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13 아버지와 아들

Margaret K 2017. 12. 18. 21:25

13 

아버지와 아들

 

I

 

가장 비천한 피조물에게 부드럽게 굽히고 축복하며 말을 하는 프란치스코는 근본에 있어서 다른 이들을 죽이는 전쟁에 나갔던 그 프란치스코와 같은 프란치스코이며아시시의 주교 앞에서 아버지를 폭력적으로 거부했던 프란치스코이다이러한 대담한 행동은 외부 구경꾼들에겐 충동적인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고그리고 실은 프란치스코가 의도하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간 완고한 움직임이었다하지만 그는 피에뜨로 베르나르도네의 진짜 아들이었으며 따라서 체면을 세우고 물러서지 말아야 했다그것이 일어난 일의 전모는 아니었지만나는 마을 사람들이 가졌던 이러한 인상 안에서 어느 정도 진실의 요소들이 있다고 믿는다.

 

프란치스코는 피어뜨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이며하느님을 자기 아들이라고 부르겠다는 결정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하느님의 평온한 아들은 또한 베르나르도네의 격렬한 아들이다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세 동료의 전기란 책 안에 한 짧은 구절이 있다그 구절의 상황은 은수자의 옷을 입고 성 다미아노에서 살며 허물어진 성당을 재건하기 위하여 돌들을 구걸하는 프란치스코에 대한 피에뜨로의 반응이다.

 

“그의 아버지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린 아들을 보고 한없이 괴로워하였다아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나머지 그는 고행과 추위에 초죽음이 되어 있는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부끄러웠다그래서 프란치스코를 만났을 때마다 그를 저주하였다. (세 동료 7,23)

 

이 짧은 구절은 나에게 아시시의 주교 앞에 성 프란치스코 자신을 상기시킨다나는 동자가 몇 마디 말을 바꾼다면 프란치스코에 대해 더 좋은 정확한 묘사를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프란치스코가 피에뜨로의 비참한 처지를 보았을 때그는 매우 슬펐다왜냐하면 그는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그는 돈과 권력에 사로잡혀 반쯤 죽어 있는 그의 아버지를 보는 것에 분노했고 부끄러웠다그리고 주교관저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그는 공적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었다.

 

그 두 사람 중 누구도 망설이거나 소심하지 않다누구도 감정을 억제하지 않는다두 사람 다 극적이고 격렬한 사람들이다.

 

프란치스코의 나머지 이야기 전체는 아버지와의 관계와 부자사이에서 무력한 어머니의 위치를 그리고 있다프란치스코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를 위해서 행했던 모든 것은 오직 그가 그들에 의해서 심정적으로 버려졌다는 것을 느끼게 했을 뿐이었다그의 어머니는 너무도 유약했기에 프란치스코와 아버지의 분노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제공할 수 없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들으려고도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조차 거절하였다피에뜨로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욕설이었으며프란치스코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거부로 하는 반격이었다:

 

“하느님의 종이 아버지의 저주를 듣게 되며그는 자기 아버지 대신에 가난하고 버림받은 어떤 사람을 불러 그 사람에게 말했다‘이리 오십시오제가 얻은 동냥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아버지께서 저에게 저주를 하실 때 제가 당신께 [아버지저에게 축복을 내리십시오]하고 말을 하면그 때 저에게 아버지를 대신해서 십자가로 강복을 해 주십시오.’ 이리하여 그 가난한 사람이 그에게 강복을 할 때에 프란치스코가 아버지에게 말했다‘하느님께서 아버지의 저주 대신에 축복을 내릴 다른 아버지를 저에게 주실 수 있음을 믿지 않으십니까?’”(세동료 5, 23)

 

아들을 저주하도록 피에뜨로를 움직이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다그는 그의 아들이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아들을 위한 자신의 계획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당연히 스스로 자기 길 가면서 성장하는 프란치스코가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수치감을 주고 있다는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피에뜨로는 그의 아들의 행동 때문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으며어떻게 프란치스코가 그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 프란치스코는 그의 아버지가 모든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체면을 지키려는 필요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고 있다그래서 프란치스코는 다시 반응한다:

 

“한편 그는 성 다미아노의 교회를 재건하는 일을 견실하게 계속하였다그는 감실 불이 계속 켜져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기름을 구걸하였다한번은 그가 어느 집에 왔을 때몇몇 사람들이 번잡하게 놀며 놀음하는 것을 보았다수줍음 때문에 그는 안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구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돌아 나왔다하지만 그 때 그는 마음을 바꾸었으며 자신의 죄를 나무라면서서둘러 그 집으로 돌아가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그들에게 자선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고백하였다.

 

부끄러움에 승복함으로써 부끄러움을 극복하려는 프란치스코의 욕구만큼따라서 가족을 망신스러운 그의 구걸행위에 굴복시키는 것보다 더 피에뜨로에게 상처 주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가 여기서 행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왜냐하면 피에뜨로처럼 우리들 대부분은 번민으로 움츠러들고 뒤로 물러나 피난처를 구하기 때문이다프란치스코는 그렇지 않다그는 언제나 그의 현재의 진실과 대면하는데그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상관없이 대면한다.

 

위의 사건 안에는 프란치스코와 어버지 사이의 긴장 관계 외에도 다른 차원이 있다프란치스코는 당시 세계의 위선의 마음에 일격을 가하는데그 세상은 평판이나 명성이 선이나 진리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며사람들리 그들에 대한 평판이 재가 될 때 자살하게 되는 세상이다세상에서 그들의 명성은 그들의 전체성과 같은 것이 되며 그들의 정체성은 재정적사회적인 성공과 같은 것이 된다.

 

애초부터 “실패”를 선택함으로써프란치스코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라는 거대한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아버지를 필두로 그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을 거부한다그는 자유로운 사람자신의 정체성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사람이 된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삶을 보내면서 이런 종류의 동파구를 시도하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근심과 공포 가운데에서 결국은 일반적인 평범함에 항복하고 만다그리고 슬프고도 약간은 쓰라리게 우리의 중대한 실패를 잊게 하지도 못하는 작은 성공들로 우리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우리는 대부분이 주저하는 행동을 하는 프란치스코의 능력이 그의 위대함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그의 능력은 불합리함을 통하여 신앙적인 위대한 도약을 하는 것이다그는 현명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세상에서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선택하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세상에서 약함을... 세상에서 낮고 멸시받는 것을 그리고 심지어는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선택한다그리하여 어떤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게 된다(참조 1고린 1,27-28).

 

지상의 아버지를 거절함으로써프란치스코는 동시에 천상의 아버지를 포옹하며이렇게 하여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있게 되는 완전한 소외의 끔직한 충격으로부터 탈출한다프란치스코의 새로운 전체성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그리고 그는 거의 즉각적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을 그의 아버지요 어머니요 형제자매들로 인정하기 시작한다그는 온전히 새로운 의미의 가족을 형성한다.

 

II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한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의 얼굴이 되시고삶의 가장 의미 깊은 순간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다양하게 변화시킨다나는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의 얼굴이 처음에는 피카 부인즉 어머니의 얼굴이었고마지막에는 아버지인 피에뜨로의 얼굴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의 채워지니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프란치스코가 주교 앞에서 아버지와 끔찍하게 절교한 후 다시 화해했다는 어떤 역사적인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처음 읽었던 13세 때부터 나는 피에뜨로에게 동정을 느꼈고 성인인 그가 아버지와 평화를 이룩하지 않고 무덤에 분명히 묻혔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당황함을 느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제시하듯이프란치스코가 복음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하여 되돌릴 수없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인가아니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대담하게 따른 한 사람의 생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 초창기 성인 작가들에 의해서 빠트려진 것일까그런데 두 번째 가정은 좀처럼 그럴듯하지가 않다그렇듯 심오하게 그리스도를 닮은 행위가 중세시대에 위대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의 삶에서 어떻게 빠졌겠는가그리고 첫 번째 가정은 프란치스코와 같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의 답변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나는 그 답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만큼 복잡하고 복음서만큼 역설로 가득 찬 것이라고 믿는다그리고 이미 프란치스코와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언급했지만나는 그들의 관계를 더욱더 깊게 생각하고 싶은데그 이유는 프란치스코와 그의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에 그들의 관계가 중심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유명해졌든또는 얼마나 존경받든지 간에 그는 여전히 언제나 그의 말과는 비록 반대가 되지만 피에뜨로에게는 아들로 남아 있다그리고 비록 그가 다른 이들과 심지어는 새들에게도 놀라운 영향을 발휘하며 설교할 수 있었지만매우 젊었고 무모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하여 자만심으로 가득 찼던 그날 아버지를 너무나 치욕스럽게 만든 후 아버지에게 사랑의 복음을 갖다 댄 것은 무례가 되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처음 회심 때처럼 여전히 거부당하고 멸시받았을 지라도아버지에게 가서 공적으로 그를 부끄럽게 한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하느님만 홀로 섬기려 하는 그의 결심의 신실함을 이해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하지만 일단 아시시의 성인이 된 후에는 아버지를 더욱더 치욕스럽게 하며 그의 아들이 진정 얼마나 위대한 예언자였는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버지를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면서까지 프란치스코가 피에뜨로의 용서를 절대로 구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비밀스러운 화해가 일어났으며 프란치스코가 그의 죽어 가는 아버지를 편안헤게 했고 그의 축복을 받았다고 믿고 싶다하지만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내 안의 그 어떤 것일 뿐이다그의 연대기 기록자들의 경험과 증언은 그렇지 않았다고 나에게 말한다이들은 복음이 가족들을 분열시키고어머니들이 남편들로 인하여 아들들을 잃게 되고아들들이 자신들이 받은 부르심 때문에즉 자신들을 생기게 한 사람과 달라져야 한다는 부르심 때문에 아버지들을 거부한다그리고 하느님의 얼굴은 각자가 일어났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는 얼굴이 된다자부심이나 상황 혹은 삶 자체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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