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26 오늘날의 프란치스코다운 삶

Margaret K 2017. 12. 18. 21:31

26

오늘날의 프란치스코다운 삶


오늘날 프란치스코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말은 '오늘날 복음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위한 답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나를 예수께로 이끌며 예수는 하느님께로, 우리 모두의 아버지요 어머니이신 하느님께로 이끌고 계신다. 


프란치스코가 항상 자신의 삶의 모델은 복음적 삶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내가 복음적 삶을 최소한이라도 살아보려고 노력 할 때 하느님은 부모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하느님이 단지 창조주가 아니라 부모님이 될 때에 전혀 새로운 모든 관계가 성립된다. 그때에 의존과 독립, 복종과 개인의 자율성 사이의 긴장은 나의 거룩함과 전체성, 기반이 된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역동적인 사랑과 존경과 더불어 나의 개인적인 자기 결단이 내가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는 장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나의 지상의 부모와의 관계가 변화되고 성장하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하여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내가 유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같아지는 것으로, 가면으로부터 내 자신이 벗어나는 성숙함을 의미하며 내 존재의 핵심에서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자녀는 나 자신의 우연성, 나의 실존을 위한 타인에 대한 의존성, 즉 나의 거룩한 아버지, 어머니이신 하느님을 타인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함이다.


나의 의존은 존재론적이고 근본적인 의존이며, 하느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결정을 해주기 바라는 그런 허약한 심리적인 의존이 아니다. 내 결정들은 내 것이지만, 하느님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이며 나를 성숙시킬 이런 결정들을 내리는 내 능력은 그분께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자기 결정은 하느님께 철저히 의탁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내가 그 의탁을 의식하고 있거나 없거나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그리고 부모님으로 하느님께 의존하기 때문에 나의 하느님과의 일치는 나를 인격체로 충만케하는 그런 생성의 원천이요 이유가 된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는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선한 의도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우리 자신을 탄생시키고 빛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우리 자신의 아버지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결과로써 일어나는 일인데, 그때 우리들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결과로써 일어나는 일인데, 그때 우리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고, 힘이신 분의 자녀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들이 된다. 반면에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모습’형성을 생성하지 못할 때는 우리들은 또한 우리 자신들을 키우지 못하고 불완전하게,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람들은 전체적이어야 하고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자신도 이런 생각들을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상호 의존한다는 상징으로써 하느님께의 의존을 순종과 연결시킨다: “우리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종들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 때문에 피조물인 모든 사람에게 복종해야 합니다(참조: 1베드 2,13). 그리고 이것들을 실행하며 끝 날까지 항구하는 모든 남녀들에게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임하실 것이고’(이사 11,2) 그들을 당신의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입니다(참조: 요한 14,3).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실천하기에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참조: 마태 5,45). 그리되면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마태 12,50)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에게 형제들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2신자 47~6=53).


나의 전체성, 나의 성숙함은 바로 나의 풍요로움에 있으며, 모든 피조물의 상호 의존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부성과 모성에 뿌리를 내린 나의 부성과 모성에 있다.


나는 거룩하신 하느님처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을 때에 온전히 성숙해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만 이렇게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자녀는 예수를 탄생시킨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삶의 신비이며 프란치스코다운 삶의 중심이다. 내 안에 있는 부성과 모성이 내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도록 허락함으로써 나는 진정한 자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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