.”


프란치스코는 구세주 그리스도에게서 아버지, 형제, 정배, 친구의 사랑을 느끼고서 그분께 진실한 사랑, 헌신적인 사랑. 조건 없는 실질적인 봉헌의 사랑으로 응답한다.


“그와 함께 살아 본 형제들은 그가 매일 얼마나 끊임없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올렸고, 성인의 말씀이 얼마나 감미롭고 부드러웠으며, 형제들과의 이야기가 얼마나 친절과 사랑이 담겨져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왔고 그의 온 존재를 채우고 있는 빛을 받은 사랑의 샘이 밖으로 넘쳐흘렸다. 어디에서나 그는 늘 예수께 사로잡혀 있었다. 마음에 예수를 품고 있었고, 입에도 예수, 귀에도 예수, 눈에도 예수, 손에도 예수, 나머지 다른 지체에도 늘 예수를 모시고 다녔다.”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심을 시작한 사람은 성 프란치스코가 아니다. 그 이전에 성 벨라도와 성 빅토르 학파의 학자들이 신비적인 체험에서 이러한 신심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코 시대에 인간적 주관주의가 강하게 발생하자 모든 일에서 자아를 세우고자 하는 당대의 사회는 새로운 종교적 열정으로 그 신심을 받아들었다. 앞으로의 “성인상”은 마음과 생각과 목숨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진 사람“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에서 자극을 받아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가 사랑받도록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 모든 형태의 완덕의 목적이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앞으로 얼핏 정반대로 보이는 다음 두 가지 생활 형태의 통합으로 성취될 것이다. 첫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의 고요함에 피신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심오한 통교의 맛을 영혼에게 보임으로써 영혼은 사랑에 신음하게 된다. 둘째는 사도직의 생활 형태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사도는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풍요함과 힘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성 프란치스코가 본 그리스도는 물론 신학적이고 신비의 그리스도이시며, 묵상과 신비적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된 분이시다. 클라라의 순결하고 고결한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불이 솟아오르게 한 사람을 프란치스코였고, 그는 클라라로 하여금 가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온통 빠지게 하였다. 전해준 이야기에 의하면, 프란치스코가 한번 강론중에 애정이 가득한 어휘로 “예수”의 이름을 들려준 순간 그리스도께서 클라라의 마음에 힘과 용기를 부여하심으로 해서 그 이후로는 클라라에게 어떤 고난도 어떤 불행도 견디기가 어렵지 않았다.


클라라가 <성녀 아네스에게 하신 편지>에서 우리는 천상적 정배에 대한 지극한 깊은 인식에 충만한, 그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감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대는 더 고위한 신분의 정배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셨습니다. 자매는 그분을 사랑할 때 정결하고, 그분을 만질 때 더 깨끗해지고, 그분을 맞이할 때 그대는 동정녀입니다. 그분의 힘은 누구보다도 억세고, 그분의 기품을 더 고결하며, 그분의 용모는 누구보다도 멋이 있고, 그분의 사랑은 더 부드러우며, 그분의 모든 매력은 누구보다도 우아합니다. 이미 그대를 껴안아 사로잡으신 그분은 그대의 가슴을 보석으로 꾸미셨습니다.” ··· ‘그대는 당신의 사랑 때문에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신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십시오. 그분의 아름다움은 해와 달이 찬탄하고 있으며, 그분의 선물들은 그 풍요함과 가치와 위대함에서 한이 없습니다. 동정녀께서는 이분을 잉태하시고 낳으신 후에도 동정으로 남으셨습니다.“  ··· ”전심으로 그리스도께 결합하여 이 거룩한 정혼을 하게된 사람은 진정 복됩니다. 천상의 복된 모든 군대들이 끊임없이 그 임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있습니다. 임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에 불을 붙입니다. 임에 대한 관상은 우리의 휴식이고, 임의 어지심은 우리의 만족입니다. 임의 감미로움은 우리를 가득 체우고 임에 대한 생각은 부드럽게 빛나고, 임의 향기는 죽은 이들을 살리며, 임을 영화롭게 직접 뵙는 것이 천상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들에게 행복이 될 것입니다.“


특히 정배와 영원한 만남이 이뤄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예상한 클라라는 이 편지를 통해 열렬하게 사랑의 찬가를 노래하고 있다. 클라라는 멀리 사는 자기 영적인 딸에게 그리스도의 생애가 반영되는, 흠이 없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도록 초대한다: 이 거울의 전면에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반사되어 있다”(Cka조 EpAgP I,9-26).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신심에 나타나는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들.


1. 육화의 신비

프란치스코는 육화의 신비를 성 바울로 신학을 배경으로하는 케노시스(kenosis), 즉 비하의 빛 아래서 바라본다. 케노시스란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신적인 특권을 버림으로써 우리 중에 하나되시고 심지어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종의 신분(필립 2,5-8참조)을 취하시는 하느님의 아들의 비하요, 비움이요, 이탈이다. 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한 자가 되셨다(2고린 8,9 참조).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 선택한 생활양식 중에 양면이 되는 가난과 작음성은 바로 여기에 근본을 두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프란치스코는 이 비하와 겸손의 신비가 교회 안에서, 그리고 특히 성체성사 안에서 연속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이 신비들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포기하고 모든 인간적 상황과 마음을 같이하도록 초대한다


2. 그리스도의 탄생

사랑과 가난의 신비를 보여주는 성탄은 프란치스코에 있어 축제 중의 축제였다. 성탄의 전례가 전해주는 겸손과, 단순성과, 기쁨의 분위기에 호흡을 맞춘 프란치스코의 마음은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애정으로 넘쳤다. 기쁨 가운데서 예수 탄생을 관상하는 성인에게 육화와 탄생과 구속사업은 서로 갈릴 수 없는 하나의 신비를 이룬다. 프란치스코가 소위 <주의 수난 성무일도서>안에 성탄 시기를 위해 작성하고 삽입한 기도문은 이것을 잘 표현한다.


“우리 힘 하느님을 기꺼이 찬미하라. ··· 예부터 우리 왕이시며, 하늘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는 높은 곳에서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에게서 나게 하셨도다. ···주께서 당신 은총 낮에 내려주시면, 나는 밤에 당신을 노래하리이다. 이 날이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지극히 거룩하며 사랑스런 아이가 우리에게 주어져, 우리를 위하여 여행중에 태어났으며 구유에 눕혔으니,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음이로다. 하늘 높은 곳에는 ‘주’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의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늘은 기뻐하라. 땅은 춤추라. ···(OffPass 15,1-9).


성인은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마음 준비를 하였고, 그 거룩한 밤을 이루 말할 수 없는 열심히 보내면서 그리운 마음에 아기 예수의 “손과 발에 입을 맞췄다. 아기 예수에 대한 측은함에 가슴이 뭉클해서 마치 아기들에게 하듯이 예쁜 말들을 더듬거렸다. 예수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의 입에 꿀맛이었다(2Cel 199).


성탄 축일은 기쁨의 날이었고 이 날이 금식을 해서는 안되었다. 성탄날이 회칙에 따라 단식을 지키는 금요일이 되어도 이 날에 지키는 것은 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성탄날에 담벼락에다 고기를 문지르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부자들이 궁핍한 사람들에게 후하게 베풀어야 하고 누구나 집안 동물들에게 평상시보다 더 많은 양의 먹이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게다가 성인에게 기회만 주었다면, 그는 황제에게 청해서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명하는 포고를 내리라고 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밀과 곡식을 길에다 뿌려서 새들도, 특히 자매 종달새들이 이렇게 성대한 날은 실컷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프란치스코가 1223년 성탄 때 그랙치오(Greccio)의 은둔소에서 어떤 모양으로 예수 탄생의 신비를 연출했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그분이 마음 애석해한 것은 “이 날에 가난하신 동정녀께서 그 궁색함이 얼마나 컸을까 싶어”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같은 기쁜 축제의 즐거움을 이유로 해서, 가난 부인이 상처입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같은 그렉치오 운둔소에 사는 형제들이 성탄날 식탁을 곱게 꾸미고 흰 아마천을 깔아 놓은 것을 보고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꾸짖었다.


성녀 클라라도 프란치스코 못지않게 성탄 축일을 큰 열성과 기쁨으로 지냈다. 성인의 의도에 따라 이 날은 단식 의무에서 재외되었다(RegC1 3,9; EpAgP III, 33,35).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에게  보내신 편지 IV>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거울에서 예수 탄생이 보여주는 경탄할 가난의 모범을 보라고 권한다:

“먼저 거울의 맨 밑에서부터 보시고, 말구유 위에 강보에 싸여 누워 계시는 그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오, 놀라운 겸손이여! 오, 기막힌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구유에 누워 계시다니! ···”(EpAgP IV 19-21)


그리고 자매들의 옷에 빛나야 할 가난의 동기를 불어넣으며 회칙에서 명한다:

“그리고 아주 보잘것없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사랑하올 아기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사랑으로 나의 자매들에게 훈계하고 간청하며 권고합니다. 항상 남루한 옷을 입으십시오”(RegCI 2,18).


지상에서 생애의 마지막 성탄, 1252년 성탄날 밤에, 병으로 인해서 성당에서 거행되는 전례에 참석치 못한 채 방에 혼자 남은 클라라는 주님께 투덜거렸다. “주님, 당신과만 있는, 이 내버려진 몸을 보십시오.” 그러자 본인이 그 자리에 참석해 있듯이 성 프란치스코의 대성당으로부터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와 형제들이 노래하는 후렴과 성무일도와 미사 전례의 소리를 듣게 되어서 클라라는 큰 위로를 받았다. 자매들이 성당에서 돌아왔을 때 클라라는 마음이 기쁨에 넘쳐 그들에게 말하였다. “자매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혼자 내버렸지만, 주님께서는 침상에 앉아 누워 있는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3  최후만찬

성 프란치스코가 자기 글에서 인용하는 복음의 구절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바와같이 체험에서 그리스도의 공적 생활 전부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 중에도 그의 애정 깊은 관상의 눈은 “예수의 시간”의 결정적인 순간, 무엇보다도 교회의 전례가 성 목요일에 제시해 주는 신비 앞에 멈추고 있다.


성인이 깊이 목상하였던 부분은 발의 씻음으로 시작하는 요한 복음서이다. 그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 장명을 형제들에 대해 처신해야 할 태도의 모범으로 “봉사자들과 종들에게” 제시한다(RnB 6,3). 그리고 앞에서 본 것처럼, 예수님의 작별의 인사 말씀과 아버지께 향한 예수님의 사제적 기도(요한 14-17) 대부분은 <제1회칙 22장과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에 삽입되고 있다. 영적인 권고의 첫 자리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 6-9)라는 구절 다음에 예수님과 필립보의 대화가 인용되고 있다(Adm 1,1-4).


항상 예수님의 감정과 행동을 모방하려는 프란치스코는 특히 임종 시기에 그분을 본받으려고 했다. 첫 번째는 1226년 봄에 시에나에서 죽음이 가까이 온 줄 알고 급히 “소유언”을 남겼다. 주님이 넘겨주신 계명, 즉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는 계명을 기억하면서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것처럼, 나의 축복과 나의 유언에 대한 기억의 표시로 항상 서로 사랑하시오.”


두 번째는, 이번에는 요한 복음서가 아니라, 공관복음서에서 영감을 받아, 그날이 “목요일인 줄 알고” 프란치스코는 임종을 맞이하면서 형제들가 빠스카를 지내기 원하였다: “빵 몇 개를 가져오도록 하시고 축복하시며 그것을 떼고 형제들에게 나누도록 하셨다.”


“이윽고 그가 성서를 가져오라 명하였고, 요한 복음의 다음 구절부터 읽으라고 하였다” ‘과월절 6일 전에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셨다.’


4. 예수 수난과 십자가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와 이룬 완전한 일치는 애정깊은 동참과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 십자가의 신비에서 이루어진다. 육화로 시작하여 비하를 지향하고 비하로 특징지어지는 구세주의 전생애는 갈바리아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자신을 온전한 봉헌물로 바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는 프란치스코에 의해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는” 것으로 관상되었고, 이 신비는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 헌신적으로 봉헌하도옥 이끌었다.


프란치스코는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육화의 비하와 성체성사 안에서 드러나는 사랑과 피땀 중에 동산의 기도에 대해 말한 후 십자가에서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명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복되고 영광스러운 아드님이 십자가의 제단 위에 자신의 피를 통해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에게 그러한 모범을 남기시어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작가들에 의하면, 성인이 구세주의 고통을 관상하는 양식과, 더 나아가 오상의 사건까지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와 이루신 그 일치는 성 다미아노에서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과의 만남에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오상은 먼저 내적으로 그의 마음속 깊이 찍혔고, 다음은 외적으로 그의 살에 찍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대한 애처로움이 그의 거룩한 영혼에 뿌리를 내렸고, 아직 살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경이로운 오상이 그의 마음속 깊이 찍혔음을 경건히 추측할 수 있다. ··· 얼마 후 그의 마음의 사랑은 그의 육신의 상처로 인해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자기 눈앞에 언제나 어른거리는 듯 그리스도의 수난을 큰 소리로 외치고 슬퍼하며 울음을 그칠 날이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기억하느라 길거리를 한숨으로 채웠고, 어떤 위로도 마다하였다. 절친한 친구 하나를 만나 그에게 자기가 슬퍼하는 이유를 알리자, 이내 그의 친구도 비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글썽였다.“


성 보나벤투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대전기>에서 성인의 전생애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향하여 올라가는 길처럼 보았다. 이러한 개념은 한편으로 세라핌적 학자(보나벤투라)의 신비신학과 일치하는 종합적 결론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가난뱅이”의 가장 깊은 욕망과 이상에 걸맞는다. 당대인들은 이런 관점에서 1224년 9월, 성 십자가의 현양 축일경에 라 베르나(La Verna)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보고 있다.


성녀 클라라는 자기 “회개”를 결정한 비밀 만남에서 프란치스코로 인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지게 된 그 순간부터 십자가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후에는 클라라 자신이 많은 젊은 여성들을 십자가의 소명으로 이끌었고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다.


클라라는 자기의 <편지>에서 자주 그리스도를 모델과 사랑의 대상으로 소개하면서 가난하시고 모욕을 당하시며 채찍질을 당하시고 빈사상태에 빠지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사랑의 대답을 요청하신다고 호소하고 있다.


클라라 전기 작가는 <성녀 시성식 심사 과정>에서 증언한 자매들의 증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클라라는 주님의 수난에 눈물을 흘리는 것에 익숙해 있다: 어떤 때는 주님의 거룩한 상처에서 몰약의 쓴맛을 마셔 버리고 어떤 때는 가장 감미로운 즐거움을 빨아들인다. 고통당하신 그리스도의 눈물에 몹시 취해 있으며 기억력은 그녀의 마음에 사람이 깊이 박힌 분을 계속 재현시킨다.


클라라는 수련자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때문에 눈물을 흘리도록 가르치고, 말로 가르치는 것을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다. 실은 수련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그렇게 감정을 표하도록 권할 때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클라라는 수련자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때문에 눈물을 흘리도록 가르치고, 말로 가르치는 것을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다. 실은 수련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그렇게 감정을 표하도록 권할 때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주님의 수난에 대한 생각이 육시경과 구시경에 더욱 깊어지곤 했다. 성녀가 특히 좋아한 기도는 주님의 오상기도였고 성 프란치스코가 작성하신 <주의 수난 성무일도>를 자주 바쳤다.


<클라라 전기> 작가는 <성녀의 시성식의 심사에 대한 자료>를 보완하면서 그녀가 누렸던 특별한 황홀경을 기술한다. 성 목요일 오후부터 성 금요일 오후까지 계속된 이 황홀경중에 클라라 는 게쎄마니 동산 번민과 수난의 각 순간에서 구세주를 동반하였다.


마침내 클라라 성녀도, 그녀의 공경하올 사부와 같이, 고통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났다.


5. 승리하시고 영광을 누리시는 그리스도

프란치스코가 관상하고 사랑하는 그리스도, 전례 안에서 경축하고 성체 안에서 공경하며 받아모시는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에 의해 축성된 세상 안에서 바라보는 그리스도는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어 영광받으신 분이시다”(EpOrd 22).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프란치스코가 쏟은 눈물은 - 당대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 하느님 아들의 고통스러운 수난으로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넘치는 기쁨과 하나가 되었다. 저술가들의 기록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성인의 이러한 기쁨의 느낌을 우리는 성인의 글을 통하여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벌써 성인의 영성이 성서의 양식으로 심화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프란치스코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성부께 마음속 깊이 감사한 까닭은 “성자의 십자가와 피와 죽음을 통하여 사로잡힌 우리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RnB 23,3). 그리스도의 희생이 가져다주는 생명의 은총을 감사한 성인은 기쁨에 넘친 기도를 하였다. <주의 수난 성무일도>에서 성인이 직접 쓴 표현들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총회에 모인 형제들에게 인사하기를 “고귀한 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씻어주신 그분 안에서 인사드립니다”(EpOrd 3).


형제들이 길을 가다가 성당이나 십자고상을 만날 때 해야 할 기도를 프란치스코가 가르쳐 주었는데 이 기도는 성인이 구원사업에 관하여 가졌던 우주적 차원을 잘 나타낸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세계에 있는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Test 5).


구원의 신비에 관한 프란치스코의 신학적 사상을 보면 종말론적 요소도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로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구원받은 사람들의 주님이시오 머리로서 성부께로부터 올림을 받으신 분, “죄의 정화를 이룩한 다음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히브 1,3) 분으로 관상한다. 첼라노의 말에 의하면, 프란치스코는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황홀경에서 형언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영광중에 관상하였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으로 즐거움을 새롭게 하였다. 성인은 강생과 수난의 은총에 대해 지극히 높으신 성부께 감사드린 다음, 구원사업의 마지막 은총인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도 감사를 바친다:


“당신 아드님 친히 위엄의 영광중에 오시어, 회개하지 않고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저주받을 사람들을 영원한 불로 쫓으시고, 아버지를 알아보고 흠숭하며 회개하여 아버지를 섬긴 이들에게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여라’ 하고 말씀하실 것이오니 아버지께 감사드리나이다”(RnB 23,4).


감사로 가득한 이 미래의 희망은 어디서보다도 <주의 수난 성무일도>에 잘 강조되어 있다. 첼라노가 말하기를 프란치스코는 그분을 가까이 대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인간들과 달리 이미 후세에 속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느님과 후세에 나타날 천상적인 것에 잠기어 살면서, “육신으로는 주님과 멀리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하늘에 두려고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의 영혼은 온전히 그리스도를 갈망하였고, 마음만 아니라 몸까지도 그분께 온전히 바쳤다”. 성인에게는 후세생활이 이미 와 있었다. 그래서 첼라노는 성인을 “마지막 시기의 복음사”라고 부르길 서슴치 않았다. “낙원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처럼 전세계에 복음의 물을 뿌렸고, 하느님 아들의 길과 진리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전파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프란치스코가 자기 자신과 그의 형제들을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순례자, 따라서 가난한 자와 모든 이의 봉사자로 생각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