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 2장 복음의 학교에서

Margaret K 2017. 12. 18. 21:40

프란치스칸 소명

-라자로 이리아르떼-


제 2장

복음의 학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활은 이것이다”


회개자가 추구하는 대답을 복음에서 찾아내고, 또한 하느님께서 “주의 부르심을 받아” 자기와 합하려는 사람들을 복음의 생활에 부르신다는 것을 확신한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개인 및 공동 생활의 중심과 동기로 삼았다.

“프란치스코의 높은 지향과 주된 바람과 최고의 결심은 복음을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실행하는 것이었고,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열의를 다하여 애타게 갈망하는 정신과 타오르는 온전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묵상하였고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을 복음에서 직접 끌어내는 자기의 습성을 최초의 동료들에게로 옮겨주었다. 이에 대해 성 보나벤투라는 성인의 동료로부터 전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겨준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모든 형제들이 복음을 묵상하기 위해 복음서 한 권씩 가지기를 원했지만, 복음서 한 권밖에 없음을 알고 책을 찢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을 각각 형제에게 나누게 함으로써 모든 이가 연구할 수 있고 서로 방해가 되지 않게 하셨다. 물론 이 해결책은 학문적인 연구와 어울리지는 않지만. 프란치스코는 마음에 심어진 하느님의 말씀이 순수한 마음과 정신으로 받아들여진 사람 안에 맺는 열매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 사건은 리보또르또에 살았을 때에 생긴 일인 것 같다. 첼라노의 토마스가 또 다른, 의미가 깊은 이야기를 전해 주는데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삶으로 변하지 않는 복음은 죽은 글자와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궁핍중에 있는 두 형제의 어머니가 뽀르찌운꿀라로 동냥을 구하러 왔다. 거룩하신 사부께서 총대리인 까따니아의 베드로에게 청하였다. “우리 어머니께 동냥 좀 드릴 수 있을까요?”(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베드로 형제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그녀에게 줄 만한 것이라고는 집안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성무일도서는 없지만 밤기도 때에 독서로 읽는 신약성서 한 권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그에게 명하였다: “그녀가 그것을 팔아서 요긴한 데에 쓰도록 그 신약성서를 우리의 어머니께 드리시오.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깨우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가 독서를 읽는 것보다 희사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첼라노는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는다: “형제회 최초의 신약성서가 이러한 자비심으로 해서 없어졌다.”

프란치스코는 삶을 비추기 위해 복음의 도움을 구하면서 삶의 초점을 복음에 맞추었고, 특히 어떠한 중요한 것을 결정하기 전에 복음에서 대답을 찾아내었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통하여 마음이 의로운 사람들에게 계속 말씀하심을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도와 베드로의 성소 식별을 위하여 사용한 이런 방법을 특별한 경우에 계속 반복하였고, 예를 들어 라베르나에서 오상을 받기 전에도 그러하였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를 따르는 첫 제자들을 위한 “생활양식”을 만들려고 할 때 복음 이외의 다른 원칙을 세우지 않았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몇 마디 말로 간단히 기록케 했고 그리고..... 교황 성하께서 나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원회칙”은 가난과 단순성과 사도적 열성의 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강조하는 복음의 구절을 가려뽑은 간단한 지침서였다. 그리고 다음에 “원회칙”을 핵심으로 해서 더 긴 회칙을 작성할 때 <회칙> 시작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형제가 교황 성하께 승인과 확인을 요청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활인바, 교황께서는 프란치스코형제와 현제 및 미래의 그의 모든 형제들에게 이것을 승인하시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제1회칙> 본문 전체는 성인이 좋아하신 복음 구절 인용으로 엮어졌다.

마침내 결정적으로 인준된 회칙의 시작과 맺는말에서 사부님은 복음적인 원칙을 분명히 밝혔다: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우리가 굳게 서약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할 것입니다.”

복음을 삶의 최고 규범으로 놓는다는 것은 복음을 단지 어떤 도덕적이고 수덕적인 기준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습이나.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의 법 위의 자리에 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요청들이 이차적인 것이 되고 형제들이 이것들을 단지 규율적인 규범의 글자에 국한시킬까 염려해서 형제회 생활을 너무 세밀한 규정으로 얽매려고 하지 않았다. 성인은 항상 형제들이 성령에 순응하면서 자유로 선택한 생활 안에서 하느님과 교회의 명에 온전히 복종하여, 상호간의 봉사와 순명의 정신으로 나아가리라고 가정하였다.



“영이요 생명이신 성령의 말씀”


최근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의를 끄는 것은 성서에 대한 성인의 감각이다. 그는 “우리에게 영과 생명을 넣어주는” 신학자들에 대해 매우 깊은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드러냈지만 자신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신학자들” 사이에 낄 수 있는 정식 전문가가 아니었다. 받은 교육으로 봐서 프란치스코는 성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들어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재차 반복하는 말을 글자 그대로 알아들어서도 안된다. 그는 기초적인 라틴어를 알고 있었고, 음유시 문화에 익숙해 있었으며, 그가 설교와 전례와 개인 독서를 통해 획득한 종교 지식은 결초 적지 않았다. 그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사람으로서, 한번 마음에 메아리친 것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첼라노가 <제2생애>에서 이것을 증언하고 있다.

“비록 이 복된 사람이 지식을 배우면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높은 데서 내려오는 하느님에 관한 지혜를 파악하였고 영원한 빛을 받아서 성서에 깊은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총명하였고 오염되어 있지 않아서 신비가 그에게 스며들었고,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그 사랑으로 학자들의학식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을 꿰뚤었다. 때때로 그는 성서를 읽었고 한번 기억한 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새겨 놓았다. 그는 무심히 한 귀로 흘려듣는 일이 없었고, 들은 것은 부단한 정열로 묵상하였기 때문에 그의 기억력은 책을 대신할 만했다. ····· 그는 자주 의문투성이의 문제들을 한마디 말로 설명하였고 많은 말을 할 필요없이 예리한 이해력과 깊은 꿰뚫음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이 전기 작가는 위 말에 근거가 되는 세 개의 증거를 댄다:

첫째는 도미니코회 형제의 증언이다. 이 신학자는 성인의 대답을 듣고 말했다: “나의 형제들이여, 순결한 생활과 관상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 사람의 신학은 고공을 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지식이라는 것은 땅에 엎드려 기어다니는 꼴입니다”(2Cel 103). 둘째 증거는 성인이 성서의 어떤 구절을 깊이 해석한다는 것을 본 추기경이 하느님의 영이 프란치스코 안에서 일하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셋째 증거는 프란치스코가 눈병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성인에게 성서를 읽는 데서 위로를 찾으라고 권하는 어떤 형제에게 주신 대답이다. 성인이 그에게 말했다.

“성서를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성서에서 우리 주 하느님을 찾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묵상을 하고 마음에 되새겨 보기에 충분할 만큼 이미 성서의 많은 부분을 나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들이여,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

당대 신학 해석을 가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의 많은 새로운 면들을 직감으로 깨닫게 된 것은 성인을 가까이 대한 당시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학자들도 놀랍게 만든다. 성서에 대한 이러한 감각은 실로 지식보다도 체험에서 오는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성 바울로가 말한 대로(에페 4,13) 아버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지식이었다.

성인은 성서를 이해할 수 있는 이러한 은혜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음을 알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답게 이 보화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간직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나누려고 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종이기에 모든 사람들을 섬겨야 하며, 내 주님의 향기로운 말씀들을 전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에 의하면 주님의 영을 식별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매우 해로운 “사유욕”(appropriatio) 중의 하나는 욕심과 야심의 동기로 성서를 접하려는 욕망이다. 실은 많은 보수가 할당된 신학교수 자리를 얻으려는 이유로 많은 재속 성직자들이 이러한 유혹에 빠진 일이 있었다. 또 하나의 “사유욕”은 가르치는 데에서 허영심과 만족함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성서를 연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형제회 내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성서에 담겨 있는 생명의 메시지에 맛들이고 그것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도록 모든 이에게 촉구하였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영과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형제회에 들어온 수에 혹은, <형제 안토니오에게 직접 쓰신 편지>를 통해 신학과의 설정을 허락한 후에 형제들에게 다음의 <권고> 말씀을 보내셨다.

“사도는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고린 3,6).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줄 많은 재물을 획득하려고 다만 말마디만을 배우기를 열망하는 이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문자(성서)의 정신을 따르기 원치 않고 말마디만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를 열망하는 수도자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문자나 알고 싶어하는 문자를 모두 자기 육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께 그것들을 말고 표양으로 돌려드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성인의 글을 살펴보면, 성인이 시편집을 제외하고는 구약성서를 직접 접한 적이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가 시편집과 잘 익숙해 있었다는 것은 수난의 성무일도와 다른 기도문의 연구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신약성서를 잘 알고 있었고, 대부분 책들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묵상하였음은 잘 증명된다. 성인이 신약성서를 인용한 부분은 수두룩하다.

마태오 복음 중에서 진복팔단 부분과 산상설교를 깊이 알고 있었고 자주 인용한다.

성인이 가장 많이 인용한 구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해주기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주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입니다.”(마태 7,12). 예루살렘 성서의 사본에 의하면, 이 구절은 크리스천적 차원에서 인간적 유대를 조절하는 “황금률”이다. 프란치스코도 그렇게 알아들어서 모든 차원에서 이것을 적용시킨다: 봉사자들과 수하 형제들간의 관계(RnB 4,4). 앓는 형제들을 위한 형제들의 처신(RnB 10,1; RB 6,9), 죄지은 형제에 대한 봉사자의 태도(EpMin 17), 형제가 약속한 생활을 지키기 어려울 때(RnB 6,2), 연약한 형제에게 주어야 할 도움(Adm 18,1), 세속 재판관들이 지켜야 할 의무(EpFid II, 28) 등이다. 성녀 클라라도 회칙에서 앓는 자매들을 위한 보살핌을 말할 때 같은 구절을 적용한다(RegCI 8,14).

이것으로 프란치스코가 따르던 복음적인 교육 방법의 핵심적 원칙을 알 수 있다: 즉 타인의 개인적 입장을 이해하면서 크리스천적인 정신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의 제20장은 성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이장에서, “봉사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러 오신” 그리스도에게서 작음이라는 덕성의 개념과 봉사의 정신을 배웠고, 이 개념은 작은 자로서의 권리 행사에 있어 근본이 되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과의 공관적인 유사성 때문에, 마르코 복음의 직접적인 인용이 몇 개나 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루가 복음 중에 프란치스코는 예수 유년기에 관한 복음 1,장을 차근차근 묵상하였고, 그 흔적을 여러 군데의 글에 남겨주었다. 그 중에도 특히 에수 탄생 예고에 대한 이야기는 성인에게 많은 빛과 신학적인 영감을 솟아내는 샘이 되었다. 이미 루가의 “파견의 복음”이 거론되었다. 마침내 성인의 마음에 드신 구절 중에 하나는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습니다”라는 루가 복음 18,19이다.

탁월하게 관상적인 성격을 지니는 요한 복음은 성인이 가장 자주 묵상한 말씀이다. 성인의 글에서 요한 복음은 70번이나 인용되고 있다. <인준받지 않은 회칙>2장과 “신자들에게 본신 편지”에서 최후만찬 설교 대부분이 인용되는 것 외에도, 성인의 영성을 특징짓는 두 개의 택스트를 꼽을 수 있다: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예배하는 이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여야 합니다”(요한 4,24).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말들은 영이며 생명입니다”(요한 6,63).“ 사도행전 인용은 두 개밖에 없다. 반면에  성 바울로 편지들은 72번 이상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용은 육과 영(로마 ,6-14; 5,16) 그리고 문자와 영(2고린 3,6)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에 관한 내용이다. 불가따(Vulgata)가 사용하는 ‘지극히 탁월한 가난”이라는 표현은 성 바울로가 고린토 후서 89에서 말하는 :“가난과 비하”에 관한 택스트에서 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권위와 순명의 관계에 있어 프란치스칸 사상에 근본이 되는 택스트는 성 바울로가 가르치는 상호간의 봉사로서의 크리스천 자유이다(갈라 5,13).

성인은 야고보 편지에서 8개, 베드로 1서에서 17개의 택스트를 인용한다. 베르도 1서는 아마 그 당시에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부활 후 주간 전례에 실려있었고, 프란치스코가 자기에게 영적인 풍요함의 시기가 되는 이때에 그것을 읽고 주의깊게 묵상하였던 것 같다. 어쨌든 성인은 자신의 마음에 깊이 새겨 있었던 다음의 세 개의 말씀을 남겨주었다: “타향살이하는 나그네 같은 여러분에게 나는 권고합니다”(1베드 2,11): “모든 인간적 권위에 순종하시오”(1베드 2,13):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1베드 2,21).

요한 1서가 10번 인용되는 가운데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가장 중요한 택스트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16)라는 것이다.

마침내 요한 묵시록은 16번 인용되어 있고, 특히 하느님의 어린양이 찬양되는 찬미와 영광과 영예와 축복의 외침에서 그렇다(사도 4,8-11;5,12).

프란치스코가 기록되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존경함은 미사 때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축성의 말씀을 존경한 것과 유사하다.

성녀 클라라는 자기가 쓴 글, 특히 <성녀 아네스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성서를 많이 인용하고 월등히 신약성서를 인용하고 있다. 성녀가 어디서 성서에 대한 지식을 얻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아마 그녀에게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매일 거행되는 전례, 특히 시기별로 독서가 배정되어 있는 <성무일도>가 지식을 제공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클라라는 또한 간절히 듣는 설교-특히 지식인 말씀의 봉사자가 들려준 설교-에서도 많이 배웠다. 오포르똘로(Oportolo)의 아네스 자매가 <성녀 클라라의 시성식 증언록>에서 이것을 증언한다:

“클라라 원장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매우 기뻐했습니다. 글 배운적이 없었지만 좋은 설교를 즐거이 듣곤 했습니다.”

이어서 이 증인도 필립보 롱고 형제가 부활 후 제2주일인 착한 목자의 주일에 좋은 설교를 하는 도중에 발생했던 기적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본인이 청중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유심히 듣는 가운데서 예수님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함께하심을 목격했고, 그 빛이 클라라의 둘레를 비추고 있음을 목격했다고 말한 후에 그 빛은 성령의 현존을 드러내는 외적인 표지였음을 증언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먼저 1978년 11월 5일 아시시에서 그리고 다시 1981년 10월 2일 프란치스칸 성년의 개막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난뱅이 프란치스코가 당대의 사람들의 마음에 예리한 자필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박아놓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다음에 성인에게 다음의 기도를 올렸다. “당신 시대에 살았던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그렇게도 가까이 느끼도록 하신 프란치스코여, 힘들고 위기적인 오늘의 시대에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정말 도와주십시오. 오늘의 시대가 간절한 소망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여, 그리스도를 오늘의 교회와 세계에로 가까이 모시도록 도와주십시오. 당대 사람들의 걱정들을 당신 마음에 담아 가시고 구세주와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을 가까워지게 하신 프란치스코여, 우리도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현대 사람들의 흥망을 포옹하여 ···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단순하고도 풍요한 복음의 양식으로 드러내게 도와주소서. 모든 것을 복음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도와주소서. ···”

프란치스코의 아들딸들이 이어받고 오늘날에 착수해야 하는 유산은 바로 이것이다: 먼저 우리 자신 안에서 복음의 요청과 도전을 받고 그것들을 오늘의 세계로 선포하는 것이다. 옛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누구나 성서를 가질 수 있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제는 순수한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선포한다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