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16 사랑의 교환

Margaret K 2017. 12. 18. 21:27

16

사랑의 교환


비록 프란치스코가 한 형제로서 형제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들은 항상 그에게 형제 이상으로 보였다. 그는 그들의 "아버지"였으며 글들과 훈계로 항상 형제들을 하늘에 계신 그들의 진정한 아버지께로 부드럽게 인도하는 아버지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프란치스코가 추구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께서 그의 보살핌에 맡겼던 이들을 그와 함께 이끌었다. 그것은 주님께서 직접 그에게 보여주신 길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계획했던 길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몇몇 형제들을 나에게 주신 후,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 하셨습니다."(유언 14) 



그리고 그가 제시한 회칙은 형제들의 삶들에 있어 모든 작고 상세한 것을 규정짓는 식의 명령이나 금지의 형태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것은 단지 자유의 정신 안에서 형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따를 수 있게 하는 외적인 틀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추종자들은 "지상 사물들을 명시하고 천상 사물들을 찾으며, 살아 계시고 참되신 주 하느님을 깨끗한 마음과 영신으로 항상 흠숭하고 바라보는 일을 그치지 않는(권고 16)데 더 초점을 두었지, 어떤 일련의 회칙들에 "순응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1223년에 만든 회칙은 소박하고 단순하며 모든 복잡한 해석 작업을 배제한다: "회칙과 이 글에 '이렇게 알아들어야 한다'는 해석을 덧붙이지 마십시오. 이와 반대로 주님이 나에게 회칙과 이 글을 단순하고 순수하게 말하게 하고 또 기록하게 해 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해석하지 말고 단순하고 순수하게 이해하며 거룩한 행동으로 끝 날까지 실행하도록 하십시오."(유언 38-39) 



그러한 도전은 겸손을 전제하며 자신의 편견에 맞추기 위하여 프란치스코의 말들을 "조절하려는" 필요로부터의 이탈과 믿음 안에서의 성숙함을 전제로 한다. 성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것은 그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틀, 즉 그가 간단하고 단순하게 쓴 후 교황이 인준한 그 회칙을 따르려는 자발성을 내포한다. 



프란치스코의 회칙은 인습적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삶의 방식을 분명하게 깨뜨리는 것인데, 초창기 때의 형제들은 다음과 같이 그것을 경험하였다: "이 생활을 받아들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고 또한 안팎으로 기운 수도복 한 벌과 띠와 속옷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더 가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유언 16) 오늘날 우리는 형제들이 그때의 사회에 대해 행했던 "깨뜨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오늘날엔 수도회에 속하는 것이 대부분 존경스러운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은 오늘날 자신의 수도적 전통에 대하여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오히려 깨뜨림은 종종 우리에겐 또 다른 종류의 사회 즉 [우리가]  입회한 수도가족의 사회 속에 맞추기 위하여 "세상"의 사회를 떠나는 경우가 된다 [우리는] 한 사회의 가치들, 개념들과 예식을 또 다른 사회의 그것들과 교환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수세기 동안의 수도 생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환의 상황 전체를 다른 빛으로 보게 된다. 수도회 가족의 사회적 "규범들'은 또한 인습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리고 그 규범들에 따라 사는 것은 오직 관습과 기준들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때에야 가능한 비움으로의 도약과 별로 연관되지 않는 것이다." 



위와 똑같은 말이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전통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말들과 이야기들은 오늘날 중세기의 진부한 동화가 되어버렸으며, 본래의 충격과 도전을 잃어 버렸다. 복음 그 자체처럼, 성 프란치스코의 길은 그것을 살고, 십자가까지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따르는 선택을 함으로써만 깨닫게 되고 이해될 뿐이다. 그 길의 매 걸음은 단순한 이론과 배움을 초월하는 지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때에만 생겨나는 지혜를 향해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서기 위하여 인습적인 지혜에 죽고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이것을 어떻게 행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프란치스코의 삶이 나에게 해준 것을 나눔으로써만 가능하다. 나는 오래 전에 돈 없이 사는 것을 포기하였으며 그 대신에 다른 종류의 가난, 즉 사회에 의한 거부와 상처로 가난해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형편없는 평판과 결핍된 존경이라는 가난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반드시금전적인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인 가난보다도 더 분리되고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실패감이나 병 혹은 정서적. 정신적 혼란으로 표현되는 그런 가난을 지적하는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이러한 사람들과의 연대의길, 우리의 무력함과 하느님께 의존함안에서 우리를 전적으로 가난하게 내버려두는 사랑의 길을 주었다. 모든 다른 이들이 우리가 바보이거나 심지어 어리석게 시도한다고까지 말하며, 또한 그런 길이 우리 자신의 파멸로 이끌 뿐이라고 다른 이들이 말할 때 하느님만이 홀로 우리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나환자들" 사이의 삶은 고결한 인격이 거룩함이고 안전이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미친 짓이다. 마음의 진정한 가난은 결코 안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발견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자리, 즉 그분의 가장 미소한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찾는 위험과 모섬 속에 있다. 



이러한 선택에는 어떤 자랑거리(교만)도 없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면 항상 치유와 온전함의 도구로서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너무 멀리 계신 것 같고, 당신이 계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이신다. 그리고 우리가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것은 부서진 사람들을 사랑할 때에 발생되는 정서적 고갈 때문이다. 즉 우리는 다가섬과 거리 둠, 어떤 종류의친밀함이 적당하고 또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가의 딜레마에 묶이게 된다. 이런 딜레마는 우리가 사람들을 하나의 대중으로 사랑할 때 직면할 필요가 없지만 다른 각 개인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갈 때는 문제가 되는 딜레마이다. 



프란치스코 안에서 나는 별견하였고 그의 삶이 그가 믿었던 모든 것을 은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했던 선택들은, 내가 믿는 바로는 모든 사람이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선택들인데, 왜냐하면 그가 했던 모든 선택 안에서 첫 번째 고려는 항상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커다란 고통과 수난 중에서도 그의 유일한 관심은 하느님의 뜻이었다: 



"한편 프란치스코의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기력이 떨어지고 힘이 빠져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이 되었다. 그런데 한 형제가 질문하기를: 성인께서 당하고 계신 이 고질적인 오랜 병환과 박해자의 손으로 당하는 끔찍한 순교의 고통 중에 어느 쪽이 견디기가 더 쉽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성인이 대답하였다: '아들이여, 주님이신 나의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기꺼이 생기도록 하시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예전에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항상 나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더욱 감미롭고 더욱 반길만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고 순종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고통을 3일 동안 견디는 것이 나에게는 어느 순교보다도 힘이듭니다. 그렇다고 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병이 일으키는 고통의 강도를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1첼라노 107) 



다른 모든 것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첫 자리에 두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 세계에 프란치스코가 주는 또 다른 좋은 선물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좋은 평판과 기존의 방식들을 그대로 따르는 데에만 너무 매달리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은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 할 때 화석이 되고 일정하게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 받지 못한 이들을 여전히 사랑 받지 못한 이들인 채로 남겨두고, 하느님의 뜻은 사랑 받지 못한 이들을 여전히 그 상태로 남겨두게 하는 그릇된 생활방식이 되어버린다. 나는 프란치스코로부터 인간의 고통과 연관이 없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름도 없다는 것을 배웠다. 프란치스코 자신은 예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는데, 예수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뜻을 윗자리에 두었다: "나는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을 행하려왔다." 



물론 하느님의 뜻에 대한 이러한 행함은 그 자체로 강박적인 행동이 되거나,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도피, 외부로부터 강요된 어떤 회칙처럼 완고하고도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스스로 짊어진 규칙도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에겐 그런 길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그에겐, 중세기의 음유시인들이 말하는 "amour voulu"처럼, 강렬한 감정으로 시작되었던 사람에 대한 열정적인 투신이었다. 아무리 강력해도 단순히 덧없는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진정한 연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다. 유일한 대답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영원한 사랑의 교환이었다. 



이러한 사랑의 교환은 단테의 신곡에서 가장 심오하게 표현된 궁정 사랑의 윤곽을 따르고 있는 거룩한 교제의 중요한 주제이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인 것이 거룩한 교제에서 프란치스코에겐 가난 부인이다. 사랑의 이 심오한 교환이 없다면 하느님의 뜻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매달림에서 그의 영성을 특징짓게 하는 고유한 표징이 사라진다. 어린 소년일 때에 프란치스코를 그렇게나 매혹시켰던 궁정 사랑의 전통은 그가 그리스도교 영성에 가져온 독특한 관점과 취향을 풀어보는 열쇠가 된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순종해야 할 명령에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사랑의 교환, "amour voulu"이다. 



궁정 연인처럼, 사랑의 기사는 사랑하는 여인을 섬기기 위하여 고통스럽고 종종 대담한 위업을 치렀다. 마찬가지로 그의 삶 안으로 들어온 사랑의 강력한 침입에 대하여 프란치스코의 응답은 그가 압도적인 감정의 나약한 희생자가 아니라 성체 안에 있는 도달하기 어려운 부인이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배우자인 가난 부인에게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을 하면서 부사 수행자처럼 대담한 행위들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궁정 사랑에서 기사의 사랑은 이미 어떤 영주와 결혼한 부인이었음으로, 따라서 연인은부인의 영주를 능가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녀의 사랑을얻기 위하여 경쟁상태에 있다. 



그리고 이런 면이 프란치스코에게도 있다. 그는 그의 주님이 사랑하는 똑같은 부인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가난 부인의 배우자보다 무한히 열등하기 때문에, 그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너무도 위대한 사랑과의 교환 속에서 더 극적인 행위들까지도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프란치스코는 그가 구애하고 있는 부인의 배우자이며 완벽한 연인인주님이신 예수께 순종하길 갈망한다. 그것이 프란치스코가 순교 즉 사랑의 완전한 교환을 추구하는 이유이다. 그것이 그가 늘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이유인데 왜냐하면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그 자신의 영광을 비우시고 예수가 되셨으며 한 가난한 유태인 소녀의 자궁 안에 잉태한 시작부터 가난 부인을 맞아들이고 십자가상에서 벌거벗은 채 완전히 가난하게 매달리신 그 마지막까지 가난 부인에게 끝까지 충실하셨던 가난한 구세주가 되신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뜻에 응답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궁정 사랑의 이러한 차원이 없었다면 프란치스코는 단지 많은 성인들 중의 한 성인일 뿐이다. 하지만 전형적으로 낭만적인 연인으로서 프란치스코는 단테 시인의 부인인 베아트리체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거룩한 영광의 영역 안으로 단테를 인도하는, 신곡의 "천국" 편에서 가장 지고하게 문학적으로 표현된 그 전통의 인격적인 정점이 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눈을 바라볼 때, 그는 거기에 반영된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프란치스코의 비전이며 왜 그가 그런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프란치스코가 가난 부인의 눈을 보았을 때, 그는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반영된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프란치스코의 삶 속에서 매우 일찍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명백한 이미지가 되었던 대로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장본인이다. 단태가 플로렌스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베아트리체를 만났고 거기에서 모든 문학의 위대한 이야기들 중 하나가 시작되었듯이, 프란치스코도 아시시의 거리에서 그의 가난 부인을 만났고 거기에서 있었던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들 중의 하나가 시작된 것이다. 세 동료의 전기에서 기술되었듯이,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프란치스코가 아시시로 돌아와서 며칠도 안되어, 그의 동갑내기들이 그에게 돈을 마구 쓰게 하려고 그를 두목으로 앉혔다. 이리하여 그는 전에 많이 해본 솜씨로 호화로운 주연을 준비하였다. 



주연이 끝나고 모두들 집밖으로 나왔다. 동료들이 앞장서서 노래를 부르며 시내로 빠져들어 갈 때, 그는 두목처럼 손에 지팡이를 든 채, 그들 뒤에서 노래 대신에 깊은 명상에 잠겨 그들을 뒤따랐다. 바로 그 때 그는 홀연히 주님의 방문을 받았던 것이다. 커다란 감미로움이 그의 마음을 빼앗아 그는 말을 잃었고, 망부석이 되었으며, 모든 감각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은 그 감미로움 외에는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후에 몸소 말한 것처럼, 그 때에 그는 감각이 마비되어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한편 그의 동료들이 뒤를 돌아보다가 그렇게 그가 멀리 떨어져있는 것을 보고는 되돌아와서, 그가 이미 딴 사람으로 바뀌어 있음을 보고는 몹시 놀랬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무얼 생각하느라고 뒤따라올 줄도 모르냐? 장가들 꿈을 꾼 모양이지?' 이에 그는 뚜렷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래, 너희들 말대로 너희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렇게 고결하고 풍요롭고, 아리따운 정배를 맞을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동료들이 낄낄대고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로써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다."(세 동료 7) 



그리고 나서 전기 작가는 이러한 설명을 덧 붙인다: 



"그 정배는 바로 참된 수덕 생활을 뜻하였으며, 그것은 가난 안에서 다욱 고결하고, 더욱 풍요로워지며 더욱 아리따워지기 때문이다."(세 동료 7)

가난 부인 안에서 프란치스코는 진실한 종교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녀의 눈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그의 선물이다. 그는 어떻게 이 부인을 사랑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세계 안에서 그녀의 얼굴을 찾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며, 열정과 결단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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