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23 산의 다른 쪽

Margaret K 2017. 12. 18. 21:30

23

산의 다른 쪽


성 프란치스코의 길은 더 나아가는 여정, 우리의 청년기에 대한 탐험, 우리가 올랐던 산의 다른 쪽에 관한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책의 이쯤에서 다른 어떤 것이 더 일어나려면, 나는 영혼의 참다운 모습을 향해 내려가기 위하여 나의 청년기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것은 항상 프란치스코와 함께 하는 움직임으로, 기도의 산으로 오리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할 열려진 길이다. 



나는 나의 뿌리로, 나를 형성시킨 사막으로, 소년일 때 내 영혼을 먼지투성이로 만들고 땅을 불안정하고 변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었던 태초의 모래 위로 솟은 산들의 다른 쪽들로 돌아간다. 나는 위로 돌려놓고 다시 시간을 세는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사막으로 이끌린다. 시간이 내 마음에 걸리며, 부드럽게 체질을 하면서 한 번 더 그 유리병의 목을 통해서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나는 처음에 내가 떠났던 대로 땅에서 땅으로 돌아간다. 높이 있어서 너무 어지럽고, 떠남의 슬픔이 아직 맴돌기도 전에 너무나 빨리 도착하고 있다. 나의 감정보다 앞서가는 제트비행 때문에 나는 실제로 떠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출발에 긴장하고 있다. 



돌아가는 거리는 우리가 멀어져갔던 그 길임에 틀림없다. 같은 땅 위에서 매 마일마다 같은 고통을 겪으며 여정을 초월하는 높이에서 속도를 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나는 땅위로 돌아가며, 땅을 초월하여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중년기와 청년기 사이의 광활한 땅의 공간은 내가 얼마나 멀리 왔으며, 돌아가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여행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매 마일마다 나의 개인적인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체험은 마치 다성 음조의 멜로디처럼 프란치스코의 삶과 얽혀있다. 



내가 열네 살 때에 어쨌건 내 안에 있는 과거였던 미래를 향해 사막을 떠나도록 끌어당긴 것은 길 위에 있는 프란치스코였다. 내 안의 이 과거이며 미래는 확인되어야 하고 이해되어야 하며 마치 움 속처럼 내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이처럼 여정은 시작되었고 지금 나는 프란치스코와 함께 내 발자취를 다시 추적해 보면서 그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생각하고 또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존재인가를 성찰해 본다. 



나는 내젊은 시절을 지켜봐 주었던 그 산들의 서쪽 편에 이른다. 그것들은 내 상상 속에서 나바호의 거룩한 산과 같이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아시시의 위쪽에 위치해 있으며 내가 일곱 번의 여름 동안 올랐던 신비스러운 수바시오 산 맞은편에 있는 디오니시오 산과 같이도 보인다.

그리고 지금 내 근원들의 토양을 향해 다가가면서 나는 비록 목적지가 아직 구원되지 않은 토양 안에 있다고 해도 구원의 여정은 항상 그 쪽을 향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깨닫는다. 다른 쪽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그것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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