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31 예수

Margaret K 2017. 12. 18. 21:33

31

 예수


프란치스코가 행동하거나 말하는 모든 것은 예수 안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는 먼저 주님을 포옹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의 사랑이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나아가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그 자신과 다른 이들을 포옹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서 협오감을 느낄 때에도 나가간다. 수치감을 극복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에게 보여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함을 전제가 되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다.”(필립 2,6~7) 예수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잡스셨고, 목수로 사시며, 그분의 제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남녀들이다. 예수님은 당신 머리를 누일 곳도 없으시며 옷이 다 벗겨져서 십자가에 죽으신다.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그 중심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이 점은 프란치스코의 죽음 2년 전에 일어나는 신비한 사건 속에서 말할 수 없이 명료해진다.


몇 명의 제자들을 뽑아서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북부에 있는 라베르나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산은 그가 오상을 받았던 곳이다. 그곳에서 프란치스코는 예수와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기도를 한다: “오 주님,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주십시오. -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충만하게 당신의 혹독한 수난의 고통을 경험하게 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하도록 움직였던 그런 똑같은 사랑을 당신을 위해 느끼게 해 주십시오.”


라베르나에서 하느님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추구는 마지막에 이르고 예수님과의 일치는 그의 손과 발, 옆구리의 상처에 의해 확인된다. 아제 남은 것은 오상 받음 후 2년이 지났을 때 정점으로 찾아온 죽음 자매를 포옹하는 것뿐이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주교관에서 병이 위중하여 누워 있다. 그의 청에 따라 형제들은 나병환자들이 살고 있고 천사들의 모수 마리아 작은 경당이 그의 죽어 가는 몸을 기다리고 있는 성벽 바깥 아래의 평원으로 그를 옮겨간다. 그는 경당의 바닥 흙 위에 눕혀지고 십자가 위의 예수처럼 벌거벗고 죽을 수 있도록 옷을 벗겨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나서 하느님께 대한 각자의 고유한 응답을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프란치스코는 그의 옆구리 상처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그의 노래는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옆구리에 놓인 손을 추우고 상처를 드려다 볼 때에,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비밀을 알게 된다. 우리는 프란치스코처럼, 개인으로서나 세계 공동체로서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스도가 가르치시도록 허용 할 때에 우리 자신의 삶이 노래하기 시작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프란치스코의 삶은 우리가 수치감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 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해질 때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일치와 평화를 가져다주실 것이라고 증명한다. 말씀들은 어디까지나 살을 입을 때까지는 다 환상에 불과하다. 노래하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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