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서장 : 프란치스칸 카리스마

Margaret K 2017. 12. 18. 21:39

서장 :

프란치스칸 카리스마


카리스마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조하고 재 확인한 신학적 요소 중의 하나는 하느님 백성 안에 카리스마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공의회의 문헌에 사용된 카리스마란 말은 성 바울로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성 바울로의 의하면, 카리스마란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불림을 받은 사람들에게 초자연적 선물로서 내려주시는 갖가지 은총을 의미한다.


카리스마는 항상 공익을 위하여 주어지는 선물이며, 온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로마 5,17: 6,11: 11,29).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각 지체는 성세성사로써 개인 구원과 의화의 은총 외에도 자기 삶과 활동을 통하여 온 공동체의 선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특수한 은총을 받는다. 그리고 주어진 이 특수한 선물은 각자에게 다르고 각자가 받은 카리스마는 서로 다른 효과를 내게 된다(로마 12,6). 그러나 카리스마의 선물을 내려주시는 성령은 하나이시므로 카리스마는 교회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효과를 낸다 하더라도 모든 카리스마는 사랑의 성장을 목적으로 한다. 한 몸 안에서 각 지체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카리스마의 역할도 다르다. 성 바울로는 다음과 같은 카리스마를 열거한다: 사도직, 예언직, 남을 가르치는 카리스마, 기적을 행하는 카리스마, 병을 고치는 카리스마, 봉사의 카리스마, 통치의 카리스마, 언어를 말하는 카리스마 등이다. 그러나 가장 고귀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1고린 12-14 참조).


사도 바울로는 성령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카리스마를 받는다는 것이 반드시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크리스천 공동체 안에서 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교회 건설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성령께서는 세례를 받은 크리스천 누구에게도 이런 선물을 부여하실 수 있다.


교회 자체는 카리스마적인 운동인 동시에 제도(institutio)인 것이다. 교회의 카리스마적 운동과 교계적 제도는 서로 보완되고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한다. 교회 안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들리는 예언적인 소리를 감사히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중대한 의무는 카리스마의 진위를 식별하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성령의 활동을 막지 말아야 한다. 성 바울로의 말씀대로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은 꼭 붙드십시오)”(1데살 5,19).



수도생활은 카리스마이다


공의회는 복음적 권고를 서약하는 신분을 하나의 카리스마로 보고 있다. 즉, “일찍이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아 주님의 은총으로 항상 보존해 오는 천상 선물인 것이다”(교회 헌장 43).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수도생활을 택하는 수도자는 “교회생활에 있어서 특수한 은혜를 받아 각기 자기 나름대로 교회 사명 수행에 이바지한다”(교회헌장 43). “복음적 권고를 서약하는 수도 신분은 비록 교회의 교계적 구성에 관계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교회의 생명과 성화에 속하는 것이 확실하다”(교회헌장 44). 따라서 수도적 봉헌은 성령의 생기 있는 작용에 속하며 교회 안에 카리스마적 운동에 속한다.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행하도록”(교회헌장 40) 성령의 작용을 받지만 수도자는 그 작용을 더 강하게 받는 것이다.


창조주이신 성령께서는 특별히 카리스마의 영역에서 활동하시므로 카리스마적 요소는 능동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즉, 카리스마는 고정적인 형태보다도 움직이는 형태이다. 다시 말해서 카리스마는 세계와 교회의 새로운 요청에 부응하여 계속 응답하는 운동이다. 수도생활의 제도에 관해서만 생각하지만, 원래 창설시 에는 모든 수도생활 양식은 하나의 “운동”으로 발생했다. 교회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각 새대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성령께서는 새로운 수도생활 양식이 탄생하도록 섭리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이 새로운 “운동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할수록 제도화되었지만 - 즉 회헌, 행정, 풍습, 전통 등이 생겨났다 하더라도 - 그 초창기 운동의 본질, 카리스마적 요소, 현시대를 위한 필요성을 잃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오직 어떤 수도회가 쇄신할 능력이 없고 자기 시대와 발을 맞출 수 없을 때, 그 수도회는 교회 안에서 존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수도회가 아무리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그 고유한 특징과 카리스마를 잃게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카리스마는 한 가지 활동 형태에 얽매여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수도회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혹은 한 문화적 배경에서 다른 문화적 배경에로 거쳐 가면서 원래 했던 활동을 포기하고 시대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활동 방향을 채택할 수가 있다.


또한 카리스마에 대해서 말할 때 염두에 둘 것은 카리스마가 제도를 통하기 보다는 각 회원을 통하여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 수도회가 쇄신의 능력을 잃었다고 할 때 이는 그 수도회에 속하는 모든 회원들이 하느님의 계획과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때 그 수도회는 없어져야 할 것이며 또한 없어져야 마땅하다. 아무리 완전하다 하더라도 죽어 있는 제도를 되살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의회가 법적인 요소를 감소시키면서까지 각 수도회와 수도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쇄신 과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새로운 생활양식과 증거생활을 시도하도록 불러준 것을 감사히 여긴다.



창설자의 카리스마


공의회의 문헌들이 수도생활의 기원에 관하여 보여주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비전(vision)은 앞에 언급한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창설자들이 성령의 작용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다만 수도회 단체들을 받아들여 인준하였다”, “각 창설자가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계획에 의하여 놀랍게도 다양한 수도자들의 집단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다양성은 교회가 모든 좋은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또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는 직무에 준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는 또한 그 자녀들의 갖가지 은혜로 장식되어 신랑을 위해 장식한 신부와 같이 나타나 하느님의 다양한 지혜가 교회로 말미암아 알려지는 데 공헌한 바 큰 것이다”(수도생활 쇄신 1).


성령의 작용이 각 수도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실을 인식한 공의회는 수도생활 쇄신의 원칙을 세울 때, 크리스천 생활 원천에 돌아가라는 원칙과 같이, 각 수도회가 “자기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수도생활 쇄신 2).


교회는 또한 각 수도회가 자기의 고유한 정신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각 회가 특수한 성격과 임무를 가지는 것은 교회에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수도생활 쇄신 2). 그러므로 “창설자의 정신과 그 고유한 의도를 충실히 인정하고 보호하여야 한다”(수도생활 쇄신 2). 그러므로 공의회는 사도직이나 증거생활에 있어서 각 수도회가 자기 독득한 카리스마를 보존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수도생활 쇄신 7-11).


크리스천 생활의 원천인 복음으로 돌아갈 때, 모든 수도회는 동일한 복음적 이상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각 수도회마다 성경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수도회 창설자들이 이 복음적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이신 성령께서 그들이 응답하는 자세를 보시고서, 하느님의 백성의 갖가지 다른 요구에 따라 그들에게 서로 다른 카리스마와 직무를 부여하신 것이다. 이 결과로써 한 복음에 바탕을 두면서도 각 수도회는 개인 성화와 증거생활이나 활동을 위하여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게 되고, 신자들의 공동체 앞에서도 서로 다른 특색으로 드러난다.


오늘날에도 각 수도회는 “자기 고유한 정신‘을 재발견하려면 복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복음의 힘만이 수도생활을 ”필요치 않은 낡은 요소“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쇄신 과업은 성공할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공의회는 새로 입회하는 지원자들을 바르게 교육하기 위하여 각 회의 고유한 성소, 고유한 성격, 고유한 정신의 중요성을 가르치라 하고(성교회 33,37 참조). 주교들에게도 수도자들의 협조를 요청할 때 그들의 고유한 성소와 정신을 염두에 둘 것을 당부하고 있다(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 33-35 참조).


어떤 의미에서 모든 창설자들이 카리스마를 입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선 앞에서 말한 대로 카리스마를 받은 것이 이상하고 예외적인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성령께서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작용하시어 그들이 자기의 인간적 능력과 기능에 따라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일반 크리스천 성소라고 불릴 수 있는 이 부르심은 성덕과 사도직을 위하여 받은 것으로 여기서 각 신자들은 각자의 예언적 소명을 발견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카리스마를 분배하실 때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들의 응답을 기다리신다. 이러한 응답이 이루어지려면 신자가 성령께 순종하면서 은총에 마음을 열어 교회 공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각오가 되 있어야 한다. 성령의 부르심과 인간의 협력이 만나게 되는 이 출발점은 회개 단계라 불려지고 이때에 회개자의 삶에 극단적으로 고통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 성 안또니오 아빠스, 성 베네딕도, 성 프란치스코, 성 이냐시오, 천주의 성 요한과 같은 성인들의 회개시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 성령은 또한 창설자들이 현실과 주위 환경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시련을 겪도록 하신다. 그래서 창설자 대부분은 당대의 사람들 앞에서 때때로 비정상적이고 광신자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이와 동시에 창설자들은 빛과 확신에 가득 찬 복음적인 체험을 영감에 따라, 복음에 따라 자기 생활을 정리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부름 받는다. 그 다음에 자기에게 부여된 카리스마는 그를 강한 힘으로 움직여 본인이 받은 소중한 보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게 된다(1고린 9,16 참조). 이리하여 회개자가 시작한 새 생활양식과 그의 증거생활과 활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서 드러나는 진실함과 빛은 그 시대에 마음이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복음 자체의 새로운 선포가 되고, 복음의 새로운 비전을 제공해 주며 그 시대에 꼭 알맞은 복음의 새 양식으로 드러난다.


다음 단계에 와서 새 수도회 창설의 카리스마는 창설자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제자들 안에서 나타난다. 새 제자들이 새로운 생활양식과 이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다음과 같이 깨닫는다. 자기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었던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갈망과 선을 위한 이상이 지금 발견한 새로운 가치관으로 말미암아 채워지게 되고, 성령으로부터 특별한 빛을 받은 창설자의 생활양식이 자기들에게도 꼭 알맞은 것뿐만 아니라. 결국 자기들도 실제로 그의 카리스마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리하여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회개자인 창설자가 자기가 받은 카리스마를 한 집단과 나눔으로써 이때부터 창설자의 이상이 전체 그룹의 목표와 방향을 정한다고 말할 수 있고,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있는 카리스마는 창설자의 생생한 증거생활을 통해 한 집단에 작용하는 것이 된다. 큰 수도회의 초기 역사를 보면 카리스마적 요소가 우선적 자리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큰 수도회 창설자들은 수도회가 제도화되고 법적인 형태를 갖추는 것을 막으려 하거나 보류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그 이유는 고정적 제도가 성령에의 역동성(dynamics)을 방해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 나가기 위하여 성령의 부르심에 따라 쇄신의 결과 적응 방안을 모색하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어떠한 제도보다도 자기들이 받은 카리스마에 대한 체험과 제자들이 복음적 자세로써 받은 소명에 대한 충실함이 더 잘 보장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어떤 회칙의 필요성이 생긴다. 회원들의 많은 증가로 창설시의 이상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신생활 수준을 규정해야 하는 현실적인 요구, 외적으로 제도화된 교회 안에서 봉사와 사도직에 참여하기 위하여 “창설자의 운동”을 구체적 상황에 적응할 필요성, 새로 입회하는 회원들을 위한 교육제도와 수도회의 영성이 통일될 필요성 등이 회칙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생활양식인 회칙은 창설자의 카리스마와 초기 회원들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복음적 생활양식을 지키도록 부름 받은 창설자들과 그 제자들이 교회나 다른 외부기관의 간섭을 별로 받지 않고 친히 회칙을 작성하고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다만 그 회칙을 받아들이고 인준하는 것뿐이다(수도생활 쇄신 1 참조). 그리고 이 생활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 회칙을 배우게 된다.


수도원 문을 두드리는 지원자는 누구나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며, 각 수도회의 구체적인 양식에 따라 복음적인 이상을 실천하려는 열망과 남에게 전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온다. 수도원 공동체는 새 지원자를 공동체의 쇄신에로 초대하신 성령의 선물로 맞아들여야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지원자들을 “하느님이 주신 형제”라고 보았다(유언 참조). 수도원 공동체와 새 지원자들은 서로의 성숙을 위하여 도움을 주고받는다. 공동체는 지원자들에게 이상과 영성을 제시해 주며 열심한 크리스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면에 새 지원자는 공동체와 접촉을 가지게 해준다. 그러므로 새 지원자는 수도회 가족을 복음과 현대인과 연결시키는 도구가 된다. 이렇게 새로운 지원자들을 받아들일 때마다 수도회 공동체는 쇄신되도록 자극을 받고 자기 생활양식과 활동을 계속 재평가해야 한다는 긴장을 겪게 된다.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카리스마를 받은 창설자의 영향이 강하고, 제자들이 새로 발견한 그 이상을 열심히 사는 수도회의 차기 단계의 수도회가 제도화되는 단계가 따른다. 이 제도화는 본연의 이상을 실제 생활과 활동에 조화시키는 단계이기도 하다. 이것은 물론 각 수도회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균형을 제대로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제도가 실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생활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러한 제도는 살이 없는 뼈요 해골과 다름이 없다, 이럴 때 모든 노력과 관심은 제도를 보존하는 목적으로 규칙과 규율과 외적인 형식을 강조하는 데로만 기울어진다. 그리고 수도회 공동체의 일률 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규칙에 대한 준수를 강조하게 된다 외부 활동이 위험한 것처럼 보이고 수도자 개인의 창의력은 공동생활의 리듬을 깨치는 원수처럼 여겨진다. 수도회가 이런 상태에 이르면 율법주의가 카리스마를 죽이고 만다. 그래서 카리스마와 제도간의 올바른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다시 개혁과 쇄신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제도를 보호하고 다스리는 수도회 책임자들이 개혁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쇄신을 시도하고 촉진하려는 사람들은 어려운 시련을 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은 신앙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도전이라 할 수 있다.



프란치스칸 운동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다른 어느 수도회 창설자보다도 주님의 영을 충만히 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복음적 생활을 실천하는 일에서나 새로운 수도회를 창설하는 사명에 있어서 성령의 힘이 자신에게 강하게 임하심을 체험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자기가 택한 생활이나 그 생활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양식에 대하여 성령의 체험으로부터 확신을 얻었다.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주님께서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주께서 친히 계시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일곱 번이나 반복하면서 성령께서 자기를 인도하셨음을 확신하고 있다.


성령의 작용을 의식한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에서 떨어져 살려는 유혹을 한 번도 못 느꼈다. 그리고 혹시 제자들 중에 누가 그 당시의 개혁자들과 같이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는 데서 생길 수 있는 교만 때문에 교회에 대한 순종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그의 마음은 언짢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받은 창설자의 카리스마가 교회의 인준을 받도록 서둘렀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몇 마디 말로 간단히 기록케 했고, 교황 성하께서 나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유언 14-15). 그에게는 교회에 순종하는 것만이 복음적 이상에 대한 충실성을 보장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형제들은 거룩한 교회의 발아래 항상 매여 순종함으로써 가톨릭 믿음의 기초 위에 굳건히 서서 우리가 서약한 가난과 겸손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할 것입니다.(RB12,4)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장상에게 순종하면서 - 비록 이 순종 때문에 어려운 순간이 더러 있었지만 - 자신이 받은 소명의 독특함을 밀고나갔다. 겸손과 순종의 자세로 “작은자”, “모든 사람의 종”이라 자칭한 그는 먼저 아씨시의 주교 앞에서 창설자로서의 자기의 이상을 확고하게 주장했고, 새 수도회의 창설의도를 버리라고 권고한 성 바울로 대성당 추기경과 절대적 가난의 생활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앞에서 복음적 생활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형제회의 제도화 문제나 회칙 작성 문제가 나왔을 때, 프란치스코는 학식이 있는 다른 형제들뿐만 아니라, 자기가 존경하는 우골리노 추기경의 의견에도 굽히지 않고 전통적인 대 수도원 제도와 회칙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복음의 단순한 생활을 내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자기 성격에 맞지 않는 이러한 투쟁과 신앙인에게 참기 어려운 시련 속에서 깊은 실망의 순간을 겪었다. 하느님이 계시해 주시고 자신에게는 그렇게도 밝게 보이는 “단순한 길”인데도 지혜롭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실망이었다. 이럴 때 그의 영혼의 안식처는 기도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첼라노의 증거에 의하면,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작은 사람아, 그대는 어찌 그다지도 마음 뒤숭숭해 하는가?... 그대는 내가 이 형제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용기를 가진 성녀 클라라도 교황청 앞에서 자기가 받은 고유한 소명, 특히 절대적 가난의 “특전”을 보존하려고 끈기 있게 고집하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프라하의 성녀 아네스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쓰기를 “만약에 그대의 완덕에 방해가 되거나 그대의 거룩한 성소에 반대되는 듯 한 말을 하거나 다른 제안을 암시하면, 그를 공경해야 하겠지만 그의 조언은 따르지 말고, 오히려 가난한 동정녀여,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포옹하십시오.”


프란치스코회는 하나의 “운동‘으로 발생하였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이 운동을 시작했고 꽃피게 하였다. 이 운동의 특징은 순수하게 크리스천 생활을 사는 것이다. 즉 사랑의 부르심에 빠르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응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안에서 만민과 더 나아가 모든 피조물과 형제적 관계를 맺는 신비로운 체험이다.


첼라노는 프란치스칸 운동을 새로운 봄이 다시 오는 것과 비교하며 말하기를 “프란치스코가 계심으로써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미처 몰랐던 행복과 거룩한 새로움이 온 세상에 일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옛 종교의 싹은 오랫동안 냉담했던 사람들에게 크나큰 쇄신을 갑작스레 가져다주었다. 선택된 자의 가슴에 새로운 정신이 태어났고 구원의 기름이 그들에게 부어졌다.”


초기부터 프란치스칸 운동이 불러일으킨 열광의 결과로 작은 형제들의 수가 급증했고 가난한 부인(클라라)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으며, 평신도들도 복음적인 생활을 열망하여 “회개의 형제회”(재속 프란치스코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외에도 프란치스칸 운동이 교회 역사 안에서 신심, 예술, 전례, 사도적 활동과 교회와 사회생활에 미쳤던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던가는 역사가 증명한다.


프란치스코회에서는 역사를 통하여 그 운동의 특성이 항상 살아 있었다. 현 상태에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긴장의 요소는 형제회가 고정적인 제도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마다 그 제도를 흔들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란치스코회 역사는 창설 당시의 이상으로 돌아가려는 투쟁의 역사요, 개혁과 파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현상을 표면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사랑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으며 형제회라고 자칭하는 프란치스코회가, 역사를 통해서 내부의 통일과 일치를 잃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같은 현상을 깊이 관찰해 보면 이것은 고정적인 상태를 변화시키는 내적인 힘이 살아있는 결과요, 창설자의 이상에 충실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쇄신과 개혁을 열망하는 추구가 있다는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개혁은 프란치스칸 운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란치스칸 역사를 살펴보면, 개혁을 이룩한 공동체들은 다음과 같은 과정일 밟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① 제도에 반항적인 자세로 본래의 단순성과 자발성을 주장함 ② 큰 수도원을 떠나 작은 공동체나 은둔소에서 이루어지는 친밀한 형제애 생활을 택함 ③ 직접적인 사도적 활동보다 증거와 모범으로서의 사도직을 수행함 ④ 차차 당신의 시대적 요구와 사회생활에 적은하면서 카리스마와 제도간의 조화 및 균형을 이룸이다. 이 조화는 대개 개혁의 둘째 단계에서 성취되고 이때야 말로 역사적으로 작은 형제회가 제 구실을 가장 잘 했고, 풍요한 결실을 거두었을 때이다.


오늘날도 프란치스칸 가족은 다시 개혁과 쇄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기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되살려 현대 세계에 생생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 개혁의 길은 파벌의 길이 아닐 것이다. 파벌을 조장하는 개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늘날 개혁과 쇄신의 길은 공의회가 제시한 길이다. 그 주요 요소는 ① 창설자의 이상과 각 수도회의 고유한 정신,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기 사명을 확실히 깨닫는 일 ② 자기 고유한 정신을 세계의 시대적 요청에 조화, 적응시키는 일 ③ 이에 따라 과감히 전통의 낡은 요소를 버리고, 현시대가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외적 표지와 증거를 실천에 옮기는 일 등이다. 한 마디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이상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현존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인이 먼저 걸은 길, 즉 “거룩한 단순성”에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의 형제들이 사부님과 같이 복음을 순수하게 실행할 때 그들의 생활 자체가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될 것이다. 만일 제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이 새 생활에 적합해야 하고 그 생활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도회와 회원들이 쇄신될 때 중단 없이 회개생활로 부르시는 성령의 작용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육신이 쇄약해진 “아씨시의 빈자”가 죽기 직전에 하신 말씀, 즉, “형제들이여, 지금까지 진전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주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합시다”라는 말씀이 각 형제의 마음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게 된다. 쇄신을 실천함에 있어서 사부님의 생활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지극히 높으신 분이 제시해 주실 생활 방향을 찾았고 항상 진보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다. 그는 간단한 말로 첫 회칙을 작성하신 1210년부터 유언을 남겨주신 1226년까지 끊임없는 진보의 길을 걸어오셨다. 그는 계시로 받은 최초의 생활양식과 형제회의 이상을 양보하지 않았으며, 특히 <유언>에서 그것을 명백히 주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이상을 새로운 상황과 요구에 적응시키는 것을 주저하지도 않았다.


프란치스칸 이상은 1회와 2회 및 재속 3회에 속하는 여러 가족들에게 국한되는 유산뿐만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를 사부로 모시는 수많은 프란치스칸 수도회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기 창설자들이 따로 있지만, 그 정신에 있어서 성 프란치스코의 이상과 카리스마를 따른다. 넓은 의미에서의 프란치스칸 가족의 숫자와 다양성만 하더라도, 이것은 프란치스칸 카리스마가 지니고 있는 끊임없는 풍요함과, 서로 다른 여러 상황과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기 위하여 가지고 있는 역동성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