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12. 순종

Margaret K 2017. 12. 18. 21:24

12. 

순종

 

자기 정체성을 잃게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강박증적인 사랑과 달리하느님의 전적인 사랑은 자아의식을 강화하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평온한 명료함을 가져다준다프란치스코는 근본적인 강렬함으로 여전히 그 자신을 상실하지 않은 채 하느님을 사랑했으며 역사상 가장 분명하게 정의된 개인들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너무도 독특했기에 그의 삶은 전설과 신화의 재료가 된다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잃음으로써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를 발견한다그는 하느님의 어린아이이며 모든 피조물의 형제이며특히 예수께서 함께 하셨고 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신 가난한 모든 남자 여자들의 형제이다.

 

프란치스코에 관한 가장 이상한 이야기들 중 하나는 그가 순종적인 인간을 시신에 비유한 것이다.

 

“어느 때 그가 동료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복되신 프란치스코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하였다‘자기 장상에게 완벽하게 순명하는 수도자는 온 세상을 통틀어 거의 없습니다.’ 그의 동료들이 술렁이며 그에게 말했다‘사부님그러면 어떤 순명이 완벽한 것이고 가장 높은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그가 참되게 순명하는 자를 시신에다 비유해서 묘사하며 답하였다‘당신이 원하는 곳에 시신을 놓아 보시오움직이게 해도 저항하지 않고그 위치에 대해 투덜거리지도 않으며다시 자리를 옮겨도 울부짖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상좌에 앉히면 올려다보지를 않고 내려다봅니다자주 빛 옷을 입히면 두 배 정도는 더 창백해 보입니다바로 이 사람이 참되게 순명하는 사람입니다그는 이동되는 이유를 묻지 않고어디에 놓여지든 관심이 없으며다른 곳에서 바꿔 달라고 고집스럽게 말하지 않습니다직책이 올라가도 자기의 습관된 겸손을 유지합니다공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을 더욱 하찮케 여깁니다.’”(2 152))

 

프란치스코에 관한 다른 많은 이야기들처럼이 이야기는 프란치스코 자신의 관점으로부터 또한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비추어 읽혀져야 한다이 이야기 뒤에는 낙원의 이야기가 있는데그곳에서 순종은 생명과 연결되며 불순종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아담과 하와는 생명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결국은 죽음을 택한 것이 되었고이와 마찬가지로 육체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사람들이 모든 세대를 통해 반복해서 같은 실수를 저질러온 것입니다.

 

반면에 순종하는 인간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고심지어 그 응답은 시체처럼 보이나역설적이게도 죽음인 것처럼 보이는 선택 안에서 그는 진정으로 삶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생명을 추구하는 불순종은 세상 속으로 죽음을 가져 왔으나 죽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종은 생명을 가져온다그것은 생명을 통하여 실수로 죽음을 택하는 아담의 이야기이며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택하고 생명이 되어가고 그럼으로써 다시 우리에게 낙원을 되살리고 열어주는 예수의 이야기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프란치스코의 이야기 속엔 이것보다 더한 함축된 의미가 있다오직 성령만이 육체와 영혼에 진실한 생명을 줄 수 있고 성령이 없다면 단지 겉으로만 살아 있을 뿐이다그러므로 오직 하느님께의 순종만이 성령 안에 진실한 생명으로 인간을 일으킬 수 있다순종은 순교의 한 모형인데왜냐하면 순교처럼 순종은 실재로는 생명의 충만함이지만 겉으로는 죽음에 대한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이 어리석은 선택은 하느님의 순종하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가장 지고한 합일이며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순교는 세상에 생명을 가져온 성부께 대한 순종의 행동이었다순종이라는 시체 같은 이미지 그 뒤에는 살해당하신 어린양의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순교가 하느님의 도구인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사랑에 승복하는 행위이듯이순종도 장상들을 통하여 하느님께 진정으로 승복하는 것이다순교와 순종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활동하시며그리고 이러한 인간적 도구들은 집행자 그 이상이 아니다그들은 아들 이사악 위에손에 칼을 들고 서 있는 아브라함처럼 생명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생각에 의하면순종은 항상 순교와 연결되어 있다. 순교와 순종은 순전히 인간 의지의 힘을 통하여 선택될 수 없다그것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하심이다예를 들면 위의 이야기 뒤에는 다름의 말들이 따라온다“그러나 살과 피가 섞이지 않은 가장 높은 순명은 그들의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혹은 순교의 열망으로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비신자들에게 가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바로 이러한 허락을 요청하면 하느님께서 이를 가장 기쁘게 받아 주실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2 152)

 

 

이러한 진술은 프란치스코가 사용하는 시체 이미지 속에 있는 위험성을 없앤다하느님께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두 손을 접고 우리 삶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며 다른 이들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해석을 없애는 것이다그러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자세는 프란치스코가 순종적인 인간을 시체에 비유하여 의미한 내용이 전혀 아니다왜냐하면 미숙한 인간은 순교자가 되기 위하여 위험 속에 보내 달라고 결코 청하지 않는다오히려 그는 다른 이에게 온통 복종함으로써 모든 위험을 피하고 안전함을 보증 받으려고 할 것이다누가 보내 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사람을 순교나 위험 속으로 보내겠는가?

 

프란치스코는 시체처럼 순종적이 되는 것을 청하고 선택하는 것을 강조하는데선택하길 두려워하고 자신을 주장하길 두려워하기 때문에 순종적인 인간이 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진실로 거룩한 사람은 과감히 전투에 참가하는 기사나 그리스도처럼 순종의 길을 선택하는데그리스도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며 자신을 비우셨다그것은 그분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이었다올바른 이유로 포옹하는 순종은 우리를 모든 피조물과 하나로 만드는데모든 피조물의 첫 맏배이신 그리스도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기 때문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수여식  (0) 2017.12.18
13 아버지와 아들  (0) 2017.12.18
11 프란치스코와 동굴의 거주자들  (0) 2017.12.18
10. 동굴  (0) 2017.12.18
9. 성녀 글라라의 거울   (0) 2017.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