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14 수여식

Margaret K 2017. 12. 18. 21:26

14

수여식

 

프란치스코의 많은 공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그가 공적인 인물이며그가 아시시의 도시 전역에서 행동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있다그는 운집한 시민들 앞에서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그가 길거리에서 구걸하였고그와 합류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도시 광장에서 그들의 돈과 소유물을 다  포기했다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공적인 증인이었으며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부르심의 공적인 성격에 대하여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칸 소명에 관해서는 외부에 잘 알려지는 것과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고대 신화나 기사도의 거대한 수여식들처럼가난 부인을 포옹하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결정은 형제들과 자매들의 사적인 성격을 벗기고 소명의 예복을 입는 진정으로 참다운 수여식이었다그들은 더 이상 그들 자신만을 위하여 책임을 지지 않게 되었고이제는 그들이 엄숙하게 서약한 사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니게 되었다프란치스코가 말하곤 했듯이 ‘세계와 형제들 사이엔 계약이 있습니다형제들은 좋은 표양을 세상에 주어야 하고세상은 형제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그들의 신의를 깨고 좋은 표양을 철회하는 경우세상도 그에 합당한 질책으로 그들에게서 손을 뗄 것이다.

 

형제들과 성 다미아노의 가난한 부인들은 단지 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그만 두었다신화 속의 주인공들처럼그들의 수여식은 사회 속에서 그들의 위치와 사회와 맺는 그들의 개인적인 관계를 규정지었다이것은 프란치스코가 형제 공동체를 떠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던 이유들 중에 하나이다“그리고 교황 성하의 명령에 따라 이 수도회에서 절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이는 거룩한 복음을 따라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자격이 없기’(루가9,62) 때문입니다”

 

형제들과 가난한 부인들이 외적으로 행한 것들은 또한 심오한 내적인 행동이 되었다그들은 어머니의 탯줄을 자르고 보다 더 큰 가족즉 사회 속으로 다시 태어났다이전의 형태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궁 속으로소명의 거부로자아를 키우기 위하여 탐구를 부정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그리고 한 사람과 많은 사람들의 조화가 깨지게 된다.

 

오늘날전통적인 신화들의 타당성이 의문시되고 개인의 무의식적인 생활이 면밀히 조사되고 대단한 중요성이 부여될 때이상적인 것은 자아와 신화 사이의 조화가 아니라 오히려 의식적인 삶과 무의식적인 삶 사이의 조화인 것이다하지만 동시에현대 심리학의 중대한 통찰들 중 하나는신화와 종교의 원형들과 상징들이 또한 무의식으로부터 저절로 떠오른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종교와 신화가 진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발견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신들은 항상 무의식을 통해서 말해 왔으며신화들은 무의식 안에서 그리고 무의식에 일어나는 신들의 위대한 상징과 움직임들을 실제로 투영하나다.

 

프란치스코 같은 중세의 시인이며 신화 창조자에게 있어서 소명의 거절은 한 사람의 삶 속에 일어나는 하느님의 움직임에 대한 부정이 되며내 안에서 계시면서 또한 나와는 분리되어 계시고나를 부르셨으며 내가 응답했던 그분과의 유대를 거절하는 것이다그 존재의 현존 속에서 나는 내가 행한 것을 증거하고 확증하기 위하여 사회인들을 부르는데왜냐하면 나의 소명은 내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그들에게 규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도생활을 떠나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어떤가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유아적인 상태로 퇴보하고 있는지그렇다면 누가 그들에게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되어 주는가그러한 좁은 시각은 개인적인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 우리 신화들의 신비를 간과하는 것이다아니면 꼬리표를 붙이고 묵살하고 변명함으로써 이러한 신비를 지배하려 하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한다내 자신의 추정은 개인의 입장을 선호하는데사람이 소명과 마주 대하는 것은 가볍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보통 의식과 무의식 차원 모두에게 자신의 내적인 움직임에 대한 더 깊고밀접한 가각에서 생기는 것이다.

 

왜나하면 당신이 아무리 의식적인 차원에서 포옹하는 것이라 해도 무의식적인 차원의 당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그것은 실제로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기대한다고 생각되거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나온 행동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나온 진실한 움직임에 접하게 될 때처음에 자신을 투신했던 것은 피상적인 자신의 행동이며 실제의 자신과 만난 전적인 자아로부터 나온 행동이 아님을 알게 된다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부정했던 자아가 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그리고 이것은 자신의 이전의 응답에 대하여 새롭고도 더 실제적인 결단이나실제의 자신을 알지 못하고 했던 첫 번째 응답에 대한 거절로 이어진다사람은 하느님께서 바깥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말씀하신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우리 모두는 자기기만의 대상이 된다하지만 자신 말고 그 누가 대신 판단할 수 있겠는가나는 다른 소명을 위해 현재의 소명을 떠나는 사람이 마침내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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