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프란치스코의 글

영적권고 10 육신의 제어/X. No one should be scandalized..

Margaret K 2007. 5. 17. 01:27


10. 육신의 제어


1 죄를 지을 때나 해(害)를 입을 때 원수나 남을 자주 탓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실 사람은 육체를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누구나 그 원수 즉 육체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3 그래서 자기의 지배 하에 내맡겨진 그 원수를 항상 손아귀에 집어 넣고 그에게서 지혜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그런 종은 복됩니다. 
4 이렇게 행하는 한,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는 어떤 원수도 그를 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X. No one should be scandalized at anothers fall

 

Many people blame the devil or their neighbors when they fall into sin or are offended. But that is not right. Everyone has his own enemy in his power and this enemy is his lower nature which leads him into sin. Blessed the religious who keeps this enemy a prisoner under his control and protects himself against it. As long as he does this no other enemy, visible or invisible, can harm him.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인 권고 묵상집

 -하일성 멜키올OFM-



영신 생활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수도 생활에 대해서 반성해 볼 때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성소에 따른 이상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들이 매일 하는 경험입니다. 뿐만 아니라 수도 서약을 할 때 하느님께 맹세한 것까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는 한 마디로 우리 생활에 아직까지 죄악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마하며 우리는 이 사실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 생활 안에 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부님은 항상 좋은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되 죄악만은 자기 것으로 인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양심 성찰을 할 때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겸손과 가난 속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하는 마음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된 수도자, 참된 프란치스칸은 그 생활 안에 죄악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보다 더 가까이 주님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생활 안에 존재하고 있는 죄악, 그 죄악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부님은 10권고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1.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은 그리스도와 함께 극복할 수 있다.


죄를 지을 때나 해를 입을 때 원수나 남을 자주 탓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1절).


이 간단한 말씀으로 사부님은 우리 수도자들까지도 죄를 범하게 될 때 자주 변명과 핑계를 대고 남을 탓하는 것을 지적해 주십니다. 변명하고 핑계를 댄다는 것은 잘못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례를 받을 때, 또 수도 서약을 할 때,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맹세한 의무와 생활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그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부님 말씀대로 원수인 악마나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고 있는 직책이나 책임 때문에 잘못 살고 있다고 핑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직책, 다른 일을 한다면 좀더 열심히 잘 살 수 있을 텐데 너무 바빠서 그렇지 못하다는 이런 핑계 역시 환경을 탓하는 것입니다. 쉽게 핑계하는 또 한가지는 다른 형제 자매들의 성격입니다. 그 형제 자매가 변화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하는 것 역시 결국은 자기를 정당화하는 것이고 남을 탓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변명이나 핑계로 자시 자신을 속인다면 생활이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식으로 양심을 마비시키기 쉽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좋은 체험으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변명하기 때문에 생활의 변화도, 발전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우리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큰 위험이 되며, 따라서 사부님은 1절에서 이것에 대해 주의를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실 사람은 육체를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누구나 그 원수, 즉 육체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2절).


변명과 핑계,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나 생각 등이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번역은 '그러나 그래서는 안됩니다'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은 거짓말을 뜻합니다. 즉, 죄악의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부님이 말씀하시는 육체, 육신은 단순히 인간의 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에로 기울어진 인간의 자기 과신을 의미하며, 죄를 짓게 하는 원수로서의 육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는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악에서 영향을 받게 되며,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인 자기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것은 아닙니다. 사부님 말씀대로 각자의 자유와 양심, 구원, 성사, 기도 등 여러 가지를 통해 우리는 이미 죄악에서 해방된 구원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과 성사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원수, 즉 죄를 짓게 하는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과 성사 등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방법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성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은총과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지배 하에 내맡겨진 그 원수를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고 그에게서 지혜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그런 종은 복됩니다. 이렇게 행하는 한,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는 어떤 원수도 그를 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3~4절).


우리의 원수, 즉 우리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 우리 자신을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을 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해서 성령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런 힘과 능력은 성사, 하느님 말씀,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도우심의 은총인 것입니다.


성서, 성사, 기도 , 자유, 양심 등이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구원의 방법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과 구원되려는 우리의 뜻이 일치되어야만 우리 각자의 구원은 가능할 것입니다. 모든 영성가들이 말하는 영신 생활은 하나같이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하는 것으로 이것이 우리의 영신 생활이고 크리스천으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의 과제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도 복음에서 이러한 협력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 9, 23),'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버리고 부정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를 무조건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되려면 이 두가지 과정이 생활 안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사부님은 여기에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관점을 더 강조하십니다. 자신을 버리고 부정한다면 자신을 희생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면, '자기의 지배 하에 내맡겨진 그 원수를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고 그에게서 지혜롭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복된 종'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정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영을 지니는 사람은 차차 주님을 닮게 되어 주님과 같은 사고 방식, 주님과 같은 마음은 물론, 결국 주님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말씀대로 '그분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요한 3,30)'하듯이, 주님이 갈수록 우리 안에서 성장하시고 나라는 육신의 정신이 갈수록 작아진다면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됩니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사람,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긍정하는 사람은 사부님 말씀대로 자기 자신을 지혜롭게 지키는 복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기보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신뢰하는, 즉 내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오히려 다른 데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필립 4,3)'라고 말씀하신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를 힘입어 자신을 다르실 수 있는 은총과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부님은 또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지혜롭게 지키는 종은 복되다고 지적해 주십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나라는 육신의 정신, 즉 교만, 자만심, 자애심, 자기 자랑 등 죄악으로 기울어진 나를 다스려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지혜롭게 원수인 자신에게서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핑계나 변명 등에 속아 넘어 가지 않도록  늘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핑계나 변명 등에 속아 넘어 가지 않도록 늘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마태 10,16)' 할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한, 볼 수 있거나 볼 수 있는 원수란 세속을 의미하고, 볼 수 없는 원수란 악마, 마귀를 뜻합니다. 내 안의 원수인 자기 자신을 손아귀에 넣고 지혜롭게 자신을 지켜 나갈 때 다른 원수는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 



2.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데서 해방되도록 합시다


사부님의 10권고는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발씀인 것 같습니다. 잠시 생활을 반성합시다.


(1)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잘못이나 죄를 지었을 때 먼저 솔직하게 하느님 안에서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변명이나 다른 형제 자매를 탓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기의 잘못에 대해 분명히 책임지는 자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신비입니다. 변명은 되풀이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생각되고 그렇게 믿게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생활에 변화나 나아지는 점이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하면서 그런 잘못을 하나의 좋은 경험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여, 나의 모든 것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변명만은 받아 주시지 마십시오.'하는 기도가 바로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양심을 솔직하게 살핀다면 내가 잘못사는 원인이 다른 형제 자매나 공동체의 환경, 직책 등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즉 죄의 원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했을 때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하느님은 물론이고 다른 형제 자매 앞에서 적어도 변명만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솔직한 책임감이 없으면 진실한 통회 역시 있을 수 없고 그 생활이 나아지는 변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2) 자기가 다스릴 수 있는 원수, 즉 자기 자신을 항상 손아귀에 집어넣을 수 있도록 지금까지 노력해 왔습니까? 우리는 자신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입이나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복음의 이 두 가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매일 선물로 주시는 도움의 은총은 우리의 협력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혜롭게 자신을 지키고 있습니까? 자신을 과신하는 헛된 자신감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수도자 중에는 빈틈없이, 그리고 자신감 있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자심감은 한 마디로 교만입니다. 이런 수도자는 언젠가는 한 번 크게 깨어 지게 마련이고,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눈먼 사람같이 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수 없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을 믿는 그 믿음에서 생기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이끌어 가시며 내 생활의 주인공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수도자야말로 깨우침을 받은 수도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복된 종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