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29 극기의 길

Margaret K 2017. 12. 18. 21:32

29

극기의 길


회개는 돌아서는 것이고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극기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에 이별과 참다운 평화와 기쁨을 방해하는 것에 이별을 말하는 과정이다. 이 말은 "죽음"을 의미하는 라틴어로부터 온 것이지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에 죽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죽음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참다운 생명이라고 깨닫게 된 것을 선택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극기는 스스로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충만함을 포옹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런 것처럼, 오늘날 극기는 우리를 파괴하는 가치관들과 행동양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기보다 더 어려운 우리들의 회개는 생명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소비제품이 그 대답이라고 하는 거대한 거짓말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하는 내면성을 의미한다.


현대의 극기는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우선 우리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다. 알코올, 약물, 화학물질은 우리 안에 있는 보존해야 할 어떤 것을 오히려 파괴시킨다. 그리고 새로운 속죄는 과대선전의 거짓을 거부하고 우리 자신의 상식을 따르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생명을 보살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듣고 보는 모든 것은 우리가 거부하고 있는 바로 그것들이 생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도시간 대신, 힘든 일이나 긴장에 대한 모든 휴식은 쾌락의 시간이 되어버리고 있다. 싫증날 때에 우리는 생명을 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도전이 아니라, 미리 포장된 상품 혹은 이미 병에 채워진 음료수들 그리고 그 결과가 즉시 일어나는 일로부터 오는 묘한 맛에 손을 내밀려고만 한다.


우리의 극기는 이미 우리에게 정해져 있다 그것은 육체를 벌주거나 식품과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극기는 건강을 지켜주고 생명을 주는 것을 먹고 마시는 지루한 관계를 수행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죽이는 것을 멈추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제함이 바로 열쇠이다. 알코올이나 약물, 성생활, 담배, 화장품, 비싼 여행 등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실제로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보다 과장되어 있고 과대가 순수한 진정함을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전체는 그것이 할 수 있는 것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포함하여 우리가 참을 수 있는 것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포함하여 우리가 참을 수 있는 것과 그 이상으로 과대 선전되고 있다. 모든 순간들이 가속화되었기에 우리들 대부분이 여유를 누릴 수 없을 정도로 길들여진 주변의 광적인 속도에 맞추려는 것보다도 우리는 속도를 늦추고 다시 자연의 리듬과 우리 자신의 내적인 움직임에 따라 살아야만 한다.


프란치스코의 길은 우리를 진정시키고 하느님이 부드럽게 우리 자신의 가치를 진실로 말씀하시는 우리 안의 그 고요한 중심으로 이끌어 준다. 그것은 프란치스코에 관한 많은 초기 이야기들이 그려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향한 애덕과 신중함의 길이다.


특히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시시 아래 평원에 있는 리보 토르토라고 하는 곳의 한 가축우리에 형제들이 살고 있던 초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 당시 주님께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형제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어떤 형제들은 과도한 극기를 하면서 비합리적인 단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형제가 소리쳤다. "나 죽어요, 나 죽어요."


프란치스코가 잠에서 깨어 그 형제에게 가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형제여? 어찌하여 죽어간단 말입니까?"


그러자 형제가 대답했다. "프란치스코 사부님, 난 배가 고파 죽어가요!"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다른 형제들을 깨워서 식탁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문제의 그 형제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프란치스코가 먼저 먹기 시작했고 굶주린 그 형제와 다른 모든 형제들을 함께 먹자고 초대했다.


먹고 난 후에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각자가 자신의 체질을 잘 고려하여 극기를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훈계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똑같이 몸이 필요한 음식과 음료를 빼앗는 것도 큰 죄가 된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초기 프란치스코 형제들의 이야기들 중에 수차례 등장하는데 항상 이야기 끝에 해설자의 소견이 이어진다. 즉 이야기는 단순히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애덕과 분별에 관한 것이라고, 그리고 나도 이 이야기가 극기에 관한 좋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프란치스코의 분별과 애덕이 적절한 것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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