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9. 성녀 글라라의 거울

Margaret K 2017. 12. 18. 21:23

9. 성녀 글라라의 거울 


프란치스코는 나환자를 포옹하고 돌과 음식을 구걸할 때 주님을 만났다그리고 그는 결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 곳에서 주님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성 글라라는 관상의 가난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했다그리고 그녀도 삶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글라라에게 있어 가난과 관상은 너무도 심오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관상은 가난을 전제로 한다왜냐하면 “오직 가난한 이들에게만 주님이 하늘나라를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그녀가 편지들 중의 하나에서 쓰듯이“영원한 것들을 얻기 위해 현세의 것들을 포기하고 지상의 재물 대신에 천상 사물들을 댓가로 받으며하나를 버리고 백 배를 받고 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칭송받을 만한 교환인가.

 

프란치스코에게서처럼 글라라의 가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데왜냐하면 하느님 왕국을 현재화시키고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 분을 열렬히 갈망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토록 위대하시고 높으신 주님께서 동정녀의 태중에 임하실 때세상에서는 하찮게 보이려 하셨고 궁핍하고 가난해지려 하신 것은극도로 가난하고 곤궁하며 천상양식에 한없이 굶주림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소유함으로써 그분 안에서 풍요롭게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그대는 기뻐 즐거워하고 넘치는 기쁨과 영적인 즐거움으로 충만하십시오.

 

글라라가 바라보고 생각하고 관상하려고 결정한 분은 항상 가난하신 그리스도인데왜냐하면 그 분은 하느님의 형상이시며우리가 관상해야 할 거울이시기 때문이다.

 

이 거울이라는 이미지는 성 글라라의 영성에 중심적이다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의 거울이었고 그리스도가 성부의 거울이었기에 관상가의 삶은 그리스도이신 거울 속을 들여다보아야 하며 거기에서 그 자신을 보는데그럼으로써 자신이 누구인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그리스도이신 거울 속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깨달음으로써우리는 우리가 이 관상하는 그 분의 거울이 되고이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로 모든 피조물을 반영한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울 속에서 그리고 거울로써 보게 된다.

 

성녀 글라라는 그녀의 자매들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사실 주님께서 친히 다른 이들이게 모형과 본보기와 거울로 삶으셨습니다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세속에 사는 이들에게 거울과 본보기가 되도록 우리의 생활양식에로 불러 주신 우리 자매들에게도 우리를 모형과 본보기와 거울로 삼으셨습니다.

 

이 풍부한 이미지들은 성서와 교부들의 문헌그리고 음유시인들의 서정시들에 대한 성 글라라의 깊은 지식을 보여 주는데이 모든 것들은 거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12세기의 새로운 번역물에 의한 유명한 오비디우스의 나르시스 이야기에서 한 음유시인은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가 자신이 아닌 것을 인식하고서 자신의 분리된 정체성을 발견한다고 전한다그러나 성 글라라와 같은 관상가에게 자각을 통한 자의식의 탄생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그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곳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자신을 봄으로써 진실한 정체성을 발견한다그리고 그녀가 더욱 완벽하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비추게 될수록그녀는 실제가 되어간다그녀는 프라하의 아네스 성녀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영광의 광채요 영원한 빛의 반사이며 티 없는 거울이니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요왕후이신 자매여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시고지존하신 임금님의 딸과 지극히 정결한 정배가 단장해야 하는 모든 덕행의 꽃과 의복으로 속속들이 단장하고 여러 가지 보석으로 둘러싸여 그대 안팎으로 꾸미도록 그대 얼굴을 그 거울에 자주 비춰 보십시오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그 거울 전체에서는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거울 전체를 포함하기 위하여 그녀의 이미지들을 확장시킨다“먼저거울의 맨 밑에서부터 보시고말구유위에 강보에 싸여 누워 계시는 그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 다음으로 거울의 중간을 보시고 그분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무수한 수고와 고통 그리고 그분께서 지니신 겸손과 함께 복된 가난을 깊이 바라보십시오이제 끝으로거울의 맨 위를 보시고 십자가 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에서 가장 수치스런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신 그 분의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바라보십시오그리스도 자신이신 이 거울께서 십자가 나무 위에 매달려 계실 때 지나가는 행인들은 보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하셨습니다‘길 가는 나그네들이여나를 보십시오내가 겪는 고생같은 고생이 어디 또 있겠소.(참고 애가 1,12)

 

이러한 이미지가 우리에게 대면시키는 가장 충격적인 실제는 하느님의 가난이다가난하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으뜸가는 이미지이시다하느님은 가난하시며하느님은 자신을 비우시는 분이시다그리고 우리의 가난 속에서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닮아가고 그리스도를 닮는 것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거울들이 된다하지만 가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삼위일체의 거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관상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이미지로 변형되어 가는 길일 따름이다거울은 물질이지만 비물질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으며그처럼 가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적이고 볼 수 있는 분이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느님의 이미지가 되는데하느님은 삼위로 비우시는 속에서 가난하시지만 동시에 충만히 채우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성 글라라가 삶의 방식으로써 관상과 가난을 그토록 집요하게 붙잡은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 두 가지는 하나이며, 가난에 대한 관상은 관상이라는 가난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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