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22 성 프란치스코의 길

Margaret K 2017. 12. 18. 21:29

22

성 프란치스코의 길


내가 왜 프란치스코회 수도자가 됐는지 혹은 성 프란치스코의 길에 무엇이 유일하고 특별한 것인지 내 자신에게 물을 때마다, 나는 항상 프란치스코 자신을 떠올린다. 그는 특별한 무엇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더욱 진실하게 살려는 시도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데, 프란치스코의 영성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복음을 살아낸 길과 프란치스코 자신에 관한 무언가가 나에게 저항 할 수 없는 매력을 주고 있다. 그는 내가 복음을 살고 싶어 하는 방식대로 감히 살고, 모든 사람이 사랑 받고 싶은 방식대로 예수를 사랑한다. 그는 하느님께서 정말로 얼마나 사랑스러우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기쁨을 가져올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프란치스코는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데, 그는 내가 중요하며, 내가 활기 있고 흥미로우며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아시시의 한 작고 가난한 남자인 그가 우리에게 불어넣은 힘이며, 그러므로 많은 이가 그들도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는 모형으로써 그를 우러러보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를 발견하는 모든 사람은 어찌됐든 충만한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고, 인생이 무엇이며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한 친구와 형제를 발견하게 된다. 프란치스코는 내가 쓰고 있는 가면들에 의해서 속지 않는데, 그는 내가 진정 누구인가를 알고 사랑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약간 낭만적으로 들리는데, 사실 그가 우리에게 하는 요구들을 제외하면 바로 그렇게 들릴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거나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것 없이 성 프란치스코를 친밀하게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란치스코보다는 예수를 합리화 시키거나 무시하는 것이 더 쉬운데, 왜냐하면 결국 예수님은 신적인 분이시며 훨씬 더 우리 위에 멀리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단지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그가 이룬 것은 우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부추기는 것은 그의 삶이 주는 도전이다. 우리는 어쨌든 이 사람이 길을 찾았다는 것을 감지하며, 우리는 그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은 너무 높은 곳에서 그리고 너무나 멀리서 찾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하느님은 창조물 속에 계신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와 하느님사이에, 우리와 피조물 그리고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서 이룩하신 화해를 깨닫고 살아낸다. 전 생애 내내 그는 주위의 세상과 자신 안에 이미 있는 그 화해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프란치스코는 자신과 모든 피조물이 하나가되어 가는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가며,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가며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고 주님께서 이미 이루어주신 모든 것에 예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주도권을 취하지 않는데, 주도권은 하느님의 것이다. 나환자들 사이로 그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느님 자신이시며,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그에게 말하시는 분도 하느님 자신이시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가는데, 그곳은 우리가 과민해지고, 망설이고, 합리화시키고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곳이며 때이다. 



우리 속의 긴장은 주로 우리 마음의 움직임을 뒤로 빼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는 모든 길을 가고자하는 우리의 자발적인 경향을 억누르는 것에서 생긴다.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는 다른 이들과 머물고, 반면에 프란치스코와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원수들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만나는 그런 무서운 길 속으로 곧장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가 적들이라고 생각하는 피조물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화해 때문에 우리의 친구들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길은 우리가 적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 두려운 길인데,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과 주위의 어두운 숲 속에 누워 있는 사자와 뱀과 다시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친구들이지만 프란치스코처럼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걸음으로써 스스로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한다. 프란치스코의 너무나 독특한 점은 우리가 행하고 싶어하는 것을 그가 행한다는 것이며, 그것도 너무나 단순하고 소박하게 행하기 때문에 우리가원하기만 한다면 그와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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