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여름 햇살보다 더한 ..../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46

여름 햇살보다 더한 ....



매미가 은둔소 주위의 솔밭에서 울고 있었다. 6월 초순이어서 몹시 더운 날씨였다. 누그러질 줄 모르는 태양은 눈부신 푸른 하늘에서 이글거리듯 빛나 강렬하고도 힘찬 햇빛을 피할 수가 없었다. 더위로 인해 숲속의 나무껍질은 벗겨지고 가파를 산비탈의 풀들은 타는 듯 한 바위틈에서 노랗게 말라 있었다. 숲 가에는 관목들과 봄비에 부풀었던 푸르고 어린 나무들이 슬프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기도소 주위에 있는 몇 그루의 사과나무는 잎들 사이로 열매를 맺기 시작하며 이같은 더위에도 불편이 없는 듯이 보였다. 불덩이 같은 거대한 태양은 모든 존재들을 시험한다. 태양은 모든 실체를 드러낸다. 어떠한 가장도 태양빛을 이겨 내지는 못한다. 다만 열매를 맺은 나무만이 두려움 없이 태양의 빛과 열에 자기를 내맡긴다.


한낮 몹시 더울 때 프란치스코는 소나무 숲속으로 가기를 좋아했다. 거기서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그는 늘 눈병을 앓고 있었으나 마음은 평온했다. 그 한더위의 숲속에서 그는 벌써 저녁의 평화를 맛보고 있었다.


머지않아 다가올 성신강림 총회에 틀림없이 많은 형제들이 모일 것을 생각하며, 그는 이번에 아씨시의 모임에 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자기가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그 회의에 자기의 큰 수도 가족 앞에서 전보다 더 무섭고 더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할 어려움들을 생각하였다. 그거나 지금은 그런 생각으로 인해 조금도 불안해지거나 상심되지 않았다. 그의 영혼에 피할 수 없이 따라오는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마음의 평온을 해치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무관심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그가 바라는 요구는 더욱 커지며 깊어 갔다. 그럼에도 프란치스코는 평화 가운데 있었다. 그에게도 성숙의 시기가 왔다. 그러나 그는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맺혔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고 다만 자기의 열매가 쓴 것이 되지 않도록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의 머리 위에서는 매미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그 높고 날카로운 소리는 높은 가지에서 떨어지는 불꽃 소리처럼 불을 튀기는 듯했다.


프란치스코가 거기에 앉아 있을 때, 키가 크고 젊은 한 형제가 숲을 지나 그에게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느리지만 단호한 걸음 걸이었다. 프란치스코는 그가 탄크레도 형제임을 알아보고는 일어나 가서 그를 포옹했다.“평화가 형제에게 있기를 참 반갑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올라오느라고 몹시 더웠겠군요.”


“예, 정망 더웠습니다. 사부님, 그러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탄크레도 형제는 소매자락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흔들면서 한숨을 쉬었다.


프란치스코는 그를 소나무 그늘에 앉게 했다.


‘무엇이 잘 안됩니까? 이야기를 좀 해 봐요.“


“사부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의 지도자로 계시지 않을 때부터 사태는 자꾸만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듣기로, 회칙과 사부님의 표양을 따르며 성실하게 남아 있기를 원했던 형제들은 실망하여 방향을 잃어버렸다고들 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사부님께서 너무 지나쳤으니 스스로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큰 수도회의 조직을 본떠야 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큰 수도회의 조직을 본떠야 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도회의 회원들과 비길 수 있는 학자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가난함과 단순함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말아야 하며, 어쨌든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학문과 권력과 돈도 활동을 위해서는 있어야 하고, 또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하고들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항상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입니다“하고 프란치스코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항상 같은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도 그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을 개혁자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어떤 형제들은 그들을 반대하기 위해 복음적인 단순을 더 엄격히 실행한다는 구실로 더욱 나쁘게 여러 가지 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제들은 최근에 퐁디 주교님께 소환되어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염을 자라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등 완전히 태만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순종을 벗어나 부인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형제들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고, 또 개혁자들의 방앗간에 물을 길어다 주는 것이라는 것도 생각지 못합니다. 이러한 오용을 본 개혁자들은 자기들의 의견을 내세울 좋은 기회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스스로 회칙의 수호자들이라고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개혁자들과 중심을 이탈한 괴벽한 형제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성실한 작은 무리는 목자를 잃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정말 불쌍합니다. 마침내 성신강림 총회가 가까웠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사부님께서 기가 참석하시겠습니까? “


“예, 가겠습니다. 나는 곧 길을 떠나려고 생각합니다. 하고 프란치스코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성실한 형제들은 사부님께서 다시 지도권을 잡고 회칙을 오용하는 자들을 억제하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을 처단해 버릴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다른 형제들이 나를 원할 것이라고 믿습니까? “


“사부님께서는 명백하고 확고하게 사부님의 의견을 말씀하셔야 하며 응징의 조처를 취하셔야 합니다. 지금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매미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숲은 이따금 한숨을 내 쉬는 것 같았다. 가벼운 바람이 소나무 숲을 자니며 짙은 송진 냄새를 일으켜 주었다.


프란치스코는 말이 없었다. 그는 솔잎과 마른 가지에 덮인 땅에 눈길을 둔 채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작은 불똥이라도 마른 잎이 깔려 있는 이곳에 떨어진다면 온 숲을 다 태워 버릴 수 있을 성싶었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후 프란치스코는 입을 열었다.


“들어 보십시오. 나는 형제를 환산 속에 머물러 있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형제가 원하기 때문에 분명히 말해 주겠습니다. 만일 내가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을 작은 형제라고 생각지 않겠습니다. 즉, 내가 형제들의 총장으로 총회에 나가서 강론을 하고 내 의견을 말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자 형제들이 나에게 ‘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지 않다. 너는 무식하고 경멸받을 만한 존재다. 우리는 네가 우리의 총장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너는 설득력도 없고 너무 단순하고 편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쫓아낸다면 나는 부끄럽게 쫓겨나와 세상의 멸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내가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임에 있어 성화를 위한 똑같은 의향과 똑같은 내적 기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절대로 작은 형제가 아닌 것입니다.”


“정말 좋습니다. 사부님,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탄크레도가 대꾸했다.


“무슨 문젠가요?”


프란치스코가 이렇게 묻자 탄크레도는 어이가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 말인가요? ‘하고 프란치스코가 다시 물었다.


“물론 수도회에 관한 것입니다”하고 탄크레도는 부르짖었다.


“사부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영혼 상태를 말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상태에 대하여 감탄합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단지 사부님 개인의 성화만을 생각하는 그 정도에서 그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다른 형제들이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들의 지도자이시며 사부이십니다. 그들을 버리실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사부님의 지도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탄크레도, 정말 다른 형제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나 자기 의견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주먹으로 때려 가면서 복음적 양선이나 인내를 실천하도록 가르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 자기 자신이 아픔을 받아 가면서 도와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분노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탄크레도는 항의했다. “거룩한 분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사꾼들의 머리 위에 채찍을 가하면서 부수셨습니다. 틀림없이 머리위에 채찍을 가하신 것이지 공중에다 휘두르신 것은 아닙니다. 성전에서는 가끔 장사꾼들을 내쫓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정말 파괴와 소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역시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탄크레도의 음성은 흥분으로 점점 높아져 갔다. 그는 격분하여 물건을 부서뜨리는 몸짓을 해 가면서 말을 하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어 가만히 앉혔다.


“자, 탄크레도 형제, 내 이야기를 좀 들어 보십시오”하며 프란치스코는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만일 주께서 당신 앞에 순결하지 못하고 합당하지 못한 것을 다 쫓아내 버리신다면 그 앞에 몇 사람이나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가련한 친구, 그때 우리들은 모두 다 쓸려나갈 것입니다. 우리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들 사이에는 그렇게 많은 차이가 없습니다. 다행히 하느님께서는 다 텅 비도록 청소하기를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한 번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당신 집의 주인이시고 주께서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꼭 한 번만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형제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주님께서는 박해자들의 채찍에 자신을 내맡기셨습니다. 그것으로써 주께서는 하느님의 인내하심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엄벌을 가하실 줄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 그러나 사부님 말씀대로 한다면 무조건 싸움을 피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수도회는 멸망으로 향할 것이고 성교회는 많은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되기는커녕 분열을 거듭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뿐입니다”하고 탄크레도가 말했다.


“그러나 형제에게 말해 둡니다. 수도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존속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힘 있게 그러나 평온함을 잃지 않고 단호히 말을 계속했다. “주께서 나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수도회의 장래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만일 형제들이 불성실하면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아마 다른 형제들이 벌써 탄생했는지도 모릅니다. 주께서는 나에게 설득력이나 학문의 힘으로, 더욱이 어떤 강제적인 힘으로써 사람들을 정복하기를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내가 거룩한 복음의 양식을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을 때 나는 간단한 회칙을 썼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인정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아무런 자부심도 가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종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이러한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탄크레도가 다시 말했다.


“나로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에게 복종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작은 형제의 마음 자세입니다” 하고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정말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나는 사부님께 찬성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부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형제는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겸손하고 복종하는 태도가 형제에게는 비겁하고 무기력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올가미에 거린 새처럼 밤새도록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인간과 인간 성숙의 가장 고귀한 것은, 아무리 고상하고 아무리 거룩한 것일지라도 자기 사상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지 다 기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사상을 따르면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게 되며 진실로 다른 존재와 친교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침묵, 내적 생활의 깊이, 그리고 평화가 결핍된 것입니다. 인간의 깊이는 받아들이는 능력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괜찮으나 실제로는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껍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곤충의 알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절망적으로 번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원점으로 되돌아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무엇이 변화되었다고 믿지만 실은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죽은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깨어나지 못하고 꿈속에서 살아 왔던 것입니다.”


탄크레도는 말이 없었다. 프란치스코의 말이 너무나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꿈속의 사람들에게 속해 있음을 느끼는 순간 탄크레도는 화가 났다. 하지만 자기가 듣고 느낀 것으로는 꿈속에 있는 것이 자기 자신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다 꿈속에 있는 사람이겠습니다. 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에 그가 말했다.


프란체스코는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로 말하자면 누구도 현실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무엇을 가감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 대부분의 행동 목표입니다. 비록 우리가 천국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 할 때라도 자주 이런 것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깊은 실패의 구렁텅이에 맞부딪칠 때 거기에는 영원한 실체, 즉 하느님의 존재만이 항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만이 전능하시고 하느님만이 거룩하시고 하느님만이 착하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깊이 즐거워함으로써 평화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시고, 그리고 우리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오직 이렇게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인간만이 진실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개인적 원의에서 자유롭게 되며, 자신 안에 일어나는 하느님의 창조적 활동을 아무것도 흐리게 하지 않습니다. 그의 원의는 단순하게 되는 동시에 우주와 같이 넓고 깊어집니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하느님을 원하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며, 아무것도 창조주의 활동에서 그를 떼어 놓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자기 안에 마음대로 활동하시면서 마음대로 자기를 인도하실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순종은 우주의 신비와 천체를 움직이시며 가장 작은 들꽃까지 곱게 피우시는 그 전능하신 분에게로 접근하게 해 주며, 세상을 더욱 박게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지극히 선하신 분을 발견하게 되고, 어느 날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될 그분이 모든 존재에 이미 퍼져 있고 피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위대한 선의 모상에 가담하게 되어,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풍성한 빛을 보내시는 성부와 같은 태양이 됩니다. 오! 탄크레도 형제, 하느님의 영광은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세상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세상에는 잘못도 있고 죄악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들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그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 갈 권리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침묵을 지킴으로써 또 우리들이 태만함으로써 나쁜 사람들의 악한 생각이 굳어지고 악이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에게 앙화가 있을 것입니다”하고 탄크레도가 다시 말했다.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죄악과 과실 앞에 무관심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분노와 불안은 우리 자신과 이웃에 대한 애덕을 옹색하게 만들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과실과 죄악을 보고 계시는 것같이 우리도 그것들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본성적으로 어떤 과실을 보면 판단하고 벌할 것을 떠올리지만 하느님은 그 상태에서 구해 주시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모든 존재 가운데서 가장 양선하시고 가장 인내로 우신 분이십니다. 하느님 안에 어떠한 원한도 있을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 하느님께 반항하고 죄를 범하여도 하느님 앞에는 항상 피조물로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파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듯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들을 다시 파괴하는 것이 무엇이 즐겁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 안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을 대하실 때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무기력하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식들을 대할 때와 같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위대한 인내의 비결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한 집안의 아버지가 자기 자식이 성장하여 독립해 살기를 원할 때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각자 너희 나름대로 자기 생활을 하려고 초조해하며 떠나려 한다면 떠나도 좋다. 그러나 너희가 떠나기 전에 한 마디 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너희 생활이 권태롭고 비탄에 빠지게 되면 내가 항상 여기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내 문은 밤낮으로 활짝 열려 있으므로 너희는 언제든지 되돌아올 수 있다. 여기가 너희의 집이 될 것이고 나는 너희를 구하기 위해 온갖 것을 다 하리가. 모든 문이 너희 앞에서 다 닫힐지라도 내 문을 언제까지나 너희에게 열려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탄크레도 형제, 어느 누구도 하느님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시작합시다.”


“그러나 사부님,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탄크레도가 물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주님의 영을 지니기로 갈망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만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선하게 할 수 있으며,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리 존재와 하나를 이루어 선량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음 화시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까? 한 사람을 복음화 시킨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당신도 주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생각하는 것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더 고상하고 위대한 어떤 것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도록 친교를 나눔으로써 그가 새로운 자각을 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에게 당신의 우정을 바침으로써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참된 우정은 거만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지 않으며 깊은 존경과 신뢰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에게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까다로운 일입니다. 인간 사회는 권리와 재물을 모이기 위한 끝없는 싸움의 들판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고통과 잔인성이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새로운 경쟁자로 나타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들 가운데 전능하신분의 평화의 증인으로 나타나야 하며, 탐욕이 없고 아무것도 경멸하지 않는, 진실로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우정이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되었고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우정입니다.”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지자 갑자기 공기가 서늘해졌다. 바람이 일어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벌써 밤이 가까웠는데 아직도 매미는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노래하고 있었다.