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제 1과 복음과 나

Margaret K 2017. 12. 18. 20:45

 


제 1과 복음과 나


관련 규정 : 회칙 4; 회헌 8,9


회칙 제 4조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의 회칙과 생활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행하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당신 생활에 영감을 주는 분이자 중심으로 삼으셨다.

그리스도는 성부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로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며, 우리가 성령을 통해 도달하는 진리이며, 삶의 충만함을 주려고 온 생명이시다.

회원은 특별히 복음을 자주 읽어서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목표 : 매일 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는 삶에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오늘은 신앙생활에서는 물론 우리 제속 프란치스칸이 꼭 실천해야할 ‘복음과 나’의 생활에 관하여 공부하게 되겠다

여러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재속 프란치스코회란 어떤 단체인가에 대하여 배우면서 지난 1년간의 지원기 교육을 마쳤다. 이제 제1양성기의 제 1과 ‘복음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겠다.

먼저 예수님이 지상생활에서 보여주신 모범과 사부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발자취를 따라 우리는 4복음사가들에 의하여 기록되어진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복음적 생활을 수행할 수 있다.

실천에 앞서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이고, 사부님의 가르침은 어떠했으며, 이러한 가르침들 안에서 프란치스칸들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묵상해보자.


전개 

1. 하느님 말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고 그분을 알고 사랑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우리는 하느님 인식에 이르기 위한 길들을 찾아낼 수 있다. 세계와 인간은 자신 안에 스스로의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을 가지지 못하는 존재이다. 즉, 모든 피조물은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시는 하느님의 의지에 참여하고, 참여를 통해 생겨나는 올바른 인식과 믿음으로 그분을 모든 것이고 전부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하느님께서는 늘 인간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신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가지 ‘길’들을 통해서 우리는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또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계신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 사랑의 구원 계획을 알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당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구원계획을 알려 주신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는 외아들, 하느님이신 그분이 알겨 주셨다”(요한 1,18).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같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계시하셨으니 아버지를 찬양하나이다. 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처럼 이루어졌나이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내게 모든 것을 넘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니면 누구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아들과 그리고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마태 11,25-27).

인간의 삶의 목표는 하느님을 깨닫고 사랑함에 있다. 신앙이란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내어주시며,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수고하고 짐을 진 여러분은 모두 내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시오,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사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28-30)


또한 예수께서는 그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바를 알겠습니다까?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다면 여러분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준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대로 여러분도 그렇게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릅니다. 종이 제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자가 그를 보낸 이보다 높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여러분은 복됩닏”(요한 13, 12-17)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내게 이익이 되었던 것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고귀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해로운 것을 여깁니다. 그분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립 3,7-8)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부르심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제자들에게 이 복음을 알릴 사명을 주어 파견하신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실 뿐만 아니라 그 계시에 사람들이 응답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 이 계시에 대한 응답이 곧 믿음이고, 이 믿음의 생활이 바로 복음적 생활이다.


2. 교회의 가르침

모든 믿는 이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신약 성서에서 탁월한 방법으로 소개되고 그 힘을 발휘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시고, 업적과 말씀으로 당신 아버지와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또한 죽음과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과 성령의 파견으로 당신의 사업을 완성하셨다(계시헌장 17).

신약성경을 포함한 모든 성경 가운데서 복음서가 가장 뛰어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복음은 우리의 구원자, 사람이 되신 말씀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4복음이 사도적 기원을 갖고 있음을 언제 어디서나 주장하였고, 또한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들어 설교하던 바를 후에 성령의 영감을 받아 사도들과 제자들이 믿음의 바탕으로서 우리에게 글로 전한 것입니다(계시헌장 18).

또한 거룩한 교회는 위에 말한 4복음서의 역사성을 주장하는 데에 주저치 않으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인간 가운데서 생활하시고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하늘에 올림을 받으시던 날까지(사도 1,1-2 참조) 실제로 행하시고 가르치신 바를 이 복음서가 충실히 전하고 있음을 확고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주장했고 지금도 주장하는 것이다(계시헌장 19).


이러한 복음은 하느님의 현명하신 계획에 의하여 주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확인하고 그의 진정한 가르침을 더욱더 밝혀 주고, 그리스도의 신적 사업이 지니는 구원의 힘을 설파하고, 교회의 기원과 놀라운 전파를 말하며, 또한 영광스러운 종말을 미리 알려 주고 있다(계시헌장 20).

신앙의 빛을 받고,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써만,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발견하고,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사도 17,28)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사에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가까운 사람이거나 먼 사람이거나,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 뵈옵고, 현세 사물의 참된 의의와 가치를 그 자체로서나 또는 인간 목적에 관련시켜서 올바로 판단하게 된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하며,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계시된 희망 속에서 살게 된다.

나그네 같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하느님께 의탁하며 재물의 지매를 벗어나 영원한 보화를 동경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를 넓히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현세 질서를 개조하고 완성하기 위하여, 자신을 아낌없이 온전히 바친다. 또한 현세 생활의 시련 속에서도 “현재의 고통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로마 8,18)을 생각하며 희망의 용기를 발견한다(평신도 4).


그리스도의 구원 성업은 본래 사람들을 구원할 목적을 가졌지만, 현세 질서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할 뿐 아니라. 현세 질서의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그것이다(평신도 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고(2고린 5,14)있도록 생활을 복음화하고 복음을 생활화 해야한다(회칙 4).


3. 프란치스코의 가르침

1) 프란치스코는 성서에서 하느님 뜻을 발견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독생 성자를 우리의 형님으로 파견하셔서, 우리의 삶에 동참케 하시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죽음에 붙으신 그 엄청난 사랑을 생각하고 감동하였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적 표현이 가능한 최상의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표양을 본받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생애와 말씀의 계시록이 복음서가 예수님과 함께하는 그분의 여행길을 밝힌 항구한 안내자였다.

그는 성서 속에 함축되어 있는 진리는, 살아계신 주 예수께서 알려 주시는 바에 순응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성인은 우언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유언 15).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자기와 형제들에게 바라시는 뜻을 자기의 의지나 생각에서가 아니라 복음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가 어느날 미사에 참례하고 있을 때 주님이 당신 제자들을 복음전파하도록 어떻게 파견하셨는지에 관한 복음이 봉독되었다.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마태 10,9-10). 프란치스코는 너무도 기뻤다. 그는 사도적 가난에 대한 사랑으로 이 구절의 의미를 즉시 파악하고 기억에 새겼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고 찾았던 것이며, 정성을 기울여 하기를 갈망했던 것이다”(1첼라노 22)라고 외쳤다. 그리고나서 성인은 자기가 들은 것을 즉시 실천에 옮겼고, 모든 것에 있어서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생활 규칙을 따르는 것이었다. 또한 성인의 첫 제자가 된 베르나르도 형제가 회개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재산처분에 대해 성인에게 조언을 구하였을 때, 성인은 성당에 가서 복음서를 펼쳐보고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찾자고 제의하였다. 이렇게 해서 성서말씀을 듣게 된 베르나르도는 지체없이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인의 첫 제자가 되었다(2첼라노 15)

신적인 영감에 의해 그는 이제 복음적인 완덕을 좇기 시작했으며 또한 다른이들로 하여금 회개의 생활을 하도록 초대하였다. 성인은 하느님께서 성서를 통해서 당신 뜻을 드러내신다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계셨다. 성서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이 유익한 가르침을 담은 훌륭한 명작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서”직접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음성이다. 그래서 성인은 “지극히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과 말씀이 기록된 책을 부당한 곳에서 발견하면, 나는 그것을 주워 모으기를 원하고, 또한 다른 이들도 그것을 주워 모아 합당한 곳에 모시기를 부탁합니다”(유언 12)라고 말씀하신다.

성인이 비록 많은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성서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예리한 통찰력과 지혜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성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늘상 찾아왔기 때문이다. 첼라노는 성인의 성서지식과 성서구절을 기억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비록 이 복된 사람이 지식을 배우면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높은 데서 내려오는 하느님의 관한 지혜를 파악하였고 영원한 빛을 받아서 성서에 깊은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총명하였고 오염되어 있지 않아서 신비가 그에게 스며들었고,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그 사랑으로 학자들의 학식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을 꿰뚫었다. 때때로 그는 성서를 읽었고 한번 기억한 것은 잊지 않도록 마음에 새겨 놓았다. 그는 무심히 한 귀로 흘려듣는 일이 없었고, 들은 것은 부단한 정열로 묵상하였기 때문에 그의 기억력은 책을 대신할 만했다”(2첼라노 102).


이렇게 성인은 복음에서 듣게 되었던 다른 일들고 최대한의 열심과 존경으로 실행하려 애썼다. 그는 결코 복음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이었고, 자신이 들은 바를 경탄할 만큼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부지런히 이행하고자 신경을 집중하였다(1첼라노 22).


2)거룩한 복음은 우리의 생활양식이다.

복음은 프란치스코 성인과 형제들의 성소를 결정지워 주었으며,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응하며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유언 15). 그래서 성인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양식을 만들려고 할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1회칙 1: 2회칙 1)으로 삼았고, 복음 이외의 다른 원칙을 세우지 않았다. 프란치스코의 가장 높은 지향과 주된 바람과 최고의 결심은 복음을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실행하는 것이었고,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열의를 다하여 애타게 갈망하는 온전한 정신과 뜨겁게 타오르는 온전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제1회칙 1,1)이었다.

그는 끓임없는 묵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겼고, 예리한 사고력으로 그리스도의 행적을 되새겼다.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이 특히 그를 사로잡았으므로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1첼라노 84).


프란치스코가 병고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한번 그의 동료가 말하였다. “사부님, 당신은 언제나 성서에서 피난처를 구했지요, 그리고 성서는 언제나 당신 고통을 치료해 주었지요. 지금 당신께 예언서를 읽어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당신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성인이 그에게 말했다: “성서를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묵상을 하고 마음에 되새겨 보기에 춤분 할 만큼 이미 성서의 많은 부분을 나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들이여,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불쌍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2첼라노 105).

프란치스코 성인은 복음을 단순히 어떤 도덕적이고 수덕적인 규범의 근거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다. 성인은 회칙의 법적인 명령과 법칙은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문자가 영을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중요한 것은 형제들이 주님의 계명을 실행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거룩한 복음과 자기의 생활양식을 통하여 약속한 주님의 계명을 굳게 실행할 때 참된 순종 위에 자신들이 머물러 있음을 모든 형제들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들을 축복하시기를!”(1회칙 5,17).


결론적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어 거룩한 복음을 실행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의미했다. 그래서 성인은 성서를 자주 읽고 묵상했으며, 거기서 깨달은 바를 주님께서 지금 자기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따라서 우리 프란치스칸 생활 안에서는 복음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이것만이 프란치스칸 정신이 복음적 생활양식에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야 복음적 생활양식이 사람들을 회개 시키고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시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는 재속 프란치스칸들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완전하게 알고 인식하지 못하면 지상생활에서 드러난 예수님을 본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복음서는 우리의 기도와 묵상의 기초가 되어야하며 일상생활 안에서 이를 실천하고, 생활화 해야 할 것이다.


참조) 성직자들에게 보낸 편지


종합

사부님께 있어서 거룩한 복음을 실행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의미했기에, 서서를 자주 읽고 묵상했으며 거기서 깨달은 바를 주님께서 자기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따라서 우리 프란치스칸 생활 안에서 복음을 자주 읽고 묵상해야 하며, 복음적 생활양식을 통해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임하시게 하는 도구가 될 때 우리의 생활 안에서 복음을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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