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30 자유의 길

Margaret K 2017. 12. 18. 21:33

30

자유의 길


우리 미국인들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주 부자유스러움을 느끼고 너무나 걱정하며 삶을 두려워하는가? 자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왜 그런 엄청난 불안전을 가져다주는가? 나는 상대성이 자연법을 대체해버린 공간 속에 별처럼 떠다니고 있는 그런 자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중력 같은 어떤 근본적인 끈조차 없이, 전혀 매임이 없는 상태로, 더 이상 자유에 뿌리를 두지 못하고 있다. 마치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수도 셀 수 없는 실들이 끊어지고 그래서 자유롭게 되었지만 이제는 우주 속에 떠다니는 느낌만을 경험할 따름이다.


우리의 과제는 자유를 부정하는 억압적인 체제를 죽음 앞에서도 전복시키려는 선택을 하는 두려운 과제가 아니다. 우리의 참다운 과제는 그것보다 더 두려운 과제로서, 마비된 방종을 진정한 자유로 변화시키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할 자유를 가졌으나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잃어버렸다. 우리의 자아 결정이 진행되는 그 견고한 중심이 상실된 것이다. 중심은 아직 그곳에 있으나 우리가 진정한 자아가 되려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중심과의 접촉을 잃어버렸다.


중세 프란치스코 철학자인 존 둔스 스코투스는 선택의 자유를 통하여 표현되는 각 개인의 고유함을 강조한다. 나는 고유한 사람이기는 하나, 나는 또한 있는 그대로의 자아가 되려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나의 자유는 자아의 해방에 있으며, 시인인 제랄드 맨리 홉킨스가 말했듯이 “자아가 되어 가는”데에 있다.


“죽어야할 모든 것들은 한 가지를 하며, 그건 똑같은 것이다.”각자가 머무는 내면에서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아들- 그 자체로 되는 것; 나의 자아가 말하고 글을 쓴다; 자아는 내가 하는 것이 나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나는 온 것이다.“


우리 자신이 되어 가는 것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이 바로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지, 전체주의적인 어떤 체제가 우리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아가 되는 것을 무서워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상품처럼 불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에 정착하고 마는데, 그래서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며 다른 모든 사람처럼 되는 “자유”우리에게 주는 사람들에 의한 불완전한 모습이다.


프란치스코의 전통은 늘 개인에 대한 존중을 중요시해 왔으며, 존 둔스 스코투스의 작품들처럼 이러한 입장을 명료하게 표현한 작품들도 없다. 그는 종자가 아닌 개인이 참다운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인간 개성의 가치를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란 이것보다 저것을 고르는 능력이라기보다 자결을 의미한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말하는 것처럼, 나는 두 길을 동시에 갈 수 있는 여행자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길들을 다 여행하려고 하며 그러면서 왜 우리가 조각으로 갈라지는지 의아해 한다. 자결은 결단을 포함하며, 결단은 나의 자유를 보증해주는데, 왜냐하면 자유는 내가 자아가 되어 가는 것의 표현, 즉 있는 그대로의 나를 고유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자신도 개별성을 강조하게 표양으로 드러내고 죽음의 침상에서 마치 자신의 고유한 길을 보존하기 위해 옆구리 오상을 숨기면서 형제들의 개별성을 존중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바를 다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에게 여러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방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하여 우리 자신의 추종이 지니는 고유성을 확고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습 그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발자취 속에 우리의 발을 둔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우리의 결정은 그분 자신이 우리 각자의 얼굴에서 고유한 방식을 빛나기 위하여 내어 맡기는 자기 결정적인 행위이다. 제랄드 맨리 홉킨스가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노래한 것처럼.


“올바른 사람은 정의를 행한다:

그는 은총을 간직한다; 모든 그의 삶이 은총 속에 머물도록;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는 그는 하느님의 눈에 비치는 모습대로 하느님의 눈으로 행동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어느 곳에서나 움직이시므로,

사랑스러운 인간의 사지와 사랑스러운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얼굴 모습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향하신다.“


프란치스코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결정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실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될 때에 그는 자유롭게 된다. 모든 우리 존재의 기반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창조세계에 남겨놓은 발자취를 따르려고 선택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개별적인 자유가 흘러나오는 중심을 다시 발견한다. 오로지 참된 자아만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를 통하여 자아로 드러나시는 하느님 안에서만 그 참다운 자아를 알게 된다. 하느님을 선택하면서 우리는 참된 자아가 되기를 선택하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묶어주는 끈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들 뒤에 있는 얼굴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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