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19 평화와 정의

Margaret K 2017. 12. 18. 21:28

19 


평화와 정의

 



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프란치스코에게 몰려 왔을까? 왜 그렇게 가난하고 엄격한 생활이 어떤 위대한 보물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겼을까? 왜 소유물을 나눠주는 것이 그것들을 획득하는 것보다 더욱 더 기쁨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은 가난과 엄격함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닐까?

 



중세기의 이태리 마을은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였다. 광장들 안에는 하느님이 거하시는 교회들이 있었고, 중앙 광장에는 세속의 권위가 주재하는 시청이 있었다. 교회의 파문이나 세속적인 사회의 추방에 의해서 도시의 성벽 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은 사회뿐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 - 마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카인처럼 - 로부터도 제외되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예언자적 행위는 성벽들 바깥쪽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하느님께서 그곳에도 거하시며, 진정한 하느님 나라는 요새화된 아시시의 도시 밑에 있는 평지에 살고 있는 나환자들과 추방된 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사회를 전도시키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성 다미아노와 같은 초라하고 길가에 버려진 경당들에 사시는데, 그곳은 또한 도시의성벽 너머에 있으며 프란치스코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던 곳이다. 



프란치스코는 마을 밖에서 살며 그곳으로 아시시의 사람들을 이끈다. 성벽들 너머엔 계급도 없으며, 그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부나 가난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투옥 당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지역 교회의 편협성은 모든 백성들이 같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는 보편적이고 공번된 교회 속으로 흡수되며, 오직 하늘에 있는 그들의 진정한 고향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것이다. 



자아의 마을의 벽들 밖에서 복음은 다시 한번 들릴 수 있으며 남자와 여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는 산 위에서 하신 설교의 정의에 다시  한번 순종한다: 




"마음이 가난한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을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마태 5, 3-12)


평화와 정의를 위한 청사진은 예루살렘 밖에서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설계되고, 프란치스코와 그의 추종자들은 아시시의 밖에서 그것을 새롭게 살기 시작한다. 안쪽의 교회가 새롭게 되려면 바깥 교회가 재건되어야 한다. 만일 교회가 성령의 살아있는 성전이 되려고 한다면 외적인 것이 살아 있는 돌들에 의해 차곡차곡 재건되어야 한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자연과 인간도시 사이에 있는 장벽들이 부서진다. 사람들이 더 이상 안과 밖도 없고 성벽이 없는 새로운 예루살렘을 향해서 밖으로 움직일 때 바깥에 있는 그 낙원은 안으로 움직이며 그리고 세상은 다시 낙원이 된다. 그것이 프란치스코의 사회적인 메시지인데, 자신의 성벽들 안에서 반복해서 후퇴하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2천 년 동안의 교회가 여전히 조금밖에 신경 쓰지 않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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