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화를 살기

제7장 형제 프란치스코와 자매 글라라

Margaret K 2017. 12. 18. 21:10

육화를 살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와 함께 기도하기

Frances Teresa OSC

김찬선 레오나르도 역


 

 

7장 형제 프란치스코와 자매 글라라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 받은 초기에 주님께서 그에게 형제들을 주셨다고 프란치스코는 이야기하고 있고형제가 되는 이 부르심을 그의 으뜸가는 부르심으로 항상 보고 있었다이 생각을 전개하고 발전시켜서 끝에 가서는 모든 존재와 모든 것에까지도 사랑의 관계를 느꼈다피조된 모든 것은 그의 사랑스런 가족이었고모든 피조물 하나하나는 그의 형제와 자매였으며모든 돌들과 시내와 나무는 그의 집이었다그는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을 노래했고형님인 바람과 누님인 물을 노래했으며형님인 불과 어머니 땅에 대해 노래했고자매 죽음에 대해서도 노래했다생애의 끝을 향하여 달려가면서 그는 각각의 피조물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지었다.

 

내 주여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언니 햇님에게서 찬미를 받으사이다.

그로 해 낮이 되고 그로써 당신이 우리를 비추시는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

당신을 상기시키나이다지존이시여!

누나 달이며 별들을 통하여 내 주여 찬미를 받으소서

빛 맑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이다.

 

언니 바람과 누나 물을 통하여

언니 불과 어미인 땅을 통하여

누나 죽음을 통하여 내 주여 찬미를 받으시이다.

 

모든 피조물과 우리의 형제 관계는 프란치스코에게는 대단한 확신에 근거한다이 형제 관계는 단지 시적인 표현방식이 아니었다다른 피조물들이 아무런 존경심 없이 취급되고 이야기될 때 그는 언제고 정말로 괴로워했다모든 피조물이 마치 이탈리아 말을 아는 듯이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프란치스코의 습관이었다. “자매 매미야 노래를 하렴형제 토끼아 나에게 오렴자매 종달새야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그가 말하면 본능적인 피조물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고 응답하였다짐승들과 초목들이 그에게 사랑스럽게 인사를 하였고그의 애무를 반겼으며그의 명령에 순종하였다프란치스코는 태초의 순수성을 되찾았다고 첼라노가 말하면서 염두에 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은총 덕분에 그는 자기 안에 아무런 폭력도 갈림도 없는 상태로 돌아갔으며 그 결과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서도 아무런 폭력도 갈림도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짐승들과 새들은 재빨리 이것을 알아채고 응답하였다아니 그 이상으로 그들은 그의 지시에 승복하고 그의 충고를 듣고 그에게 순종적이었다프란치스코는 순종에 높은 가치를 두었고 비록 그의 장상들은 간혹 순종에 대한 그의 해석을 그만의 독특한 것으로 여겼지만 그 자신은 매우 순종적인 사람이었다예를 들면 한 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옷을 주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어떤 거지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의 수도복을 요구하자프란치스코는 이에 대해 순종적으로 말하였지만 아무도 거지가 자기 옷을 빼앗아가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이와 같은 해법은 둘 다 만족케 했다.

 

점점 더 그가 하느님께 빠져들수록 다른 모든 것들도 점점 더 그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이것은 그가 일들의 바른 형태를 서서히 배워 알게 된 오랜 기간의 힘든 작업의 결과였다그는 실수나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나 상식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배웠고 그래서 어느 때는 자기 옷을 태우는 불을 형제들이 끄지 못하게 한 적도 있다그는 우리 불 형제를 해치지 마시오.”라고 말하였고형제들이 그에게 순종하지 않았을 때 그것은 프란치스코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었다그는 불을 매우 사랑하였는데 해가 더 이상 비치지 않을 때 밤을 밝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그가 가지고 씨름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 어려움을 발견하게 되는 그 무엇인데즉 우리가 다른 피조물에게 그동안 오랫동안 인정해 주지 않았던 그들의 권리들을 주려할 때 어떻게 현명한 균형을 유지하는가이다형제들은 들짐승들이 그들에게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들짐승들에게조차도 복종해야 한다고 그는 말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그의 삶은 이 씨름이 그 그림의 반에 불과함을 보여준다그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쪽 반이 성스러움을 통하여 이루어질 때 그 올바른 균형을 이루게 된다한 번은 프란치스코가 눈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기에 의사가 귀에서부터 눈썹까지 그의 얼굴에 불 뜸을 뜨기로 하였을 때그는 벌겋게 타오르는 불 형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첼라노는 전하고 있다. ‘나의 불 형제여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형제를 힘차게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드셨습니다부탁하니지금 이 시간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예의 바르게 대해 주십시오과거에 내가 주님 안에서 당신을 사랑했지 않습니까?”(2 166) 다른 형제들은 뜸뜨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도망쳐버렸지만 프란치스코는 그의 불 형제가 그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불로부터 어떤 특별한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고 평화롭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오상을 고찰하게 될 때 훨씬 더 분명해질 그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다시 말해서 아픔(Pain, 특히 육체적인 아픔-Physical Pain)이 파괴적인 것이 되는 것은 고통(Suffering)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통에 대해 우리가 저항할 때이고고통(Pain)과 그 결과는 두 가지 다른 것들이 될 수 있다프란치스코는 그와 같은 내적인 온전성(Wholeness)에 도달하였기에 그것을 깨려는 어떠한 것들이 도리어 그의 완전무결함(Integrity)의 바위에 부딪혀 깨어졌다그는 그에게 닥치는 모든 것들에 수욛적이었지만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침략을 당하지 않았다그는 육화의 메시지를 바오로와 똑같이 극단적인 논리로 전하고 있는데그것은 육화의 메시지를 바오로와 똑같이 극단적인 논리로 전하고 있는데그것은 인간 삶의 모든 것들은 심지어 죄까지’ 하느님의 현존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그는 자신의 죄스러움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그것과 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단순하고 평화롭게 자신의 죄스러움을 받아들였고 생각해야 할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하느님이 얼마나 놀라우시고 좋으시며아름다우시고 거룩하신지 느꼈던 것 같다그는 자신의 평형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며 무시할 수 없지만 수확적인 아름다움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죄스러움을 안고 살았다예를 들어 그의 요청에 자매 귀뚜라미가 매일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약 한 주일 후 그는 귀뚜라미가 매일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약 한 주일 후 그는 귀뚜라미에게는 교만과 자기찬양과 같은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제 갈 길을 가라고 귀뚜라미를 평화로이 놓아주었다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 알았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을 키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죄와 약함과 타협함은 완전무결함으로 나아가는 그의 여정에서 한 단계였을 뿐이다그는 형제들의 죄에 대해서도 평화로울 수 있어야 했다총 봉사자의 직을 사임하였지만 형제회내에서 일들이 어떻게 악화되어 가는지를 본 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에서 했던 것처럼 실망하여 온 회중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렸다주님께서는 형제회가 어떠하든 누가 세웠으며 방향전환의 은총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물으시고 형제회를 떠난 모든 형제들의 자리는 다른 형제가 대신할 것이라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만일 그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면 내가 그를 태어나게 할 것이다.” 그가 결국 깨달은 것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란 자기가 맡은 일을 그저 충실하고 평화롭게 수행하고 형제회가 하느님에 의해 보호받고 다스려지기를 기도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왜 무언가를 하지 않습니까?” 하고 형제들이 그에게 말했을 때 다른 모든 형제들은 그들이 지키기로 약속한 복음과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대답하였다달리 말해서 책임이란 각자의 것이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야 할지라도 그것은 …….

 

프란치스코는 모든 차원에서 힘을 잃게 된 것처럼 보인다그는 스스로 자기 회의 총 봉사자로부터 물러났다물러난 것은 병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종류의 통치는 자기와 맞지 않다는 느낌과 어느 정도 패배감 때문이기도 하였다형제들 간의 의견 차이와 가난과 회칙에 대한 끝없는 논쟁으로 그는 갈가리 찢겼다그가 원했던 모든 것하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그가 느낀 모든 것은 그가 자주 이야기했던 ‘Sine Glossa’, 해석하지 말고 복음을 단순하게 준수하는 형제들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생애의 끝을 향해 가면서 그는 만성적인 병을 앓았고그 당시의 치료들은 그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 같다눈에 뜸을 뜰 때는 이미 거의 눈이 먼 상태였고전반적으로 병들고 쇠약한 상태였다오상으로 몸과 정신에 상처를 입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고통으로 허덕이는 그는 이제 걸을 수도 자신을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이렇게 전체가 소멸되어 가는 가운데산 다미아노 근처의 작고 쥐가 들끓는 오두막의 어두움으로부터 피조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가 흘러나왔고 피조된 모든 것들에 대한 그의 사랑의 빛나는 찬가가 흘러나왔다이 노래는 시각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빛의 찬란함꽃들의 오색찬란함밤의 불의 영광해와 달과 별들의 아름다움여기에는 더 이상 자기 연민의 흔적이 없다프란치스코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것이었고 자기가 거기서 혜택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힘세신 주님!

찬미와 영광과 칭송과 온갖 좋은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지극히 높으신 저의 주님!

찬미와 영광과 칭송과 온갖 좋은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당신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언니 해님이 당신 찬미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그를 통해 낮이 되고 그를 통하여 우리를 비추는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

당신을 떠올리나이다지존이시여!

 

당신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누나요 우리 어미인 땅 부인이 당신 찬미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그는 우리를 먹이고 다스리며 인도하며

그를 통하여 당신은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모든 가지 과일을 낳아 주오니

오 나의 주님찬미 받으소서.

 

나중에 추가된 용서에 대한 절들은 주교와 시장이 다툰 다음 프란치스코가 그들을 화해시키는 과정에서 지은 것이다.

 

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해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내며

평화로이 참는 자들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사이다.

지존이시여당신이 그들을 왕들과 여왕들로 삼으시리이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깨달았을 때 죽음에 대한 절들이 추가되었다.

 

오 주님죽음을 통하여

누나인 우리 죽음을 통하여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를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누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나이다.

죽을 죄 짓고 죽는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다당신의 짝 없이 거룩한 뜻 좇아 사는 자들이여!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육체적으로 쪼그라들은 프란치스코는 이 노래에서 우리 일상의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성찰하고 그 각각의 가치를 매긴다우리는 여기서 거의 모든 예술가들의 삶에서부터 우리에게까지 친숙한 그 무엇이그러나 우리 기도의 삶의 한 부분이기를 기대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무엇이그리고 고통과 아름다움이 상호 작용하고 윤리적영적육체적인 빛과 어두움이 명암을 이루는 그 무엇이 프란치스코 안에서는 예리하다 할 정도로 있음을 본다어느 곳에서건 빛을 드러내는 것은 그림자임을 우리는 어느 곳에서건 본다그 결핍이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한 빛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다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삶 안에 있는 고통과 죄의 자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누구도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그 중심성을 부정하지 않는다우리는 하느님의 손을 통하여 죄 조차도’ 선에 이바지하는 것에 대해서 어리둥절해 하는데 이것은 다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그림자가 드러내지 않으면 빛은 볼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바오로가 묘사하는 단지 그런 존재가 아니다거기서 우리는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존재이고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이다이와는 달리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는 생명과 죽음이 더 이상 그토록 분명하게 갈리고 생명과 죽음이 그토록 구분이 되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Maurice Escher가 그림이 있는데그 그림의 한 면은 검을 백조가 빛으로 날아 가는데 차츰 변하여 다른 면에서는 흰 백조가 어두운 곳으로 날라간다빛과 어두움이 그러하듯 생명과 죽음도 그 뿌리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우리 안에서 조율이 되고물론 부활의 신앙도 정확하게 마찬가지다죽음이 우리에게는 존재의 해체로 이해되기에 우리에게 해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그리스도교 체험은 우리 안에 파괴의 고통이 아니라 생명의 기쁨이 있음을 말해준다.

 

당신의 거룩한 뜻 좇아 사는 사람들이 복되리니

두 번째 죽음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이 노래 전체는 말로 쓰인그의 기도의 정수가 녹아있는 프란치스코와 하느님과의 관계이다그에게 있어 이 노래는 모든 것이 어떻게 하느님으로부터 온 살아있는 편지인지를 보여주고창조의 모든 요소는 그것을 만드신 분에 대해서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이 노래는 하느님께 끊임없는 찬미의 노래를 부르자고 하는 피조물의 초대를 그가 어떻게 깨달았는지 보여준다.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이 당신 찬미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해와 달과 별들을 통해서구름과 물과  땅과 서로의 좋은 모범을 통해서(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하는 사름들하느님은 찬미와 영예를 받으시고 우리는 그들에 의해 하느님께 인도된다그 결과 그는 하느님의 발자취를 어디서고 본다모든 피조물로부터 그는 우리 모두를 만드시고 한 세상을 같이 살도록 하신 길이신 하느님을 더 배워 안다그래서 그는 피조물로부터 형제가 되도록 부름 받은 자신의 성소의 의미를 배워 안다이것이 그의 성소였고나머지 다른 것은 그 해설이었다.

 

안젤로와 레오와 루피노는 그와 함께 있었던 우리에서 초기에 있었던 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생각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그것은 그의 움막 근처에 살던 매미에 대한 이야기인데그 움막은 프란치스코 사후 정원지기 Rayner형제가 살던 집 뒤의 정원 울타리 근처에 있었다.’고 그들은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2 166,171) 이 매미는 무화과나무에 둥지를 틀고 구성지게 노래하곤’ 했다고 첼라노는 이야기한다프란치스코는 매미를 오게 하여 그 위에 앉도록 자신의 손을 폈다귀뚜라미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 자신을 만지게 하고그의 요청에 따라 프란치스코가 같이 노래할 때까지 짹짹대며 노래하였다이것은 비단 한 번이 아니라 한 주간 내내 매일 그가 밖에 나가 그를 부를 때마다 노래하였다그는 귀뚜라미의 신비에 자신을 민감하게 열어 보이면서 매미를 연구했다우리는 앞에서 열린 마음으로 응시함이 우리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고찰한 바 있는데여기서 그 예를 보게 된다프란치스코는 하느님 때문에 피조물을 그저 사랑만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듯이 그들을 부드럽고 즐겁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 알았던 것이다. ‘그는 그의 민감한 마음으로 그들의 숨은 본성을 알아냈고’ 그래서 그 미물들이 그와 함께 있으면 자기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사나운 것들도 불처럼– 점잖게 되었다.’

 

질서는 너무도 완벽하게 그 안에서 회복되어 그의 현존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조화롭게 할 정도였다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것을 형제들이 같이 나누는 것은 한 형제가 된 그의 선물 중의 하나였다그의 가난은 너그러워지도록 그를 자유롭게 하였고그의 순종은 그에게 권리를 주었으며심지어는 새들이나 짐승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었다한동안의 씨름이 있고 난 뒤에(‘나는 아직도 아내와 자식을 가질 수 있으니 나를 너무 일찍 칭송하지 마시오,’라고 그는 말했다그는 앞에서 고찰한 대로 완전무결한 순수함을 지닌 정결한 사람이 되었다그는 원초적인 순수함으로 돌아갔다그 결과 그는 들보와 티끌을 제거해 그의 눈이 빛으로 충만한 복음의 사람처럼 되었다그래서 그는 나오미에게 룻이 하듯 당신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느님께 말할 수 있었다.(참조 1,16)

 

아무도 그의 조심스러운 관심을 끌 수 없을 만큼 작은 존재는 없었다그는 구더기가 발에 짓밟힐까봐 길 가운데의 구더기를 한 쪽으로 옮겨 놓는 사람이었고 겨울철에는 별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였고꿀과 좋은 포도주를 넣어주곤 한 사람이었다그가 보는 모든 것은 하느님을 떠올렸다길 위의 구더기는 시편에서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라고 했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그것은 취약성의 정도에 대해 프란치스코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자신이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들로 인도하였다구더기는 또한 프란치스코의 형제우리처럼 그것들이 처한 파괴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줄 다른 존재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형제였다.

 

창세기에 대한 그의 해석은 결코 자신을 짐승들과 초목들의 주인이요 소유자로 여기게 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심지어 자신에게 맡겨진 것일지라도 어느 누구 또는 어느 것 위에 있다고 생각지 않기에 피조물과 관련하여 자신을 관리인으로도 여기려 들지 않았다언제고 그는 형제였고어떤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형제적인 방식으로 피조물을 돌보는 특권일 뿐이었다이런 태도의 결과 그는 착취나 탐욕이나 속임수의 목적을 가지고 결코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형제들에게 자연자원의 활용과 관련하여 좋고도 생태학적으로 건전한 충고를 해주고 있다그는 정원 가장자리를 파헤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 풀들과 꽃들이 자라게 하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선포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라고 형제들에게 말하였다그는 풀이나 화초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 따로 배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하였다그는 어떤 생명도 근절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불을 때기 위해 나무를 자를 경우에도 나무 전체를 자르지 말도록 하였으며 나무도 다시 새싹을 피울 희망을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이것은 단순한 감상주의가 아니라 마치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소유자의 것이듯 아무 것도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깊고도 존경어린 깨달음이었다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본적인 이야기요 우리 행성과 온 우주의 근본을 이루는 사건으로 보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라는 이 한계 안에서 그렇게 존재한다고 보았다나무 또한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남겨져야 했다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요 우리 행성의 이야기이며우리의 삶으로 우리는 그 이야기를 거듭거듭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다우리는 이 이야기를 그 수많은 이야기 중의 한 방식으로 끝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글라라 또한 아주 똑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유언에서 하고 있는데거기서 그는 식량을 위해 필요한 것 외에 자매들이 가지고 있는 땅은 갈거나 심지도 말고 손대지 않은 채개간하지 않은 채 남겨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글 유언 55) 회칙에서 그녀는 이 땅이 자매들을 위한 정원으로 쓰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데유언과 회칙 모두 이 땅이 어떤 식으로든 수입이나 영리를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땅도 권리를 가지고 있고 함부로 개간되어서는 안된다.

 

글라라와 프란치스코에게 오직 필요한 것만을 땅에서 취해야 한다는 것은 자매와 형제로서 당연한 이야기였다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그들의 노래를 부르게 하기 위해 남겨져야 한다그들은 유용성에 중독되지 않았고 생산적이지 않은 땅을 문제 삼지 않았다야생화와 나비들과 쥐는 형제들과 가난한 자매들과 세상을 공유하였으며거류자들이 아니라 한 가족이었다필요한 일을 보러 자매들을 내보낼 때 글라라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나무와 꽃을 피우는 초목들과 수풀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찬미드릴 것을 상기시켰다.(글회칙 6,6) 글라라와 프란치스코는 땅이 자신들을 돌보아주도록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둘 다 알고 있었고글라라가 산 다미아노 주변의 조그마한 땅을 생각할 때 우리들의 목적이 아니라 자체 목적을 실현케 하려 하였다구원은 각각의 것을 하느님께서 뜻하신 대로 되게 함으로써 가능함을 글라라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물들의 숨겨진 본성을 섬세하게 식별하는 프란치스코에 대해 첼라노가 기술하고 있는 구절에 모두 실려 있다이것은 또한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의 관성적인 입장 또는 태도에도 들어있는데그들은 각 피조물의 개성을 받아들이고 칭송하고더 깊이 피조물을 알고자 하는 열린 자세를 지녔으며피조물을 통하여 그들을 지어내신 하느님을 알려는 열망을 지녔다. “하늘의 지존하신 아버지께서 나의 마음을 비추어주셨습니다.”(글회칙 6,1;글유언 24)하고 글라라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이 비추심은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고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는 원천이요 근본이심을 그녀에게 보여주셨다그녀를 모두의 자매가 되게 한 것은 함께 시작한 것에 대한 그녀의 깨어있음이었다.

 

글라라에게 최초의 자매관계 체험은 말할 것도 없이 아시시의 아녜스(글라라가 편지를 보낸 프라하의 아녜스와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와의 자매 관계 체험이다아시시의 아녜스는 글라라의 바로 아래 동생이었다다른 자매는 두 번째 동생으로서 그 또한 수녀원에 입회하여 나중에 수녀원 창설을 위해 프랑스로 파견된 베아트리체이다시성 증언록에는 글라라의 조카들로 나와 있지만 동생들일 가능성이 있다그들이 비록 항상 매우 가까웠지만 서로간의 놀라운 사랑이 둘을 한 데 묶은 것’(글전기 24-26)은 글라라가 집을 떠났을 때와 자신을 따르려는 아녜스를 위해 진지하게 기도할 때였다고 글라라의 생애는 전하고 있다분명 글라라는 동생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원했고 그 영향이 좋은 영향이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다이제 그녀는 그들이 항상 지녔던 정신의 인척 관계적 일치(affinity of spirit)’가 하느님을 섬기는데 일치된 의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한다이 기도는 풍성하게 응답되어 많은 글라라의 기적을 증언하며 산 다미아노에서 살았으며글라라의 임종을 지켰다그 사이 그녀는 수녀원 창설을 위해 피렌체에 파견되었는데그것은 그녀에게 일종의 쓰라린 추방이었다. “저는 측량할 수 없는 무거운 짐에 허덕이며 괴로워하고 있고거의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그것은 제가 이 세상에서 함께 살고 죽기로 희망했던 당신과 저의 다른 자매들로부터 육체가 떨러져 있기 때문입니다이 번민은 시작은 있으나 끝을 알지 못합니다.”(아글편)라고 아녜스는 글라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쓰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그 정도로 주는 것에 신중을 기하는데그럼에도 우리의 마음을 마침내 다른 사람들에게 열게 되면 우리는 상처를 쉽게 입을 수도 있는 큰 위기를 무릅쓰게 된다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왜 문을 닫아야 되는지 알았지만 참으로 형제자매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임도 알았다그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서로에 대해 참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그것은 참으로 좋아하는 감정들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고서로 친구가 되며 선행으로 서로 격려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그것은 아무런 공통적인 감정이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저하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다아녜스가 그토록 격렬하게 피렌체에서 편지를 썼다면 처음에 거기 가는 것에 대해 논의했을 때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 궁금하지만 글라라가 그것 때문에 분명히 움츠러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격렬함을 부드럽게 하지도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그것은 글라라가 무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첫째가는 형제와 자매는 그리스도 그분이심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물리적 관계가 어떠하든 우리는 우리의 첫째가는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찾고그리하여 성부의 역사하심이기도 한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이 모든 상황에서 최우선 선택이 되어야 한다이것이 프란치스코가 글라라를 Christiana(그리스도교인)라고 부른 이유인데그는 그녀를 우리의 형제이신 그리스도의 진정한 자매로 보았기 때문이다.

 

시성 조사 때의 증언에서 자매들은 글라라의 자매적인 보살핌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데그것은 자신에 대해서 뿐 아니라 수도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그는 아이들과 음식에 대해 걱정한 것처럼 보인다그녀는 결코 안달하거나 동요한 적이 앖었다고 그들은 증언한다그는 언제나 점잖고 사랑에 차 있었지만 매우 도전적인 경우도 자주 있었다특히 비록 수년 전 자기 아내를 버린 남자가 자기가 제시하는 대로 따라주기를 속으로 기도했지만 그에게 무뚝뚝하게 말할 때는 매우 도전적이었다그는 병이 든 자매는 십자 성호로 병을 고쳐주고 다른 이들에게는 충고도 하곤 하였다그들이 죄를 지었으면 놀랍게도 그녀는 울었다.’고 그들은 우리에게 전한다우리는 프란치스코에게서 보았던 것을 글라라에게서도 보는데모든 이를 한 번도 비판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타협함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그것이다.

 

참된 기도에 대한 검증은 무아경 또는 황홀경에 있지 않고 일상 생활에 있음을 우리는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형제자매의 성소를 살아간 방식은 이제 우리로 하여금 좀더 나아간 이야기즉 기도란 기도의 시간에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도 시간이 아닌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게 한다일상의 삶에서 그들은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신비에 항상 열려 있었다하느님은 공기처럼 그들을 감싸고 있었고어떤 식으로 그들의 정신을 차지하고 있건 간에 그들의 마음은 그것에 깨어 있었다이것이 시성 증언 과정에서 증인들 중의 한 자매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거룩함을 그들에게 가능케 하였다그들은 경배하고 감탄하기를 결코 멈추기 않았으며마음과 정신의 반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쓰면서 그리고 일상사의 흐름 아래에 계시는 하느님과의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면서 일종의 의식적인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주위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화음을 이루는 내면의 음악으로 기도를 하였다기도는 다른 무엇보다도 경배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상한 곳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법을 안다그들은 모든 것에게 형제자매이고 모두에게 형제자매이다그들은 이것을 매일의 삶 안에서 살아가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아버지요 어머니이신 하느님을 경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